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6화
6. 명장의 과거(2)
반달은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준 지팡이의 덕분에 숲 바깥의 마을에서 손꼽히는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여전히 마나 볼트밖에 쓰지 못하는 마법사였지만 반달은 그 마나볼트를 가지고 마을 사람들을 도왔다.
그때로부터 약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반달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었던 마법사가 속한 파티가 다시 마을에 방문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반달은 마법사에게 자신의 성장을 보여 주고 싶어서 바로 그들이 머무는 여관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반달을 본 마법사도 그를 반가워했다.
처음에는 귀찮은 녀석이라는 인식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재밌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제 성장을 봐 주세요, 스승님!"
"누가 스승님이야. 스승이라고 부르려면 아직 멀었어. 형이라고 불러라!"
재미 삼아서 반달을 따라갔던 마법사는 이내 반달의 성장에 크게 놀랐다.
고작 반딧불이 같은 마나 볼트 하나를 만들어 내던 녀석이 한 번에 머리보다도 살짝 작은 크기의 마나 볼트를 여섯 개나 만들어 낸 것이다.
"어때요? 이 정도면 형이 아니라 정식으로 스승님이라 불러도 되죠?"
"어? 어어......."
마법사가 놀라는 모습에 반달은 실실 웃으며 지팡이를 가리켰다.
"사실은 지팡이 덕분이에요."
반달의 성장은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만들어 준 지팡이의 힘도 컸다.
만약 지팡이가 없다면 방금 보여 주었던 것의 반의 반의 반 정도의 힘을 내는 것도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그렇구나, 이 지팡이가 말이지."
"네!"
마법사는 반달의 지팡이를 높게 평가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반달은 자신의 지팡이가, 아버지가 만든 지팡이가 인정받았다는 것에 그저 기쁘기만 했다.
* * *
"그때는 내가 너무 순진했었지......."
아무것도 몰랐었기에 사람의 욕심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욕망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었다.
반달은 이야기를 하느라 말라 버린 입안을 술로 적셨다.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었지. 그래서 숨기지 않고 강해질 수 있었던 모든 이유를 그 자식한테 알려 주고 말았어."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마법사의 요청으로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러 마을에서 멀리 나왔을 때였다.
그리고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었었다.
* * *
"잘 부탁드려요!"
"그래, 우리도 잘 부탁해."
마법사의 파티가 마을에 돌아온 지 3일째 되던 날에 마법사는 반달에게 같이 몬스터를 잡으러 가자는 권유를 해 왔다.
반달의 지금 실력이라면 충분히 전력이 될 수 있다면서 그를 설득했다.
반달은 마법사가 자신을 인정해 주었기에 힘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다.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에 많은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예상 일정은 1박 2일,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일이 꼬이면 2박 3일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반달은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그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반달이 도착하고 나서 모든 준비의 체크를 끝낸 그들은 마을을 나와서 숲을 통과해 나아갔다.
그리고 사건은 첫날 밤, 강가 옆에서 야영의 준비를 할 때에 일어났다.
푹-.
"어......?"
야영의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던 때에 반달은 자신의 복부에서 금속의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시선만을 천천히 아래로 이동시키자 오늘 하루 동안 질리도록 보았던 검이 자신의 복부에서 튀어나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직후에 검이 빠져나간 자리에서는 금속의 차가웠던 감촉과는 정반대의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감각과 통증이 느껴졌다.
망가진 인형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돌려서 바라본 곳에는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마법사와 그의 파티가 있었다.
그것이 반달이 처음으로 사람의 비열함과 욕망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였다.
"무슨......."
"잠자리 옆에서 죽으면 찝찝하니까 강가에라도 던져 놔."
마법사의 그 한마디에 반달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강가로 내던져졌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추위에 눈이 감기기 직전 수면 위로 그가 보았던 것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려 보고 있는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몬스터 사냥을 권한 실제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전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지팡이가 탐이 났기에 자신을 꼬드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을 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 * *
눈을 뜨고 나서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와 덮고 있는 이불도, 벽 한편에 놓여 있는 장식장과 그 안에 놓여 있는 물건들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오, 일어났냐?"
살짝 멍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문을 열고서 남자 한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의자를 침대 앞까지 끌고 와 앉아서 반달을 바라보았다.
"너 3일이나 누워 있었어."
"네?"
"몸은 좀 괜찮냐?"
"아, 네."
"이름은 뭐야?"
"......반달이요."
"거 이름 한번 이상하네. 내 이름은 모리스. 아직 아침이기도 하니까 집에 데려다줄게. 어디서 사냐?"
"아, 그......."
......그냥 평범한 질문이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은? 반달.
살고 있는 곳은? ......모르겠다.
자신의 나이는? ......몇 살이었지?
이곳에서 일어나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정체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야, 너 괜찮냐?"
반달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눈치챈 모리스가 반달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겨우 진정을 한 반달은 모리스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반달의 말에 모리스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이내 속에서 당황을 지우고서 반달에게 말했다.
"......일단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라."
* * *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엄청 불안했었지. ......하지만 모리스 덕분에 그 불안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었어."
지금은 모든 기억이 돌아온 상태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뒤로 모리스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불안감은 차츰 작아져 갔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사라졌었다.
모리스의 덕분에 자신이 지금 멀쩡하게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모리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모리스는 대장장이였어. 작은 마을의 한편에서 대장간을 운영했었지."
그를 돕기 위해서 그의 일을 도우며 망치를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 반달이 처음으로 대장장이의 일을 시작한 계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은 역시 아버지의 피를 확실하게 물려받았던 것 같다.
반달의 재능이 개화한 것이었는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서 그는 모리스의 실력을 뛰어넘었다.
"그때부터는 망치를 두들기는 매일이 즐거웠지. 왜 어릴 적의 나는 재능도 없는 마법사를 고집했었는지 몰라......."
정말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연신 웃는 얼굴이었던 반달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호야가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그는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술에 취해 잠이 든 듯했다.
* * *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밤, 지하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 또한 입구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잠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무슨 소란이 있어도 아침까지는 절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을 강제로 잠재운 자는 지하 감옥의 안으로 들어와 한 쇠창살 앞에서 멈춰 섰다.
현재 이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인물은 단 한 명, 그 한 명이 있는 방의 앞이었다.
그가 앞에서 멈춰 서자 나탈리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늦게 빼 주러 오는 거 아니야, 아인스?"
아인스는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쇠창살을 열고 들어가 열쇠로 그녀의 구속구를 풀기 시작했다.
왜 그가 구속구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탈리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심문을 위해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자들 사이에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크게 놀랐었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지만 그가 자신의 귓속에 몰래 속삭인 말로 인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실제 모습은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그 놀람은 이내 희망으로 변하였다.
아인스는 그들 중에서 자신을 빼내 줄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탈리의 희망대로 아인스는 그녀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구속이 풀려난 나탈리는 아인스와 함께 지하 감옥을 나오고 이즈바론트를 나왔다.
달빛만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새벽의 숲에서 나탈리는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바로 아인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꺼내 줘서 진짜 고마워."
"......큭, 크흐흐, 크하하하하!"
나탈리가 감사를 표하자 말을 아끼고 있던 아인스가 크게 웃음을 뱉어 냈다.
그의 반응에 나탈리가 그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아."
한참을 웃던 아인스가 한숨을 내쉬고 나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퍽-!
그 직후 느껴진 통증에 나탈리가 고개를 삐걱거리며 시선을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내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무, 무슨......."
나탈리의 무릎이 힘없이 구부러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인스는 쓰러진 나탈리를 보며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이 말을 이었다.
"무슨?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고? 너를 죽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어, 어째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 아인스의 얼굴을 바라본 나탈리의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군. 내가 분명히 조용히 있으라고 했었을 텐데? 쓸데없이 그런 짓을 해 놓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나, 나는......."
"붙잡힌 후에 우리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것은 칭찬해 주마. 그 대가로 영원히 고통 속에서 떠다니게 하려던 벌을 평온한 죽음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 나탈리는 힘겹게 바닥을 기어서 그의 바지 자락을 붙잡아 애원했다.
지금 나탈리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이 가득했다.
지금은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다,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사, 살려 줘......!"
그녀의 애원에도 아인스의 말은 싸늘하기만 할 뿐이었다.
"한번 저질렀던 일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지?"
결국 나탈리는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굳이 바깥에서 나탈리를 처리한 아인스는 길을 돌아와 아직 잠들어 있는 병사들을 지나쳐 다시 지하 감옥으로 들어갔다.
지하 감옥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들어왔던 흔적을 지우고 나탈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탈옥한 듯이 흔적을 꾸며 내었다.
자신들의 정보가 지금 이상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었기에 붙잡혀서 불안 요소가 되어 버린 나탈리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자신들에게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시선을 끌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불안 요소를 없애고 그들의 시선을 붙잡아 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나탈리를 죽이고 그녀가 탈옥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마교의 간부가 탈옥하면 당분간 그쪽으로 시선이 쏠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