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18화
18. 몬스터 웨이브가 남긴 것(2)
아헤샤의 중앙 신전의 안에 위치한 회의실.
모든 의자에 하얀색 천에 금색 실로 자수를 넣은 사제복을 입은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둘러싸듯이 앉아 있는 커다란 원형의 테이블 중앙에는 어느 몬스터의 어금니가 올려져 있었다.
마탑에서 중앙 신전으로 보내온 오염된 몬스터의 부산물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마탑에서 중앙 신전으로 보내는 과정 없이 바로 모안이 가져갔어야 할 것들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 그 소식을 커뮤니티 등으로 접한 플레이어들 중 사제와 성기사 등의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입을 타고서 중앙 신전에까지 이야기가 들어와 버렸다.
'마기에 오염된 상태'라는 아이템 정보가 그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탑에서 자신들이 처리하겠다며 오염된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이브의 손과 입이라 불리는 아헤샤의 중앙 신전에 건네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신전에 대한 도전, 심한 경우에는 주신인 이브에 대한 반항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앙 신전의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보고도 남을 정도로 신앙심이 높고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중앙 신전을 거쳐서 모안에게로 회수될 필요가 있었다.
마탑에서 중앙 신전으로, 중앙 신전에서 정화와 소멸을 이유로 성녀인 아리아에게, 아리아에게서 레이나에게로.
중간 과정이 길어지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모안에게로 회수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중간 과정에서 정화와 소멸을 하기 전이었다.
아리아와 레이나의 입장에서는 바로 정화와 소멸을 핑계로 모안에게 건네는 것이 베스트지만 장로들이 그 전에 이 사태에 대한 회의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마기, 그것은 지금 시대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역사에 기록된 마족들과의 마지막 싸움, 그것이 끝난 직후에 그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기에 오염되어 심하게 변형된 몬스터들이나 그저 마기로 인해 강해진 몬스터들 등,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된 지 100년이 넘게 흘러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한 것이 발견되는 것은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고 회의를 소집한 이유였다.
"형제, 자매님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의실에 모여 있는 이들 중 제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물음에 깊게 생각하던 한 인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교, 그들이 아직 남아 있고 그들이 이즈바론트에서 일어났던 일의 원인이라 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직 마족들이 사라지기 전, 붉은색 육망성을 심볼로 내건 마족들을 숭배하던 자들의 집단.
그것이 바로 '마교'다.
미족들이 사라진 후에 점점 쇠퇴의 길을 걷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단체였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들의 의지가 아직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이들도 그가 한 말에 동의한 것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들을 얼른 찾아내어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이 땅에 다시 혼돈이 찾아올 것입니다."
"성녀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장로의 물음에 상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곱게 눈을 감고 있던 아리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장로들의 근심 어린 표정을 읽은 아리아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장로님들의 말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리아의 대답을 들은 장로들은 마교의 수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떠한 방법으로 수색을 할 것인가, 마교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딱히 그들을 구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교라고 해서 마기에 물들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런 상태라면 진즉에 찾아냈을 것이다.
장로들은 우선 수색의 힌트를 찾아서 마교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소수의 문서들을 살펴보고 다시 모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장로들이 자료를 찾아서 회의실을 나가자 주변에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아리아가 몸에 힘을 빼고서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마교가 아닌데.......'
레이나를 통해 모안에게 오염된 몬스터들의 발생 원인에 대해 들었던 아리아는 마교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장로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머리만 아파 올 뿐이었다.
* * *
현재 랭커들에 의하여 한창 활발한 개척이 진행 중인 어둠의 숲.
그곳의 최전방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몬스터를 향해 쉴 틈 없이 검을 휘두르는 이가 있었다.
아카하네의 길드 마스터인 애서가였다.
그런 그의 주변에서는 그와 파티 상태인 아카하네의 간부들이 그와 함께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있던 몬스터가 모두 사라지자 애서가는 그들에게 짧은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허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그는 현재 랭킹 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1위 레벨 307 애서가]
[2위 레벨 307 도반]
⋮
레벨이 300대로 진입한 뒤부터 항상 자신과 1~2의 레벨 차이를 유지하며 뒤따라오던 도반이 결국 자신과 같은 레벨을 달성하고 말았다.
레벨이 200대에 들어서면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의 양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처럼 레벨이 300대로 진입하면 레벨 업에 필요로 하는 경험치의 양이 껑충 늘어난다.
레벨 299에서 300으로 가는 것에 1의 경험치가 필요하다면 레벨 300에서 301로 가는 것에는 4의 경험치를 필요로 한다.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가 늘어나는 만큼 이전보다 레벨을 올리기 어려운 것이 300대의 레벨이다.
그만큼 앞서 있는 사람의 레벨을 따라잡기도 힘들다.
아직은 경험치 양의 차이로 인해서 자신이 1위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애서가는 결국 따라잡혀 버린 레벨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커다란 차이를 이 정도로 따라잡았다는 것은 결국 앞지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경험치를 올리는 속도보다 도반이 경험치를 올리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었으니까.
도반은 자신과 같이 뒤에서 밀어주고 지지해 주는 길드도 없는 솔로인데 이 레벨 업 속도는 가히 놀라웠다.
유아와 같이 다니기는 해도 서로가 서로의 옆에 동등하게 서는 관계일 뿐, 지원을 해 주는 관계는 아니었다.
어떻게 요즘 들어서 이리 빠른 레벨 업을 이룰 수 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유아뿐만은 아니지.'
도반의 레벨 업이 빨라진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도반과 호야가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부터.
그것은 실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아닌 실체가 존재하는 사실이었다.
이즈바론트의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목격되었고 유아까지 포함하여 셋이서 저주받은 지하 신전을 며칠이나 들락거렸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 마을 사람이 도반이 빠른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일까?
애서가는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호야를 마을 사람이라며 은연중에 깔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무력은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직접 플레이어들의 눈을 통해 증명되었고 디노의 스트리밍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실히 증명되었다.
디노의 스트리밍에서 그가 보였던 움직임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뛰어난 수준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강한 파티원이 있으면 사냥 속도가 빨라져 들어오는 경험치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 도반이 보이는 레벨 업 속도는 필시 호야가 원인일 것이라고 애서가는 결론 내렸다.
그는 도반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이니티움 오픈 초기부터 질기게 이어져 오던 라이벌 관계이자 자신이 앞서 나가는 입장이었으니까.
다시 도반과의 차이를 벌려 두고 싶었다.
벌릴 수 없다면 지금의 격차라도 유지시켜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살짝 무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애서가는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시간을 써 가며 사냥을 하고 있었다.
최적의 움직임, 파티원들의 스킬을 쓰는 타이밍까지 지시하며 효율적인 사냥에 힘을 쏟았다.
지금 이렇게 쉬고 있는 시간도 아까웠지만 길드원들은 노예가 아닌 동료다.
리더와 부하라는 입장 차이로 인해서 그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는 있지만 억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움직인다."
"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애서가가 말하자 그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반문을 내뱉는 이들은 없었다.
부마스터인 렌야가 제일 빠르게 움직일 채비를 끝냈다.
렌야는 애서가의 뒤에서 묵묵히 그의 등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애서가의 등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다른 이들이 왜 그리 웃고 있냐고 물으면 아무런 망설임과 부끄러움 없이 '멋져서'라고 말하는 것이 렌야였다.
다시 포지션을 정리한 그들은 몬스터를 찾아가며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전투 중임을 암시하는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멀리서 들려오고 있기에 소리 자체는 매우 작았지만 잘 들어 보면 최소 수십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애서가가 있는 곳은 어둠의 숲의 개척이 완료된 구역들 중에서는 최전방, 그중에서도 아카하네에서만 개척을 진행해 다른 이들은 아직 자세히 모르는 곳이었다.
그러한 장소에서 수십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파티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어디 녀석들이지?'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들의 발이 멈춘 것은 하늘을 가리는 높은 나무들이 사라져 있는 작은 공터였다.
그곳에서 그가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몬스터의 사냥을 하고 있었다.
도반과 호야였다.
"섬광."
도반이 그렇게 말하자 허공에 새하얀 빛의 선이 길게 그어지며 선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몬스터들의 몸에 빛나는 상처가 새겨졌다.
"검우."
호야가 그렇게 말하자 허공에 한 점을 중심으로 파장이 퍼져 나가 원을 그리더니 그 원의 안에서 얼음의 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쏟아져 내린 얼음의 칼들은 대지와 몬스터를 얼리고서 몬스터의 사망과 함께 유리처럼 깨져 빛나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
애서가는 도반과 호야가 사냥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자신들 못지않은, 아니, 자신들보다 빠른 사냥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저렇게 사냥을 하니 성장이 빠를 수밖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저들이 저렇게 쉬지 않고 사냥을 하고 있으니 저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신도 빠르게 경험치를 올려야 했다.
이곳에 가만히 있어 봤자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몬스터는 얼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 애서가는 다시 조금 점에 사냥을 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뭔가 엄청 지그시 쳐다보던데, 서로 아는 사이야?"
"......서로 알긴 해도 접점은 없었지."
아카하네가 떠나자 몬스터를 모두 사냥한 호야가 도반에게 물었다.
도반은 랭킹 1위인 애서가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접점은 없었기에 그가 자신을 불타오르는 눈으로 왜 그렇게 지그시 쳐다보고 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애서가가 생각하는 라이벌 관계는 그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관계였다.
도반은 그러한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 ......으음, 슬슬 한번 캠프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도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벤토리를 확인하던 호야가 도반에게 캠프로 갈 것을 권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물약과 바두의 간식을 보급할 장소가 있다는 것이 호야가 치빈이 알려 준 사냥터에 가지 않고 굳이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이유였다.
워프 스크롤을 찢고서 물약을 보급한 뒤 오르도에 돌아가 모안의 도움을 받는 기다란 과정 없이 캠프에 있는 상인 플레이어들에게 물약을 구매하면 됐었다.
요즘에는 길드의 가입을 권하며 쫓아다니던 사람들도 완전히 없어지기도 해서 굳이 숨을 필요가 없기도 했고 도반과 같이 사냥을 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도 꽤 안쪽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했기에 플레이어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한 호야는 도반과 같이 캠프로 걸음을 옮겼다.
도반도 물약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전 구역에 세워져 있는 개척 캠프에는 길가에 좌판을 깔고 있는 상인 플레이어들이 다수 있었다.
"어! 호야 님! 안녕하세요!"
한 상인 플레이어에게서 물약을 구매한 뒤 다시 돌아가려는 호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명의 플레이어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엄청 오랜만이에요!"
"그...... 누구세요?"
호야가 그리 말하자 플레이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