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3화
3.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1)
콰앙-!
헤이든은 주먹에 분노를 한껏 실어서 자신의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책상이 부서졌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의 집무실의 바닥과 벽에 금이 가고 마왕성 전체가 흔들렸다.
책상을 부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것인지 그에게서 새어 나오고 있는 마기는 이제 새어 나온다고 할 수준이 아닌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그 자식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니......!"
아직 마족이 대륙에 있던 시절, 무엇인지 모를 붉은색 육망성을 심볼로 내걸고서 마족들을 숭배하며 세상의 혼란을 바라던 광기의 집단.
마교가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헤이든은 책상을 내리쳤던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어린 시절의 일이었지만 헤이든은 그 때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교는 분명히 자신들이 마계로 몰아내지고 있었을 즈음에는 큰 타격을 입어 거의 괴멸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다.
간부들은 모두 옛날 옛적에 죽어 있었고 일반 신도들의 80% 이상이 대륙에서 사라졌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아인스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고 그의 손등에 그려진 붉은색 육망성은 마교의 신도들이 손등에 그리던 것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자식이 메이글린을 데려갔다.
자신의 책임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조금 더 강하게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
아직 어려서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홀로 내보낸 것인데 왜 안심하고 있었던 거지.
어째서! 왜!
헤이든은 메이글린이 마계를 나가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헤이든 님."
그때 루시엘이 헤이든의 집무실 앞에서 용건을 전한 후 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곧장 집무실로 들어와 그의 앞으로 성큼 걸어가 고개를 숙였다.
"미리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짝-!
살이 살을 치는 맑은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헤이든의 앞에 다가왔던 루시엘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그의 뺨을 때려 왔다.
"뭐, 뭐 하는 것이냐......."
"헤이든 님, 지금 당장 진정해 주세요."
헤이든은 자신의 뺨을 쓸어내리며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헤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그 얼굴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거지?
"루시엘! 너는 지금 이 상황에 진정이 되나! 누구도 아닌 마족의 아이가! 네 딸이! 그 자식들에게 납치된 상황이란 말이다! 지금 당장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데......!"
"......그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정해 주시죠."
루시엘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루시엘의 떨리는 목소리에 헤이든이 머리를 식히고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니 그제야 그녀가 주먹을 강하게 움켜진 채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딸이 납치되었는데 그 사실에 무심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루시엘은 뼈를 깎아 내는 심정으로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 헤이든 님의 짙은 마기가 이곳을 중심으로 마계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마족이라면 몰라도 마왕인 헤이든 님의 마기는 너무 과하면 마족들에게 독이 됩니다. ......그러니 진정해 주세요."
"......내가 미안하구나. 가장 힘든 것은 너일 텐데."
헤이든은 자신의 머리를 식히고는 자신의 몸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던 마기를 억눌러 평소대로 되돌렸다.
지금은 감정에 치우쳐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머리를 식혀 지금 벌어진 일을 해결해야 했다.
헤이든의 머리는 차분히 진정되었지만 가슴만큼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 *
자신의 책임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왜 메이글린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일까.
마교에 대해서 아리아에게 들어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들로 인해 메이글린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티끌만큼도 하지 못했던 걸까.
지금에 와서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자책해도 이미 늦은 때였다.
상황은 이미 벌어진 뒤였으니까.
메이글린은 무사할까?
혹시 험한 꼴을 당하면 어떡하지?
그 아이가 인간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은 그 아이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호야......."
"......죄송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
메이글린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오르도에 돌아온 호야는 죄책감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호야, 잘못이 아니에요."
"그 X같은 XXX 자식 때문이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 그러니까 표정 풀고 고개 좀 들어라."
"......."
모두가 호야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 말해 주었지만 호야가 자신에게 내린 죄책감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오르도의 주민들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호야를 어떻게 해야지 평소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호야의 얼굴에 이렇게까지 그림자가 져 있는 것은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 네 잘못이 아니다."
그때 마을에서 들어 본 적이 없던 목소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호야의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확실히 아니었지만 호야는 꽤 가까운 과거에 그 목소리를 딱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호야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처음 보는 남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얼굴 자체는 어째서인지 낯이 익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메이글린이 가지고 있던 인형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와 살짝 날카로운 눈매까지, 목에 이상한 빛의 고리 같은 것이 둘러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이 가지는 않았다.
'아니, 설마.......'
그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닐 텐데.
"헤......이든?"
"그래."
"왜 여기에......?"
"메이글린의 일 때문에 무리하게 요청해서 올라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 때문이지."
"......."
호야는 헤이든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헤이든은 호야가 회수해 왔던 인형을 통해서 그의 지금 상태를 엿보았었다.
죄책감 때문에 호야는 지금 우선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내 책임이다. 내가 메이글린에게 제대로 주의를 주지 못하여 메이글린이 납치되어 버렸다. 그 결과, 이러한 사태가 되어 너희 모두에게, 특히 너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헤이든이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이자 호야가 그를 만류했다.
"헤, 헤이든 님 탓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세요!"
"......그게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호야의 말에 헤이든이 허리를 피고서 그를 바라보며 살짝 화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너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홀로 죄책감에 잠겨 있을 시간이 있으면 지금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라. 지금 우선시해야 할 것은 메이글린의 구출이다. 네가 그러고 있는 만큼 메이글린은 오랫동안 공포에 떨고 있어야 한다."
호야는 헤이든의 말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래, 지금은 죄책감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 손을 빌려 다오."
[퀘스트 '구출과 괴멸'이 발생되었습니다.]
[구출과 괴멸]
마족의 소녀 메이글린이 마교에게 납치되었습니다.
헤이든은 메이글린을 납치한 마교를 용서할 생각을 티끌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교가 계속 존재하는 이상 미래에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오르도의 주민들과 함께 납치된 메이글린을 구출하고 메이글린을 납치한 마교를 괴멸시키세요.
완료 조건: 메이글린의 구출, 마교의 괴멸
성공 보상: 경험치, 헤이든의 호감도 상승, 마계의 출입 권한, 칭호 '마왕에게 인정받은 자'
실패 패널티: 인간들을 향한 마족들의 적대감이 상승합니다.
헤이든은 마음 같아서는 직접 메이글린을 구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르도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고 마기의 방출을 억제하는 팔찌를 착용하고서 레이나가 만든 빛의 고리를 두르는 조건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약속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나갔다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기라도 뿌리게 되는 날에는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헤이든은 분노를 속으로 억누르며 오르도의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대한 빠르게 메이글린을 구출해야 한다."
자신이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방출했던 마기로 인해서 마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족들은 헤이든이 현재 무슨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헤이든의 분노의 원인이 혹시 메이글린이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가서 무언가 일을 당한 것으로 인해서가 아닐까 추측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메이글린을 되찾아 오지 않으면 그들의 추측이 사실로 알려져서 인간들을 향해 분노를 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아주 아작을......, 흐흠, 험한 꼴을 보여 줄 테니까 말이야."
"나도 갈게."
오르도의 주민들은 헤이든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마교의 아인스, 마인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리고 말았다.
* * *
메이글린을 구출하기 위하여 모안과 크라우스, 호야가 마을을 나간 뒤 헤이든은 레이나와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헤이든은 메이글린이 돌아올 때까지 오르도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목에 두르고 있는 빛의 고리는 계속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레이나가 그의 옆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마을에 돌아올 메이글린을 환영하며 달래 주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간 뒤 헤이든은 레이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마을에 남은 이유는 메이글린을 기다리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인하고픈 것도 있어서였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지?"
"네?"
헤이든의 물음에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 같은 자는 이 마을에 없었다. 대신에 레온이라는 남자가 있었지."
헤이든은 마계를 탐험하는 치빈을 통해서 혹은 가곤을 처리하기 위해 내었던 결계의 틈을 통해서 마을에 대하여 듣고 관찰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약 1년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오르도에 없었다.
호야와 반달처럼 그 1년 사이에 오르도의 주민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헤이든은 눈앞에 있는 여자, 레이나에 대해서 알아 두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원래 이 마을에 있던 레온이라는 남자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더니 네가 이곳에 나타났다. 한데 이 마을의 주민들은 레온과 바꿔치기하듯이 해서 갑자기 나타난 너를 의심하기는커녕 이전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더군."
"......."
"대답해라. 네 녀석은 뭐 하는 자냐."
가만히 헤이든의 말을 듣고 있던 레이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이내 싱긋 웃어 보였다.
'조금 실수를 했던 것 같네요.......'
이전에 기억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실수가 있던 것 같다.
그때 마계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었기에 헤이든이 마을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저는 그저......, 누나일 뿐이에요."
그 직후, 헤이든의 눈동자가 조금 풀리더니 곧바로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그런 그에게 레이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헤이든 씨, 조금 멍하니 계시던데 괜찮으신가요?"
"어? 아아......, 조금 정신적으로 피곤했던 모양이다. 모안이 나간 뒤로는 완전히 기억이 끊겼군."
"메이는 괜찮을 거예요. 편하게 계세요."
"......그래, 그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