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17화
17. 땅굴의 끝에는(1)
"혹시 메이를 좋아해?"
남자아이들은 관심이 가는 여자아이를 일부러 괴롭혀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호야는 아이번도 그러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뭐? 아, 아니거든! 만약 맞는다고 해도 너한테 대답해 줄 이유는 없어!"
소리를 내지른 아이번이 호야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몇 번 때리더니 그대로 달려서 도망쳐 버렸다.
웃으면 안 되는데 아이번의 모습이 풋풋하고 귀여워서 살짝 미소가 지어져 버렸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평소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 오늘 아이번이 부린 심술은 자신이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호야는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존재가 그의 사랑에 위협이 되었던 것일 거다.
"제가 아이번을 쫓아갈게요. 치빈은 메이를 쫓아가 줘요."
"그래, 알았어."
"너희들끼리 있을 수 있어?"
"우리 그렇게 안 어려요! 날도 밝으니까 문제없어요."
"그래, 정말 미안해."
"형, 잠깐만요."
호야가 아이번을 찾으러 가려고 하자 마티어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이번은 아마 여기에 있을 거예요."
"여기에?"
"거기 아이번의 비밀 기지예요. 혼자 갈 곳은 거기밖에 없을걸요."
"응, 알려 줘서 고마워."
마티어스에게서 연필로 그린 꾸깃한 지도를 건네받은 호야는 그 지도에 별표시가 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도 자체는 삐뚤삐뚤했으나 필요한 표시들은 모두 되어 있었기에 찾기 어렵지는 않았다.
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으로 찾아가자 골목 안쪽의 빈 공터의 한편에 쳐져 있는 천막 아래에서 아이번이 쭈그린 채 울며 씩씩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야는 그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뭐야! 네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마티어스가 알려 줬어."
"그 녀석......!"
살짝 짜증을 낸 아이번이 곧 입을 다물었다.
살짝 길게 이어지던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호야였다.
"계속 그런 짓을 하면 메이는 너를 싫어하게 될 거야."
"......나도 알고 있어."
"메이가 너를 싫어했으면 좋겠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랬던 거야?"
"......."
아이번은 대답 대신에 얼굴을 붉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메이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형은 다 알아. 형 친구도 예전에 똑같은 짓을 했거든."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 그......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었어?"
"아니, 고백하기도 전에 미움만 잔뜩 받고 차였는데."
호야의 말에 이이번이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이번 너는 아직 미움받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밖에 모른단 말이야. 어떻게 해야 돼?"
"우선 지금까지처럼 심술을 부리지 마. 그리고 심술을 부리지 않아도 메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면 돼."
"멋진 사람......."
아이번이 무릎에 고개를 박더니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장 메이에게 큰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되는 거야."
"......응, 한번 해 볼게."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각오를 정한 아이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야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게 말을 내뱉었다.
"그...... 아까 짜증 내서 미안해."
"응?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난 두 번은 말 안 하니까! 넌 아직 내 적이야!"
아이번이 다시 도망쳐 버렸지만 이번에는 쫓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소년은 훗날 비어 있는 사천왕의 자리를 차지해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아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미래의 일.
* * *
그 하루 뒤 루나에게서 로열 나이츠의 모두가 제7구역을 클리어 했다는 연락이 도착해서 호야는 마계를 나왔다.
마계를 나오기 직전에 메이글린과 아이번이 가까스로 화해를 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직 둘이 서먹하기는 했지만 그건 아이번이 천천히 좁혀 나가야 할 거리다.
"그사이에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입이 아주 찢어지려고 하는데요?"
"개인 사정이라서 비밀입니다."
호야는 루나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걸음을 옮겼다.
[던전 '지하 땅굴-제8구역'에 입장합니다.]
던전에 입장한 그들은 클리어 조건이 '던전 내 모든 몬스터의 사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제7구역만 달랐던 모양이네요. 왜 그것만 달랐던 거지?"
"거름망 같은 역할이 아닐까? 버스 타고 클리어 한 애들 걸러 내는 뭐 그런 거 말이야."
"쉿."
아직 라이트와 횃불로 밝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로열 나이츠에게 호야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두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호야는 바두와 히에로스를 소환했다.
"안......! 으읍!"
히에로스의 입을 손으로 막아 인사를 저지한 호야는 히에로스에게 이전과 같은 버프를 부탁했다.
모두에게 버프가 간 것을 확인한 호야가 파티 채팅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파티 채팅 호야: 지금 사방에 온통 흡혈귀들이 깔려 있어요.]
[파티 채팅 베인: ......대략적인 수가 얼마인가요?]
호야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벽면에 전체에 붉은색과 파란색의 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도저히 수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흡혈귀들이 아직 자신들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은 잠들어 있는 상태인 것 같다는 것이다.
호야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파티 채팅 루나: 그럼 아예 처음부터 크게 날려 버리죠? 조금씩 깎아 내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파티 채팅 강남불주먹: 그러다 뒤에서 스킬 부족하면 어떡해?]
[파티 채팅 루나: 그 뒤를 보려면 일단 지금을 해결해야 되잖아요. 그리고 혹시 여기에 있는 흡혈귀가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결국 스킬을 아끼지 않는 것이 되었다.
나중에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짧은 스킬들이 다시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움직여야 할 것이다.
"성역."
호야가 스킬을 사용하자 빛나는 커다란 원형 발판이 만들어졌다.
광장 전체로 퍼진 커다란 빛의 원은 라이트 없이 시야를 충분히 밝혀 주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벽에 박히듯이 세워져 있는 관 안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흡혈귀들이 보였다.
그 수가 언뜻 봐도 백을 넘기고 있다.
"하하, 미친......."
강남불주먹이 실소를 내뱉자 성역의 빛으로 인해서 눈을 뜬 흡혈귀들이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광장 중앙에 있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웬 쥐새끼들이 기어들어 왔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그딴 것을 깔아 놓는 거냐!"
먼저 깨어난 흡혈귀들이 관을 박차고 나와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되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악-! 이건 뭐냐......!"
흡혈귀의 속성은 어둠, 성역의 지속 대미지가 들어가는 것은 이전 구역들에서 이미 확인했다.
로열 나이츠와 호야는 대미지로 인해 제대로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흡혈귀들에게 곧장 공격을 가했다.
쉼 없이 흡혈귀를 사냥하기를 약 3시간 남짓, 주변에 흡혈귀가 모두 사라지자 그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광장에 있던 흡혈귀들이 전부인 듯 클리어 조건을 달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바로 던전을 나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바두의 레벨이 50을 달성했다.
점점 바두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을 올리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미 지금도 랭커들보다 뛰어난 스탯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방심하면 자신도 추월할 것이라고 호야는 생각하고 있었다.
[펫 '바두'가 레벨 50을 달성했습니다.]
[바두가 자신의 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펫 '바두'의 스킬 '거대화'가 '증감(增減)'으로 변화합니다.]
[펫 '바두'가 스킬 '이탈'을 획득합니다.]
[퀘스트 '힘을 기르기 위한 큰 걸음-첫 번째'가 발생되었습니다.]
[퀘스트 '힘을 기르기 위한 큰 걸음-두 번째'가 발생되었습니다.]
⋮
'응? 스킬이 바뀌었어?'
바두의 레벨 업으로 인한 시스템 메시지는 많았지만 제일 먼저 시선이 간 것은 스킬이 변화했다는 것이었다.
호야는 변화된 스킬과 더불어 새로 생긴 스킬을 확인하기 위해 바두의 스테이터스를 열었고 거기서 스킬이 아닌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 바두
종족: 펜리르
레벨: 50
HP: 13,750/13,750 MP: 14,250/14,250
힘: 785 민첩: 835
체력: 785 마력: 835
속성: 불
스킬
[화염구] [본능] [증감] [블레이즈 스텝] [이탈]
충성도: 100%
상태: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증감]
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성장할수록 더욱 작게, 더욱 크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탈]
주인인 플레이어에게서 떨어져 개인행동이 가능해집니다.
이탈 중일 때 획득하는 경험치는 플레이어와 나누지 않으며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합니다.
플레이어가 로그아웃한 상태에서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물음표였던 바두의 종족이 펜리르로 변해 있었다.
펜리르, 신의 자식이지만 그냥 힘이 강할 뿐인 커다란 늑대, 그것이 호야가 생각하는 펜리르다.
"와옹!"
"우풉!"
호야가 바두의 스테이터스에 집중하고 있자 무언가 작은 털 뭉치가 그의 얼굴에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호야의 얼굴을 기어올라 가더니 그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 털 뭉치를 잡아 얼굴 앞으로 가져온 호야는 그 정체가 바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다시 작아진 거지?"
"크아앙!"
목덜미가 잡힌 채 발버둥치는 바두를 머리 위에 올려 주고서 다시 바두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호야는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거대화가 변화하면서 생긴 스킬인 증감이 그 원인이었다.
몸집을 키울 수만 있던 스킬이 줄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일어나."
"에이-, 3분만 아니, 1분만 더요!"
그때 강남불주먹에게 향한 베인의 말에 호야와 로열 나이츠는 던전을 나와야 했다.
던전을 나온 그들의 눈앞에는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흙벽 앞의 어둠 속에 서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떨어진 구멍에서 자그마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빛......?"
그들의 머릿속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8구역이 지하 땅굴의 마지막이고 저 빛이 출구라는 생각이 말이다.
"가 보자!"
"아, 같이 가!"
달려 나가는 강남불주먹의 뒤를 로열 나이츠의 나머지와 호야가 따라갔다.
구멍을 빠져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숲이었다.
어둠의 숲이 아닌 평범한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오오! 오!"
"세상에, 다른 곳으로 이어진 땅굴이었던 거야?"
"여기 어디에 있는 숲이지?"
먼저 구멍에 도착한 로열 나이츠가 어린아이처럼 소란을 떨고 있을 때 뒤늦게 호야가 그들을 따라 구멍 밖으로 나왔다.
그때 그들에게 동일한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위대한 업적!]
[플레이어 최초로 동대륙에 진입하셨습니다.]
[칭호 '동대륙 개척자'를 획득합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대륙의 발견을 알리겠습니까? 예/아니오]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의 선택 권한은 제일 먼저 밖으로 나온 강남불주먹에게 있었다.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예'를 선택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동대륙의 발견이 플레이어 전체에게 알려졌다.
그들의 닉네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