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11화
11. 지하 땅굴(1)
에반의 마법을 타고 퍼진 호야의 대답에 콜로세움 전체가 한순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NPC와 플레이어의 입장의 차이에 따른 세부적인 생각은 달랐지만 그들이 하는 생각의 큰 부분은 동일했다.
'어째서 거절하는 것이지?'
최초의 귀족 플레이어라는 타이틀과 상징성, 귀족의 작위를 얻음으로 인해 딸려 올 각종 부수적인 혜택과 영지, 호야는 그것들을 거부한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호야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NPC들의 입장에서는 왕이 내린 보상을 거부하는 것은 왕권에 대한 반항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내뱉은 그에게 당혹감과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한 거부감을 밖으로 표출한 것은 귀족 NPC들이었다.
"폐하께서 치하를 내려 주시니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폐하의 얼굴에 먹칠을 할 생각인 것이냐!"
호야에게 호감도가 소폭 하락했다는 메시지가 연이어 생성되었다.
원래라면 호감도가 크게 내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호야는 친화력과 그간 그들에게 알려진 활약상 덕분에 친구와 다투어 살짝 화가 난 정도의 호감도가 내려가는 것에서 그쳤다.
"그만."
제프리노가 한마디 내뱉자 귀족들이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알려 줄 수 있겠나?"
제프리노의 물음에 호야의 시선이 조용히 제프리노가 귀족의 작위를 내리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타났던 시스템 메시지로 향했다.
[루제로스 왕국의 남작의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경고!]
[플레이어의 직업이 '마을사람'임을 확인, 소속 국가를 확인합니다.]
[플레이어의 마을 '오르도'는 루제로스 왕국에 소속한 마을이 아닙니다.]
[귀족의 작위를 받아들일 시 소속을 루제로스 왕국으로 전환, 플레이어의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을 강제 박탈합니다.]
[직업을 박탈당할 시 모든 스테이터스가 전직을 하기 전으로 리셋됩니다.]
[루제로스 왕국의 남작의 작위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아니오]
감사한 말이었지만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대로.
지금까지의 수개월을 날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거절의 의사를 내보였다.
"폐하,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 직업은 마을사람입니다."
"그래, 그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제가 소속된 마을은 왕국 소속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도와준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호야의 발언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대륙은 루제로스 단일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신전이 있는 아헤샤도 그 특성에 맞추어 거의 독립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소속 자체는 루제로스다.
그러한 상황에서 루제로스 소속이 아닌 마을이 있다 하면 엘프들의 위그드라실 같은 특수한 경우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 소속된 것도 아니지만 루제로스 왕국에 소속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드넓은 바다 건너에 있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나른 나라의 소속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왕국 소속이 아니라니......, 그게 가능해? 시작의 마을에 다른 나라 소속이 있었나?"
관중석에 있던 한 명의 플레이어가 중얼거렸지만 그 답은 호야만이 알고 있다.
* * *
귀족의 작위를 거절했던 일은 제프리노의 곁에 있던 에반의 도움으로 인해 큰 잡음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의 작위를 받지 않아 드하이와 피아의 토벌에 참여했던 플레이어들 중 호야만이 그 자리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에 호야는 제프리노에게 한 가지 청을 올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즉 소원을 말해라,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루어 주겠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호야는 바로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 그것을 보류한 상태였다.
행사가 끝난 뒤 수많은 질문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는 마을 귀환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었나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루나에게 불려온 호야에게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직업이 마을사람인 플레이어가 타국에서 귀족의 작위를 받으면 직업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플레이어 전체를 통틀어서 호야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알려 줘도 상관없겠지......?'
그것은 딱히 숨겨야 할 비밀도 아니었기에 호야는 루나에게 사실을 알려 줬다.
그러자 루나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로열 나이츠의 길드원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작위 같은 거 절대로 못 받지. 스테이터스 리셋은 좀 심했다."
"와, 나 속으로 왜 저걸 거절하지? 하고 생각했는데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네."
"이거 알리면 인터넷이 다 뒤집어지겠는데?"
자잘한 이야기를 하며 호야는 로열 나이츠와 함께 어둠의 숲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곳은 던전 '지하 땅굴'의 입구였다.
지하 땅굴의 입구는 나무뿌리와 수풀에 절묘하게 가려져 있기에 그냥 눈으로만 봐서는 존재하는지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로열 나이츠도 루나가 발을 헛디뎌서 그 위로 넘어졌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야가 지금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유는 던전 돌파에 힘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하 땅굴은 다른 던전들과는 다르게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구역별로 나뉘어 있는 것은 다른 던전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였지만 지하 땅굴은 그 구역 하나하나가 던전 하나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 대신에 제1구역을 클리어하고 제2구역에서 후퇴를 하게 된다면 다시 도전할 때에 제2구역부터 도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5구역에서 진행이 막혀 버렸고 그것이 호야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였다.
그와 던전의 끝에 있을 보상을 공유하는 것이 되기는 하지만 모든 구역을 클리어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호야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입장 제한 인원도 최소 5명에서 최대 16명이었다.
로열 나이츠의 15명에 호야를 더하면 딱 맞는 숫자였다.
"여기예요."
루나가 수풀을 살짝 걷어 내자 나무뿌리 아래에 사람 한 명이 드나들 듯한 구멍 하나가 나타났다.
"입구는 이래도 안은 무지막지하게 넓으니까 얼른 들어가죠."
로열 나이츠의 길드원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그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고 호야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루나의 말처럼 구멍 안은 생각보다 매우 넓어 거대한 터널의 크기와 맞먹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의 숲에 있는 것과 똑같은 빛나는 이끼가 자라나 있어서 필요 최소한의 빛들이 시야를 밝혀 주고 있었다.
"던전 입구는 안쪽에 있어요."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자 흙이 무너져 막힌 듯이 보이는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그곳이 바로 지하 땅굴의 입구였다.
"지하 땅굴의 하루 입장 제한은 모든 구역을 합쳐서 두 번뿐입니다. 오늘과 내일은 4구역까지의 클리어를 최소한의 목표로 잡겠습니다."
로열 나이츠의 멤버들은 바로 제5구역으로 진입이 가능했지만 호야는 제4구역까지 클리어를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던전 '지하 땅굴-제1구역'에 입장합니다.]
* * *
"팀장니임."
"......왜 불안하게 말끝을 늘이고 그래?"
네오워즈의 개발팀 사무실, 오랜만에 평화로운 한때를 만끽하며 1층 커피숍에서 사 온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있는 강주원에게 사원 한 명이 조심스레 찾아왔다.
안 좋은 쪽으로의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니지......?"
"......아마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거 맞을 걸요?"
"설마......, 설마 우리가 뭐 빠트린 데라도 있어......?"
마교의 소동이 끝이 난 지 긴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던 며칠 전에 개발 팀에 다시 한 번 비상이 걸렸었다.
마계의 입장 권한을 획득한 플레이어가 나타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플레이어의 닉네임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그 주인공은 호야였다.
마계로의 입장 권한을 얻기 위해서 클리어할 필요가 있는 선행 퀘스트가 어째서인지 한 번에 클리어한 것으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운영 팀과 이브에게 버그의 유무를 물어봤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때 선행 퀘스트의 수행으로만 최소 세 달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 한순간에 모두 프리 패스로 통과되자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은 운영 팀도 마찬가지였다.
마계의 구현은 되어 있었지만 아직 플레이어가 진입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원래는 첫 퀘스트를 받는 플레이어가 나타나면 그제야 업데이트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만약 지금 당장 호야가 마계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바로 마계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때 호야의 결정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은 개발 팀 사원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기회 삼아서 개발 팀은 다시 한 번 3교대로 밤을 지새우며 전쟁을 치러서 업데이트를 끝내 놓았고 그것이 불과 어제의 일이었다.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휴우, 다행이다. 하마터면 회장님한테 크게 혼날 뻔....... 잠깐만. '그건' 아니라고? 다른 게 문제라는 소리야?"
"네."
"이번에는 뭔데......?"
"그, 지금 로열 나이츠가 공략에 도전하고 있는 지하 땅굴 있잖아요. ......그것에 관한 얘기예요."
"거, 거기가 왜......?"
"거기에 호야가 합류했어요."
사원의 말에 강주원이 키보드를 두들겨 사실을 확인하니 확실히 호야가 로열 나이츠의 멤버와 함께 던전에 입장한 로그가 남아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로열 나이츠는 제5구역에서 진행이 막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이니 호야가 합류한다고 해도 마지막 구역인 제8구역까지의 클리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불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은 세 번째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에, 에이. 호야가 강하다고 해도 제8구역까지 클리어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띠링-.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온 경쾌한 알람 소리에 강주원은 삐걱거리며 목을 돌려서 자신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의 모니터 중앙에는 메시지 창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던전 '지하 땅굴' 클리어 확률이 24.6%에서 88.1%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클리어 확률 70% 이상. 업데이트를 시작해 주세요.]
'아니, 왜 한 명이 합류했다고 확률이 60% 이상이 오르는 건데!'
강주원은 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AI인 이브가 직접 보낸 메시지에 마른세수를 한 강주원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는 투로 말했다.
"하아......, 지금 쉬고 있는 애들한테도 전부 연락 돌려서 3교대 일정 조율해 놔. 나는 최대한 오후나 저녁조로 빼 주라."
일반 병사들도 전쟁이 한번 끝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준다고 하는데 자신들은 하루 만에 다시 전쟁터로 내몰렸다.
지하 땅굴의 하루 입장 제한은 2회, 마지막 구역인 제8구역까지의 도달에는 최소 4일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것보다 더 많이 걸릴 가능성이 크지만 자신들은 그 4일 안에 모든 업데이트를 끝내 놔야만 했다.
지하 땅굴의 너머에 있는 '그곳'의 업데이트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