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0화 (120/171)

# 12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2화

22. 사도봉의 비밀(2)

이니티움에 접속하기 전 평소와 같이 이니티움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있는 이대현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랭킹 표였다.

7위 레벨 304 에리먼

8위 레벨 304 호야

자신의 바로 아래까지 따라붙은 호야의 존재가 눈가를 찌푸리게 한 원인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라니까......."

첫 만남부터가 좋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감히 자신이 먼저 내민 악수를 거절하는 거만함을 내보였었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에도 자신의 말에 고개만 끄덕여 답을 하더니 얼마 전에 만났을 때에는 없는 사람 취급. 자신한테만 그러한 행동을 보이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자신의 뒤에 바짝 쫓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같은 국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고작 7위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잘못하다가는 한국 1위라는 타이틀마저 빼앗기게 생겼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이대현의 스마트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이대현은 미간을 더욱 강하게 찌푸렸다.

받기 싫지만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전화였기에 그는 액정의 녹색 버튼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네. 여보세요."

상대방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대현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나왔다.

"하아, 귀찮게....... 아뇨, 아뇨. 가라면 당연히 가야죠. 누가 언제 안 간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직 날짜도 안 정해진 거잖아요? 날짜가 정확히 정해지면 그때 다시 말해 줘요."

전화를 끊은 이대현은 짜증이 담긴 한숨을 팍팍 내쉬었다.

"하아, 갈 거면 지가 갈 것이지 귀찮은 일은 죄다 나한테 떠넘기고 X랄이야."

* * *

'뭐, 뭐야, 도대체.......'

왕리는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도반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호야가 겉보기와는 달리 엄청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은 했었지만 설마 사람까지 소환할 줄은 몰랐다.

그때 호야가 말을 건네 왔다.

"혹시 여기서 옷을 살 수 있을까요?"

"어? 어어. 저 안쪽에 몇 개 있으니까 둘러봐......."

호야는 왕리에게서 도반과 자신의 옷을 구입한 뒤 그의 가게를 빠져나왔다.

가게를 나와서 길을 걷고 있자 도반이 말을 꺼내 왔다.

"미안해."

"괜찮아. 귓속말을 꺼 둔 내 탓도 있고 옷을 사는 데에 많은 돈을 쓴 것도 아니니까."

호야는 도반의 짧은 사과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도반이 짧게 말하는 것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있지, 도반."

도반이 동대륙에 온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호야는 지금 퀘스트를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퀘스트가 발생되지 않은 도반에게는 득이 될 것이 없는 일이었기에 그에게 어떻게 할지를 묻기 위해서 호야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반의 얼굴은 그 특유의 무표정을 보이고 있었지만 흥미로 가득 찬 눈동자만은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영상과는 다르네."

"간접적으로 보는 것하고 직접적으로 보는 것에 느낌의 차이는 있을 테니까."

도반은 호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도반. 여기까지 와 준 것은 기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있을 수가 없어."

"해야 할 일?"

호야는 도반에게 퀘스트를 받은 걸과 그 내용을 설명했다.

"나도 간다."

하지만 도반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따라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랭킹 1위에 오른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괜찮겠어?"

도반이 애서가를 넘어서 1위에 오른 것이 불과 며칠 전, 보통이라면 랭킹 유지를 위해 힘써야 할 때였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도반은 랭킹에 큰 집착은 없었다.

랭킹 1위나 2위나 도반에게는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는 많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그럼 문제없어."

호야와 같이 하지 않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냥밖에 없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그러면 차라리 호야와 같이 하는 것이 나았다.

호야도 도반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사도봉으로 가기 위해서 북쪽 문을 통과했다.

"이봐, 지금 사도봉은 산사태로 통제되고 있으니까 그쪽으로는 가지 마라."

"네, 충고 감사합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호야와 도반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둘의 목적지가 그 사도봉이었기에 별 효과는 없었다.

호야와 도반은 일단 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사도봉의 대략적인 방향은 알고 있지만 그 정확 위치를 둘은 모른다.

처음에는 왕리에게서 지도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그의 가게에서는 지도를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호야는 병사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산의 입구를 찾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작은 산을 두 개 정도 지나가자 산의 초입에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호야는 그곳을 조심히 살폈다.

'병사들의 수는 많지만 경비의 틈이 많아.'

병사들은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레 생겨난 길을 중심적으로 지키고 길이 아닌 곳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산이 험해 보여서 일반인들은 오르기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착같이 달려든다면 오르지 못할 험난함도 아니었다.

마치 병사들에게 의욕이 없어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색만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반, 저쪽으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알았어."

호야는 경비들이 시선이 가지 않는 부근을 찾아내어 나무와 수풀에 몸을 숨겨 그곳을 향해 이동했다.

그 덕에 병사들과 꽤나 가까워졌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짝 엿들을 수 있었다.

"하아, 그나저나 이게 무슨 짓이냐."

"뭐가?"

"관리님 말이야. 그냥 포기하시면 좋은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시겠다고 그거를......."

"쉬잇! 조용히 해!"

병사 하나가 기겁을 하며 한숨을 내쉰 병사의 말을 멈추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살피었다.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

"여기에 우리들 말고 누가 있다고 그러냐?"

"요즘 마을에도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니까 확인하려고 오는 녀석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러니까 입 조심해. 끽! 하고 죽고 싶어?"

"아 예, 예."

'그거가 뭐지?'

아마 병사가 처음에 말한 그것이 사도봉 통제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호야는 그러한 생각을 하며 도반과 함께 병사들 몰래 산으로 들어왔다.

왕리의 말이 맞는다면 난폭해진 몬스터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었기에 호야와 도반은 주변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산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부스럭거리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크르으으으-!"

"크아아아악!"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의 수는 슬쩍 보아도 수십 마리가 넘어 보였다.

병사들에게 들키면 퀘스트가 자동 실패가 되기에 큰 소리나 폭발을 동반하는 스킬은 사용하지 못한다.

즉 광범위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리. 범위가 작은 스킬들의 사용만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덤으로 나무가 쓰러져서 소리를 내어도 들킬 위험이 있기에 주변을 잘 살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십 마리는 꽤나 까다롭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었기에 호야는 검을 뽑아 들어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고 몬스터들도 호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몬스터들은 호야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목표는 그의 뒤에 있던 도반이었다.

"뭐......?"

그들은 호야를 완전히 무시했다.

아니,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말이 올바를 것이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검은색 털 뭉치는 자신들에게 인간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그녀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녀와 같은 존재를 모시고 있는 호야는 적이 아니었다.

"크읏!"

"크르르륵!"

카드득-!

도반은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달려온 몬스터를 향해 망치를 휘둘러 입을 틀어막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내리쳤다.

그 뒤를 이어서 달려든 몬스터들은 방패를 크게 휘둘러 한 번에 쳐 내었다.

큰 동작으로 인해 빈틈이 생겼지만 그것은 바로 회수한 망치로 메꾸었다.

도반은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하고 있었지만 한 번에 혼자서 수십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때 호야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신속."

스킬을 사용한 호야는 몬스터들의 벽을 뚫고 도반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때, 호야의 머리 위에 있던 바두가 둘을 돕기 위해서 몸을 키워 꼬리와 몸으로 호야와 도반을 보호하는 형태로 자세를 잡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자 도반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이 조금씩 울음소리를 줄이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뭐지......?"

"글쎄."

아무리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도반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은 단 한 마리만을 남긴 채 모두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몬스터도 천천히 발을 떼더니 그들의 앞을 움직이면서도 계속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행동이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따라오라는 건가?"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호야와 도반은 서로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몬스터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몬스터는 둘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뒤로는 전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몬스터를 따라가는 동안 혹시 몰라 주변을 경계했지만 몬스터가 도반에게 달려드는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몬스터를 따라가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산 정상의 바로 아래에 있는 절벽 앞이었다.

그 절벽의 앞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듯이 보이는 새까만 동아줄들이 마법진 위에 놓인 새하얀 털 뭉치를 묶어 놓고 있었다.

몸을 키운 바두보다 거대한 새하얀 털 뭉치였다.

도반과 호야를 이곳까지 이끈 몬스터가 그 자리에서 떠나가자 새하얀 털 뭉치가 몸을 둥글게 말아 자신의 품속에 넣고 있던 고개를 들어 둘을 바라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푸른색의 눈동자와 길게 솟은 두 개의 귀, 뒤로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이 10개의 꼬리를 펼치고 있었다.

"역시......."

새하얀 짐승은 호야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바두를 슬쩍 보더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뻗어 바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두도 호야의 머리 위에서 짧게 고개를 뻗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역시 너도 나와 같은 그분의 아이구나."

"와옹?"

"그래, 아직은 몰라도 되는 일이란다. 깊게 생각하지 말거라."

바두를 바라보는 푸른 눈에는 인자함이 가득했다.

[상태: 눈앞에 있는 하얀 녀석에게서 뭔가 좋은 냄새가 납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 정체가 뭐죠?"

바두의 상태를 본 호야는 새하얀 짐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의 상황을 봐서는 대화가 가능한 지성이 있는 개체 같아 보였고 자신들에게도 적의가 없는 것 같다.

호야의 생각이 맞았는지 질문을 받은 새하얀 짐승은 호야와 눈을 마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사도봉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산의 주인, 십미호다. 그냥 간단하게 미호라고 불러라."

인자함이 가득했던 그녀의 푸른 눈에 분노와 슬픔이 채워졌다.

"......인간이여,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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