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16화
16. 결계의 너머(2)
"어, 치빈! 이거 오랜만이야! 옆에 그 형씨는 누구야?"
"안녕, 아저씨."
"하하하! 아저씨는 무슨! 나보다 나이도 많은 놈이!"
"그래도 겉보기에는 내가 더 젊지."
마왕성이 세워져 있는 산을 둘러싸는 형태로 세워진 마계의 수도 '그레이노'.
그곳에 도착하자 많은 마족들이 치빈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치빈이 마계를 탐험하는 동안 쌓은 인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곧 그의 옆에 있는 호야에게로 향했다.
"메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형씨가 호야지?"
"아, 네."
"메이가 당신의 이야기를 자주 해요. 나중에 커서 결혼하고 싶은 오빠가 있다고 말이에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당신이 인간이라면 서로 나이 차이는 문제없지 않느냐고 익살스럽게 물어 오는 것을 호야는 자연스럽게 얼버무렸다.
어린 마음에 호감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해 뱉은 말일 테니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 호야의 생각이었다.
"아저씨, 파피스랑 메이는 어디에 있어?"
"아아, 그 둘이라면 지금 시간에는 학교 쪽에 있을 거야."
"고마워, 아저씨! 가자, 호야."
이름을 듣지 못한 아저씨에게 감사를 전한 호야는 치빈의 뒤를 따라갔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여럿의 마족들과 마주쳤고 그들 대부분이 호야와 치빈에게 우호적이었다.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적대감을 보이는 마족은 없었다.
조금 걸어서 마족들의 학교에 도착한 호야와 치빈은 학교 본관이 아닌 그 옆에 지어져 있는 작은 2층 건물로 향했다.
2세대 마족의 아이들이 파피스에게 수업을 받는 곳은 따로 있다고 아저씨가 알려 주었던 것이다.
2세대 마족, 그것은 더 이상 마기를 내뿜지 않고 자연과 몬스터 등을 오염시키지도 않는 마기를 가진 다섯 명의 아이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앞으로 2세대 마족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아-! 진짜 호야 오빠다!"
호야와 치빈이 학교의 부지 내로 들어가자 호야의 기척을 느낀 메이글린이 잽싸게 뛰어나와 호야를 향해 달려와 그의 품에 강하게 안겨 들었다.
"안녕, 메이. 오빠 보고 싶었어?"
"네! 호야 오빠는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오빠도 메이가 보고 싶었지."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만약 엄마한테 여동생이 갖고 싶다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 모습을 상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말을 꺼냈다가 등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었다.
그때 건물에서 메이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네 명과 파피스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메이, 수업 중에 갑자기 뛰어나가면 어떡하니."
"헤헤헤, 죄송해요, 언니."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고 했지?"
"네, 선생님!"
메이글린에게 주의를 준 파피스가 시선을 올려서 호야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에요, 호야 씨."
"오랜만이에요, 파피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네, 생각보다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탈이에요."
치빈과 호야처럼 손님이 아닌 일원이 되기 위하여 마계에 오게 된 파피스를 마족들은 매우 친절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녀가 마교 출신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메이글린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르고 있었기에 매우 순하고 착한 파피스를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헤이든이 미리 말을 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었다.
아직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파피스는 이미 마족들의 일원으로 완벽히 받아들여져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만 알지 말고 저희도 소개시켜 주세요."
"아, 그럼 그럴까? 이분은 호야 씨. 호야 씨, 이쪽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카멜이에요."
"바레타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마티어스."
"나는 호야라고 해. 잘 부탁해."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호야에게 손을 내밀어 왔기에 모두와 한 번씩 손을 잡고 악수를 해 주었다.
하지만 단 한 명, 호야에게 다가오지 않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들과 멀리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호야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이번, 뭐 해? 인사 안 할 거야?"
"내가 왜 인사를 해야 되는 건데?"
"그야.......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어째서인지 아이번은 호야에게 적대심을 보이고 있었다.
"메이 너도 얼른 거기서 내려와."
"응? 왜?"
"그거야......, 에이 씨......."
호야에게서 메이를 떨어트려 놓을 그럴듯한 말이 생각나지 않자 아이번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 모습을 본 호야는 메이를 땅에 내려 주고 아이번에게 가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호야라고 하는데, 너는 이름이 어떻게 돼?"
"방금 들었을 거 아냐, 멍청아."
"나는 직접 듣고 싶은데. 안 될까?"
"......."
아이번은 호야를 한참 째려보더니 호야가 내민 손을 찰싹 때리고는 그대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번, 손님한테 그게 뭐 하는 짓이야!"
"너 당장 와서 사과해!"
그런 아이번을 쫓아 다른 아이들도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건가?
아이번의 행동에 호야가 자신의 머릿속을 뒤적였지만 딱히 이렇다 할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번과는 방금 처음 만난 것이었기에 실수를 할 시간도 없었다.
"죄송해요, 호야 씨. 저 아이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딱히 신경 쓰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그래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아이번이 아직 어려서 그래요."
자신도 아직 어리면서 그런 말을 뱉어 내는 마티어스를 보고 호야는 헛웃음을 흘렸다.
조신한 아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메이, 이제 수업하러 들어가야지?"
"벌써요? 하지만 아직 해야 될 게 많은데....... 호야 오빠한테 도시 안내도 해 줘야 하고......."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그건 수업 끝나고 해야지."
"그래도......."
호야는 고민하는 메이글린에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며 그녀를 달래었다.
"진짜죠?"
"그래, 진짜."
메이글린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기에 호야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어 주었다.
그 모습을 아이번이 교실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둘은 알지 못했다.
치빈이 자신은 신경도 써 주지 않는 메이글린의 모습에 살짝 시무룩해졌지만 메이글린이 교실로 돌아가며 손을 흔들어 주자 금세 사르르 녹아내렸다.
"치빈, 입 찢어지겠어요."
"하하하, 그래? ......갑자기 든 생각인데 메이는 뭔가 유혹 스킬이라도 있는 거 아닐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메이글린이 유혹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두 사람이 상태 이상에 걸릴 일은 없다.
둘이서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자 시간이 조금 흘러서 메이글린이 처음과 같이 교실을 뛰어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 같이 호야의 품에 안기지 않았고 그 대신에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저번에는 호야 오빠가 저를 안내해 줬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안내해 줄게요!"
"메이야, 나는?"
"치빈 아저씨도 같이 가요!"
"......나는 아저씨구나."
풀이 죽은 치빈을 호야가 달래며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교실에서 아이 하나가 뛰어나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도 같이 가."
아이번이었다.
아이번은 아직도 호야를 째려보고 있었다.
"너도 호야 오빠한테 도시를 안내해 주려는 거야?"
"그런 쓸데없는 일을 내가 왜 해? 나는 위험하게 외부인 사이에 너만 둘 수 없으니까 따라가 주는 거야. 고맙게 여기라고."
"호야 오빠랑 치빈 아저씨는 안 위험해."
"그건 모를 일이지."
메이글린이 살짝 불만을 내비쳤지만 호야가 그녀를 달래어 결국 아이번도 함께하게 되었다.
모든 마족이 자신에게 우호적일 수는 없으니 아이번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라고 호야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앞으로 좋아지면 되는 것이다.
메이글린이 둘을 처음으로 데리고 간 곳은 자신들이 학교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1층 전체는 커다란 강당처럼 되어 있었고 2층에는 수업을 위한 교실 하나와 주방과 식당, 교무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넷이서 교실로 가던 도중에 교무실에서 나오고 있는 파피스와 마주쳤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메이가 도시를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요. 먼저 온 곳이 여기네요. 파피스도 같이 갈래요?"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파피스는 현재 아이들의 수업을 겸하면서 틈틈이 헤이든의 마기를 억누르는 팔찌의 개량을 돕고 있었다.
우연히 팔찌에 대해 알게 된 그녀가 그 실물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보고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의견이 헤이든에게까지 전해졌다.
파피스의 의견에서 힌트를 얻은 헤이든은 그녀가 아이템 제작에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팔찌의 개량에 끌어들였다.
파피스도 평소의 흥미와 버릇이 어디 가지를 않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헤이든의 개발을 돕고 있었다.
아직 큰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파피스는 호야에게 아쉬움을 전하고 걸음을 옮겼다.
파피스가 가고 난 뒤 호야는 메이글린에게 이끌려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에는 아직 세 명의 아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가 제가 공부하는 교실이에요."
"뭐 하러 이런 곳을 데려오냐? 여기를 보여 줘서 뭐 좋을 게 있어?"
아이번의 말에 파피스가 그를 째려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아이들이 호야에게 흥미를 가져왔기에 2세대 마족 아이들 전원이 호야와 치빈에게 도시의 안내를 해 주는 것이 되었다.
그들의 조합은 매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메이글린이 도시를 안내해 주는 내내 아이번은 그녀의 말을 걸고 늘어졌다.
호야가 계속해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기는 제가 엄마랑 자주 가는 식당이에요. 엄청 맛있어요!"
"가게 추천 같은 거는 아무렇게나 하는 거 아니야. 너한테 맛있는 게 다른 사람한테도 맛있다는 보장이 있어?"
"이쪽 골목을 사용하면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빠르게 갈 수 있어요."
"우와, 먼지~. 이런 더러운 길을 어떻게 지나다녔냐?"
"여기는 광장이에요. 밤만 되면 여기에 라이트를 단 노점들이 들어와 음식을 팔아요."
"밤에는 집에만 있는 녀석이 꼭 직접 본 것처럼 얘기하네."
"......그리고 저기에 올라가면 도시 저 멀리까지 볼 수 있어요."
"와~, 저기 용케도 안 무너지고 있네. 너 엄청 무거웠을 텐데."
"......."
아이번이 계속 말을 걸고 늘어지자 참다못한 메이글린이 발을 멈추고는 아이번을 째려보았다.
아이번을 째려보는 메이글린의 눈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찌푸린 눈가가 매우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너 오늘따라 나한테 왜 그래?"
"어?"
"왜 내가 하는 말마다 뭐라 하는 건데! 지금까지는 참았지만 오늘따라 너무 심하잖아. 이제는 못 참아! 너 가! 너랑 같이 안 놀 거야!"
"어? 아니, 그......."
"안 가? 네가 안 가면 내가 갈 거야!"
메이글린은 빠르게 달려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설마 하던 상황이 결국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호야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아이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번이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아이번의 눈가에는 살짝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어째서 네가 울려고 하는 거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마티어스가 말을 꺼내 왔다.
"아이번, 내가 그만두라고 했었지? 역효과라고 말했잖아."
"그, 그게......."
그 말에 지금까지의 일을 종합해 본 호야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