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19화
19. 어둠에 물들던 순간(2)
[그림족의 은인]
그림족은 당신에게 은혜를 받아 커다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림족은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칭호 효과: 어둠 속에서의 은신 능력이 상승하며 하루에 한번씩 그림족을 한명 불러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환된 그림족은 30분이 지나면 부락으로 귀환합니다.
시간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 한번씩 그림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3일간 같이 행동하면서 보고 느낀 그들의 능력은 매우 뛰어나고 활용성이 높았다.
호야는 상승한 레벨과 칭호를 확인하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토윤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야는 자동적으로 완료된 퀘스트로 인해서 결계가 무사히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일부 플레이어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 밖을 뛰어다니던 전투원들은 결계가 무사히 설치되었음을 느낀 것 같았지만 그들보다 느끼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토윤님, 어떻게 됐어요...?"
"이제 우리도 쉴 수 있을 것 같네."
토윤의 대답에 그림족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그 물음표는 곧바로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제 쉴 수 있다.
그 말은 모험가들의 진입을 막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그 뒤로 그림족이 어둠의 숲의 플레이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림족의 방해가 사라지면서 플레이어들은 그림족 부락의 코앞까지 개척을 진행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에반의 환각 결계에 가려진 그림족들의 부락을 눈치 채는 이는 없었다.
* * *
"무사히 해결돼서 다행이에요."
그림족은 최악의 경우 다시 지하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고 일이 해결되었기에 모두가 지금 상황을 기뻐하고 있었다.
호야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옆에 서있는 컨서누에게 말했다.
호야의 말에 컨서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족은 자신만을 믿고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지하에서 벗어나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을 택해 자신을 따라온 이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다시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더라면 가슴속에 큰 죄책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미연에 막아서 다행이라고 컨서누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맞아요, 무사히 해결 되었죠."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답인 것인지 자신의 기술을 습득해줄 제자도 생기지 않았나.
이미 다른 이들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약점 간파를 속성으로 가르쳤을 때에만 해도 2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동작 없이 기술만을 거의 쑤셔 넣듯이 가르친 것이라고 하지만 습득이 빨랐다.
크라우스를 통해서 몸으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익숙해져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컨서누는 눈을 빛내며 호야의 양 어깨를 잡고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사히 해결 되었으니까......, 이제 무투술의 수련을 계속해보죠!"
호야의 어깨를 잡고 있는 컨서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일이 끝나면 무투술을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었으니 컨서누는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절대로 자신이 가르쳐 주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다 호야를 위해서다.
응, 그렇고말고.
"아......, 죄송해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호야에게는 에반과의 약속이 남아있었다.
에반의 눈빛이 매우 진지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그를 만나러 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절대로 컨서누의 수련을 뒤로 미루고 싶은 것이 아니다.
컨서누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호야는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곧바로 이즈바론트로 향하는 워프 스크롤을 찢었다.
"그림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줘."
마탑으로 돌아온 에반이 호야에게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에반은 말의 두서에 상관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에반이 현재 그림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3가지이다.
하나는 그림족이라는 종족의 명칭.
다른 하나는 그들 전원이 그림자를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
남은 하나는 과거에 사람들과 무언가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에반이 알고 싶은 것은 그 그림자를 사용하는 기술의 범위와 과거의 트러블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저도 완벽히 알지는 못해요."
에반의 진지한 눈빛에 호야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에반에게 알려주었다.
호야의 이야기 속에서 에반이 주목한 것은 그림자 병에 관한 것이었다.
"그 그림자 병이라는 것의 증상을 알려줘."
-그 아이가 제 그림자를 밟자 제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였었어요.
에반의 머릿속에 그녀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가 말한 그 아이가 그림족이라면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들었던 몸에 변화가 오면서 약해지기 시작한 장소와 어둠의 숲은 지리적으로 꾀나 가까웠다.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림자 병은 걸리게 되면 손끝과 발끝 등 몸의 끝에서부터 몸이 서서히 검게 물들어간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두려움이 앞서 경황이 없었기에 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어요. 제일 처음 제 손가락 끝이 검게 변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은 유모였습니다.
"그리고...... 온몸이 전부 검게 물들어버리면 힘을 다해 죽게 된다고......."
-처음에는 손가락 끝과 발끝만이 검게 물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몸이 검게 물들어버렸죠.
'역시.......'
에반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그녀가 병들어가는 원인을 알아냈지만 치료법이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호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미 얼굴까지 검게 물들기 시작한 그녀는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호야의 입에서 치료법이 나와야 했다.
"그래서?"
"네?"
"그 그림자 병이라는 것의 치료법은 있어?"
"그림자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그림자를 먹었던 그림족 본인이 먹었던 만큼 그림자를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치료법이 있었다.
중앙신전의 장로들도 치료하지 못하고 자신도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던 증상에 대한 치료법이 존재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외부에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이야기야."
호야가 말한 치료법은 호야에게, 그림족에게 협력을 구해야지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에반은 호야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테리아 루제로스의 이야기를.
* * *
루제로스의 국왕인 제프리노 루제로스의 두 번째 자녀이자 유일한 공주님이었던 스테리아는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지며 성장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스테리아는 태어나고부터 7살의 생일을 맞이하기까지 단 한번도 왕성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오라버니인 멜뷰어는 사용인과 기사들을 동행하여 미래를 위해서 도시 국민들의 생활을 지켜보기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정체를 숨기고 외출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스테리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왕성의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는 것이 제프리노의 뜻이었다.
목을 높게 들어 올려야 끝이 보이는 높은 성벽이 스테리아가 살아가는 세상의 끝이었다.
스테리아는 그 높디높은 성벽의 바깥을 느끼고 싶었다.
왕성의 높은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자신의 손가락만큼 작은 건물들이 아닌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커다란 건물들을 보며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때에 스테리아에게 절호의 기회가 생겨났다.
스테리아의 7번째 생일이 지나고 멜뷰어의 15번째 생일이 지나자 멜뷰어가 정치의 감각을 몸에 익히기 위하여 수많은 사용인들과 병사들을 동행해서 이동시간을 합쳐 약 한 달간 할프라는 도시로 시찰을 나간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아바마마, 저도 오라버니와 동행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견문을 넓히고 싶습니다."
견문이라는 것이 7살짜리의 아이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만큼 스테리아는 무슨 이유를 대서든지 도시로 발을 내딛고 싶었다.
제프리노는 처음에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스테리아의 뜻에 반대했지만 그는 딸아이의 단단한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아빠가 아니었다.
결국 제프리노는 스테리아가 멜뷰어의 시찰에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시간이 흘러서 그날이 되었고 멜뷰어와 같이 마차에 오른 스테리아는 창문에 달려있는 커튼을 살짝 치워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왕가의 문장이 떡하니 박혀있었기에 도시의 주민들은 마차가 지나가는 동안 마차를 향해 예를 취했다.
스테리아가 상상하던 왁자지껄한 활기는 없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거리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좋으냐?"
"네! 동행하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오라버니!"
눈을 보석처럼 반짝이는 스테리아는 멜뷰어의 물음에 밝게 대답했다.
지금은 마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할프에 도착한 뒤에는 오라버니처럼 사용인들과 기사를 동행시켜서 도시에 나가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테리아의 그러한 기분 좋은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멜뷰어도 제프리노에게 버금가는 동생바보였다.
아무리 사용인과 기사들과 동행한다지만 아직 어린 스테리아를 자신이 곁에 없는 상태에서 바깥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테리아는 할프에 도착해서도 이즈바론트에서와 같이 영주의 저택에서만 활동이 가능했다.
처음 2~3일은 영주의 저택에도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였기에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2주일이 다 되어가자 왕성과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도 자신의 세계는 높디높은 성벽이 끝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스테리아는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자신의 세계를 넓힐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은 수년 후의 미래일 것이었다.
스테리아는 영주의 저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빠져나갈 구멍을 물색 했다.
그리고 정원 한구석에 수풀에 가려진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구멍은 아직 어린 스테리아가 통과하는 것도 아슬아슬할 것 같은 작은 구멍이었다.
그 구멍을 발견한 스테리아는 저택의 방에서라면 사용인들도 자신이 혼자 있고 싶다 하면 혼자 있을 수 있도록 바깥에서 대기했기에 그때에 몰래 방을 빠져나와 도시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
몰래 나갔다가 몰래 들어오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테리아는 그 다음날 자신의 계획대로 방에 혼자 남은 뒤에 몰래 방을 빠져나와 미리 봐둔 구멍을 통해서 도시로 나왔다.
홀로 도시에 나와서 바라본 거리는 마차의 안에서 커튼 사이로 보았던 것과는 180도 달랐다.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한 대화들이 들려왔고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뛰어다닌다.
상인의 호객행위에 지나가던 여인이 멈춰서 오늘의 저녁 재료를 고민하고 등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양해를 구하며 거리를 걸어간다.
스테리아가 보고 싶었던, 나오고 싶었던 활기찬 도시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너무 들떠있던 것일까.
길을 외우면서 움직이고 있던 스테리아는 아차 하는 한순간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원래 있던 길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원래 있던 길의 특징을 말하면서 돌아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리고 한 친절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려 하는 스테리아를 기특하게 여겨 그곳까지 직접 안내해주겠다며 그녀의 손을 다정히 잡고 걸었다.
그의 손을 잡고서 스테리아가 도착한 곳은 처음 있던 거리가 아닌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지름길이라 하여 따라왔지만 지름길이 아닌 막다른 길이었다.
그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스테리아가 입고 있는 옷을 힌트로 그녀가 귀족집의 자제라는 것을 눈치 채고 몸값을 받기 위해 스테리아를 납치하려 하고 있었다.
스테리아는 오라버니와 아바마마의 말을 어기고 바깥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넓어진 세계에는 위험도 존재하고 있었다.
스테리아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때 공포로 인해 떨리는 스테리아의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어두운 골목길보다도 더 어두운 검은머리의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