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73화 (73/171)

# 7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23화

23. 마주하는 과거(2)

"젠장! 도대체 뭐 때문이냐고!"

그는 터질 것 같은 머리와 타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지금까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하던 자료와 겨우 완성시킨 '그것'을 모두 손으로 쓸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후욱- 후욱-."

한참이나 난동을 부리던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켰다.

방에 미리 사일런스를 걸어 놓기를 잘한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새어 나간 소리를 듣고서 누군가가 걱정이 앞서 그의 승낙도 없이 방을 벌컥 열고 들어왔을 만큼의 큰 난동이었다.

그러면 지금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그것'을 그들에게 들켰을 것이다.

다 왔다고, 코앞까지 다가와서 이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목표에 닿지 않는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고개만을 살짝 돌려서 난동으로 인해 바닥에 내팽개쳐진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을 다시 주워서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어지러워진 방도 마법으로 정리를 끝내고서 다시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올려진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고리가 겹쳐져서 구를 그리고 있는 것이 마치 천체 관측기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마기에 오염된 상태인 히포그리프의 깃털을 꺼내어 그 고리들의 중심으로 집어넣었다.

깃털이 고리들의 중심에 들어가자 철컥 소리를 내며 고리들이 연하게 빛을 발하더니 서로가 교차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빛이 밝아져 갔다.

빛이 밝아질수록 그의 기대감도 올라갔지만 그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것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방을 환하게 비추던 고리의 빛들이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며 회전을 멈추었고 고리들의 사이로 깃털이 공기를 타고 빠져나와 책상의 위에 안착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 이상의 반응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이 이상의 반응이 일어나야지만이 원하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

수백 년 전, 마족들이 마탑의 힘으로 인해 모두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뒤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의 염원, 마족들을 다시 찾아내어 수면 위로 올라가겠다는 목적을 말이다.

천체 관측기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그가 '마기 관측기'라 이름 붙인 도구는 히포그리프의 깃털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마기를 이용해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을 찾기 위하여 만든 것이었다.

마기 관측기는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그것은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기 관측기를 작동시켜 보아도 마족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한, 무언가가 마기 관측기의 힘을 왜곡시켜서 그들에게 닿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이러한 상황이 되니 짜증이 일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마기 관측기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마족들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곧 마교의 수색이 시작되기에 준비가 안 된 지금은 섣불리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으니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할 것도 없다.

* * *

아헤샤의 중앙 신전에 위치한 대회의장, 그곳에 마교의 수색 회의를 위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들었다.

중앙 신전의 대표로서 참석한 성녀 아리아와 그녀에게 퀘스트를 부여받은 도반과 아르코, 도반의 덕으로 인해서 참가할 수 있게 된 유아.

그와 마찬가지로 아르코와 함께 퀘스트에 참가하게 된 설백호의 간부들과 일부 소수의 길드원들.

마탑장을 대신하여 마탑의 대표로서 찾아온 부마탑장인 마인과 마탑장인 에반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루나와 그녀가 속한 길드인 로열 나이츠의 전원.

제프리노에게서 루제로스 왕실 대표의 자격을 받은 제프리노의 아들, 루제로스의 유일한 왕자인 멜뷰어 루제로스와 제프리노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호야와 에리먼, 에리먼이 속한 길드인 아레나의 간부와 길드원들.

계단처럼 층층이 쌓이며 동그랗게 둘러진 기다란 테이블들의 의자에 앉은 채 회의를 시작했다.

주로 각 소속의 대표로 이 대회의장에 자리한 NPC들이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말에 의견을 보태며 질문을 해 나가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 회의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인물이 세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중앙 신전의 대표인 성녀 아리아였다.

'이거 언제 끝나지?'

그녀는 오염된 몬스터의 원인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진행 중인 이 회의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포함해 단 두 명이었고 그 진실은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

성녀의 입장으로서 장로들의 마교의 수색을 행하자는 의견을 묵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그들이 만족하고 납득할 만한 행동을 보여 주어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회의에 참가 중인 이들을 향한 미안함도 있었다.

"성녀님?"

"......."

"성녀님?"

"예, 예?"

"마교의 일로 인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의에는 집중을 해 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버렸네요."

"아닙니다. 지금 제일 힘드신 것은 성녀님이실 테니까요. 그럼 다시 회의로 돌아오겠습니다. 수색을 할 시에 마교의 사람들을 구별할 방법에 대해서......."

성녀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은 호야와 도반이었다.

"......."

도반은 조용히 호야를 바라보았다.

호야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도반은 어째서인지 호야가 평소와 상태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겉은 멀쩡하나 속이 문드러져 버린 과일 같은 느낌이었다.

도반은 왜 자신이 지금 호야를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도반의 시선이 살짝 움직여 그가 호야가 평소와 다른 것의 원인이라 짐작하고 있는 것, 사람을 향했다.

아레나 소속의 플레이어인 버서커 에리먼.

현재 랭킹 9위인 인물이며 한국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1번대의 랭킹에 진입한 플레이어였다.

특유의 훈훈한 외모와 사람 좋은 행동들로 인해서 꽤나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신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현실의 모습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이 알려져 있었다.

"듣기로는 한국의 어느 재벌가의 손자라던데? 그...... 이름이 뭐더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모두 유아가 도반에게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 준 것이었다.

자신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있던 그를 따라서 유아의 시선도 옮겨졌다.

"호야? 호야는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눈빛만으로 대미지 들어가겠다, 야."

"......아무것도 아니야."

이전의 왕성에서도 호야는 제프리노의 입에서 에리먼의 이름을 들은 뒤에 잠시 정신이 어딘가에 나가 있었다.

호야 본인은 아니라고 했었지만...... 호야와 에리먼의 사이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도반은 생각했다.

"그럼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목표는 마교의 완전한 처벌, 그것을 위해서는 마교의 사람들을 포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그 점을 신경 써 주세요."

마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호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전혀 못 들었어.......'

지금은 이미 회의가 끝난 시점이었다.

호야가 당황하고 있자 에리먼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째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당분간 잘 부탁해요."

"......."

회의가 어떻게 흘러갔기에 이 사람이 나한테 다가오는 거지.

호야는 눈앞에 있는 그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아직 마음속으로 정하지 못한 채였기에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고민했다.

테이블 아래에 있는 호야의 주먹이 강하게 쥐였다.

"잠깐, 한 가지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호야가 에리먼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자 도반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도반이 회의에 들어서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기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호야는 우리와 함께하게 해 주었으면 한다."

솔직히 도반도 호야와 같이 회의에 집중을 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옆에는 유아가 있었다.

유아가 짧고 정확하게 회의의 내용을 도반에게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우선 첫 번째는 마교의 수색 방법.

중앙 신전에 남아 있는 그들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손등에 자신들의 상징인 붉은색 육망성을 그려 넣는다고 한다.

손등에 붉은색의 육망성이 그려진 이를 찾아라.

그것이 중앙 신전이 제시한 마교의 수색 방법이었다.

솔직히 이 인원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왕실의 기사단이나 마탑의 마법사, 중앙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의 수를 합한다고 해도 그들도 적은 수가 움직이는 상황이었기에 무리가 있었다.

완전히 막무가내나 다름없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저러한 방법을 제외하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한 명만 걸려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건진다면 그 뒤에 그를 심문해 그들의 아지트의 위치나 다른 정보들을 알아내자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마교의 수색을 위한 구역과 인원의 분배.

서로의 지금까지 쌓아 온 협동심이나 수색의 효율을 위한 이유로 우선 모험가들의 길드는 나누지 않은 채 로열 나이츠, 아레나, 설백호의 세 곳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로열 나이츠에는 도반과 유아, 아레나에는 호야가 합류하기로 했다.

인원이 제일 많다는 이유로 설백호만이 홀로 움직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정한 채 NPC들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로열 나이츠에, 루제로스의 제1 왕실 기사단이 아레나에, 중앙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설백호에 합류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도반은 이 결정을 바꾸기 위해서 말을 꺼낸 것이다.

호야를 자신과 함께 행동하도록 하고 싶었다.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에리먼의 곁에서 떼어 내 주고 싶었다.

"협동심이 이유라면 우리는 이전부터 그와 호흡을 맞춰 왔다. 아레나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인원수의 분배에 관한 문제라면 어차피 호야는 한 명이니 딱히 차이가 날 것도 없지 않나?"

도반이 속사포로 말을 내뱉고 있는 옆에서 유아는 크게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도반이 이렇게 한 번에 말을 길고 빠르게 내뱉은 것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도반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고 싶어서라는 것을 유아는 알고 있었다.

"저도 부탁할게요. 솔직히 이제는 둘이서 움직이는 것보다 셋이서 함께하는 게 더 익숙해졌거든요~."

어째서 이러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반이 원하고 있었기에 유아는 그의 말에 힘을 보태 주었다.

아레나 측에서 살짝 불만이라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여론은 호야가 도반과 함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아레나는 호야를 로열 나이츠 쪽으로 보내야만 했다.

[도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 도와줄 테니까.]

도반에게서 날아온 귓속말을 보고서 호야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도반이 결국 자신과 에리먼의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눈치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야는 도반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 도반에게 자신과 에리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면 그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기댈 수 있는 벽이 되어 줄 것이고 과거의 그들과는 다르게 든든한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호야에게는 아직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 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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