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19화 (119/171)

# 11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1화

21. 사도봉의 비밀(1)

"회장님, 바로 회사로 가시겠습니까?"

"그래,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천천히 가 주게."

"예, 알겠습니다."

백윤택이 차 시트에 몸을 기대자 운전기사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

백미러를 통해 백윤택의 얼굴을 엿본 운전기사는 평소에 하던 사담을 꺼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차를 몰았다.

백윤택의 쓸쓸한 표정만큼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호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하지 말고 아빠와 마주 봐 주셨으면 해요.

그 말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런 짓을 했었는데, 무슨 염치로 그 아이와 마주 보라는 말이냐.......'

오늘따라 머리와 가슴이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 * *

선왕인 권지전의 자식들 중 첫 번째 아들인 권일우.

그가 태어날 때 내지른 울음소리는 천하를 울렸으며 눈동자에서는 통치자의 기질이 엿보였다.

권일우 나이 2세,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다.

권일우 나이 3세, 성나 날뛰는 장군의 말을 맨손으로 제압하다.

권일우 나이 9세, 범상치 않은 머리를 활용하여 권지전의 정치에 큰 힘을 보태 주다.

권일우 나이 12세, 당대 백호대 장군에게 무력으로 압승을 거두다.

권일우 나이 19세, 둘째의 흉계를 눈치채고 그 계획을 막아 나라를 지키다.

권일우 나이 20세,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이상 행동을 반복하는 셋째를 가슴으로 품다.

권일우 나이 25세, 붕어(崩御)한 권지전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

그 후, 현재까지 선정(善政)을 베풀다.

여기까지가 호야가 책장에서 꺼낸 책 '천우신조'에 쓰여 있는 내용이었다.

'이걸 역사라고 봐야 하나?'

역사라기보다는 잘 포장되고 부풀려진 영웅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살짜리 아이가 성난 말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판타지니까 가능하려나?'

호야는 그러한 생각을 하며 다른 책들도 꺼내 보았다.

다른 책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좋은 말뿐인 현 황제 권일우라는 자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었고 다른 내용이라고는 역대 왕조와 그의 자식들에 대한 짧은 기록들뿐이었다.

역사로 분류된 책장에서 더 이상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호야는 분류에 상관없이 쓸모가 있어 보이는 책을 닥치는 대로 꺼내어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야기라고 할 만한 책들만이 가득할 뿐, 기록이라고 할 만한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호야는 큰 소득 없이 한동 문고를 나왔다.

"어? 벌써 가는 거냐?"

"네, 보고 싶은 책은 다 봤거든요."

건물을 나오는 호야에게 출입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호야는 기회다 싶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몬스터의 소재를 팔 만한 곳을 알 수 있을까요?"

동대륙에서는 골드가 돈으로 통하지 않는다.

때문에 동대륙의 돈을 새로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호야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어제 사냥을 하면서 모아 둔 몬스터들의 소재를 파는 것뿐이었다.

아마 인벤토리에 있는 소재를 모두 판다면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몬스터? 그게 뭐냐?"

"네?"

대답이 질문으로 돌아오자 호야는 당황했다.

하지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설마 돈 단위가 다르고 도서관을 문고라고 부르는 것처럼 몬스터의 명칭도 다른 건가?'

호야의 그런 생각은 정확이 맞아들었다.

"아아, 마물 말하는 거였냐."

"네, 그거예요, 그거."

호야가 이부에 대해 설명을 하자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게의 위치와 지름길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설마 네가 직접 마물을 잡은 거냐?"

"네? 네."

"흐음......."

'네가?'

남자가 보기에 호야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옷과 방해만 될 것 같은 작은 강아지, 도저히 이부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 직접 잡은 거든 아니든, 거짓말이든 뭐 어떠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호야는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는 그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걸으며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역시 커뮤니티의 베스트 게시 글에는 이전에 있던 강남불주먹의 스트리밍의 정리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을 확인해 보니 자신처럼 골드를 건네주는 일은 없었지만 로열 나이츠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커뮤니티를 확인하다 보니 어느덧 남자가 알려 준 가게에 도착했다.

"어서 옵쇼~."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한편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 호야에게 다가왔다.

"형씨, 뭘 사려고 온 거야? 낫? 아니면 호미?"

"아뇨, 물건을 사려고 온 게 아니라 팔려고 온 거예요."

"뭐?"

가게 주인이 호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물건이 들어 있을 만한 가방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다고 친다면 바지 뒷주머니 정도?

거기서 무엇이 나올지 심히 궁금했다.

"흐음~, 그래? 그러면 일단 팔 물건이라는 것 좀 보여 줄래?"

"그냥 꺼내면 되나요?"

"그래."

남자의 말에 호야는 바닥에 몬스터를 잡아서 생긴 소재 아이템들을 꺼내었다.

이부의 비늘, 흑고라니의 가죽, 달걀귀의 껍질 등 그 수를 합하면 수십은 되어 보였다.

밤에 바두가 몬스터를 잡으면서 한곳에 모아 두었던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아, 다 꺼냈어요."

바지 뒷주머니에서 한 개나 두 개 정도의 물건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호야가 소재를 꺼내는 것을 멈추자 가게 주인은 잽싸게 호야가 꺼낸 아이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주판을 튕겼다.

"이게 다 뭐람....... 이거 설마, 형씨가 다 잡은 거야?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이 많은 걸 어디서 꺼낸 거야?"

옷차림만을 보았을 때에는 농기구를 사러 온 농가의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겉보기보다 대단한 인물이었다.

호야는 남자의 반응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 깜빡했네.'

동대륙에는 플레이어가 없다.

서대륙에서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는 모습이 흔하지만 동대륙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리 글에도 적혀 있던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넘겨 버린 것 같았다.

호야는 혹시 모르니 가방을 하나 사서 메고 다니자고 다짐했다.

"하하하......, 그것보다 계산은 다 끝난 건가요?"

"엉? 어어, 끝났어. 잠시만 기다려 봐."

가게 주인이 뒷방에 잠시 들어가더니 무거워 보이는 자루 하나를 꺼내어 호야에게 건네주었다.

호야는 그것을 가게 주인에게서 가방을 구입한 뒤 그 안에 넣는 척하며 인벤토리에 넣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니 골드의 위에 전이라는 돈의 단위가 추가되어 있었다.

[왕리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호야가 한 번에 대량으로 판 아이템과 친화력의 효과로 인해서 가게 주인인 왕리와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이전에 파피스의 호감도를 처음으로 올렸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 호야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때 주변을 두리번거린 왕리가 조심스레 호야에게 말을 꺼내 왔다.

"저기, 형씨, 혹시 그 이야기 알아?"

"그 이야기라뇨?"

"지금 북쪽 산길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잖아."

"네? 네, 그렇죠."

호야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일단 알고 있다는 듯이 긍정을 표했다.

"산사태로 인해 길이 막혀 보수 중이라 통제를 하고 있다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한 번 더 주변을 확인한 왕리가 이번에는 아예 호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은 마물들이 난폭해져서 길을 막아 둔 거야. 그걸 관리가 산사태라고 속인 거지."

한동 마을의 북쪽에 있는 사도봉에 사는 몬스터들은 공격을 받지 않으면 먼저 공격을 가하지 않는 비선공 몬스터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도봉의 몬스터들이 난폭해진 상태로 사람들에게 먼저 위협을 가하고 있고 그것을 마을 관리가 병사들을 이용해 숨기고 있다는 것이 왕리의 말이었다.

"뭐, 실제로 난폭해진 마물을 봤다는 사람은 없지만 수상쩍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산사태로 길이 막혔으면 얼른 병사들을 투입하거나 마을 사람들의 손을 빌려서라도 빠르게 복구를 해야 하는데 산 안쪽으로 들어간 병사들은 하나도 없고 입구를 지키는 병사만 잔뜩 있다니까. 딱 봐도 이상하지?"

확실히 왕리에게서 들은 것으로만 보자면 그들의 행동은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조금 이상하네요."

"그렇지? 후우, 그 산길이 막혀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내 가게에 납품을 해 주는 상인이 오지 못하고 있다고!"

"그런데 왜 이런 거를 저한테 얘기해 준 건가요?"

"형씨는 입은 옷이라거나 겉모습하고는 다르게 강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혹시나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해서."

그때 호야에게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사도봉의 비밀'이 발생되었습니다.]

[사도봉의 비밀]

현재 사도봉의 출입이 산사태로 인해 길이 막혀 보수를 한다는 이유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사태가 아닌 그것으로 가려져 있는 또 다른 원인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봉으로 가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원인을 알아보세요.

*병사들에게 사도봉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당할 시 퀘스트가 자동으로 실패 처리됩니다.

완료 조건: 사도봉에서 길이 통제되고 있는 원인을 알아낸다.

성공 보상: 경험치, 퀘스트 '사도봉의 주인'

실패 패널티: 없음

"농담이야, 농담. 그냥 주변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거야."

왕리가 호야의 등을 두들기며 농담이라 말해 왔지만 이미 퀘스트는 발생되어 버렸다.

동대륙에 와서 처음으로 발생된 퀘스트, 그것도 연계 퀘스트다.

호야는 이 퀘스트를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제 복장이 이상해요?"

"어? 아니, 아니. 이상하지는 않아. 그저 조금 약하고 가난해 보인다고나 할까? 좀, 그래."

확실히 할아버지가 준 옷은 낡고 오래된 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정면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돈도 구했으니 아무래도 복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흐억!"

호야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왕리가 무언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왕리의 반응과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호야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동대륙에는 없을 사람이 서 있었다.

"도반? 왜 여기에?"

"귓속말에 대답이 없길래."

도반의 말에 호야는 이전에 귓속말이 안 보이게 설정한 뒤로 다시 설정을 돌려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보이도록 설정을 되돌려놓으니 그동안 쌓인 귓속말들이 보였다.

왠지 귓속말이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그 안에는 스킬을 사용해 그쪽으로 건너가 봐도 되냐고 물어보는 도반의 귓속말도 있었다.

호야는 도반을 제외한 귓속말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그동안 귓속말을 꺼 두고 있었다고 사과의 답을 보내 두었다.

"아, 미안. 귓속말을 꺼 놓고 깜빡하고 있었어."

"그럴 것 같았어."

[유아: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도반의 대답과 동시에 온 유아의 귓속말에 호야가 웃음을 흘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