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72화 (72/171)

# 72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22화

22. 마주하는 과거(1)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히든 피스의 조건을 세하와 거래한 호야는 인벤토리를 비우기 위해 이즈바론트의 경매장과 잡화점으로 향했다.

먼저 향한 곳은 잡화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 호야 씨!"

호야가 애용하는 잡화점은 이즈바론트의 북동쪽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골목길에 위치해 있다.

그곳의 주인인 파피스가 물품을 정리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호야를 발견하고서 매우 반가워하며 그를 맞이했다.

자신에 대해서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졌던 초기, 호야는 인벤토리를 정리하기 위해 잡화점 등에 방문할 때마다 느껴지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최대한 손님이 없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골목 안쪽에 위치한 파피스의 잡화점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을 이용하면서 플레이어와 마주친 적이 손에 꼽힐 만큼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곳이다.

이곳을 발견한 뒤부터 호야는 이곳만을 이용해 왔고 호야가 파피스에게 판매하는 아이템의 양도 양이지만 수준도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호감도가 상승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호감도 덕분에 아이템을 판매할 때에 다른 곳에 비해 높은 가격을 책정해 준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물약을 사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판매인가요?"

파피스가 정리하던 물품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호야에게 달려와 눈을 빛냈다.

"소재들을 매입해 주셨으면 해요."

"네! 알겠어요!"

호야가 잡화점에 방문한 이유가 아이템을 판매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자마자 파피스의 눈이 더 밝게 빛났다.

그녀는 소재를 이용해 직접 실험을 하거나 아이템도 만들기에 호야가 아이템을 판매해 주는 것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파피스가 얼른 가게의 안쪽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와 계산기를 들고 나와 나무 상자는 카운터 옆에 내려놓고 계산기는 카운터 위에 올려 두었다.

파피스의 체격이 많이 작다 보니 나무 상자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다.

"읏차. 그럼 일단 한 종류씩 꺼내 주세요."

호야가 아이템을 순서대로 꺼내기 시작하자 파피스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템을 확인하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확인이 끝난 아이템은 모두 나무 상자로 직행했다.

파피스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끝나자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호야에게 아이템의 값을 치렀다.

"헤헤, 다음에도 꼭! 저한테 팔아 주세요."

파피스에게 인사를 하고서 가게를 나온 경매장에 등록하기 위해서 인벤토리에 남겨 놓은 아이템을 정리하기 위해서 경매장으로 향했다.

아이템의 등록을 끝낸 뒤에는 어둠의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 근처 마을의 워프 스크롤을 구매할 계획이었다.

아이템의 등록을 끝낸 호야는 경매장을 나와서 워프 스크롤을 찢으려 하였다.

"잠시만 실례합니다."

그때 망토를 입은 남자가 호야에게 다가와 예를 차렸다.

머리를 덮은 후드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매우 낯이 익었다.

이전에 왕성에 방문했을 때 호야를 안내해 주었던 안내인이었다.

"그...... 안내인님 맞으시죠? 죄송해요, 이름을 몰라 가지고......."

"그냥 편하게 안내인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다행히 아직 이즈바론트에 있으셨네요."

안내인은 급하게 뛰어왔던 것인지 살짝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숨을 빠르게 진정시킨 안내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병사들에게 호야 님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서 바로 달려온 겁니다. 국왕 폐하께서 호야 님을 찾고 계십니다."

"네?"

"급한 일입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안내인의 얼굴이 매우 진지했기에 호야는 그를 따라 왕성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국왕이 자신을 찾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전과 같이 알현실에 들어가자 제프리노는 호야를 향해 안도감과 반가움이 섞인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폐하."

"이렇게 그대를 급하게 불러들인 이유는 한 가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다. 모험가들 중 그대가 가장 믿음직한 자이니 말이다."

호감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몬스터 웨이브에서 최고로 높은 기여를 보였던 일로 인해 호야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제일 높은 왕실의 호감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대도 이전의 몬스터 웨이브의 부산물이 마기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프리노가 말을 이어서 호야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에서 발견된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의 소재들, 그것을 통해 중앙 신전이 내린 결론과 왕실도 그들에게 협력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까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눈을 속이고자 중앙 신전과 마탑, 우리 왕실에서 나누어 인원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대도 힘을 보태 주었으면 한다."

[퀘스트 '마교의 수색'이 발생되었습니다.]

[마교의 수색]

중앙 신전에서 마교의 존재를 포착하였습니다.

마교는 마족들을 숭배하는 집단, 존재가 곧 혼돈으로 이어지는 집단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색출해 내어 처벌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교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면 그들은 미지의 공포로 인해 불안에 잠길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눈을 속이고자 중앙 신전은 왕실에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협력을 요청받은 왕실은 모험가들 중 가장 신뢰가 가는 당신이 힘을 보태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서로 협력해 마교들을 찾아내 처벌하세요.

완료 조건: 마교의 신도들을 찾아내 처벌한다.

성공 보상: 기여에 따른 왕실의 보상, 경험치

실패 패널티: 왕실의 호감도 하락

'......마교가 아닌데.'

오염된 몬스터들의 원인에 대해 알고 있는 호야는 지금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제프리노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퀘스트를 거부하면 제프리노의 호감도가 떨어질 것은 뻔했기에 호야는 어쩔 수 없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마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이 어떻게든 알게 된다면 퀘스트는 자동으로 실패 처리가 될 것이다.

완료 조건 자체를 달성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실패이니 아마 호감도도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호야의 생각이었다.

......안 떨어지겠지?

호야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알현실의 커다란 문 밖에서 문을 지키는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험가 에리먼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뭐......?

"들라 하거라."

제프리노가 나직하게 그리 말하자 호야는 자신의 등 뒤에서 알현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

저벅, 저벅.

알현실에 넓게 퍼지는 발소리의 주인을 향해 호야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

가지런히 정리된 태양 같은 금색의 머리카락, 그 아래로 보이는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가 결려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국왕 폐하."

호야의 바로 옆에 도착해 멈춰 선 에리먼이 제프리노를 향해 예를 취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여 에리먼의 예를 받은 제프리노는 호야에게 양해를 구하고 에리먼에게 호야에게 했던 설명과 같은 설명을 해 주었다.

제프리노의 말을 듣고 있는 에리먼은 과하지 않은 선에서 계속해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프리노의 말이 끝나자 에리먼에게 호야와 같은 퀘스트가 발생했다.

에리먼도 몬스터 웨이브에서 이즈바론트를 구한 영웅 중 한 명이었으니까.

또 다른 영웅인 도반은 이미 중앙 신전에서 퀘스트를 받았기에 제외 대상이었다.

"그렇군요. 그러한 일이라면 이 세계를 위해서 미약하지만 이 한 몸, 당연히 보태 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에리먼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퀘스트를 수락하자 그것에 흡족한 제프리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 제프리노를 향해 에리먼이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자잘한 질문이 많았지만 제일 중요한 질문은 자신의 동료, 길드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것이냐였다.

제프리노는 마교의 일을 공론화시키지 않을 것을 당부하며 허락의 의사를 내비쳐 주었다.

"중앙 신전과 마탑에서 선별한 모험가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지원해 주기 위해 추가된 중앙 신전과 마탑 소속의 사람들과도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왕실에서도 기사단 하나를 지원해 줄 예정이다."

제프리노는 자신감 넘치게 웃고 있는 에리먼과 가면으로 인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호야를 번갈아 보고서 말을 이었다.

"이틀 후, 중앙 신전에서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그 전에 왕실에서 그대들을 도와주기 위해 선별된 이들과는 얼굴을 익혀 두어야 하니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거라."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호야와 에리먼은 알현실을 나와 왕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죠?"

그때 에리먼이 걸음을 멈추고 호야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호야가 그보다 앞서 걷고 있었기에 등에 대고서 말을 하는 모양이 되었다.

에리먼의 말에 호야가 멈춰 서자 에리먼은 호야의 옆으로 걸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할게요. 에리먼이라고 합니다."

"......."

"......."

호야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을 돌려서 에리먼을 바라보기만 하자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괜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호야의 무반응에 에리먼은 헛기침을 했다.

"흐흠, 많이 과묵하신 분이시네요. 꽤 길게 같이 행동하게 될 것 같은데 모쪼록 당분간 잘 부탁드려요."

에리먼이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호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호야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만을 끄덕이고서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호야는 도저히 그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잡고 싶지 않았다.

"......뭐야, 저 새끼."

빠르게 왕성을 나가는 호야의 등을 보고서 에리먼이 불만스러운 듯이 작게 속삭였다.

* * *

"크앙! ......?"

왕성을 빠져나온 호야는 그 뒤에 바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진 골목길로 들어가 바두를 소환했다.

바두는 소환되자마자 호야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평소와 같이 바두가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있자 호야가 무릎부터 털썩 주저앉아서 바두의 목을 크게 끌어안고 털에 얼굴을 묻었다.

호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바두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미안,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끼잉......."

바두가 호야의 행동에 울음소리를 흘렸다.

격하게 살랑거리던 꼬리도 점점 얌전해지더니 이윽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호야가 끌어안은 것이 답답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근하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바두가 얌전해진 이유는 자신의 목을 끌어안은 호야로부터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 때문이었다.

자신의 주인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호야는 에리먼을 마주한 뒤부터 자신의 감정의 동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기에, 이니티움을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많은 변화를 호야 자신도 느끼고 있었기에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현실이 아닌 게임 속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과거를 직접 마주해 버리자 가슴속이 울렁거렸다.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멀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막아 두었던 댐이 열리듯이 감정의 동요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 자신의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호야의 감정은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지금 자신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는 이유가 어느 감정이 원인인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떨림은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일까, 아니면 그를 향한 분노로 인한 떨림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 원인인 것일까.

무엇이 원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무언가에 기대어 이 떨림을 멈추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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