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18화 (118/171)

# 11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0화

20. 그 남자의 속사정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노년의 남자.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엿보였다.

완전히 처음 보는 할아버지였지만 호영은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띵동-.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호영은 그제야 자신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

호영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니?

"......죄송해요, 모르겠어요."

-......재건이 애비 되는 사람이다.

"그러시군......, 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백재건과 매우 닮은 얼굴이었다.

백재건의 인상이 조금 더 강해진 상태에서 노년을 맞이한다면 완전히 판박이일 것 같다.

"아, 그,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러니까......."

-일단 안에 들여보내 주지 않겠니?

"아, 네! 잠시만요!"

백재건의 아버지가 왜 여기에 온 것일까.

아니,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유야 충분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지금 집에는 자신 혼자였다.

'그보다 아저씨한테 아버지가 있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를 밖에 놔둘 수도 없었기에 호영은 빠르게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마."

할아버지를 거실로 안내한 호영은 마실 것을 대접하기 위해서 냉장고 안을 뒤졌다.

"저기, 보리차...... 드실래요?"

"준다면 고맙게 마시마."

컵에 보리차를 따라서 쟁반 위에 올려 들고 간 호영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아 있는 그와 마주 앉기 위해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

"......."

보리차가 목을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정적이 길게 이어져 호영이 긴장으로 인해 그의 눈치를 보고 있자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시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마. 재건이 애비 되는 사람이고 이름은 백윤택이라고 한단다."

"아, 선호영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다."

다시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백윤택은 호영에게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겠니?"

"죄송해요. 아저씨, 아니, 그...... 아빠가 가족사진은 보여 준 적이 없어서 처음에 못 알아봤었어요. 알고서 보니까 아빠가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네요."

백윤택이 호영에게 던진 질문은 '자신이 백재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를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백성 그룹의 회장임을 알고 있나'를 물어본 것이다.

호영의 반응을 보면 모르는 것 같았다.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저게 연기라면 눈앞에 있는 청년은 지금 당장 배우의 길을 걸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백윤택은 생각했다.

호영의 반응에 백윤택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재건이가 좋은 가족을 만났구나.'

처음에는 백재건의 뒷배경을 알고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했다.

하지만 지금 반응으로 인해서 백재건의 뒤에 있는 자신이 아닌 오로지 백재건이라는 사람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내 얼굴을 모르다니....... 내가 요즘 TV에 얼굴을 너무 안 비쳤나?'

백윤택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호영이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 저희 집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아아, 미안하구나. 내가 잠시 깜빡했어."

백윤택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뭐예요?"

"너희 엄마와 재건이의 결혼식 축의금이란다. 이것을 전해 주기 위해서 온 거야."

자신은 백재건의 결혼식에 갈 수도, 갈 자격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들 장가가는 길, 이번만큼은 축하해 주고 싶었다.

호영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흰 봉투를 보고서 입을 열었다.

"이걸 왜 지금 주시는 거죠?"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아직 예식장과 날짜도 잡히지 않은 때였다.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왜 백재건 본인에게 건네지 않고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자신한테 건네는 것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

호영의 질문에 백윤택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그의 슬픈 표정을 엿본 호영은 백재건과 백윤택의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백윤택이 백재건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언뜻 느껴졌다.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상황은 다르지만 그의 얼굴에 단탈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의 얼굴을 보고 고민하던 호영은 결국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흰 봉투를 백윤택 쪽으로 밀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이걸 받을 수는 없어요. 본인에게 직접 전해 주세요."

"......어떻게 안 될까?"

"죄송해요. ......오지랖이라 생각하고 들어 주세요. 아빠와 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하지 말고 아빠와 마주 봐 주셨으면 해요."

호영의 말에 백윤택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젊은 청년에게 속마음을 겉으로 보여 버리다니, 자신은 회장 실격이라고 백윤택은 생각했다.

백재건의 일만 관여되면 그에게 지은 죄가 있어 감정이 숨겨지지가 않는다.

백윤택의 눈에는 슬픔과 아련함이 엿보였다.

"그래, 그렇구나. 오늘 실례가 많았단다."

결국 그는 흰 봉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보리차 잘 마시고 가마."

* * *

"와옹!"

호야가 어젯밤 로그아웃한 자리에 다시 나타나자 홀로 숲을 돌아다니던 바두가 달려와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거대화가 증감이 된 뒤로 바두는 전투 상황을 제외하고는 계속 작은 모습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미안, 많이 늦었지?"

"왕!"

[상태: 알면 좀 빨리빨리 다니라고 주인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바두의 상태를 확인한 호야는 작게 실소를 내뱉은 후 지하 땅굴 제7구역을 향해 움직이며 퀘스트를 확인했다.

퀘스트를 확인한 호야의 눈은 놀라움으로 인해 크게 뜨였다.

[힘을 기르기 위한 큰 걸음-첫 번째]

*펫 '바두'가 혼자의 힘으로 잡은 몬스터들만 카운트됩니다.

완료 조건: 주인 플레이어의 적정 레벨 몬스터 사냥 (149/300)

성공 보상: 펫 '바두'가 스킬 '드레인'을 획득

"허......."

헛웃음이 나왔다.

하룻밤 사이에 퀘스트 완료 조건의 반이 채워져 있었다.

"너, 밤에 안 자고 계속 사냥하러 돌아다닌 거야?"

"와옹!"

아무래도 바두가 밤 내내 자지 않고서 몬스터를 사냥하러 다닌 듯했다.

호야의 질문에 바두는 그저 꼬리를 강하게 흔들 뿐이었다.

호야는 그런 바두에게 자극을 받아서 그날 하루는 마을에 가지 않고 숲속을 뛰어다니며 몬스터만을 사냥했다.

그 덕분에 크라우스식 검술을 상급으로 성장하기 직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 * *

동대륙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 호야는 제7구역을 두 번 클리어 한 뒤 로열 나이츠와 같이 찾아내었던 마을로 향했다.

앞으로 최소 3일이면 바두의 두 번째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마 오늘 밤쯤이면 완료가 될 것이다.

할아버지가 주었던 옷으로 갈아입은 호야는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이에 섞여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호야는 동양의 여러 문화들이 섞여 있는 모습의 시장통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를 찾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응? 도서관?"

호야가 찾는 것은 도서관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동대륙을 돌아다니기에는 위험이 크다.

혹여 동대륙의 주민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이 모르는 것을 들켰을 때에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호야는 할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최대한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생각이었다.

"도서관......, 도서....... 아! 혹시 문고를 말하는 거야?"

호야의 질문을 받았던 노점 주인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쳤다.

"책을 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어요."

"문고 말하는 거 맞네. 문고라면 이 옆길로 쭉 가다가 나오는 기와가 올려진 2층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뒤 다시 쭉 가다가 대장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나올 거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점 주인이 알려 준 대로 길을 걷자 '한동 문고'라 쓰여 있는 간판이 걸린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 안은 들여다보자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건물을 반 정도 돌아서 입구를 찾아낸 호야는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한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정지. 입장 전에 먼저 이용료를 받겠습니다."

"이용료를 받나요?"

"거 당연하지. 나는 뭐 땅 파서 책을 만들어 갖다 놓은 게 아니라고."

호야는 문고를 시립 도서관 같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 요금을 내고 들어가는 만화방 같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용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었다.

"이용료는 얼마인가요?"

"한 번 입장에 50전. 퇴장했다가 다시 입장하게 되면 다시 지급해야 된다."

"50......전이요?"

"그래, 50전."

호야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화폐 단위는 '골드'다.

전이라는 화폐 단위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위그드라실의 마을에서 사용하던 화폐도 골드였다.

호야는 혹시나 하여 인벤토리에서 1골드를 꺼내 보았다.

"혹시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뭐냐? 패(牌)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무래도 동대륙에서는 서대륙의 돈을 돈이라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동대륙의 돈을 새로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호야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호야가 꺼낸 골드를 유심히 보았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호야의 손에 있는 골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거 몇 개 더 있냐?"

"아, 네."

"그렇다면 이번에만 특별히 방금 꺼냈던 패 다섯 개 정도에 입장시켜 줄게."

"그래도 되나요?"

루제로스의 국기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는 황금색의 패, 남자는 이 아름다운 패를 황제에게 진상품으로 올리면 좋은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호야는 남자에게 다섯 개의 골드를 건네고 한동 문고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 머리 위의 그 강아지는 바닥에 내려놓지 마라."

"네."

한동 문고의 안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조금 작게 느껴졌다.

열을 맞춰서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책장들에는 각종 책들과 두루마리들이 꽂혀 있었다.

책장의 옆면에는 현실의 도서관처럼 책의 분류가 적혀 있어서 호야는 금방 역사에 관련된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장은 슬쩍 보기에도 다른 책장들에 비해서 좋은 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져 있었지만 한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은 텅텅 비워져 있었다.

한 칸의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도 중복되는 것들이 다수였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데.'

책의 양은 적었지만 호야는 빨리 읽을 수 있겠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한 호야는 책장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을 꺼내어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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