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96화 (96/171)

# 9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22화

22. 마족 소녀 메이글린(1)

"자, 인사해야지?"

"그...... ,아, 안녕하세요! 메, 메이글린이라고 해요. 메이라고 불러주세요!"

모안이 자신의 등 뒤에 있던 소녀를 앞으로 떠밀자 밀려나온 소녀가 안절부절못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크라우스가 메이글린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호야만으로는 부족해서 결국에는 소녀를 납ㅊ, 크악!"

"호호호,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내 착각인가?"

입을 열다가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돌덩이에 복부를 가격 당하고는 배를 부여잡고 무릎부터 바닥에 쓰러졌다.

'데자뷰......?'

호야는 조금 전과 같은 장면을 이전에 본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안, 그 애는 누구예요?"

"마족이야."

호야의 질문에 모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간단하게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마족......? 이 애가?'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 치빈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소녀가 마족이라는 말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살짝 웨이브 진 갈색 단발머리에 붉은 눈동자, 겉보기와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생김새, 매고 있는 크로스백 위로 검은색 머리를 한 인형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안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호야는 눈앞의 소녀가 마족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메이글린에게서는 마기가 전혀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다들 갑작스러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일단은 내 이야기를 들어줘."

모안은 모두에게 헤이든과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 내용과 그가 만들었던 팔찌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부터 자신이 메이글린을 데리고 온 이유까지, 모든 것을 설명했다.

마족은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마기로 인한 오염이 없다면 나는 그들이 대륙에 발을 디뎌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 아이가 첫 시작이기에 그들이 온전히 대륙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은 몇 백 년이 지난 후일거야. ......상담도 없이 일을 진행해서 미안해."

모안은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면서 그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일을 진행하고 결정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처음 헤이든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머리가 복잡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먼저 알려서 의견을 구한다는 과정을 생략해버리고 말았다.

"처음은 그저 적응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 아이에게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했어."

"......."

주민들은 모안의 말에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주민들의 일부는 마족들이 아직 대륙에 있던 시절의 삶을 살았었다.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마족들에 의해서 제일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모안이라는 사실을.

제일 상처가 큰 그녀가 용기를 내어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족 소녀 메이글린은 너무나도 여렸다.

"환영한다, 메이."

렌시아가 누구보다도 먼저 메이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쿠훕! 쿨럭, 쿨럭! 형,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부터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아직 음식도 안 나왔어."

서울 신마호텔의 2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이전에 마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전적이 있는 곳이다.

엔틱풍의 소품들로 꾸며져 차분한 분위기를 주는 그곳에서 재건은 오랜만에 자신의 형과 만나고 있었다.

방금 막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코스요리를 주문한 참인데 식전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물로 입을 축이고 있자 재건의 형이 갑작스레 그에게 카운터를 날려왔다.

재건의 형은 그가 중간에 살짝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이예숙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연애 상담을 들어준 것이 그였으니까.

다시 만남을 가지기 시작한지 꽤나 지난 것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청첩장의 치읓 하나 보내오지 않기에 답답해서 말을 꺼낸 것이다.

"네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야.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몰래 혼인 신고서만 내고 끝낼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내 동생의 결혼식을 꼭 봐야겠으니까."

"......그게 사실은 아직 정식으로 프로포즈도 못했어."

"뭐?"

재건과 이예숙이 서로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맞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고 그것을 재건도 알고 있지만 그는 아직 이예숙에게 반지 하나 건네주지 못한 상태였다.

"너 설마 아직 다인 씨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거야? 같이 여행도 다녀왔다며?"

다인은 재건의 전처의 이름이다.

아니,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었으니까 전처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재건은 형의 말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건 아니야."

확실히 처음에 이예숙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에는 한평생 맘고생만 하게 하다가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버린 그녀에게 향하는 죄책감을 같이 느꼈었다.

자신은 그녀에게 뭐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다른 여자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걸까.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도 이예숙을 향하는 감정을 없애지도 속이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고 한탄했었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런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있을 때 다인은 재건의 꿈속에 나타나 말했었다.

자신은 전혀 고생하지 않았다고.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었다고.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이 지금부터라도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말해주었었다.

꿈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저 재건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재건에게는 그 꿈이 진짜로 다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것으로 마음을 굳힐 수 있던 재건은 이예숙에게 고백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아직 프로포즈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 때 반지도 챙겨갔었지만 결국 건네주지 못했다.

"하아, 난 또 괜히 걱정했잖아."

"그리 간단하게 넘길 게 아니지! 반지를 못주고 있는데......!"

"굳이 분위기 잡으려고 애쓰지 마. 만날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아, 지금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야, 그때 건네줘. 참고로 나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다가 건네줬다."

"그래서 형수가 가끔 통화할 때마다 그때 반지를 받은 것을 후회하더라. 좀 더 로맨틱한 상황에서 받고 싶었다고 말이야."

"크윽!"

재건의 형은 그의 말에 쓴물이라도 삼킨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가끔 작게 다툴 때마다 항상 아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는 눈물 흘리며 좋아했으면서!'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버렸다.

재건의 형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다잡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럼 언젠가 결혼을 하기는 하겠네."

"그렇겠지......?"

"아버지는 어떻게 할 거야?"

"......."

"아버지가 그런 짓을 하기는 했지만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거, 그때는 몰라도 지금은 알고 있잖아. 작은 아들 장가가는 모습은 보여드려야지."

"......."

재건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자신이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았을 때에 아버지가 그리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아버지를 이전처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르고 있던 진실도,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진실도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러한 짓을 했던 이유가 자신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재건은 지금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배신감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 좀 해보고."

"그래,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오면 좋겠다."

코스요리를 먹는 내내 고민을 한 재건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그 뒤에 억지로 분위기를 밝게 되돌려 놓은 뒤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식사가 끝나자 다음에도 만날 약속을 하고서 둘은 헤어졌다.

재건과 헤어진 그의 형인 희건은 곧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동 마이마크의 최상층에 위치한 펜트 하우스가 그의 집이었다.

자신과 아내는 일 때문에 호텔에서 머무는 때가 많아 거의 자신의 아들과 딸의 집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어락의 소리를 들은 그의 아들이 방을 뛰어나와 2층 복도 난간에 기대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녀석아, 그렇게 기대고 있다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헤헤, 안 떨어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것보다 이게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는 거예요? 하마터면 아들이 아버지 얼굴을 잊어버릴 뻔 했어요."

희건의 아들은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하는 그와의 밀린 대화를 한번에 나누려는 듯이 1층으로 내려가 그가 앉은 소파의 옆에 앉았다.

"누나는?"

"누나는 뭐 평소처럼 캡슐 안에 있죠, 불러올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슬슬 보따리 좀 풀어보시죠!"

아들의 재촉에 희건은 이전에 집을 나간 뒤에 오늘 들어올 때까지 있던 일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오늘 재건과 만났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삼촌은 결혼 언제 하신대요? 당연히 저도 그때 가도 되죠?"

"아직 정해진 건 없어. 혼자서 앞서 나가지 마라."

아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본 희건은 피식 웃었다.

"삼촌이 결혼하는 게 그렇게 기대되냐?"

"당연히 기대되죠! 저한테 형님이 생기는 거잖아요!"

희건의 아들은 형님에 대한 로망과 환상이 있었다.

이전에 재건에게도 아들이 있기는 했지만 얼굴 한번 맞대보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얼굴을 맞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재건이 재혼을 한다면 그 상대의 아들이 자신의 형님이 되는 것이었다.

이미 게임 속에 첫 번째 형님이 있었기에 두 번째 형님이 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 아버지, 오셨으면 말을 하시지 그랬어요."

"우리 딸~, 잘 지냈어?"

"저야 뭐, 평소랑 같죠."

스트레칭을 위해 캡슐에서 나왔던 희건의 딸이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희건을 발견하고서는 거실로 내려왔다.

"호민이 너도 아버지가 왔으면 말을 해야지. 캡슐의 호출 버튼은 무슨 장식인 줄 아니?"

"다음부터는 노력해볼게!"

"퍽이나 그러겠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나한테 형님이 생긴대!"

"삼촌이 드디어 결혼한대요?"

백호민이 건너 뛴 부분을 백설영은 정확히 짚어 내었다.

"하하하,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벌써부터 너무 설레발치지는 마라. 특히 호민이 너 말이야."

백희건이 그리 말하기는 했지만 백호민은 기대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형님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첫 번째 형님과는 잘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두 번째 형님이 생긴다면 그와 최대한 많은 것을 할 생각이었다.

첫 번째 형님은 호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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