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95화 (95/171)

# 9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21화

21. 순백의 공주(2)

테이블 위에서 흔들림 없이 곧게 타오르고 있는 촛불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는 어두운 공간.

그곳에 놓여 있는 의자는 6개였지만 앉아 있는 인물은 5명뿐이었다.

이전처럼 아인스가 늦게 도착하여 의자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었으니까.

비워져 있는 의자는 츠바이, 나탈리의 의자였다.

그 의자는 새로운 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계속 비워져 있을 것이다.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 이전에 츠바이가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는 것과 내가 그것을 처리했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츠바이, 즉 나탈리가 아인스의 지시를 어기고 단독으로 멋대로 행동해서 결국에는 이즈바론트의 지하 감옥에 구금되었던 사건.

나탈리가 포박되었다는 이야기를 마교의 간부들 중 제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아인스는 망설임 없이 간부 회의를 소집, 나탈리를 처리하겠다고 다른 간부들에게 통보했다.

다른 간부들도 그의 결정에 반대는 없었다.

"츠바이의 일은 처음부터 우리가 진짜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사전에 제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인은 나탈리의 일에서 다른 간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정체를 파악해놔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결속을 굳히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정체를 파악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의 정체를 비밀로 하다가는 언제 또 나탈리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힘을 사용하면 억지로 정체를 파악해놓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러면 결속에 문제가 생긴다.

결속이 약해질 것이고 자신을 향한 의지와 충성심도 약해질 것이라는 게 아인스의 생각이었다.

"......."

"......."

아인스의 결정에 간부들은 고민했다.

과연 그의 말에 따라서 정체를 밝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간부들의 머뭇거림을 읽은 아인스는 스스로가 먼저 검은 천이 달린 기다란 고깔모자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간부들은 아인스의 행동에 놀랐다.

스스로가 먼저 정체를 공개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정체였다.

"내 얼굴을 처음 보는 이는 없겠지."

그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간부들 중에는 이전에 실제로 멀리서 그를 보았던 적이 있었던 이도 있었다.

"그래도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나는......."

아인스를 시작으로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서로에게 공개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것은 제일 체격이 작은 여성이었다.

"파피스......라고 합니다."

* * *

[퀘스트 '순백의 공주, 어둠의 공주'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물음표로 가려져있던 보상은 경험치밖에 없었다.

경험치뿐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대량이었기에 레벨이 오른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레벨이 2개가 올라갔다.

이것으로 오늘 하루 동안 오른 레벨만 총 11개, 랭킹도 앞자리가 바뀌어 16위가 되었다.

목표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 아바마마,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가요?"

"흐흑, 흑, 스테리아......!"

"아바마마, 체통을 지키세요!"

스테리아는 자신을 끌어안고서 흐느껴 울고 있는 제프리노의 등을 두 손으로 토닥여주었다.

제프리노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스테리아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돼요."

호야의 말에 스테리아가 눈을 뜨자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릿해서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읽지 못하던 시야가 뚜렷하게 돌아와있었다.

그때 에반이 거울을 꺼내어 스테리아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그녀를 향해 들어주었다.

그제야 스테리아는 제프리노가 왜 이러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를 알았다.

검게 얼룩져있던 자신의 얼굴이 새하얗게 되돌아와있었다.

스테리아는 조심히 제프리노를 토닥이던 손을 떼어 장갑을 벗어보았다.

10년간 새카만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자신의 손이 새하얗고 곱게 변해있었다.

"아......."

상황을 모두 파악한 스테리아의 눈에서 얇은 물줄기 하나가 흘러내렸다.

스테리아는 제프리노를 끌어안고서 한참을 조용히 울다가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눈으로 웃어 보이며 호야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해요."

그가 와준 덕분에, 에반이 그를 데려와준 덕분에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10년동안 자신과 주변을 괴롭고 슬프게 만들었던 병을 말이다.

호야에게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생겨났다.

[스테리아가 당신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스테리아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스테리아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스테리아의 호감도가 일정 수치에 달하여 스탯 '친화력'이 1 상승합니다.]

호야가 그 누구도 치료하지 못하던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는 생각에 스테리아의 호감도가 한번에 오르도의 주민들만큼 대폭 상승하였다.

그 영향으로 친화력까지 올라서 친화력이 10을 달성하였다.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수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탯 '친화력'이 10을 달성하여 앞으로 NPC의 호감도를 올리기가 조금 더 쉬워집니다.]

[스탯 '친화력'이 10을 달성하여 스킬 '다가가려는 의지'를 습득합니다]

'스킬......?'

친화력이 10을 달성하면서 NPC의 호감도를 올리기 쉬워졌단다.

이 쉬워진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효과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까지 이니티움을 플레이하면서 호야는 NPC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NPC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역시 호감도가 크게 적용한 결과였다.

호야는 NPC들과의 호감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친화력이라는 이름에서 이러한 효과가 생겨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킬이 생성된 것은 약간 뜬금없게 느껴졌다.

스탯으로 인해서 스킬이 생긴다는 이야기 따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습득하게 된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다가가려는 의지]

NPC 한명을 지정하여 호감도를 '완전 신뢰'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으며 당신의 말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게 됩니다.

이는 대상 NPC의 플레이어에 대한 현재 호감도와 종족, 소속 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강제력을 지닙니다.

스탯 '친화력'이 10씩 상승할 때마다 1회 사용이 가능합니다.

사용 가능 횟수: 1/1

'강제적으로 호감도를 끌어올린다고......?'

스킬의 설명만을 본다면 적대 관계인 NPC의 호감도를 한번에 끌어올리는 것도 첫 대면의 NPC의 호감도를 한번에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거 밸런스 괜찮은 건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나라에 헌신하던 영웅을 나라와 적대 관계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반대도 말이다.

호야는 이런 스킬이 겨우 '10'이라는 수치에서 튀어나와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호야가 몇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우선 친화력이라는 스탯을 생성시켜주는 아이템이 원래는 이렇게 빨리 나올 녀석이 아니었다는 것.

호야는 이미 두 번이나 다녀온 전적이 있는 왕성의 지하 창고이지만 개발진이 예상한 플레이어가 왕성 창고에 입장할 수 있게 되는 시기는 오픈으로부터 빨라도 4년 뒤였다.

그것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서 예상보다 일찍 제프리노의 호감도를 올려버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더 나아가서 너무 높게 올려버렸다.

결과적으로 왕성 지하 창고에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호감도를 올린 플레이어가 예상보다 너무 일찍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친화력의 수치를 상승시켜주는 '호감도의 일정 수치'는 거의 MAX에 가까운 수치로 설정되어있다.

친화력이라는 스탯 자체가 애초에 올리기 쉬운 스탯이 아니었다.

'다가가려는 의지'라는 스킬은 요구하는 조건과 비교하면 걸맞은 대가인 것이었다.

물론 사용하는 대상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것을 각오하고서 넣어둔 것이다.

"흉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네. 정말로, 정말로 고맙네."

감정을 진정시킨 제프리노가 매무새를 가다듬고서 호야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기만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왕성 지하 창고의 출입 권한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갚지 못하는 빚이었다.

귀족의 직위를 내려주고 싶었지만 스테리아의 병을 치료한 일 역시 아도라의 검처럼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공개적인 업적이 크지 않은 이가, 그것도 모험가가 귀족의 직위를 받는 것은 국민들과 귀족들의 불만을 초례할 것이었다.

제프리노는 호야에게 감사를 전하고 스테리아의 하얗고 고운 손을 따듯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푸근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네가 치료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녀의 앞에 직접 설 용기도 없고......, 10년간 남아있던 죄책감을 지울 수 있었으니까요.

이켠의 푸근한 미소에는 언뜻 슬픔도 엿보이고 있었다.

너무 늦었지만 치료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켠은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후우, 후우, ......네!"

오르도의 훈련장, 호야는 그곳에서 컨서누에게 수련이라는 이름의 샌드백 역할을 맞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수 시간째 이어지다가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오늘만 끝났을 뿐이지 내일 다시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말이다.

이전이라면 바닥에 엎어져서 죽어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겠지만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탯도 상승했기에 버틸만했다.

크라우스의 덕분에 이미 이런 식의 수련에 익숙해졌다는 점도 한몫해주고 있었다.

호야는 괜히 손목을 돌려보면서 훈련장을 나와 단탈스의 공방으로 향했다.

오르도에서 컨서누와의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수리를 맡겨두었던 검을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앞으로 길어도 2일이면 컨서누의 무투술을 확실히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자식아! 그렇게 강하게 내리치다가는 재료 다 상한다! 누구 자식이길래 힘만 더럽게 강해서는!"

"아부지 자식이잖아요! 게다가 힘은 지가 더 강하면서! 그리고 한번 삐끗한 거 가지고 거 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문을 노크하려던 호야의 손이 안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로 인해서 허공에 멈추었다.

'아......, 또 시작들 하셨네.'

이 상태가 되면 노크를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호야는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뭐 지?! 방금 아버지한테 지라고 했냐! 이 녀석이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아, 그거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육체 나이로는 제가 더 늙었습니다, 아부지!"

"자랑이다, 이 녀석아!"

호야는 안에 펼쳐진 광경에 한숨을 내쉬었다.

단탈스의 공방 안에서 단탈스와 반달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 이전처럼 서로한테 망치를 휘두르는 상태까지는 아직 가지 않았다는 것에 호야는 안도했다.

왕실 소속의 대장장이인 명장 반달, 그는 호야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재회한 후 왕실을 나와서 아버지의 옆으로 왔다.

모안은 짧은 고민 끝에 흔쾌히 그의 이주를 허락했었다.

반달은 다른 오르도의 주민들처럼 노화의 진행이 멈추지는 않는다.

드워프의 피가 섞인 탓에 노화의 속도는 느렸지만 언젠가는 어머니의 곁으로 떠날 것이었다.

그전까지만이라도 아버지인 단탈스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기에 모안은 마을에서 나가지 않는 다는 것을 조건으로 그를 오르도의 주민으로 받아들였다.

가족과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달이 단탈스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 뒤로는 거의 매일같이 이 상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저기......."

"그리고 아부지도 실수를 하면서 왜 저한테만 그래요! 훈련장에 걸려있던 거 다 봤어요!"

"크윽......, 그걸 보다니! 그걸 본 이상 사라줘져야겠어......!"

"저기요!"

장난 반, 진심 반을 섞어서 큰 목소리를 내뱉던 둘이 드디어 호야가 온 것을 눈치 챘다.

"어, 왔냐."

"무기 받으러 온 거지? 조금만 기다려라."

호야가 온 것을 눈치 채자 둘은 언제 서로 고성이 오갔냐는 듯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맺고 끊음이 너무 깔끔했다.

"아직도 툭하면 싸우시는 거예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들이니까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지 않아요?"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그게 영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단탈스도 반달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쉽게 되지가 않았다.

노력을 해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시 서로 큰 목소리가 오갔다.

수십 년간 쌓여만 있던 애정이 조금 다른 형태로 폭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약간 재미도 있었다.

"자, 여기."

"아, 감사합니다."

호야는 반달에게 감사를 전하고 검을 받아 허리에 찼다.

오늘의 접속 제한시간이 끝나기 전에 짧게 사냥을 하러 나갈 생각이었다.

-잠깐만 모두 마을 중앙으로 모여줘.

그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모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그거 뭐예요?"

"가끔가다 모안이 마을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마법이야. 마을 전체에 목소리가 안 닿는 곳이 없지."

호야는 스피커 같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이지?"

모안이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 모으는 것은 수십 년만의 일이었다.

단탈스는 지금 상황을 의아해하면서도 반달과 호야와 함께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마을 중앙에는 이미 모든 마을 주민들이 모여있었다.

그 사이로 어른의 모습을 한 모안의 뒤에 처음 보는 소녀가 몸을 반쯤 숨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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