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66화 (66/171)

# 6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16화

16. 술이 만들어 준 기적

전설의 무투가 컨서누.

마을에 있는 날보다도 바깥에 나가 있는 날이 더 많은 사람이기에 호야도 그와는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저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오르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기본적으로 착하기는 했지만.

"아하하하...... 미안해요."

컨서누는 호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왔다.

딱히 화가 나 있던 것은 아니기에 호야는 피식 웃고서 그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 주었다.

사실 호야는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착한 이예숙이 호야가 요리에 손을 대려고만 하면 180도는 돌변해서 그를 말려 오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래도 게임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괜찮아지기는 했다.

처음 사리반에게 요리를 배울 때에는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지도 못하는 맛이었으니까.

그것이 쉬어 버린 김치찌개가 되었으니 많이 발전한 것이다.

* * *

"이 드으러운 세으상아! 왜 나한테만 그러는 곤데에!"

아직은 살짝 쌀쌀한 새벽, 한 여인이 술에 취해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허공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게 왜애 내 탓이냐고오! 결국 결정은 자기가 한 고잖아아!"

SBC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의 막내 작가 이수아, 그녀는 한참 소리를 지르다가 목이 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캔 음료를 하나 구매했다.

얼굴 전체가 붉어질 정도로 술을 마셨던 그녀는 어찌어찌 계산을 제대로 하고 나와서 편의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캔을 딴 뒤에 음료를 벌컥 들이켠 후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흐아아......."

얼마 전에 있었던 이즈바론트의 몬스터 웨이브.

그날 현장 촬영과 취재를 위해서 곧바로 이즈바론트로 향했던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팀은 고작 세 명에 불과했다.

한곳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막내 작가인 이수아의 의견으로 남문을 버리고 나머지 세 곳을 선택했었다.

박봉석은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직후에 이수아를 칭찬했었다.

그가 동문에서 에리먼과 그를 보조하는 아레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잡아낸 것이다.

이수아의 의견으로 인한 행동으로 좋은 영상을 아슬아슬하게 건졌다며 칭찬하던 그의 행동이 급변한 것은 서브 작가인 최경아의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그...... PD님, 남문에 마을 사람이 있었대요......."

최경아가 꺼낸 이야기는 남문에 있었던 호야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성벽의 외벽을 따라서 남문 쪽에서 서문 쪽으로 올라온 호야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경아의 말을 들은 박봉석은 그 즉시 커뮤니티 게시판에 들어가 플레이어들의 글들을 확인했다.

그의 예상대로 커뮤니티는 몬스터 웨이브의 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 박봉석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남문에서 퀘스트를 수행했던 플레이어들의 글이었다.

[이즈바론트 몬스터 웨이브 후기]

오늘 이즈바론트에서 모인 다음에 파티 사냥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파티원 중 한 명이 약속 시간 5분 전에 못 가겠다고 귓속말 와 버렸고...... 도착해 있던 다른 파티원이랑 그 자식 뒷담을 까던 중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해도 별 핑계를 다 대 가면서 오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이지만 지금은 그 자식에게 너무 감사하네요.

그 자식 뒷담을 까느라 이즈바론트에 머물러 있다가 퀘스트를 받았거든요. ^^

퀘스트 내용이나 그러한 거는 다른 글도 있을 테니까 그거는 대충 넘어가고, 저희는 바로 남문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에는 몬스터가 장난 아니게 세져 있고 숫자도 숫자라서 기겁을 하며 '아, 이건 글렀네.'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뭐지? 하고 둘러보니까 멀리서 웬 플레이어 한 명이 아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플레이어 정체가 호야 님! ㅋㅋㅋㅋ

다가가서 말이라도 걸고 싶었는데 주변 몬스터가 너무 살벌해서 근처에 가지도 못했네요. ㅠㅠ

작게 찍힌 스샷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죠, 뭐.

└몬스터 웨이브 후기가 아니라 호야 님 봤다는 후긴데, 이거?

└그래서 몬스터 웨이브 후기는 어디에 있냐.

└스샷에 찍힌 거 너무 작은데? 로브밖에 못 알아보겠다, 야.

남문에서 퀘스트를 수행했던 플레이어들의 후기에는 길고 짧게 호야에 대한 이야기와 여러 가지 특종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마을 사람 호야.

그의 펫으로 추정되고 있는 하얀 밧줄을 목에 감은 검은색 늑대.

설백호와의 친분으로 인해 정령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하얗고 검은 소년.

새하얀 갑주를 몸에 두르고 금실로 장식된 푸른 망토를 휘날리는 성기사.

투구로 인해 인물의 정확한 확인은 되지 않았으니 흐르고 있는 소문과 가진 바 무력을 조합해서 도반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박봉석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에리먼과 아레나의 영상을 잡았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유일하게 영상을 잡지 못한 곳에서 제일 대박이 터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동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이니티움 수첩'에서는 바로 다음 주에 방영할 방송 내용을 과감하게 몬스터 웨이브로 교체해 예고편까지 만들어 배포하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완전히 끝난 지 겨우 1시간이 흐른 시점이기에 예고편의 영상은 평소보다 조잡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한 예고편이었다.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달려드는 몬스터들.

몬스터와 섞여 싸우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하이퍼랩스 기법으로 편집한 모습은 진짜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긴장감을 연출시켰다.

그리고 예고편 영상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 온몸이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곰과 대치한 한 명의 플레이어의 뒷모습이었다.

멀리서 잡은 영상을 확대한 것이기에 화질은 그리 좋지 않으나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들보다는 고화질이었다.

역시 방송국 사람들의 캐릭터답게 영상 촬영 옵션에 돈을 들인 티가 확 났다.

자신들의 캐릭터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문제는 영상의 화질 따위가 아니었다.

'이니티움 수첩'에서 잡은 영상을 자신들이 잡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대박 영상을 말이다.

"야, 막내! 너 때문에 이게 뭐야!"

"네......?"

박봉석은 완벽한 경쟁 구도를 취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밀렸다는 울분과 나중에 위에서 내려올 스트레스를 생각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제일 아랫사람인 이수아에게 풀었다.

먼저 남문을 버리자고 제안한 것, 막내 작가라는 녀석이 소식 확인이 느리다는 이유, 제일 안 좋은 영상을 잡았다는 등을 이유로 폭언을 쏟아 냈다.

최경아는 그나마 마지막에 남문에서 서문으로 넘어온 호야를 잡은 덕분에 폭언의 중심을 피해 갔다.

이수아는 그날을 기점으로 '일 잘하고 행동이 빠른 막내'에서 '방해만 하고 짐이 되는 막내'로 바뀌었다.

이전과 같이 행동을 하면 박봉석은 그녀에게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라는 식의 말을 일삼았다.

귀여운 막내는 더 이상 귀여운 막내가 아니었다.

며칠 뒤에 방송된 '이니티움 수첩'의 시청률은 26.7%, 동 시간대에 방송된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의 시청률은 9.8%.

결국 한 자릿수의 시청률이 나오며 경쟁 프로그램에 밀려 버렸다.

그것을 이유로 위에서 대차게 까이고 내려온 박봉석의 심기는 매우 뒤틀린 상태였다.

그런 그의 눈에 포착된 것은 그가 이 사태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수아였다.

이수아에게는 계속 내리 갈굼이 이어졌고 다른 방송 팀원들은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그녀를 외면했다.

그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이수아는 밤부터 새벽까지 혼자서 술을 달렸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는 사실에 너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셔 댄 것인지 머리가 많이 어지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술에 취해 편의점 앞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그녀의 귀에 가볍게 달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고개만을 살짝 들어 앞길을 바라보자 남자 한 명이 가볍게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사람 오늘도 뛰고 있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지금과 같은 시간에 퇴근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이 편의점 앞길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항상 자신의 옆을 뛰어 지나가는 남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저 남자였다.

'고놈 참 자알생겼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대단해 보이는 한편 부럽기도 했다.

자신은 일에 치여서 이렇게 죽어 가며 살고 있는데 너는 참 생기가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아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슬프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흐윽...... 저기요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을 털어놔야지 속이 시원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술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가 그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술에 취해 부리는 객기였다.

"네, 네?"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아니, 박PD 그 새끼가......!"

아수아가 울먹이며 쉼 없이 말을 토해 내기 시작한 것에 남자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남자가 편의점 앞에서 이수아에게 팔이 붙잡힌 채 아무런 행동도 못 하고 있자 편의점 점장이 밖으로 나왔다.

"아니, 이 아가씨 아까부터 좀 아슬아슬해 보이더니 결국 맛이 가 버렸네. 내가 맥주를 음료수로 알고 사 갈 때부터 알아봤어."

혀를 쯧쯧 찬 점장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봉식이 감자탕집 옆에 있는 편의점인데요. 네, 네. 예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점장이 미안하다는 듯이 남자를 보고서 말을 이었다.

"학생, 미안해~. 경찰이 와서 데려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아, 네."

"지금 상황이 많이 얼떨떨하지?"

"뭐, 조금은......."

"조금만 참아 줘~."

남자의 어깨를 토닥인 점장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 딸의 대학 이야기와 요 근처에 편의점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팔을 아직 붙들고 있는 이수아는 눈물에서 그치지 않고 콧물까지 흘리며 아주 서럽게 울고 있었다.

"으허헝. 아니이~! 쪽지가 안 가는 걸 어떻게 연락하라는 곤데에! 쪽지 함이 꽉 차서 안 간다는데에! 나보고 오쩌라고오! 그때 선택한 것도 자기면서! 왜 나한테 다 떠넘겨어!"

"그.......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그니까아! 박 PD 그 새끼가 말이야!"

대략 2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경찰차 하나가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여기 이분인가요?"

"네, 잘 좀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학생, 이 여성분한테 맞거나 하지는 않았죠?"

"아, 네."

"그럼 술 깰 때까지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어? 뉴구세요오~?"

경찰 두 명이 남자의 팔을 붙잡은 이수아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 내고 경찰차 뒷좌석에 그녀를 태웠다.

술에 취해 있던 그녀는 경찰차를 택시로 오해해 얌전히 경찰차를 타고 편의점을 떠나갔다.

이수아의 손에서 풀려난 남자는 편의점 점장에게 인사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에 걸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이예숙이 그를 향해 물었다.

"아들, 오늘은 조금 늦었네? 멀리 갔다 왔어?"

"으음, 중간에 일이 좀 있었어."

땀을 씻기 위해서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 호영은 옷을 벗기 전에 겉옷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빳빳하게 코팅되어 있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종이.

그것은 술에 취했던 이수아가 술기운에 호영에게 건네주었던 그녀의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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