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13화
13. 개척 방해자 유아?(2)
불특정다수라는 벽의 뒤에서 나오지 못하는 용자였지만 용자는 용자였다.
사람들의 틈에 섞여서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말에 애서가는 눈가를 찌푸렸다.
"할 말이 있으면 숨어서 하지 말고 이들처럼 당당히 해라. 게다가 증명을 원한다면 커뮤니티라도 들어가 봐라. 영상이 있을 거다."
방해를 받았던 길드원은 스트리밍 중이었다.
기절을 하면서 스트리밍이 끊기기는 했지만 기절하기 전에 그림자를 움직이는 인물이 잠시나마 잡혔었다.
그것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사람들을 시작이로 해서 그 뒤로 짧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꽤 떠들썩하게 이야기가 퍼져있었다.
"그것 봐!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유아가 으르렁 거리자 그를 몰아붙이던 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흩어졌다.
상황이 이상하게 틀어지자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유아에게 사과를 해온 이들은 그들 중에서도 극소수뿐이었다.
"내가 저 사람들을 그냥 두나 봐라!"
처음부터 영상을 싹 다 찍어놨다면서 여자친구의 스트리밍을 통해서 공개하겠다는 것을 호야가 말렸다.
그렇게 하면 유아의 속이 풀리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이 보는 유아의 이미지에는 금이 갈 것이다.
호야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저것들하고 비슷한 놈이 될 수는 없지."
호야의 설득에 고민하던 유아가 이내 호야의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속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도와줘서 고마워요."
"딱히 도와주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상황이 보기 싫었을 뿐이야."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유아가 뒤늦게 애서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진짜 뭐였을까?"
호야는 검은색 일색인 사람들에 대하여 궁금증이 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NPC라고 생각이 되었다.
아마 거의 확실할 것이다.
랭커들을 손쉽게 제압하는 NPC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별한 NPC나 몬스터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그 앞에 무언가 특별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히든 피스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호야뿐만이 아니었는지 유아가 호야와 도반의 목에 팔을 하나씩 감으며 가까이 끌어당겼다.
"친구들, 주변을 좀 둘러봐."
"?"
유아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소곤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야와 도반의 시선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음을 확인 유아는 호야가 했던 생각과 거의 같은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닌 것 같아. 다들 소곤소곤 뭔가 말하고 있잖아. 들어보니까 내 생각이랑 비슷비슷한 말을 하고 있더라고."
직업 '그림자 시프'인 유아의 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 귀'였다.
특정 그림자를 지정하여 그 그림자의 주인이나 그 그림자와 맞닿아 있는 그림자의 주인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게 살짝 중얼거리는 목소리 같은 것도 눈앞에서 바로 말하는 듯이 정확하게 들린다.
유아는 그 스킬을 사용해 꽤 여럿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참이었다.
"나는 저 녀석들이 노리는 것을 채가야지 속이 풀릴 것 같아. 그러니까 좀 도와주라. 당한 만큼 되돌려 주겠어!"
유아가 만화에서 악당이나 지을 법한 웃음을 지으며 둘에게 부탁했다.
부탁이라고 해도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사냥했던 장소를 벗어나 문제의 장소로 사냥터를 옮기자는 것이었다.
유아는 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범인의 정체가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추측이 아닌 사실로 만들 기세였다.
호야는 이전에 받았던 도움을 갚고 싶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도 했고 호야도 그 검은색 일색의 사람에게 흥미가 있었다.
도반도 딱히 이견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출발!"
세하가 처음 말해주었을 때에는 '특정 구역'이라는 언급만 했었기에 정확한 장소는 몰랐지만 유아가 스킬을 통해서 이야기를 엿들었던 때에 그 장소를 알아냈다.
호야와 도반은 유아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사냥터를 옮기기는 했지만 주변 풍경과 몬스터 자체는 평소에 사냥하던 곳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빛을 내뿜는 이끼, 높디높은 나무와 무성한 나뭇잎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몬스터의 리젠 위치와 플레이어들이 조금 자주 보인다는 것이었다.
"바두야, 몬스터가 있는 곳 좀 알려줄래?"
"커옹!"
호야의 부탁에 바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두의 스킬인 '본능'은 몬스터를 찾을 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바두가 코를 몇 번 킁킁 거리고는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고 셋은 바두의 뒤를 따랐다.
바두가 몬스터를 잘 찾아내주기는 했지만 바두가 몬스터를 찾은 곳에서 플레이어가 없을 확률은 반반이었다.
"킁, 킁. ......! 컹!"
계속해서 코를 킁킁거리던 바두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꼬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바두야, 뭐라도 찾았어?"
"커옹!"
[상태: 적을 찾다가 우연히 반가운 냄새를 감지했습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반가운 냄새......?'
호야가 속으로 바두의 상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자 바두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속도는 이전보다 조금 더 빨랐다.
마치 냄새의 주체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두를 쫓아서 도착한 곳에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 플레이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슬쩍 보아하니 정신을 잃은 것이 상태 이상 기절에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엔 검은색 일색인 사람이 보였다.
검은색 목 티에 검은색 도복, 머리카락 또한 검은색이었고 얼굴은 검은색의 달걀귀신 같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손과 발 또한 검은색 천으로 둘러져 있어 피부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수상한 차림새의 사람이 꼬리를 격하게 흔들고 있는 바두를 아주 자연스럽게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호야는 그 검은색 일색의 수상한 사람의 실루엣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콰앙-!
바두를 쓰다듬던 검은색 사람이 빠르게 도약해 도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가 도약을 하는 소리는 깃털이 바람에 날아가듯 가벼웠지만 도반에게 도착한 주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반과 파티 상태였던 호야는 시야 한구석에 표시되고 있는 그의 이름과 HP 게이지 옆에 조그마한 마크 하나가 떠오른 것을 보았다.
상태이상 '기절'을 뜻하는 마크였다.
호야가 그것을 확인하고 있던 찰나의 순간에 검은색 사람이 허리를 비틀며 발을 들어 올려 유아의 목뒤를 강하게 내려쳤다.
눈으로 잔상만 겨우 쫓을 수 있는 빠른 동작들, 호야는 그것을 보고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 하지만......, 그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데?
게다가 평소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곳에서, 게다가 이런 형태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유아와 도반을 기절시킨 검은색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달걀 같은 가면을 벗었다.
가면이 벗겨진 곳에는 호야가 순간적으로 떠올렸던 설마 했던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오르도의 주민, 전설의 무투가, 예의바른 사나이.
"......컨서누가 왜 여기 있어요?"
마을에 있는 날보다 바깥에 나와 있는 날이 더 많은 그가 그곳에 있었다.
"호야야 말로 왜 여기 있어요?"
가면을 벗은 컨서누가 눈을 꿈뻑거리며 호야에게 되물었다.
컨서누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반, 반가움이 반 섞여있었다.
호야는 지금 상황에 머리가 아파왔다.
검은색 사람의 정체가 NPC일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그 정체가 컨서누일 것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는 사냥을......, 컨서누는 왜 여기에 있어요?"
컨서누가 마을에 있는 날은 손에 꼽혔기에 호야가 그와 마을에서 만난 날은 한 자릿수를 넘지 않았다.
호야는 컨서누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는 못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것이 조금이라고 있었으니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다시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아주 살짝 경계심이 묻어나와 버렸다.
"그게 말이죠....... 하하하."
컨서누가 호야의 반응에 난감하다는 듯이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에게도 지금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만이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였다.
그 이유를 모르는 호야에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보일지 대강 예상이 갔다.
그의 일행마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쓰러트렸으니 경계심이 묻어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야기 하자면 조금 긴데요......."
난감함에 머리를 긁적이던 컨서누가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호야를 향해 눈을 빛냈다.
"혹시 이야기를 듣고서 납득이 간다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퀘스트 '컨서누의 도움 요청'이 발생되었습니다.]
[컨서누의 도움 요청]
전설의 무투가 컨서누, 그는 현재 그림족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둠의 숲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아주 쉽게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컨서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플레이어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림족 또한 직접 힘을 보태고 있으나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의 수도 한정되어있기에 큰 힘을 보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손을 빌리고 싶은 상황이지만 믿고 맡길만한 이들은 오르도의 주민들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던 때에 컨서누는 믿을 수 있는 자를 발견했습니다.
컨서누는 당신이 자신에게 힘을 보태줄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완료 조건: 컨서누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성공 보상: 퀘스트 '그림족의 보호', 컨서누의 호감도 상승, 경험치.
실패 패널티: 컨서누의 호감도 하락
'그림족?'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야는 일단 컨서누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컨서누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주변을 향해 말했다.
"이 사람은 괜찮으니까 나와도 돼요."
컨서누가 그리 말하자 수풀 속의 그림자에서, 그의 발아래에 있는 그의 그림자에서, 나뭇가지의 얇은 그림자에서.
곳곳에서 컨서누와 같은 검은색 일색으로 몸을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림자밖에 없던 장소에서 마치 물 아래에서 무언가가 수면 위로 나오듯이 그림자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 인원은 총 3명, 호야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 팔을 휘두르자 그들의 발아래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던 그림자가 지면을 뚫고 튀어나오더니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서 근처에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호야는 유아와 착각된 그림자를 움직이는 사람이 이들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그림자를 움직이는 것이 정말 유아와 비슷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유아보다 이들이 그림자를 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선 이 분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