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88화 (88/171)

# 8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14화

14.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서(1)

검은색 천처럼 늘어진 그림자에 감겨진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들어올려져 옮겨지기 시작했다.

컨서누도 양 어깨에 플레이어들을 한명씩 메었고 호야는 바두에게 거대화를 사용하게 해서 그 위에 유아와 도반을 태웠다.

둘이 축 늘어진 시체처럼 들춰 메지고 옮겨지는 것을 보는 것은 조금 그러했기에 선택한 행동이었다.

"이곳이면 될 거예요."

그들은 멀찍이 몬스터가 리젠 되지 않는 장소에 플레이어들을 눕혔다.

"이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조금 길어질 이야기라서 장소를 옮겼으면 해요."

컨서누의 말에 호야는 살짝 고민했다.

아무리 이곳이 안전한 곳이라지만 기절한 상태의 둘을 두고서 바로 컨서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호야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일단 이 둘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서 이야기를 들어도 될까요?"

"알겠어요. 그럼 그 뒤에 아까 그곳으로 와주세요. 절대로 혼자서 오셔야 돼요."

컨서누는 다시 가면을 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뒤로 조금 긴 시간이 흐르자 유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악! 무지하게 아프네!"

"일어났어?"

일어나자마자 아직 통증이 남아있다는 듯이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유아가 호야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괜찮냐?"

"어? 어."

"도대체 기절을 얼마 동안이나 걸린......, 1시간?"

인터페이스의 시계를 통해서 시간을 확인한 유아가 경악을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기절의 최대 지속시간은 30분, 그 두 배의 시간을 누워있었다.

"크윽......,"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반이 깨어났다.

일어난 도반은 호야와 유아에게 유아와 똑같이 괜찮냐고 물었고 호야는 그 물음에 어색하게 괜찮다고 답했다.

자신만이 기절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면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나저나 뭐 좀 봤어?"

"......검은색 밖에 못 봤어."

"눈으로 쫓지도 못하다니......, 도대체 얼마나 빠른 거야?"

전설이 될 만큼 빠릅니다.

호야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다른 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를?"

"검은색 사람."

소문 속의 그는 너무나도 강하고 빨랐다.

움직임을 눈으로 쫓지도 못하니 공격을 막지도 못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다사 찾아간다면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우선은 기절을 회피할 방법이 필요했다.

"나탈리 때에 먹었던 물약을 다시 먹어야 하나......."

그거 비싼데.......

유아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호야가 말을 꺼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잖아."

호야는 컨서누를 만나러 가야했다.

하지만 갑자기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려하면 도반은 몰라도 유아는 무슨 일인지 물어올 가능성이 컸다.

절대로 혼자서 오라는 말을 들었기에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선 둘과 한번 떨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흐음......, 그래. 접속 제한도 슬슬 다가오고 있고 물약 사고 오면 바로 끝이겠네."

물약을 사러 경매장에 가려고 일어나던 유아가 가만히 앉아있는 호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는 안 갈 거야?"

"어디를?"

"경매장."

"아, 나는 칭호 때문에 기절 안 걸리니까 괜찮아."

호야의 말에 유아가 눈을 빛냈다.

"뭐? 진짜?! 완전 면역인 거야?"

"뭐, 그렇지."

"그건 꽤 부럽......."

기절 한정이라고 해도 상태이상에 완전 면역이라니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그 놀라움에 뒤이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잠깐만, 너 방금 전에 기절에 '걸렸었다'고 하지 않았어?"

"어?"

유아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고서 코앞에서 호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호야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심코 말실수를 해버렸다.

이거 어떻게 하지.......

"......."

호야가 선택한 것은 도망이었다.

바두를 역소환하고 버프를 민첩에 사용해가며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뒤에 멀리서 유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용은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유아가 귓속말로 다시 물어왔었지만 호야는 급한 볼일이 갑자기 생각났다고 대답을 보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거짓말 같은 대답이었지만 당장에는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 * *

호야는 컨서누와 만났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들도 없었고 컨서누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호야가 의아해하고 있던 그때에 그림자에서 아까와 같이 사람이 솟아나더니 호야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저기, 컨서누는 어디에......?"

"서누님은 모험가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서누님 대신에 제가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선 자신들의 부락으로 이동한 다음에 컨서누를 기다려 달라고 호야에게 부탁했다.

부락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상관없지만 호야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가 곧 있으면 슬슬 오늘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다 써버리거든요. 그 부락이라는 곳에 도착하면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시군요."

플레이어들의 과도한 플레이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하루 접속 가능한 시간에 대한 제한의 존재.

NPC들은 그것을 이브의 축복으로 모험가들이 하루 동안 이 세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제한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호야의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자신들의 부락이라는 곳을 향해 그를 안내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개척지를 그의 뒤를 따라서 이동했다.

신기하게도 몬스터는 전혀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서 기척이 살짝 느껴지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피하는 듯이 둘에게서 슬슬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 길게 안내에 따라 걸어가자 나무들 틈 사이로 검은 벽 같은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벽은 돔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호야를 안내하던 검은색 사람이 그 돔의 앞에서 손을 공중에서 살짝 휘젓자 돔에 딱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겨났다.

"이쪽으로."

돔에 생긴 구멍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서 호야도 같이 그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돔을 통과해 다시 깊숙하게 들어간 곳에는 높게 자란 나무들의 사이사이에 유목민들의 게르 같은 형태의 집이 지어져 있었다.

바깥에 사람들이 몇몇 나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빠짐없이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손가락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호야를 데리고 왔던 이가 가면을 벗고 말했다.

"그림족의 부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토윤 님. 옆에 그 형은 누구예요?"

호야가 그를 따라서 부락으로 들어가자 아직 10살이 채 되지 않아보이는 아이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아이의 말을 시작으로 근처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호야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러고는 이내 크게 놀라며 그를 향해서 달려왔다.

컨서누 외에 자신들의 일족이 아닌 자가 자신들의 부락에 들어왔다는 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크게 놀란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아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일족의 아이가 그의 앞에 다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안녕, 형아!"

"머, 먹으면 안 돼!"

그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도 그의 옆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토윤이 야속하기만 했다.

왜 멈춰주지 않는 거야!

토윤은 호야에 대해서 미리 컨서누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아이를 굳이 막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을 그와는 상황이 달랐다.

호야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그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전력으로 아이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아이의 발은 이미 호야의 그림자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 호야의 그림자가 살짝 일렁거리면서 그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그림자를 먹혔습니다.]

[HP가 1%, MP가 1% 하락합니다.]

[그림자를 먹혔습니다.]

[HP가 1%, MP가 1% 하락합니다.]

[HP가 1%, MP가 1% 하락합니다.]

[영구 상태이상 '그림자 병'이 당신을 위협합니다.]

[칭호 '땅 끝 마을의 주민'의 효과로 인해 저항하였습니다.]

왠지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은데.......

호야의 머릿속에 어째서인지 히에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얘! 엄마가 이전부터 계속 말했잖아! 사람 그림자는 함부로 먹는 거 아니야!"

"하, 하지만....... 흐흑, 흐아아앙~!"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다그쳤다.

그것이 멈춘 것은 토윤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호야가 컨서누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녀가 호야의 손가락을 확인한 뒤였다.

호야의 손가락이 검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아이의 어머니는 크게 안도했다.

* * *

그림족은 그림자를 먹고 사는 종족을 칭하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명의 예외도 없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으며 손가락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고기나 채소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그림자를 먹고 사는 것으로 생을 이어갈 수 있었기에 이전에 살던 곳에서 그들은 악귀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림자를 먹는 것뿐이라면 사람들은 그들을 그저 특이한 종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종족에는 정령들 같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그림자를 먹으면 그 대상에게 한 증세가 발생하기에 그들은 악귀취급을 받았었다.

그림족에게 그림자를 일정량 이상 먹힌 사람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발생하는 '그림자 병'.

그림족이 그림자를 먹는다는 행위는 그 대상의 힘과 생명을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림자 병에 걸리게 되면 손끝과 발끝 등 몸의 끝에서부터 몸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며 온몸이 검은색으로 물들게 되면 힘을 다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림족이 사람의 그림자만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림자 병을 퍼트리지 않기 위해서 비생명체나 나무 등의 자연의 그림자를 주식으로 삼았었다.

사람의 그림자란 그들에게 있어서 특식에 가까운 개념이었지만 그들은 그 욕구를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성장이 덜한 아이들은 그 욕구를 참지 못했다.

아이들을 통해서 조금씩 퍼졌던 그림자 병으로 인해서 그들은 아주 깊숙이 몸을 숨겨야만 했다.

하지만 그림자 병에 걸리지 않던 컨서누만이 그들을 사람으로서 대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컨서누가 고향을 떠날 때에 그를 따라서 같이 이주해왔다는 것이 다음날 접속한 호야에게 그가 해준 말이었다.

"그림자 병도 상태이상이니까요. 신성 마법으로 치유가 되지 않는 종류이기는 하지만요."

그림자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그림자를 먹었던 그림족이 대상에게 먹었던 만큼 자신의 그림자를 되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완전한 불치병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보다는 자신들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컨서누는 오르도의 주민이 되기 이전부터 스스로가 만독불체의 경지를 이루었기에 그림족과 서슴없이 교류를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컨서누는 고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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