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11화 (111/171)

# 11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13화

13. 새로운 가족(1)

[던전 '지하 땅굴-제5구역'에 입장합니다.]

로열 나이츠에게서 사전에 들었던 대로 제5구역은 빛 한 점 존재하지 않았다.

제4구역부터 빛나는 이끼가 줄어들고 있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제5구역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로열 나이츠가 제5구역을 클리어 하고 있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제5구역부터는 필수적으로 플레이어가 직접 시야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라이트 등의 마법과 횃불로 시야를 밝힐 수 있지만 그 가시거리는 빛나는 이끼가 자라 있을 때보다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전 구역들보다 강해지고 영악해진 흡혈귀들의 공격을 생각만큼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라이트."

루나의 지팡이 끝에 사람 머리보다 약간 작은 빛의 구체가 떠올라 주변을 밝혔다.

"아, 잠시만요."

그리고 모두가 진실의 이슬을 마시려고 할 때 호야가 그들의 행동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호야가 한 일은 히에로스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안녕~."

"히에로스, 어제 말했던 거 부탁할게."

"알았어!"

히에로스가 모안탈티움을 가로로 휘두르자 사람들의 머리 위로 빛 알갱이들이 떨어져 내렸고 로열 나이츠의 길드원들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했다.

[정신의 정령왕 히에로스가 당신에게 은총의 빛을 내립니다.]

[모든 상태 이상에 대한 면역을 부여받습니다.]

호야는 어제 제4구역의 클리어를 끝낸 후 히에로스를 불러내어 한 번에 다수의 인원이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물었었다.

그리고 히에로스는 그것에 긍정의 대답을 표했다.

하지만 인원이 인원인지라 하루에 1시간 정도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리를 하면 조금 더 길게 유지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히에로스에게 무리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호야는 놀라워하는 로열 나이츠에게 설명을 해 주고 그들과 다시 던전을 나아갔다.

현재 가시거리는 빛나는 이끼가 있을 때의 약 절반, 기습을 당하기 딱 좋은 거리였지만 호야는 선봉을 자처하고 있었다.

"있어요."

호야의 말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호야는 베인이 건네주었던 지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제5구역이 모두 그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있는 부근은 제대로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이 모퉁이에서 이쪽을 탐색하는 것 같아요."

호야가 지도에 보내고 있던 시선을 다시 어둠이 내려않은 통로 저편을 향해 보냈다.

그의 눈에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점이 비치고 있었다.

컨서누가 가르쳐 주었던 약점 간파, 원래는 스킬 이름 그대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한 스킬이지만 호야는 그것을 탐색에 이용하고 있었다.

계속 유지하는 만큼 MP의 소모도 심하지만 틈틈이 물약을 마시면 무리 없이 다른 스킬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가시거리에 관한 문제가 있었지만 기습의 걱정은 해소되었기에 호야와 로열 나이츠는 빠른 속도로 던전을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고 약 3시간 남짓을 소모해서 제5구역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크으......, 드디어 클리어 했다! 그동안 제5구역에 꼬라박은 진실의 이슬만 생각하면 아주 그냥......!"

"강남, 그거 모두한테 민감한 문제니까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 알았어......."

던전을 클리어 하고 빠져나와 한을 쏟아 내던 강남불주먹에게 루나가 일침을 가했고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루나가 호야에게 다가왔다.

"호야 님, 그런데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그 바두였나? 걔 소환해도 되지 않아요?"

"네?"

"그 왜, 상태 이상 때문에 소환을 안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히에로스가 버프를 걸어 주는 1시간 동안은 소환해도 되지 않아요?"

루나의 말에 호야는 아차 싶었다.

바두를 소환하면 더 빠른 던전 공략이 가능할 것이고 바두한테도 경험치가 들어가니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그것을 깜빡하고 있었다니, 호야는 루나 덕분에 다음부터는 던전에서 바두를 소환하자고 다짐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깜빡하고 있었어요."

"고맙긴요. 바두가 있으면 전력에도 도움이 되니까 우리를 위해서예요!"

루나의 대답에 웃어 보인 호야는 로열 나이츠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 * *

"그럼, 먼저 작전의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대원."

"아, 네."

블라인드로 빛이 차단되어 있는 어두운 실내, 전등도 모두 꺼져 있는 그곳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은 천장에 달려 있는 빔 프로젝터뿐이었다.

그 빔 프로젝터의 빛이 비추고 있는 스크린의 앞에서 백재건은 양복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아, 네.'가 아니다, 대원! '알겠습니다, 대장님!' 혹은 '예스, 서!'다!"

"......일단 블라인드 걷고 불부터 켜죠?"

"그러면 프로젝터의 이미지가 제대로 안 보이지 않나! 지금은 중요한 작전의 브리핑 중이다, 대원!"

"......."

그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흰색뿐인데요?

거기 어디에 중요 작전이 있다는 것인지. 호영은 아무 말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창문을 통해서 붉은 노을빛이 들어와 실내를 붉게 물들여 주었다.

호영이 블라인드를 걷자 상황극을 이어 가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판단한 백재건은 현실을 수긍하고서 벽으로 다가가 전등 스위치를 눌러서 실내를 완전히 밝혔다.

"호영아, 너무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반응해 주면 이 아저씨가 너무 슬픈데......, 조금만 받아 주면 안 돼?"

"나중에 받아 드릴게요. 그보다 앞으로도 계속 저한테 아저씨로 있으실 생각이에요?"

"아......, 하하하하."

호영의 말에 백재건이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은 드디어 백재건이 이예숙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그가 괜히 복장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을 풀기 위해 이상한 상황극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죠?"

"어? 설마 이상해? 안 어울려?"

호영의 말에 백재건이 당황해하며 고개를 휙휙 돌리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자 호영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뇨, 엄청 잘 어울려요. 그런데 너무 힘을 주고 계셔서 누가 봐도 '저 오늘 프러포즈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아하하하하......."

"평소처럼 가볍게 영화 보러 가는데 누가 그렇게 재킷 안에 베스트까지 딱 챙겨 입고 행커치프까지 꽂고 가요?"

"......미안,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네."

"그냥 평소처럼 입으세요. 머리에 왁스도 얼른 씻어 내시고요."

백재건은 호영의 말에 욕실로 들어가 머리의 과도한 왁스를 풀고서 옷도 평소에 이예숙과 만날 때 입었던 스타일로 갖춰 입었다.

백재건의 모습에 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프러포즈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미 상대방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뭐 까먹고 안 챙긴 거는 없죠?"

"당연하지! 지갑이랑 핸드폰, 혹시 몰라서 청심환까지 챙겼어!"

"......반지는요?"

"그거야 당연히 양복 안주머니에......, 아아!"

가슴 앞 허공에서 손을 휘젓던 백재건은 얼른 방으로 다시 들어가 양복에서 반지를 꺼내 오고 어색하게 웃으며 실수를 얼버무렸다.

아직도 꽤나 긴장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호영은 백재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아저씨."

"으, 응?"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누, 누가 언제 긴장을 했다고 그러니?"

"네, 긴장 안 하신 걸로 할게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저씨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호영아......."

"그리고 아빠 소리도 들으셔야죠? 파이팅!"

"응, 파이팅!"

호영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백재건도 그에 따라 미소를 보였다.

"그럼, 오늘 열심히 하세요. 저는 가 볼게요."

"어? 같이 안 가 주는 거야?"

"제가 아저씨랑 엄마 데이트하는 데에 왜 따라가요?"

"그......, 멀리서 지켜봐 주기만 하면 안 될까? 너무 긴장되는데......."

"그것도 안 돼요. 게다가 이미 선약이 있단 말이에요. 같이 못 가 드려요."

오늘 재건의 집에 찾아온 것도 순전히 호영이 미리 잡았던 약속 시간 전에 그가 잠깐 만나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호영도 약속 때문에 가 봐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그렇구나......."

"편하게 생각하세요, 편하게. 엄마는 아저씨의 프러포즈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아들인 제가 보장할게요."

"......그래!"

호영에게 용기를 건네받은 백재건은 곧장 이예숙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빠른 도착이었지만 이미 이예숙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미안해요, 예숙 씨. 제가 기다리게 해 버렸네요."

"아니에요. 제가 일찍 나온 건데요 뭐. 으음......, 영화 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 버렸는데 카페라도 들어가 있을래요?"

"그럴까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이예숙이 백재건의 손을 잡고 카페로 이끌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둘은 상영 시간에 맞춰서 영화관으로 향했고 영화관에 도착한 둘은 팝콘과 콜라를 사 들고 미리 예매해 두었던 표를 사용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평일 저녁 시간이었지만 둘이 보려는 영화가 상영이 거의 끝나려는 영화여서 그런 것인지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 볼 영화는 범죄 스릴러로 주인공이 죽였던 사람의 시체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프러포즈를 하기 전에 볼 영화로는 썩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이예숙과 만나며 보는 영화들이 대부분 스릴러, 액션, 호러 등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갑자기 평소에 관심도 가지지 않던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은 '저 오늘 무언가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화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백재건은 영화가 끝난 뒤 진행할 프러포즈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영화의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슬쩍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예숙을 바라보니 그녀는 이미 다 먹어 버린 콜라의 컵을 양손으로 꽉 쥔 채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프러포즈를 받으면 저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심히 궁금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영화가 끝이 나고 크레딧이 올라오면서 상영관의 불이 켜졌다.

하나둘씩 영화관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백재건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재건 씨, 안 나가요?"

"네? 아, 잠시만! 잠시만요!"

준비한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서는 손님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 나가면 안 된다.

그러면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이예숙이 백재건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모든 손님이 나간 것을 확인한 백재건이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때 크레딧까지 다 올라가고 꺼졌던 스피커를 통해서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에 백재건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준비한 것은 영화관 프러포즈였다.

여러 방법을 물색하다가 상영관을 빌려 프러포즈를 도와주는 '마이 웨딩'이라는 업체를 발견했고 그는 곧바로 업체와 상담했다.

평소 영화를 즐겨 보니 이 방법이라면 직전까지 들키지 않고 한순간에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백재건의 시선이 스크린을 향했다.

'드디어......! ......응?'

처음 계획했던 대로라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상영관 스크린에 마이 웨딩과 협력해서 만든 영상이 흘러나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자신이 준비했던 영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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