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19화
19. 저주받은 지하 신전(1)
"저예요! 코미아에서 만났던 상인!"
호야는 플레이어의 말에 기억을 되짚어 보았고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는 코미아에서 항상 자신이 물약을 구매했던 상인 플레이어였다.
"아, 그분이시구나.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호야님한테는 지나가는 플레이어 A였을 테니까요. 기억에라도 남아 있는 게 어디예요? 통성명도 안 했었잖아요."
그는 여기서 호야를 다시 마주친 것에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잘하면 한몫 벌 수 있을 것 같다.
"아, 저는 세하라고 해요."
"네."
"......."
"......."
살짝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세하는 헛기침을 하며 바로 그를 부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호야 님, 저랑 거래 하나 하시지 않을래요?"
"거래요? 물약이라면 이미 다 샀는데......."
"제가 거래하고 싶은 것은 물약이 아니에요."
전에 대량의 물약을 팔아 수익이 꽤 나왔었다고 그가 말했던 것을 기억해 낸 호야가 그에게 미안함을 담아서 말했지만 그가 거래하고 싶은 것은 물약이 아니었다.
"제가 사고파는 것은 아이템뿐만이 아니랍니다. 제가 거래하고 싶은 것은 정보예요."
세하가 씨익 웃으며 호야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저주받은 지하 신전 아시죠? 그곳의 히든 피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입니다."
그의 말에 호야가 관심을 보였다.
조건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달성하기도 어려운 것이 히든 피스였다.
하지만 조건만 알아도 히든 피스에 반은 가까워지는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달성보다 조건을 알아내는 것이 조금 더 힘들고 어려웠으니까.
호야의 반응을 확인한 세하가 말을 이었다.
"관심이 있으신 것 같네요. 하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닌 그저 '히든 피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입니다. 정말로 히든 피스와 이어질 확률은 반반인 거죠. 어떻게 하실래요?"
그는 지금 자신이 거래하려고 하는 정보에 대하여 솔직히 말했다.
상인은 신용이 우선이었으니까.
지금 '확실한' 정보라면서 속일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거래자만 줄어들 뿐이다.
"......그 정보의 대가로 제게 바라는 것은 뭔가요?"
호야는 그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자신에게 바라는 정보의 대가를 물었다.
자신이 정보의 대가로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흔쾌히 거래를 승낙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호야의 질문에 세하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었다.
"제가 호야님께 정보의 대가로써 바라는 것은 이것을 한 달...... 아니, 2주만 착용해 주시는 겁니다."
세하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나무줄기처럼 꼬아져 있는 금색의 이어 커프였다.
귓불의 아랫부분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진주 같은 하얀색 보석이 특징이었다.
치장성 아이템이라 이어 커프 자체에는 특출난 효과가 없었지만 외관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이거를요? 진짜 그것만으로 괜찮아요?"
"네, 오히려 제가 더 득을 보는 거예요."
세하가 호야한테 건네준 이어 커프는 현재 그가 제작자와 독점 거래 계약을 한 아이템이었다.
뛰어난 외관에 여성 유저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웃돈을 얹어 가며 계약을 했건만 홍보가 부실해 생각보다 판매가 저조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도중에 우연히 호야를 만난 것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 걸어 다니는 간판을 말이다.
그가 현재 장비한 아이템 중에서 아이템의 종류가 확실하게 알려진 크로커게일의 로브는 이전에 비해서 두 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될 만큼 인기가 많은 장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높은 가격에도 구하기 힘들었기에 가격을 올려서 되파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도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호야와 같은 장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다.
구두 계약이기는 하지만 호야가 며칠만이라도 이어 커프를 착용하고 다녀 주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크린 샷으로 한 번이라도 노출이 된다면 엄청난 홍보 효과였다.
그렇기에 세하는 정보의 대가로써 이어 커프의 착용을 요구한 것이다.
호야도 딱히 손해를 보는 조건은 아니었기에 호야는 흔쾌히 거래를 승낙했다.
그가 이어 커프를 착용하자 세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어 커프가 잘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파파라치 샷처럼 스크린 샷을 찍었다.
찍힌 스크린 샷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세하가 호야에게 귓속말로 거래의 대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세하: 얼마 전에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구석에서 글귀가 하나 발견됐어요.]
몬스터를 사냥하고 공략만을 위해 나아간다면 굳이 시선이 가지 않는 구석 중에서도 깊은 구석의 벽 한편에서 문자의 대부분이 마모된 채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귀가 발견되었다.
하나의 증표로 거짓을 꿰뚫고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때, 시련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저주받은 지하 신전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문자였다.
네오워즈에서 던전에 쓸데없는 내용의 글을 넣어 놨을 리는 없다.
그것을 발견한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무언가의 힌트라 생각했다.
던전 공략에 대한 힌트?
그것을 발견하기 전에도 잘 공략해 오던 던전이었다.
던전 공략 중에 글귀의 내용에 쓰인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기에 공략 힌트일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히든 피스에 대한 힌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일단은 그쪽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닐 확률도 있어요. 무언가에 대한 힌트겠지만 그게 꼭 히든 피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 글귀에 대한 소문을 알음알음 들은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혹시나 하는 생각과 기대감에 글귀에 맞추어 던전의 공략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의 증표로 거짓을 꿰뚫고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때', 글귀에서 말하는 하나의 증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많은 플레이어들은 그것이 서로가 같은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부는 옛날부터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인 투피스를 따라 하며 팔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호야가 하나의 증표가 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호야가 그것을 시도해 보기 위해서는 도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호야는 도반에게 줄 이어 커프를 세하에게서 구매해 신전의 글귀에 대해 설명을 하며 도반에게 건넸다.
"지하 신전에 한 번 더 가 볼래?"
호야가 사 준 이어 커프를 빤히 쳐다보던 도반은 투구를 살짝 들어 그것을 귀에 착용해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투구를 다시 내리니 이어 커프는 보이지 않는다.
도반과 호야는 사냥터로 돌아가는 것에서 저주받은 지하 신전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계단을 따라 제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주변을 살피자 드문드문하게 소수의 파티가 같은 아이템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목걸이부터 시작해서 망토까지, 파티가 장비를 맞추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글귀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냥 파티를 과시하고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같은 아이템을 착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저주받은 지하 신전은 이미 이전에 몇 번이나 공략을 했던 상태이기에 도반과 호야는 바로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때와는 다르게 유아 한 명이 빠져 있지만 괜찮을 것이다.
던전에 입장할 것인지를 물어 오는 시스템 메시지에 파티장인 호야가 긍정을 표하자 바로 시야가 전환되었다.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돌로 쌓아 올려진 벽과 바닥이 인상적인 복도.
그 앞쪽에 신관들이 마주 보는 형태로 조각되어 있는 석조로 된 문이 있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몬스터들이 나온다.
"바로 이동할......."
호야가 도반을 향해 말하다가 바로 말을 멈추었다.
자신의 옆에 같이 있어야 할 도반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복도를 확인했지만 그 어디에도 도반이 보이지 않았다.
문도 아직 닫혀 있으니 도반이 먼저 앞서 나갔을 리도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호야가 그 즉시 도반에게 귓속말을 보내었다.
[귓속말의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귓속말의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어째서인지 귓속말이 보내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금방 진정한 호야는 평소와 같이 우선 바두를 불러내려 했다.
[펫의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바두의 소환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히에로스 또한 부를 수 없었다.
어째서 전과 달라진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호야는 우선 도반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변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 뒤에 알아봐도 괜찮을 것이다.
쿠구구-.
복도의 끝에 있던 석조로 만들어진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문 너머에는 구체 관절 인형처럼 생긴 몬스터들이 낡고 해진 검은색의 사제복을 입고서 좀비처럼 관절을 어색하게 움직이며 신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존재했다.
달걀귀신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녀석들에게 눈 코 입이 생겨나 낮은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몬스터까지 달라졌어.......'
호야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발자국 움직여 소리를 내자 호야의 시야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의 고개가 한순간에 그를 향해 돌려졌다.
공포 영화 뺨치는 장면이었다.
"구어어어-!"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 몬스터들이 호야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관절 부분이 약한 몬스터이기에 무릎 관절 쪽을 노리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이전에도 사용했던 방법이었고 호야는 지금도 그 방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정보가 떠올랐다.
떠오른 정보에 쓰인 몬스터의 이름은 '저주의 흔적'이었다.
이전에 공략했을 때에는 몬스터의 이름이 '록 프리스트'였다.
한데 갑자기 저주라니, 상황이 크게 바뀐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마 진짜로 히든 피스를 달성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상황이 얼핏 맞춰지기는 했다.
이전에 안개 설원에서도 히든 피스를 달성해 보스 몬스터의 레벨이 상승하는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히든 피스의 달성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의문의 꼬리가 계속 이어졌지만 호야는 그것을 한편으로 치우고 우선 처음 정했던 데로 도반부터 찾기로 했다.
몬스터의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강함에 별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호야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스킬을 최대한 아끼면서 몬스터를 사냥해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빠르게 몬스터의 정리가 끝났다.
너무 빠르게 끝이 났다.
자신이 아직 가지 않았던 구역의 몬스터들까지 사냥이 되어 있었다.
호야는 도반이 사냥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찾기 위해 신전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몬스터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낡고 해진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있는 몬스터.
그것까지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몬스터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몬스터는 팔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그 끝에 쥐인 주먹은 머리보다도 거대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였다.
몬스터들에게 눈 코 입이 생겨난 것과는 확실히 다른 변화를 이룬 몬스터였다.
호야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기다란 팔로 호야의 공격을 막은 몬스터가 비어 있는 다른 팔을 휘두르자 바닥에서 검은 벽이 호야를 노리며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