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4권 5화
5. 명장의 과거(1)
"바, 반달 님! 왜 그러십니까?! 진정하세요!"
"그 검! 어디서 구했나?! 대답하게!"
"반달 님! 진정 좀......!"
"맞아요! 뭔지는 몰라도 진정 좀 하세요!"
"당신이 날뛰면 복구한 게 전부 수포로 돌아간다고!"
"아니,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이래!"
점점 격해지는 반달의 행동에 왕실 소속의 장인들이 달려들어 그를 뜯어말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반달의 힘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왕실 소속의 장인들 중 그 누구보다도 강인했기에 그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실랑이가 이어진 끝에 반달의 위에 장인들이 몸을 탑처럼 쌓아서 그를 멈춘 뒤에야 상황이 진정되었다.
"반달 님! 일단 심호흡하세요! 심호흡! 진정!"
"후욱- 후욱- 후욱-."
"자, 이제 항상 말씀하시던 어릴 적 살던 숲속 집을 떠올려 보세요. 아주 평화로운 풍경을!"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듯하지 않나요? 네?"
반달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격하게 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호야가 가진 검을 발견했을 때에는 도저히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검의 출처를 알아내고 싶었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아니면 누가 만든 것인지.
그분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이 뇌를 거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확실히 지금의 자신은 조금 진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반달은 장인들이 했던 말처럼 어릴 적에 살던 숲속의 집을 상상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숲속에 있는 집은 꽤나 큰 편이었고 굴뚝을 통해서 빠져나오는 연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있다.
굴뚝을 통해 빠져나오는 연기가 멈추면 아버지의 작업이 끝나 같이 대화하며 놀 수 있었다.
"......이제 진정됐으니까 다들 내려와라."
"지, 진짜죠?"
"저희가 비켰다고 막 다 때려 부수면 안 됩니다?"
"안 그러니까 내려와라!"
반달의 호통에 장인들이 하나둘씩 그의 위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 내고서 목에 두르고 있던 천으로 얼굴에 뭍은 눈물을 닦아 낸 뒤 그는 호야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하네. 내가 순간적으로 어떻게 됐었나 봐......."
"아뇨, 저는 괜찮아요."
"자네가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아. ......혹시 오늘 작업이 끝난 뒤에 잠시 시간 있나? 밥이라도 한 끼 사 주고 싶은데......."
"굳이 안 그러셔도 돼요."
"그래야지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아서 그래."
그의 간절함이 담긴 부탁에 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작업 시간이 시작되어 모두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반달이 다시 한 번 호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같이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그 검 말이야.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려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준 건가......?"
"......."
호야는 그의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던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전설의 대장장이인 단탈스가 만든 것'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호야의 대답에 반달이 그를 살짝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렇구나. 음! 그럼 이따가 보자고!"
반달은 자신의 양 뺨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서는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호탕한 얼굴을 하고서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호야도 휴식 시간의 전과 같이 자재를 나르며 돌아다녔다.
"안녕하세요, 호야 씨."
한창 자재를 나르던 중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이 파피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피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거리 주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거리에 오지도 못하나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파피스가 째려보며 말하자 호야가 당황했다.
그런 호야의 반응에 파피스는 웃음소리를 작게 흘렸다.
"쿠쿠쿡,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저도 복구를 돕고 있거든요."
파피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공구 통을 들어 올려서 보여 주었다.
"건물 수리 같은 큰 거는 못 하지만 기구 같은 것은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보수도 꽤 짭짤하게 받고 있어요!"
파피스는 빈손의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저번에는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었죠. 그때는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파피스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전의 혼란 속에서 호야가 그녀를 발견해 도와주었던 일이었다.
"그 보답을 하고 싶은데...... 나중에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힘써서 도와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파피스! 이쪽 좀 봐 줘요!"
"네에! 그럼 저는 가 볼게요."
파피스는 호야에게 인사를 하고서 공구 통의 덜그럭 소리를 내며 자신을 부른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호야도 다시 자재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 한참 뒤에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하자 오늘의 작업이 모두 끝이 났다.
플레이어들은 로그아웃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러 떠났고 NPC들은 오늘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러 갔다.
호야는 그들의 사이에서 작업이 끝나자마자 다가온 반달에게 이끌려 그를 따라서 걸었다.
그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가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카운터 테이블에도 동그란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반달은 바로 카운터 테이블 쪽으로 향해 의자에 앉았고 호야도 그를 따라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 할아버지!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늘은 뭐 드실 거예요?"
"저번에 먹었던 걸로 줘."
"네, 알았어요. 그쪽 형씨도 같은 걸로 줄까?"
"아, 네. 부탁드릴게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
주문을 받은 가게 주인이 요리를 시작하자 종업원이 음료를 먼저 가져다주었다.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켠 반달이 입을 열었다.
"가끔 성 밖으로 나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야. 음식 맛은 내가 보장하지."
그를 따라서 나온 음료를 입에 가져다 댄 호야가 눈가를 찌푸렸다.
술이었다.
그것도 아주 독한 술.
처음 입에 술을 대 보는 것이 게임 속에서라니....... 호야는 얌전하게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이미 입안에 들어온 것을 뱉을 수 없어서 한 모금을 목 뒤로 넘겼다.
작은 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목이 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술을 음료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 반달이 대단해 보였다.
"크하하하! 역시 형씨한테는 무리지? 다른 걸로 바꿔 줄까?"
"부, 부탁드릴게요......."
음식을 카운터 테이블 위에 내려놓던 가게 주인이 껄껄 웃으며 호야의 음료를 다른 것으로 바꿔 주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술이 아닌 평범한 과일 주스였다.
주스로 입을 헹구고 나서 젓가락을 들어 나온 음식을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갔다.
술 때문에 음식도 살짝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음식은 처음부터 평범한 것이었다.
맛도 꽤 좋았다.
"맛있지?"
반달의 물음에 호야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씨익 웃었다.
그사이에 그 독한 술을 10잔 가까이 비운 반달은 신기하게도 전혀 취해 있지 않았다.
혹시 반달은 술이 아니라 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야는 차마 그것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아까 전 일은 다시 한 번 사과할게. 정말 미안하구나."
"그 일은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 사과는 안 하셔도 돼요."
"고맙구나. ......내가 아까 왜 그런 건지 이유가 궁금하겠지?"
솔직히 궁금하기는 했다.
반달은 다시 술잔을 몇 번 기울이고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자네가 차고 있는 그 검 말이야. ......닮았어. 아니, 거의 똑같지."
반달이 호야의 허리에 채워져 있는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이가 만들었던 검들과 아주 닮았어."
그의 눈가에 살짝 습기가 맺혀 있었다.
"......마치 같은 인물의 손에서 탄생한 것처럼 말이야."
* * *
"푸하~."
반달은 호야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뒤로 벌써 수십 잔에 가깝게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만한 양을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술이 막힘없이 목을 타고서 배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후, 이제 좀 취하는 것 같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반달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식을 씹는 내내 살짝 상념에 잠겨 있던 반달이 음식을 목 뒤로 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어릴 적에 무슨 꿈을 꾸었을 것 같나?"
"음, 글쎄요...... 지금이랑 같은 대장장이?"
"사실 내 꿈은 마법사였어."
취기가 살짝 올라 있던 반달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호야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이 아닌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 *
나무가 무성한 숲의 안에 존재하고 있는 커다란 집.
어린 반달과 그의 아버지가 단둘이서만 사용하기에는 살짝 큰 집이었다.
그 커다란 집의 반 정도의 공간은 대장장이인 그의 아버지의 공방이었다.
반달의 아버지의 솜씨는 매우 뛰어났다.
그가 보았던 대장장이들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봤던 대장장이라고는 자신의 아버지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반달도 자신을 따라서 대장장이의 기술을 배우기를 원했다.
"내 아들이니까, 분명히 너한테도 재능이 있을 거다."
하지만 반달은 아버지를 따라서 대장장이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이 대장장이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지금까지 망치 한 번 제대로 못 잡아 보게 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그것이 사춘기 때에 정점을 찍었고 그때 그의 꿈은 대장장이가 아닌 마법사가 되었다.
평소와 같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숲 바깥의 작은 마을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본 파티의 마법사가 계기가 되었다.
항상 단조로운 망치질과 길고 수수한 세공 과정만을 보아 왔던 반달에게 화려한 마법은 신세계를 알려 주었다.
"저기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반달은 그 마법사의 파티가 숲 바깥의 마을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며 매달렸다.
결국 반달의 끈질김에 항복을 선언한 마법사는 그에게 간단한 마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인지 반달에게는 마법의 재능이 없었다.
며칠간 마법사를 깨 볶듯이 들들 볶아서 겨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마나 볼트를 만들어 낸 것이 다였다.
날아가는 모양새도 흐물거리고 비실한 것이 그냥 반딧불이가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비실거리는 마나 볼트가 명중한 나무에는 성냥의 불로 지진 듯한 작은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이 처음 보았던 마법사의 마나 볼트와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재능의 차이를 실감했다.
반달은 아직 반딧불이 같이 비실한 마나 볼트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마법사와 그의 파티는 다른 일이 있었기에 그를 두고서 마을을 떠나갔다.
스승이었던 마법사는 떠났지만 반달은 그 뒤에도 그에게서 배웠던 마나 볼트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 노력 끝에 반달은 반딧불이 같았던 마나 볼트를 평범함에 살짝 못 미치는 마나 볼트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반달의 아버지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느낀 것이 많았다.
처음에 반달이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 해도 얼마 안 가서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달은 포기하지 않았다.
재능의 차이를 실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다.
그냥 지나쳐 가는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었다.
그걸 보고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자신의 의사만 강요했던 것이 아닐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게 해 주자.'
자신의 아들이 대장장이의 일을 이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씁쓸했지만 반달의 아버지는 그의 꿈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자마자 반달의 아버지는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재료들의 사이에서 고르고 골라서 반달의 지팡이를 만들 재료들을 엄선했다.
재료를 모두 정한 그는 그 뒤로 며칠간 공방에 틀어박혀 망치를 두들겨 지팡이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아들에게 좋은 성능의 지팡이를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현재 시험 중인 자신만의 오리지널 광석을 사용해 봤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자신의 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을 가진 지팡이가 완성되었다.
"자, 받아라."
"아버지, 이거는......."
"한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반달은 자신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보면서 감동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꿈을 인정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달이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증거라고 생각했던 그 지팡이의 존재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