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00화 (100/171)

# 10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화

2. 등잔 밑이 어둡다(2)

파피스가 나아가야 할 인생의 길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선대의 퓐프. 아버지는 마교에 투신하고 있던 신도 중 한 명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 둘은 그대로 결혼에 골인하여 파피스를 낳았다.

그리고 갓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던 파피스에게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들의 의지로 인해서 손등에 붉은색 육망성이 새겨져 버렸다.

파피스는 철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마교의 신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부모들로부터 받아 왔다.

파피스의 부모님들은 마교의 교리와 이상, 추구하는 목적과 지켜야 할 규칙 등을 파피스의 머리에 쑤셔 넣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던 파피스는 부모님들이 알려 주는 것들을 모두 남김없이 흡수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파피스는 어느 날 부모님이 자신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아니,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했다는 쪽이 더욱 걸맞을 것이다.

마교가 추구하는 이상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엄마, 왜 마족님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하는 거예요?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안 되는 거예요?"

"마족님들이 세상을 지배하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지 않을까요?"

"이거 이상해요, 엄마."

파피스의 부모님들이 파피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파피스는 장차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퓐프'가 되어야 했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 마교의 교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파피스를 교화시키고자 하여 그 방법으로 폭력을 선택했다.

파피스가 자신들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하면 폭력으로 이해시켰다.

파피스가 마교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다면 폭력을 사용해 의문을 지웠다.

파피스가 폭력을 두려워해 이해하고 받아들인 척을 하면 제대로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폭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폭력의 뒤에는 파피스를 껴안아 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다 너를 위한 일이다.

엄마, 아빠도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파피스는 처음에는 부모의 말에 그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조금씩 씻어 냈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공포만을 느끼게 되었다.

부모님들에게서 폭력을 받는 것도 두려웠고 자신을 위로해 오는 그들의 이중성은 두렵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부모님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마교 따위에 소속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폭력에 익숙해져 있는 몸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잠든 사이에 숲에 다녀오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었으면, 구해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도움의 손길은 그녀와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퓐프'의 이름을 받은 후였다.

얼마 안 있어서 파피스의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 그녀를 마교에 묶어 놓던 존재가 사라졌다.

하지만 파피스는 마교에서 발을 빼지 못했다.

자신이 마교를 나가도 자신의 손등에 새겨져 있는 붉은색 육망성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흔적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의 주체 또한 부모님에서 아인스로 바뀐 지 오래였고.......

검은 천으로 가려진 그의 눈빛은 마치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마교를 나가고 싶다는 파피스의 소망은 결국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 * *

호야가 히에로스의 말을 듣고 파피스의 손등에 그려져 있는 붉은색 육망성을 확인하기 직전, 마인은 자신의 방에 놓여 있는 소파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몸이 너무 피곤했다.

시선을 조금이나마 돌리기 위해서 이미 죽어 버린 나탈리를 찾는다고 만든 수색대의 보고와 지시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마교를 관리하고 마족을 찾을 방법을 물색하느라 쉬지 못하여 마인의 피곤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

그때 소파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던 마인이 벌떡 일어나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일정한 순서로 빼었다 넣기를 반복하자 책장이 옆으로 밀리며 그 뒤에 문이 하나 나타났다.

"하하......, 잘못 느낀 것이 아니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앙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마기 관측기가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맹렬히 회전하던 고리들이 한 치의 엇갈림도 없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리에 그려져 있던 문양들이 이어져 한 장소를 가리켰다.

마기 관측기가 가리킨 장소는 지금 이곳과 꽤나 가까운 곳이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마법을 사용해 그 부근을 확인하자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까지 찾아다니던 마기가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무언가 미묘하게 다르긴 했지만 근본은 확실히 마기가 맞았다.

마인은 지체 없이 그곳을 목적지로 정해 워프를 사용했다.

* * *

"크으~! 진짜 분위기에 취한다."

"고개를 올리면 보이는 수많은 별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서 나누는 대화! 모닥불 옆에 꽂힌 각종 꼬치들! 흐흐! 옛날부터 진짜 이런 거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해 보네. 진짜 이세계라도 온 것 같지 않냐?"

"현실은 직시하셔야죠, 아저씨. 내일 첫차 타고서 인턴 나가야 하는 분이 너무 분위기에 취해 계시면 안 됩니다?"

"크윽......! 갑자기 팩트로 공격하다니!"

이즈바론트 옆에 위치한 숲속의 절벽 앞에서 모닥불 하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이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직, 우직, 쾅-!

그때 무언가가 나무를 부수며 그들의 쪽으로 날아오더니 큰 소리와 함께 절벽에 처박혔다.

그것이 절벽에 박히면서 떨어져 나온 돌과 흙들로 인해 그들이 피워 놓았던 모닥불이 꺼져 버렸다.

모닥불이 꺼져 버리기는 했지만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들이 주변을 충분히 밝혀 주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뭐야, 진짜!"

"야, 야, 혹시 모르니까 무기 꺼내, 빨리!"

그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고 있자 먼지구름 사이로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녹색 머리에 갈색 로브, 나무껍질 같은 가면.

이니티움의 플레이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크윽......!"

"호, 호야 님?"

"왜 여기에......?"

신음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호야는 방금 전에 있던 일들을 떠올렸다.

히에로스의 힘으로 파피스의 손등에 그려진 붉은색 육망성을 확인한 직후에 어째서인지 그 장소에 마인이 나타났었다.

"마인 님......?"

갑작스레 나타난 그를 보고서 호야가 의문을 표했지만 마인은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서 걸음을 옮겨 그를 지나쳐 갔다.

짙은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걸음이 멈춰 선 곳은 메이글린의 앞이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주셨군요."

"네, 네?"

"당신들이 사라진 후 지금까지 계속 기다려 왔습니다. 자아."

마인이 무릎을 굽혀서 메이글린과 눈을 맞춘 후 손을 내밀었다.

그는 메이글린을 향해서 진심 어린 예절을 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글린은 그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누, 누구세요......."

마인은 메이글린에게는 그저 갑자기 나타난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다.

호야의 소개를 받았던 킹과는 경우가 달랐다.

"아아, 이거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하지 않았었군요."

메이글린의 경계심을 읽은 마인은 메이글린을 향해 내밀었던 오른손을 거둬들여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등 위에서 붉은색 육망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의 아인스라고 합니다. 선대들로부터 쭉 당신들을 기다려 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마교의 사람이 아닌 이도 있었지만 마인은 자신에 대하여 밝히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이전과 같이 지금 시대에는 그들을 막아설 '괴물'은 없으니 마족들의 힘이라면, 마왕의 힘이 있다면 들켜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대화를 이어 가려면 우선 외부인은 치워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일단 방해물은 제거해야겠죠."

마인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호야를 공격했다.

여기까지가 호야가 날려지기 전의 상황이었다.

'마인 님이 마교......?'

파피스에 이어서 마인까지 마교의 일원이라니.......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메이! 히에로스!'

공격을 받고 날려진 것은 자신뿐이었다.

메이글린과 히에로스가 아직 그 장소에 남아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둘의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모닥불을 피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호야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호야는 고개만 끄덕이고서는 민첩에 버프를 사용해 최대한 빠르게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메이글린과 히에로스는 없었다.

스킬로 확인해 보니 히에로스는 스스로를 역소환시켜서 위그드라실로 피한 것 같았다.

메이글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메이글린의 흔적이라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인형이 전부였다.

* * *

"그렇군. 그 모험가가 데리고 왔던 거라는 건가?"

"네......."

마인은 메이글린에게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설명을 했었지만 메이글린은 마인의 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았다.

마족이기는 해도 아직 어린아이,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단 잠재운 뒤에 그녀를 데리고 마교의 간부들이 사용하는 아지트로 워프했다.

마인은 메이글린이 깨어난 뒤에 진정을 하면 자신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글린이 깨어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마인은 마교의 간부들에게 연락을 돌린 뒤 파피스에게 어째서 그곳에 있던 것인지, 마족 소녀와는 어떻게 만난 것인지를 물었고 그녀의 대답을 통해서 마인은 호야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모험가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설마 마족과 접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날려 버리지 말고 데리고 왔어야 했나?

'그나저나 이상하군.......'

처음 마족 소녀를 발견해 여기에 데리고 올 때까지만 해도 달아오른 감정에 가려져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지만 마족 소녀에게서는 마기가 전혀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했을 때 마기를 느꼈으니 확실히 마족인 것은 맞지만 마기가 새어 나오지를 않다니, 어떻게 된 것이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마인이 침대 위에 눕혀 놓은 메이글린을 바라보고 있자 메이글린이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일어나셨군요."

"아......!"

아직 몽롱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던 메이글린은 마인을 발견하고서는 몸을 굳혔다.

잠들기 직전에 있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메이글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공격을 받고 날아간 호야와 히에로스가 걱정되었고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본능적으로 마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엉덩이를 끌며 조금씩 뒷걸음을 치던 메이글린은 결국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엉덩이와 머리가 아파 왔지만 지금은 아픔보다 마인에게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씩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 주세요. 처음부터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가, 가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마인이 한 걸음 다가가면 메이글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메이글린의 걸음은 벽에 막혀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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