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15화
15. 드디어 그것이?!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현재 플레이어들에 의해서 한창 개척이 진행 중인 '어둠의 숲'.
이름 그대로 높고 크게 자란 나무의 나뭇잎들로 인해서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지 않아 항상 밤처럼 어두운 곳이다.
그래도 듬성듬성 자라 있는 빛을 내는 이끼들 덕분에 최소한의 시야 확보는 가능하다.
그렇지만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높게 자라 햇빛을 받는 나무들과 그런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가져오는 이끼들을 제외하고는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장소.
성장에서 뒤처진 나무들이 죽어 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곳이다.
그런 어둠의 숲의 안쪽에 위치한 작은 건축물.
건축물 안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양옆에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제단이 하나 존재한다.
그 제단이 바로 호야가 아다만타이트를 구하기 위하여 도전하려고 하는 던전인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입구다.
입장 제한 인원은 최소 두 명에서 최대 여덟 명.
이 입장 제한이 호야가 도반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였다.
한데 예상치 못한 덤이 도반과 함께 찾아왔다.
"저는 유아라고 해요. 평소에 도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호야라고 합니다."
호야의 대답을 들은 유아는 밝게 웃으며 호야와 악수한 손을 흔들었다.
"저기, 그런데 무슨 일로......?"
호야가 유아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심심해서 따라왔어요. 이 기회에 당신이랑 친해지면 좋고. 아, 혹시 내가 방해가 되는 건가?"
"아뇨, 전혀요."
친구의 친구는 자신과도 친구라며 유아는 호야를 마치 몇 년은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그런 유아의 친화력에 밀려서 호야가 유아와 말을 놓고 친구 추가를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아는 호야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로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도반에게 보였다.
[유아: 이게 이 형님과 너의 차이다! 하하!]
도반은 왠지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출발!"
어느 던전에 가는 것인지는 호야가 미리 도반에게 말해 두었기에 도반에게 건너 들었던 유아가 가장 앞장서 걸어갔다.
셋 중에서 행동력은 유아가 가장 뛰어났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 공동에는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발견된 지 아직 2주도 채 되지 않은 던전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견이 확인 된 광석들 중 최고의 광석이라 할 수 있는 아다만타이트가 나오는 던전이라는 이유로 인해서 어둠의 숲을 개척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 상당수가 공동에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아! 호야 님! 오랜만이에요!"
"어, 안녕하세요."
호야를 발견한 아르코가 냉큼 그에게 뛰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아르코의 모습은 꽤나 바뀌어 있었다.
"염색하셨네요?"
아르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장비와 따로 놀던 빵모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다란 깃털 장식이 달린 머리띠가 둘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짧았던 무지개 머리는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당연히 패치 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했죠!"
호야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던 사이에 이니티움에 드디어 머리 염색약이 업데이트되었다.
머리 염색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진짜 머리를 염색하는 것보다 살짝 많은 금액의 골드를 요구했다.
업데이트 공지가 올라왔을 때에만 해도 너무 비싸다는 아우성이 들려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데이트가 된 첫날에 전체 플레이어의 5%가 머리 염색약을 구매하는 기염을 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르코도 그 5% 중의 한 명이었다.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인 아르코의 표정은 매우 상쾌해 보였다.
"그나저나 호야 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아,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나?"
던전 공략을 힘내라는 말과 함께 아르코는 자신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호야와 같이 던전을 돌고 싶었지만 던전을 같이 돌자고 말하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일인 것 같았다.
아르코가 멀어진 뒤 호야를 포함한 셋은 던전으로 들어갔다.
* * *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보스 몬스터 '록 샤먼'을 쓰러트렸습니다.]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모두 클리어 하여 경험치와 아이템의 정산이 진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저주받은 지하 신전의 하루 입장 제한은 총 2회.
저주받은 지하 신전을 셋이서 공략하기 시작한 지 4일째 되는 날, 총 다섯 번째의 공략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검을 만들 정도의 아다만타이트를 모을 수 있었다.
록 샤먼의 아다만타이트의 드랍률은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대략 주먹 하나 정도의 크기, 그것을 랜덤으로 한두 개씩 드랍 했기에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 버렸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설마 4일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호야는 그만큼 둘의 시간을 빼앗아 버린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이~ 보답은 무슨. 사냥 속도도 빨라서 평소보다 경험치도 많이 쌓였는데 뭐."
아직 아다만타이트를 모으지 못해서 자리를 이탈하지 못했기에 셋은 던전의 공략이 모두 끝나면 근처 어둠의 숲에서 사냥을 했다.
호야가 파티에 추가된 만큼 사냥 속도도 꽤나 빨라서 경험치도 평소보다 더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 줘.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그럼 우리야 고맙지."
호야는 곧장 오르도로 향했다.
유아와 도반은 호야가 무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호야는 오르도에 도착하자마자 단탈스의 공방으로 향해 그에게 재료를 건네주었다.
"어때요?"
"응, 아주 좋아."
단탈스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 완성되기까지는 이틀 정도가 걸린다는 말과 함께 내일모레 저녁에 찾아오라는 말을 하며 호야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단탈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나온 호야가 행한 곳은 사리반의 집이었다.
오르도에 온 김에 이번에는 꼭 사리반에게 합격점을 받고 싶었다.
* * *
사리반의 집에서는 한창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좋아, 겉모습은 완벽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리반이 긴장된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눈앞에 있는 접시에 담긴 수프에 숟가락을 넣었다.
수프에 깊게 넣었던 숟가락을 그대로 올리자 두툼한 고기와 채소들이 수프에 몸을 담그며 자신들을 뽐내 왔다.
나를 먹어, 엄청 맛을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겉보기로는 합격점.'
생긴 것만으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완벽한 완성도였다.
수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도 식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포장이 아닌 내용물, 즉 맛이다.
꿀꺽.
긴장에 침을 삼킨 사리반이 숟가락을 천천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호야도 그 뒤를 이어서 수프가 담긴 숟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바로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
"......."
둘 다 말이 없다.
그 모습을 옆에서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바두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조심스럽게 곁으로 다가와 호야의 앞에 있는 수프를 할짝였다.
"키헥! 켁!"
수프를 먹은 바두가 기침을 토해 냈다.
[상태: 먹음직스러운 모습과 180도는 다른 이상한 맛에 매우 놀란 상태입니다. 이런 거를 누가 먹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하아...... 너 표현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호야는 한숨을 내쉬며 바두에게 물과 해독제를 건네줬다.
호야가 물을 그릇에 담아 건네주자 바두가 그릇에 담긴 물과 해독제를 허겁지겁 먹어 댔다.
급하게 물을 마시는 것은 바두뿐만이 아니었다.
사리반도 호야도 마치 입안을 씻어 내려는 듯이 열심히 물을 먹었다.
"호야."
커다란 물 컵을 두 번이나 비운 사리반이 물 컵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요리를 배우는 거는 포기하자. 내가 다 만들어 줄게."
"......."
이니티움은 가상 현실 게임.
그래, 게임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이니만큼 '현실'에서의 능력이 어느 정도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현실에서 태권도, 검도, 복싱 등을 배운 사람이 이니티움에서 몸을 잘 움직이고 검을 효율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 배운 '지식'과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 반대도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설마 요리 실력까지 현실의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다.
게임이니만큼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나왔다.
하지만 어째서 고기 수프에서 쉬어 버린 김치찌개의 맛이 나는 것인가.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었다.
"......하아."
호야는 고기 수프의 탈을 쓴 쉬어 버린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 생겨난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섭취한 것 같습니다.]
[상태 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칭호 '땅끝 마을의 주민'의 효과로 인해 저항하였습니다.]
'먹어서는 안 될 것'.
호야의 요리에 대한 시스템의 취급이었다.
사리반에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은 넘게 흘렀음에도 이 모양이었다.
사리반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호야는 깊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포기할게요."
"너무 실망하지는 마. 사람이 못하는 것도 있고 그런 거지."
사리반이 진심으로 호야의 등을 토닥여 왔다.
호야는 그가 그러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요리사 직업군에 현실 요리사들이 많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흐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아, 렌시아."
그때 사리반의 집에 렌시아가 들어왔다.
렌시아는 호야가 성인식 시험의 열쇠를 건네준 뒤 성인식을 클리어 하고 며칠 위그드라실의 마을에 머물다가 오르도로 돌아왔다.
마을의 엘프들과 마찰이 있거나 해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렌시아를 환영하고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엘프들을 향한 렌시아의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위그드라실의 마을에 다시 정착하지 않고 오르도로 돌아왔다.
그곳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는 것이 오르도에 돌아온 이유였다.
그녀는 사리반의 음식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마을의 음식들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사리반의 음식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래도 마을에는 꽤 자주 찾아가고 있다.
그곳에 어머니가 있으니까.
"수프? 먹어도 되는 건가?"
"아, 그건."
렌시아는 호야가 말릴 틈도 없이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엄청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뭐냐....... 사리반, 드디어 포이즌 쿠킹이라도 시작한 건가?"
"아니야."
"그럼 이것은......."
렌시아의 물음에 사리반이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호야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렌시아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호야를 위로해 오기 시작한다.
호야는 렌시아의 그런 반응이 더 슬펐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그러던 중에 컨서누가 굴뚝을 통해 빠져나간 냄새에 홀려서 사리반의 집으로 찾아왔다.
이 사람은 언제 돌아왔던 거야?
들어오자마자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은 그의 반응은 렌시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나쁜 의미로 음식의 맛에 대해 놀라워하고 그 놀라운 맛을 만들어낸 사람이 호야라는 것을 알자 그를 위로해 왔다.
"어...... 괜찮아요! 저도 요리는 못하거든요!"
"......전혀 위로가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