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8화
8. 멈추는 첫 번째 검(1)
챙강-!
내구도가 빠르게 내려가던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가 결국 내구도가 0이 되어 두 동강이 나며 깨져버렸다.
검이 두 동강이 나며 결국 막지 못했던 아도라의 검이 호야의 가슴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크윽......!"
[칭호 '불굴의 의지'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HP를 1 회복한 채 즉시 부활합니다.]
[10초 동안 모든 스탯이 2배 상승하며 모든 공격이 치명타로 적용됩니다.]
[모든 스킬의 쿨 타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칭호 효과가 발동하면 뭐 하나, 무기를 잃었는데.
그리고 지금은 아도라를 향해 공격을 쏟아붓기보다는 얼른 크라우스를 불러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콰앙-!
내리쳐진 아도라의 검이 호야를 크게 베었지만 '불굴의 의지'의 효과로 인해서 호야는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사이를 이용해서 호야는 아도라의 공격으로 인해 크게 일은 먼지구름 속에서 마을 귀환을 사용했다.
먼지구름이 걷힌 자리에 호야가 없자 디노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꼴좋다!"
드디어 호야를 죽였다는 쾌감에 디노는 '플레이어를 죽여서 카오 수치가 상승합니다.'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스트리밍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호야가 사망했다고 생각했다.
-아...... 결국 졌네.
-마을 사람의 한계인가.
-그런데 솔직히 움직이는 거는 다른 랭커들보다 낫던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못 이겼으니 디노는 이제 누가 처리하냐?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호야는 크라우스의 집에 도착해 있었다.
* * *
크라우스는 호야가 다급하게 찾아와 꺼낸 이야기에 그 자리에서 우뚝 굳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아도라가 형을,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호야는 아도라가 모험가에 의하여 데스 나이트가 된 것, 그리고 자신을 멈춰 줄 사람을, 크라우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했다.
호야의 이야기를 들은 크라우스의 몸은 우뚝 굳어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고민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아도라를 멈추기 위해 가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일까.
과거에 그렇게 관계가 끝이 났는데 정말 자신이 가도 괜찮은 것인가.
고민했지만 크라우스의 머리는 제자를 만나러, 제자를 구하러 가고 싶다는 쪽에 좀 더 치우쳐 있었다.
주먹을 한번 강하게 움켜 쥔 크라우스가 자신의 검을 챙겼다.
"가자."
크라우스와 호야는 모안에게 가 워프를 부탁했고 모안은 당연하게도 사정을 물어 왔다.
호야의 입에서 '디노'라는 이름이 나오자 모안에게서 살기가 느껴진다.
"호오, 걔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이지?"
"네? 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호야는 모안이 작게 중얼거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안은 디노를 확실하게 손을 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많이 무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가볍게 그냥은 안 끝낸다.
그렇게 다짐한 모안이 크라우스에게 망토 하나를 건넸다.
"사정도 사정이니까 이번에는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크라우스, 마을의 규칙은 알고 있지? 그러니까 얼굴은 가려."
"......알았어."
크라우스가 망토의 후드를 깊게 눌러쓰자 모안이 호야와 크라우스를 이동시켜 주기 위하여 줄의 발밑에 워프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어? 손 안 잡아도 되는 거예요?"
"크흠, 조심해서 다녀와!"
모안은 호야의 말을 대충 넘겨 버렸다.
* * *
"수고했다."
디노가 그렇게 말하며 아도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직이다."
"뭐가?"
아도라의 말에 그의 고개를 따라서 디노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한 명은 후드를 깊게 쓰고 있었기에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한 명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왜 네가 살아 있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호야가 그곳에 있었다.
그제야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디노는 애초에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도망쳤다가 지원군이라도 데리고 온 거냐?"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그냥 그대로 도망이라도 치면 편할 것을 굳이 다시 돌아오다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는 망토는 누군지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지원군을 데리고 와 봤자 아도라를 이길 수 있는 녀석을 없을 것이라 디노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해."
"......그래."
그래,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도라는 호야의 옆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립고도 죄송했던...... 나의 스승님.
"......."
크라우스의 시야에 데스 나이트, 아도라가 들어왔다.
정말로 아도라가 있었다.
처참한 상태로 그곳에 있었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형.
그의 모습을 확인한 크라우스의 날카로워진 눈이 디노를 향했다.
오싹-.
디노는 어째서 갑자기 한기가 드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자신이 겁을 먹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디노는 아도라의 힘을 굳게 믿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처리 안 하고?"
디노의 말에 아도라가 강하게 도약했다.
중간 부분이 잘린 영화 필름처럼, 가볍게 눈을 깜빡이니 아도라는 크라우스와 이미 검을 맞대고 있었다.
아도라의 검에 전혀 밀리지 않는 크라우스의 검.
오히려 크라우스가 여유로워 보였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크라우스를 향한 감정과는 별개로 아도라의 검은 크라우스를 향해 전력으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대화와 상황이 묘하게 매치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아도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모든 게 다. 스승님의 가슴에 말로 상처를 입힌 것부터 시작해서."
챙, 채쟁-.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서걱- 쾅!
"모든 것이 죄스럽습니다."
아도라의 말에 크라우스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잔잔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래, 죄송스러워야지. 내가 그때 심적으로 얼마나 괴로웠는데."
크라우스의 한마디가 아도라의 가슴에 무겁게 내리박힌다.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다 옛날 일이야. 이제는 다 훌훌 털어 냈으니까...... 지금은 괜찮아. 형태가 이상하기는 해도 네가 먼저 나를 불러 줬잖아."
"......."
이번에는 아도라가 크라우스에게 답하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크라우스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과 속도로 움직인다.
"이제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이 복수도 내가 해 줄게."
"......네."
아도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크라우스에게 답했다.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아도라는 호야를 바라보았다.
아도라가 호야를 향해 말했다.
그의 모습과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인다.
"너는 꼭...... 스승님과 마지막까지 어울려 주거라. ......사형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지 말고서.
그 말을 끝으로 아도라는 빛의 알갱이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은색의 검만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어, 어어......."
아도라가 싱겁게 죽어 버린 광경에 디노가 잠시 언어 기능을 상실했다.
아니,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는 녀석이잖아!
디노는 그렇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켜져 있는 방송을 통해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것이 왜 저렇게 쉽게 죽어?
-망토님 개지린다;;
-저거 도대체 누구야?
-플레이어는 확실히 아닐 듯. 애서가도 저렇게까지는 힘을 못 내.
-솔직히 애서가는 호야 님처럼도 못할 것 같은데?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혔던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디노 저 짱 센 데스 나이트도 윽! 억! 당했으니 이제 끝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디노가 스트리밍을 켰던 초반에 그를 칭찬하던 사람들은 중간부터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야가 죽었다고 생각하자 강 건너 불구경처럼 아쉬워하면서 디노를 비난했으며 디노의 데스 나이트가 허무하게 당해 버린 지금에 와서 그를 향한 비난과 욕설이 절정에 다다랐다.
자신도 모르게 채팅 창을 확인한 디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모욕감으로 인한 떨림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망토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컸다.
디노는 지금까지 이니티움을 플레이 하면서 이렇게까지 강하고 격한 두려움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눈은 보이지도 않는데 눈빛에 꿰뚫릴 것 같은 기분이다.
그가 매우 천천히 걸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노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워프 스크롤은 그의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였다.
아니,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야."
"히끅!"
크라우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어느 목소리보다도 더 낮았고 분노가 가득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쉽게 무너지면 억울하니까 오래 버텨 주라?"
"뭐, 뭐를......?"
푹.
크라우스의 검이 디노의 오른쪽 허벅지를 꿰뚫었다.
겨우 허벅지 찔렀을 뿐인데 지금까지 이니티움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고통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디노의 입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고 뼈로 된 말에서 떨어져 주저앉아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감쌌다.
"아도라는 너 때문에 그것보다 몇백 배는 괴로운 고통을 느꼈을 거다. 그러니까......."
크라우스는 디노에게 통보하듯이 말했다.
"그만큼의 고통을 전부 느끼기 전까지 절대 보내 줄 생각은 없어."
크라우스는 그 후로 수십 분간 디노를 죽이지 않고 아도라의 복수를 했다.
자신을 훈련시킬 때 죽지 않게 조절하는 요령을 사용하면서까지 아도라의 복수를 했다.
솔직히 지금 크라우스가 하고 있는 일이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오히려 옛날이 생각나 거부감이 들었다.
......이러한 자신의 감정이 모순되어 있다는 것은 호야도 알고 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 다른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입장을 달리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도라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 예를 들어 이예숙이었다면 자신은 크라우스의 입장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아마 크라우스의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자신이 디노에게 했던 일도 크라우스가 하고 있는 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크라우스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호야의 말에 크라우스는 그제야 디노를 로그아웃 시켜 주었다.
그리고 디노가 로그아웃 되는 동시에 그의 스트리밍 또한 종료되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디노가 크라우스에게 당하는 모습은 그대로 스트리밍 되었다.
이니티움에 한 가지 소문이 새롭게 생겨났다.
마을 사람인 호야를 건들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망토가 나타나 그의 복수를 행한다는 소문이었다.
디노의 스트리밍을 통해 비친 망토, 크라우스의 모습은 두려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크라우스와 아도라의 관계에 대해 몰랐으니 호야의 복수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이번 일은 아도라에 대한 복수이기는 했지만 만약 호야가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크라우스는 아마 그때에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크라우스만이 아닌 오르도의 주민 모두가.
그 뒤로 시간이 흘러서 디노의 이름이 랭킹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