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15화
15.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서(2)
그림족은 아이들이 과거의 자신들과 같은 경험을 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자신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컨서누가 모험가들의 개척을 방해했던 이유였다.
그림족의 부락은 모험가들의 개척이 진행 중인 방향에 존재하고 있었다.
검은색 장막의 돔으로 인해 부락 자체는 가려져있지만 그 검은색 돔은 너무 눈에 띈다.
그러한 것이 숲의 한가운데에 버젓이 존재한다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레 호기심과 의문을 가질 것이고 그 정체를 확인하려들 것이다.
그것은 그림족에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 검은색 막은 그림자 장막이라고 부릅니다. 외부의 침입을 막을 때에 사용하는 것이죠. 강하게 유지할수록 많은 마력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그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몬스터를 막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컨서누와 호야의 옆에 앉아있던 토윤이 말을 이었다.
그림자 장막의 지금 상태로는 모험가들이 작정하고 공격을 가한다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 할 것이라고 한다.
장막이 깨진다고 해도 침입하는 모험가들의 제압은 가능하겠지만 그림족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오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하지만 모험가들에게 지금 사용하는 방법은 역효과예요."
플레이어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사건이 터지면 그 속에 있을 보상을 노리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지금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것은 알지만......, 당장은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그 이상 개척이 진행되었다가는 얼마 안가서 바로 돔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발을 묶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야기는 납득해주셨나요?"
"네."
"그럼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호야는 컨서누의 말에 긍정을 표했고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컨서누의 도움 요청'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컨서누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퀘스트 '그림족의 보호'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림족의 보호]
현재 그림족은 모험가들을 피해서 거처를 옮겨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의 숲을 제외하면 그림족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은 지하밖에 없습니다.
그림족들은 과거와 같이 땅 밑에서 갇히듯이 생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험가들의 개척이 진행되면 언젠가는 발견되고 말 것입니다.
그림족이 모험가에게 발견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완료 조건: 그림족의 부락을 모험가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숨긴다.
성공 보상: 그림족 전체의 호감도 상승, 칭호 '그림족의 은인' 획득, 경험치.
실패 패널티: 그림족의 존재가 대륙에 알려집니다.
"어려운 것을 부탁하려는 거는 아니에요."
컨서누가 호야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모안에게 말을 전해 그림족의 부락을 숨겨줄 결계를 만들어줄 것을 대신 부탁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림족의 부락을 모험가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할 환각을 심어주는 결계가 필요했다.
그림자 장막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안 된다.
환각 결계들은 시전자의 힘에 따라서 그 위력이 천지차이이지만 전설의 마법사의 환각을 깨트릴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제가 직접 가서 부탁하고 싶지만 지금 제가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모안에게 말 좀 전해주세요. 이 빚은 반드시 갚겠다고 말이에요."
부탁을 전하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 모안이라면 컨서누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 * *
"모아......ㄴ."
마을 귀환을 사용해 오르도에 도착한 호야는 모안을 부르기 위해서 그녀의 집 문을 노크하려다가 직전에 느껴진 섬뜩한 느낌에 허공에서 손을 멈추었다.
마치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려는 다람쥐가 된 느낌이랄까.
'뭐지......?'
호야는 기척을 최대한 죽인 다음, 옆으로 살짝 이동해 벽에 달린 창문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고 곧장 모안의 집에서 조심스레 멀어졌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그 안에는 날이 잔뜩 서 있는 모안이라는 이름의 호랑이가 존재했다.
조금이라도 자극하면 바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모안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면 나중에 찾아가는 게 좋을 거야. 며칠 동안 계속 저 상태거든."
"그, 그런 것 같네요......."
크라우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호야의 귓가에 속삭였다.
호야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모안에게 다가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갑자기 모안에게 컨서누의 부탁을 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냥 사망 패널티 한번 받고 끝낼까?
그러한 생각까지 하고 있자 이전에 스치듯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분이 아끼는 사람은 내가 아끼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터무니없는 것만 아니면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그때 호야의 머릿속에 과거에 에반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했던 말이 빈말인 것인지 진담인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한번 정도는 부탁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실패했을 때에 시도하자.
"죄송합니다만 사전에 약속이 없으시면 마탑장님과의 면담은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마탑을 찾아왔지만 처음부터 일이 꼬여버리고 말았다.
마탑장은 갑자기 안면이 하나도 없는 모험가 하나가 찾아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에반은 호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아랫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호야는 많고 많은 모험가들 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그런 모험가의 면담 신청을 마법사들이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처음부터 정해 놨던 대로 호랑이 굴에 발을 들여야 하나.
"여기서 뭐해요?"
호야가 진지하게 그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자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잡은 손을 가슴 높이로 들고서 검을 꼿꼿이 세운 기사의 마크를 왼쪽 가슴에 새긴 플레이어.
"그......, 이름이......."
"에이, 너무하신다. 저희가 며칠을 같이 몸을 부대끼며 살았는데 이름도 기억 못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꽤 컸다.
그 덕분에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흠칫 놀랐고, 그들의 시선은 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퀘스트! 퀘스트를 로열 나이츠랑 며칠 같이 한 거죠! 그렇죠? 그 얘기 맞죠?"
"그거 말고 다른 게 또 뭐 있나요?"
둘에게 시선을 보냈던 플레이어들은 호야의 말과 루나의 긍정에 흥미를 지우고 다시 자신들이 가던 길을 갔다.
"제 닉네임은 루나예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네, 네......."
이전에 퀘스트를 진행했던 때에 호야와 루나는 같이 행동하기는 했지만 그리 접점은 없었다.
그래서 잠시 그녀의 닉네임을 까먹었던 것이었다.
호야는 진심으로 다시는 그녀의 닉네임을 까먹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마탑에는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호야는 그녀의 물음에 문득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이 생각나 루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하실 말이라도 있어요?"
"......루나님, 저를 마탑장님과 만나게 해주실 수 있나요?"
이전 마교의 수색 퀘스트에서 마탑장인 에반에게 직접적으로 퀘스트를 받았던 것은 그녀였다.
그렇다는 것은 에반과 어느 정도 호감도를 쌓았거나 마탑 자체의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루나의 도움만 받으면 선약이 없어도 마탑장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호야의 생각이었다.
"마탑장님하고요?"
"가능한가요?"
"가능하기야 한데......."
턱을 괴고서 살짝 고민을 하던 루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저한테 도움을 구하는 거죠?"
"네, 그렇죠."
"제가 도와드릴 테니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저도 좀 도와주세요!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아니면......,"
루나가 살짝 장난기 어린 눈으로 일부러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혹시 저만 벗겨 먹을 생각인가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제 일을 도와주신다면 당연한 거죠! 벗겨먹을 생각 없어요!"
호야는 재빨리 대답해서 다시 자신들을 향하려던 오해의 시선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 여자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호야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 약속 꼭 지켜야 돼요!"
생각보다 루나가 마탑에서 꽤나 높은 대우를 받고 있던 것인지 그녀를 앞장세워서 걷자 아무런 제재 없이 마탑장이 거주하는 꼭대기 층까지 다이렉트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마탑의 마법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루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아, 마인님."
루나가 마탑장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직전에 문을 열고 부마탑장인 마인이 나왔다.
얼굴에 꽤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그... 이름이....... 아아, 생각났어요. 호야 씨, 맞죠?"
"네."
"마인님, 꽤나 피곤해보이시네요?"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눈과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마인을 보고 루나가 그에게 물었다.
그제야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떠올린 마인이 힘 빠진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하하하......, 요즘 좀 여러 가지로 바쁘고 머리가 아파서요."
나탈리의 탈옥은 일반인들뿐만이 아닌 플레이어들에게도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인력이 부족하여 철야를 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탈리를 수색하는 것뿐만이 아닌 마인의 개인적인 일도 같이 겹쳐있었기에 그의 피로는 극에 달해있었다.
인사를 나눈 마인은 다시 자신의 일을 하러 갔고 호야의 부탁을 완수한 루나도 마탑을 내려갔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그게, 전에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아직 유효한가요?"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아, 그거! 그래, 터무니없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야. 부탁할 일이라는 게 뭔데?"
호야는 에반의 물음에 그림족에 대해서 매우 간단하게 설명을 한 뒤에 결계를 부탁했다.
그림족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에반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오르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괜찮을 것이다.
"그림족......?"
호야의 입에서 나온 그림족이라는 단어에 에반이 자신의 머릿속을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이 가진 지식 속에는 그림족이라는 종족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호야의 설명을 들으면 그들은 과거에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 듯한데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책을 통해 그들에 대한 기록을 읽은 기억이 없었다.
에반은 자신이 지식을 습득하지 목한 종족이라는 것에 흥미가 들었다.
"환각 결계를 만들어주는 것은 흔쾌히 해줄 수 있어. 하지만 한 가지를 구해와야 할 필요가 있어."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가서 결계를 쳐주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결계의 안쪽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 않는 한 그림족들이 결계의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 부락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신이 계속 관리를 해줄 수도 없었기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법을 아이템에 새겨 넣을 필요가 있었다.
마법을 아이템에 새겨 넣게 된다면 마법을 발현하는 주체가 시전자가 아닌 아이템이 되기에 아이템을 통해서 결계의 관리가 가능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물건을 담을 박스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돼. 그 안에 담길 물건이 내 마법이라는 것이 조금 문제지만 말이야."
'자신의 마법이 새겨져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고 강력하지만 결계를 망치치 않기 위해서라도 아이템에 다른 부과적인 효과가 발생되어 있지 않은 아이템'이 에반이 호야에게 구해와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 형편 좋은 아이템이 아무 곳에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제작을 의뢰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있을지도?'
호야는 에반에게 알겠다고 답하고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에게 찾아갔다.
"으음......, 마탑장님의 마법을 버틸 아이템이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시간만 주신다면 한번 만들어볼게요."
파피스는 고민 끝에 호야의 의뢰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