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24화
24. 매료의 목소리(1)
"당분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도반과 유아와 함께 로열 나이츠와 함께하게 된 호야에게 루나와 길드 마스터인 베인이 대표로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본제로 넘어갔다.
마탑과 로열 나이츠가 우선적으로 수색을 맡은 구역은 대륙의 서남쪽 부근의 도시들이었다.
대륙의 중앙에서부터 조금씩 외곽으로 나아가며 수색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수색을 시작하려 하니까 진짜 막막하네요."
루나가 툭 내뱉은 말에 플레이어들이 모두 고개를 작게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마탑의 마법사들 중 몇몇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그 대가로 부마탑장인 마인에게 그의 지팡이로 딱밤을 맞아야 했다.
"시작도 전부터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자고요. 일단 한 명만 포박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쉬울 거예요."
마인이 그렇게 말했지만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로서 마교의 특징이라고는 손등에 새겨져 있을 붉은 육망성이 전부였다.
마교의 신도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손등을 확인해 봐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처음 보는 이가 '잠시 손등 좀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고 보여 줄까.
아마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이다.
마탑이라는 신분을 앞에 내세워서 수색을 진행한다면 미친 사람으로 보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일반인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하여 적은 인원으로 움직이는 이유가 없어진다.
거기에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마교의 신도들이 장갑 등으로 육망성을 가리고 있을 경우였다.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잠시 장갑을 벗어 달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우선 인당 구역을 나누어서 몰래 확인하는 것으로 하죠. 만약 장갑 같은 것 때문에 손등이 안 보이는 이가 있으면 저에게 말해 주세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마인의 말에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고 물으니 일종의 투시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 한다.
투시 마법이라는 말에 여성들이 살짝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녀들의 그런 행동에 마인은 아무 죄도 없는데 변명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행동 수칙을 정한 이들은 곧장 지금 그들이 있는 도시인 아이본도의 수색을 위해 흩어졌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도시와 마을을 옮겨 가며 도시의 안과 도시 밖에 사람이 지낼 수 있을 만한 장소들도 수색하였지만 마교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수상한 이들은 마인이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지만 확인 결과 모두 마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호야는 마교가 발견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염된 몬스터의 원인은 마교가 아닌 마족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슬슬 플레이어들이 경험치에 관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연락을 위해 거미줄을 치듯이 연결해 놓은 친구 추가를 타고서 소식이 전달되었다.
* * *
"이곳이 이즈바론트......."
한 여인이 이즈바론트의 북문에서 최근에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는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아름답지만 기가 강해 보이는 이목구비, 큼지막한 로브를 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완벽한 몸매가 겉으로 드러나 지나치는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야, 저거 NPC 맞지?"
"어, 어어...... 그런 것 같은데?"
"와, 지금까지 이즈바론트에 저런 NPC가 있었는데 내가 몰랐다고?"
"다른 도시에서 온 거 아닐까? 어? 야! 어디가!"
"어디에 가냐니? 욕망에 충실히 따르러 간다."
친구와 대화하던 그는 아직도 성벽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성 NPC에게 다가갔다.
NPC이기는 하나 엄청난 미모의 여성, 작업이라도 걸어서 호감도라도 올려 볼 심산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현실에서 갈고닦은 화술로 그녀에게 자연스레 말을 붙였다.
말을 걸어오는 그에게 그녀는 눈웃음으로 답했다.
"대단한 자식이네."
뭔가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는 것을 본 그의 친구가 부럽다는 듯이 말을 흘렸다.
그 직후였다.
그녀가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서 남자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그가 마치 망가진 인형처럼 어색하게 몸을 틀더니 어딘가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야! 이번에는 진짜 어디 가냐!"
'나도 몰라!'
전력으로 달려가는 그를 향해 친구가 말을 걸었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여자가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자마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향해 있었다.
[나탈리의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 당신을 유혹합니다.]
[상태 이상 '매료'에 걸렸습니다.]
[몸이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탈리를 위해 움직입니다.]
그녀, 나탈리가 남자의 귓가에 묘한 목소리로 속삭였던 말은 '막 잡은 싱싱한 물고기가 먹고 싶다.'였다.
그의 몸은 나탈리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 대륙의 중앙인 이곳에서 바다까지 달려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태 이상에는 지속 시간이 있기에 가는 도중에 효과가 사라지겠지만 그때가 되면 아마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쯧, 어디서 추파를 던져?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말이야."
남자가 전력으로 달려서 사라진 방향을 보며 나탈리는 혀를 찼다.
거의 다 온 것처럼 말해 놓고서 다시 기다리라고 한 아인스의 말에 가뜩이나 짜증이 난 상황이었다.
방법이 막혔으면 뚫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기다려 놓고서 다시 때를 기다리자는 그의 말에 나탈리는 치가 떨렸다.
마교의 아인스가 아닌 실제의 이름과 소속만 알고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찾아가 자신의 능력으로 주변을 완벽하게 수라장으로 만들어 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마교의 간부들, 중앙 신전으로 따지자면 장로의 위치인 그들은 보안을 위해서 수백 년 전부터 사용해 온 가명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했다.
그렇기에 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목소리만 알 뿐,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는 모른다.
"아악-! 짜증 나!"
소리를 내질러 몸 안의 화를 식힌 나탈리는 사람들의 틈에 섞여서 자연스레 이즈바론트로 들어갔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인스의 기다리라는 명령에 불만을 품었기에 자신이 직접 마족들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마교의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해 들었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었고 걸려도 매료로 빠져나가면 된다고 나탈리는 생각했다.
마기에 오염되었던 몬스터들이 목표로 하여 몰려들었던 도시 이즈바론트.
그것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던 이유가 무언가, 마족들에게로 향하는 연결점 같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아인스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곳에 왔다.
'내가 개야? 기다리라고 한다고 기다리게?'
만약에 정말 발견할 수 있다면 당당히 그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온 것인데......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은 대로, 그림자만이 져 있을 뿐인 건물 사이의 좁고 어두운 골목길, 성벽과 가까운 도시 외곽까지, 쉬지 않고 도시를 걸어 다녔지만 그들에게 향하는 단서라 할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생각을 잘못한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나탈리는 그렇게 믿었다.
수백 년 동안 발견조차 되지 않았던 그들이니 흔적도 눈에 띄지 않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탈리는 다시 한 번 감각을 곤두세워서 도시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무언가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한 남자가 나탈리에게 다가와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나탈리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험가......?'
X 자로 교차하는 깃발의 문장을 왼쪽 가슴 앞에 새기고 있는 모험가였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날파리가 너무 꼬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은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데도 말이다.
"아뇨, 아무것도."
가만히 자리를 뜨려고 하는 나탈리의 손을 그가 붙잡았다.
"에이~ 제가 보기에는 아닌데요? 뭘 찾고 계신 건지 말씀해 주시면 도와 드릴게요."
나탈리를 붙잡은 모험가, 아레나 소속의 플레이어인 그는 나탈리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데이터에 불과하다지만 로브와 모자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데도 겉으로 아름다움이 풍겨 나오는 미인 NPC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가까이 와서 모자 아래로 얼굴을 확인하니 상상했던 것 이상의 미인이었다.
퀘스트 도중이지만 그녀와의 연결점을 만들어 두고 싶었다.
여자들은 친절한 남자한테 약한 법,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후후, 친절은 감사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찾는 것이 없어요."
"그렇게 사양하지 마세요."
나탈리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그에게 쌍욕을 내뱉었다.
'아, 손은 왜 잡고 난리야?'
귀찮으니 그냥 떼어 놓자.
제 갈 길을 가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남자가 나탈리를 잡은 손의 힘은 빠질 줄을 몰랐다.
짜증이 차오를 대로 차오른 나탈리는 결국 힘을 줘서 그의 손을 팍 하고 뿌리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도 마지막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의 손에는 나탈리가 끼고 있던 장갑이 쥐여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탈리가 그에게 장갑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장갑을 돌려 주지 않았다.
[길드 채팅 팩심아이스: 북동쪽 상가 거리의 무기점 앞, 마교 발견했습니다!]
장갑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나탈리의 손등, 그곳에는 그가 며칠간 찾아다니던 붉은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길드 채팅 카피길: 오케이, 모두 북동쪽으로 간다. 팩심, 잘 잡고 있어라.]
[길드 채팅 팩심아이스: 네!]
"저기요, 슬슬 돌려 주시죠."
그녀는 육망성을 가리던 장갑이 벗겨진 것에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손등이 보였던 것은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고 바로 로브의 주머니로 찔러 넣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보였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이 모험가가 마교 수색을 맡은 모험가일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리 생각하며 나탈리는 당당히 그에게 장갑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하지만 팩심아이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참을 길게 이어지던 실랑이 도중에 나탈리는 주변이 살짝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시야를 넓혀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 보였다.
그 대신에 의복이 통일되지 않은 단련된 몸을 가진 이들과 눈앞의 남자와 같은 문장을 새긴 사람들이 마치 포위를 하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 설마......."
"하하하, 설마가 뭐요?"
팩심아이스가 나탈리의 주머니에 찔러져 있던 손을 잡아채 들어 올려서 그녀의 손등에 있던 붉은 육망성을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이들이 다가오던 걸음 속도를 올렸다.
"순순히 따라와 주시면 험한 짓은 안 할 거야, 아마도?"
"......후우."
그의 말에 한숨을 내신 나탈리는 갑자기 발뒤꿈치를 들어서 그의 목을 가볍게 끌어안고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모두~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팩심아이스의 관심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는 자신의 가슴 부근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쏠려 있었다.
그렇기에 나탈리가 말을 내뱉자마자 다가오던 왕실 기사들과 아레나의 길드원들의 대부분이 순간적으로 멈칫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죽여."
푹-.
나탈리가 그리 말하자 아레나의 문장을 단 플레이어 하나가 빠르게 도약해 팩심아이스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찔렀다.
"어......?"
당황하며 돌아본 팩심아이스의 눈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피길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