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13화
13. 정령의 에르텔(1)
"흐음, 완전히 깔끔하게 잘렸네."
"못 고칠까요?"
땅끝 마을 오르도의 단탈스의 공방.
그곳에서 단탈스는 호야가 건네준 것을 이리저리 돌려 보고 있었다.
붉은 검날과 새하얀 검등,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밤하늘 같은 검푸른 선이 인상 깊은 검 한 자루가 두 동강이 난 채 아랫부분은 단탈스의 손에, 윗부분은 단탈스의 앞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검의 단면을 만져 보던 단탈스가 입을 열었다.
"고칠 수는 있을 것 같아."
"정말요?"
"아직 좋아하지 마. 고칠 수는 있지만 전과 같은 능력치는 안 나올 거다. 얘가 조금 까다로운 녀석이거든."
단탈스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툭툭 친 것은 검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신비한 빛의 광석, 모안탈티움이었다.
"한번 효과와 형태가 잡힌 뒤에 망가져 버리면 완전히 고철이 되어 버리는 것이 이 녀석이야. 기간트 레드 베어의 뼈로 만든 부분은 내가 수리하면 원상태로 돌아오겠지만 얘는 아니거든."
단탈스의 말에 호야는 실망을 삼켰다.
레벨 300 언저리까지는 사용하자고 생각한 것이 얼마 전인데 그 뒤로 얼마 안 있어서 사용 불가의 상태가 되었다.
그때 아도라의 공격을 막지 말고 바로 불굴의 의지의 효과를 발생시켜서 빠져나왔어야 했다.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늦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이참에 새로 하나 만드는 거는 어때? 좋은 재료 가진 거 없어?"
호야는 단탈스의 말에 이미 떠나가 버린 파트너에 대한 미련을 애써 지우고서 인벤토리에 있는 소재들을 모두 꺼내 보았다.
호야는 한번 인벤토리가 꽉 찬 다음에 한 번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야의 인벤토리에는 잡다한 재료가 꽤 들어 있었다.
단탈스는 호야가 꺼낸 소재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소재를 살펴보는 그의 표정은 만족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으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호야도 이제 단탈스의 기준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단탈스가 그럭저럭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를 뛰어넘는 무기를 만들 수 없는 재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로는 이 부러진 녀석과 비슷하거나 뛰어난 수준의 무기는 나오지 않을 거다."
"으음......."
역시 호야의 생각대로였다.
그때 단탈스가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이 기회에 너한테 딱 맞는 무기를 만들 재료들을 찾아봐."
"이것도 딱히 저한테 안 맞지는 않았는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예를 들어서 이 무기에 있던 출혈 효과. 너한테는 있으나 마나 했던 거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단탈스가 말한 '딱 맞는 무기를 만들 재료'라는 것은 호야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시켜 주거나 필요한 능력을 줄 수 있는 재료'라는 의미였다.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의 출혈 효과 같은 것이 아닌 자신에게 딱 맞는 특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재료.
그러한 것을 구해 오라는 것이었다.
"나한테 맞는 재료라......."
"천천히 생각해 봐. 일단 임시로 쓰게 이거는 고칠게."
그렇게 말한 단탈스는 두 동강이 나 있는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를 들고 가 그립과 가드, 검날을 따로 분해한 다음 풀무질로 화로의 불을 키우더니 그 안으로 검날을 던져 넣어 녹이기 시작했다.
호야는 풀무질을 하고 있는 단탈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시선을 천장으로 향해 생각에 잠겼다.
'나한테 맞는 재료.......'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재료가 뭘까.
호야는 우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되짚어 보았다.
일단 친화력을 제외하면 자신의 스탯은 기본 4대 스탯이 평균 710 언저리, 신성력이 541이다.
신성력이 다른 스탯들에 비하면 확실히 낮지만 신성력 자체는 성기사나 사제가 아니면 언데드나 어둠 속성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가 아니면 그리 큰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제나 성기사가 아닌 플레이어가 신성력을 얻어도 그리 많은 포인트를 사용하는 않는다.
하지만 호야는 칭호 '빛의 계승자'의 효과로 신성력이 4가 올라가면 힘, 민첩, 체력, 마력이 각 1씩 올라가기 때문에 높으면 높을수록 전체적인 스탯의 상승으로 직결된다.
거기에 호야는 신성 마법도 보유했으니 덤이라면서 무시할 수 있는 스탯은 아니었다.
친화력은 아직 정체도 자세히 파악되지 않았으니 넘어간다.
다음으로는 속성 '얼음'.
얼음 속성 자체는 불 속성에 약하고 물 속성에 강하다.
신성력을 가지면 언데드와 어둠 속성의 몬스터에게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것처럼, 평소에도 상성적으로 강한 물 속성 몬스터를 상대하면 추가 대미지가 들어간다.
그리고 모안이 가르쳐 준 마법 술식을 사용하면 속성 자체가 형태를 보여서 불 속성인 몬스터를 제외하고 조금씩 추가 대미지가 들어간다.
하지만 모안의 마법 술식도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어 블렛을 제외하고는 잦은 사용이 불가능하여 평소에 그리 큰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문득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검을 휘둘러 기본 공격을 몬스터에게 먹일 때 마법처럼 효과가 전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그래도 마법 자체를 사용할 때 얼음 속성의 효율이라도 높아지면 좋을 것 같다.
"......어?"
호야는 방금 전에 한 생각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더라...... 어디였지......?
곰곰이 기억을 되짚던 호야가 퍼뜩 떠오른 기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이내 멈칫했다.
지금은 단탈스가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괜히 소리를 내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야는 아주 조심히 의자에서 일어나 단탈스의 공방을 빠져나와 훈련소로 향했다.
가정집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안은 운동장처럼 넓은 훈련장.
그곳에 들어간 호야는 바로 한쪽 벽면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무기들의 앞으로 다가가 이내 푸른색 검 한 자루에 손을 대었다.
[푸른 에르텔의 롱 소드]
등급: 유니크
공격력: 3,800
내구도: 750/750
*스킬의 시전 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상대방을 타격 시 30%의 확률로 적의 MP를 일정량 흡수합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단탈스가 주로 지팡이에 사용되는 푸른색 에르텔을 이용하여 만든 검입니다.
검날이 모두 푸른색 에르텔로 이루어져 있어 스킬과 마법의 사용 시 효율을 대폭 올려 주며 외견 또한 어느 보석 장신구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제작 도중 재채기가 일어 불순물이 섞여 들어갔기에 단탈스가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아 그는 이 검을 마을 훈련장 벽에 장식 삼아 걸어 두었습니다.
착용 제한: 레벨 580, 마력 900 이상 전사
아이템의 특수 효과도 설명도 호야의 희망 사항과는 달랐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 설명에 쓰여 있는 문장 중 하나인 '스킬과 마법의 사용 시 효율을 대폭 올려 주며'라는 부분에 호야가 주목했다.
잘만 하면 얼음 속성뿐만이 아니라 스킬 자체의 효율을 높여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명에도 불순물이 들어가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고 적혀 있지 않나.
호야는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호야의 생각은 실현 가능한 생각이었다.
"에르텔 자체를 잘 다듬으면 스킬이나 마법의 효율, 즉 위력을 올리거나 재사용 대기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지. 걔는 제작 도중에 살짝 삐끗해서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사라지고 시전 시간만 떠 버렸지만."
자신의 일생 동안 가장 어이없는 실수였다고 단탈스가 수리가 끝난 검을 천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에르텔에 얼음 속성을 집어넣으면 얼음 속성의 효율을 올리는 것도 가능할 거야. 대신 속성의 주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효과의 크기가 갈려."
즉, 이제 막 마법사가 된 초보 마법사가 에르텔에 얼음 속성을 넣는 것과 모안이 얼음 속성을 넣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 차이만큼이나 착용 제한도 까다로워지기에 얼음 속성을 넣을 것이라면 대상을 잘 골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 아니면 호야 네가 직접 넣어도 되겠다."
"그래도 돼요?"
"응."
오히려 사용할 사람이 직접 넣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단탈스의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호야 네 수준에서 사용 가능한 장비를 만들려면 에르텔은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딱 적당할 거야. 그것보다 많으면 끼지도 못할걸."
구해야 하는 양도 생각보다 적었다.
호야는 기대를 품고서 단탈스에게 에르텔을 어떻게 구했었는지를 물었다.
"몰라."
"네?"
이렇게 재료를 이용해 완성한 물건이 있는데 재료의 출처를 모른다는 말에 호야는 당황했다.
"어...... 그럼 이거는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거는 촌장이 재료를 줘서 만든 거야."
단탈스는 호야에게 답을 해 주면서 수리가 끝난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를 건네주었다.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
등급: 유니크
공격력: 970
내구도: 110/110
*검으로 상대방을 타격할 시 작은 확률로 상태 이상 [출혈]을 발생시킵니다.
*상태 이상 [출혈]을 발생시킬 시 지속 시간 동안 자신의 HP를 극소량 회복합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단탈스가 새로운 마을의 일원을 환영하며 선물로 만든 검입니다.
메인 소재의 상태 자체가 그리 좋지 않지만 전설의 대장장이의 손을 거쳐 완성본 자체는 뛰어난 편입니다.
착용 제한: 힘 270, 체력 290 이상 전사
단탈스가 건네준 검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공격력이 500이나 내려가 버린 것은 뼈가 아프다 못해 부러진 느낌이었다.
호야는 단탈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서 모안에게 에르텔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물으러 찾아갔다.
"몰라."
아니, 왜?
모안의 입에서도 단탈스와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호야가 그것을 의아해하자 모안이 말을 이었다.
"에르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알고 있어?"
"아뇨."
"에르텔은 마력이 오랜 시간 동안 한 장소에 자연적으로 뭉쳐서 생성되는 광석이야. 즉 한번 구하면 그 장소에는 이제 없다, 이거지."
모안이 단탈스에게 건넸던 에르텔도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자신이 이곳에 20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마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아...... 그럼 지금은 못 구하겠네요......."
"여기저기 잘만 찾아보면 구할 수는 있을걸?"
모안의 말에 호야의 눈이 초롱초롱해지자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힌트를 줄게. '마력이 많은 장소'를 찾아봐. 잘하면 거기에 있을 거야."
모안은 더 이상 말하면 재미가 없다면서 그 이상의 힌트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힌트가 되었다.
마력이 많은 장소, 다르게 보면 '마력이 많은 생명체가 있는 장소'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호야는 마력 그 자체로 이루어진, 살아가고 있는 곳에 마력이 많이 흘러나와 있을 법한 생명체를 알고 있다.
"히에로스."
"안녕. ......!"
호야의 부름에 매혹적인 미소를 띠며 나타난 히에로스가 모안을 발견하더니 곧장 호야의 뒤로 몸을 감추었다.
이전에 처음으로 마을에서 히에로스를 불렀을 때에 호야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모안에게 정신 공격을 시도하다가 크게 혼이 난 뒤부터 이 모양이었다.
모안은 이제 그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히에로스는 그때의 일로 또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모안을 살짝 무서워하고 있었다.
"호, 호야. 자주 불러 주는 거는 좋지만 여기는 좀 피해 주라......."
"노력해 볼게."
"노력이 아닌 실천을 해 줘!"
히에로스의 행동에 호야는 모안에게 인사를 하고 히에로스와 그녀의 집을 나왔다.
그제야 히에로스가 조금 편안해진 듯 보였다.
호야는 히에로스에게 살고 있는 곳에 혹시 에르텔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에르텔? 몰라. 그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