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7화
7. 멈추고 싶은 두 번째 검(2)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나날.
평화로운 시간에는 스승님의 아래에서 검술을 단련하며 업무를 보았고 자신의 힘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검을 들고서 그곳으로 향한다.
그때도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던 훈련 시간에 불과했다.
스승님과 검을 맞대고 기술을 배운다.
검을 맞댄다고 하기보다는 거의 얻어맞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스승님의 지도로 인해서 나의 검술이 예전과 비교해 수십, 수백 보는 전진해 있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이렇게까지 성장한 자신에게 아직 부족하다며 만족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스승님에게 살짝 화가 났었다.
이렇게까지 성장했는데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살짝 화가 났었다.
"이제 적당히 해 주세요, 스승님! 저는 이미 이 나라 최고의 검입니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자신의 속에 쌓여 간 불만이 어느 것을 계기로 폭발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그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말을 듣고 난 후의 스승님의 표정을.
그때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스승님의 훈련 시간이 줄어들고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스승님과의 훈련이 아예 사라지고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난 뒤 시간이 흐르자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곁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에 깨달아 봐야 너무 늦었다.
후회가 생겨났을 때에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만약 스승님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때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 스승님과의 관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처음 스승님과 만났던 그때로.
* * *
분명 자신은 죽었었다.
한데 눈을 떠 보니 살아 있을 적 자주 찾아와 선조들에게 기도를 올렸던 왕묘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자 자신의 몸이 저절로 움직여 관을 나왔다.
관에 누워 있던 것을 보니 자신이 확실하게 죽기는 했었나 보다.
그런데 왜 다시 살아난 것이지?
아니, 살아난 것이 맞기는 한가?
자신의 몸인데 자신의 몸 같지 않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네놈은 무엇이냐."
그렇게 말한 자신에게 그는 자신이 나의 주인님이라는 망언을 해 왔다.
웃기지 마라.
내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앞으로도 그 한 명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의 몸은 그 남자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머리밖에 없었다.
잠시 시야가 암전되고 나서 다시 시야가 밝아지자 자신은 지하 왕묘가 아닌 처음 보는 건물의 앞에 서 있었다.
남자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자 몸이 그 남자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멋대로 움직인다.
그것에 반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아주 잠시 동안 멈칫하는 것이 다였다.
남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건물에 있던 이들이 모두 나의 검에 의하여 쓰러졌다.
다시 시야가 암전되었고, 시야가 밝아지자 자신은 또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명령에 따라서 눈앞에 있는 자들을 베어 갔다.
계속 반항하려 시도하였지만 기계적인 움직임이 반복될 뿐이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갔고 심적으로 괴로웠다.
스승님이 생각났다.
스승님이 나타나 자신을 멈춰 주는 상상을 해 봤다.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남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서 조금씩 획득한 정보로 안 것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죽고 나서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스승님이 그 시간 동안 살아 있을까?
무언가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노화가 멈춘다는 설이 있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스승님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을 것이다.
제자 된 입장에서 그런 말을 내뱉었었다.
스승님은 자신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남자의 명령으로 인해서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누군가가, 제발 아무나 자신을 멈추어 주었으면 했다.
다시 자신을 죽음이라는 안식으로 인도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 모험가 하나가 홀로 남자에게 공격을 가해 왔다.
지금까지 봐 왔던 모험가들 중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뛰어난 힘과 실력이 느껴졌지만 자신을 멈추어 줄 수준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동시에 슬펐다.
지금 시대에 자신을 멈추어 줄 수 있는 이가 남아 있을까?
"......미안하구나."
공격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검을 쥔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간신히 나의 손에서 벋어난 그가 물약을 재빨리 마셔서 회복하고는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버프, 신성력. 신의 가호."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스킬에 크게 놀랐다.
"검기."
검기가 귀한 스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술의 종류나 가르쳐 준 이에 따라서 다른 것이 검기이기도 하다.
눈앞의 모험가가 사용한 것은 자신이 스승에게 배웠던 것과 똑같은 검기가 분명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속."
설마 하는 생각이 곧 확신이 되었다.
체념으로 인해서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을 부여잡고 모험가의 동작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그가 자신과 같은 검술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모험가는 자신의 스승에게 검술을 배웠다.
그렇게 확신하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너...... 조금 전의 그 기술,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말해, 스승님이 아직 살아 있다고.
나를 멈추어 줄 사람이 있다고.
"대답해라!"
눈물 따위, 옛날 옛적에 말라 버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얇은 물줄기 하나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나는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 * *
쐐액-!
아도라의 검이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호야의 왼쪽 어깨를 향해 휘둘러졌다.
자신을 노리는 아도라의 검을 호야는 자신의 검으로 앞을 막음과 동시에 자신의 검을 살짝 돌려서 그의 검을 흘려 냈다.
하지만 아도라의 검은 호야의 팔에 작은 상처를 남겼다.
아도라의 검을 완전히 막아서기에는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피하기 전에 우선 아도라의 공격을 비트는 것이 피해가 제일 적었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지만.
하지만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었기에 호야는 아도라의 검을 흘린 뒤 자신의 손목을 비틀며 아도라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그런 호야의 검을 아도라는 비틀렸던 자신의 검을 순식간에 휘둘러 가로막았다.
'이런.......'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것을 인지한 호야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바로 아도라에게서 떨어졌다.
그 직후 호야가 있던 곳의 허공을 아도라의 검이 갈랐다.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 늦었던 듯, 호야의 가슴팍에서는 붉은색의 얇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눈앞에 있는 아도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
생각해라, 생각해.
아도라는 호야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신속."
아도라가 그리 말하자 순식간의 그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프, 플라이!"
호야의 본능이 격하게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모안의 마법 술식이 중급으로 성장하면서 생겼던, 익숙해지지 않아 지금까지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즉시 날아올랐다.
[제4술식 - 플라이]
자신의 몸을 공중에 띄웁니다.
공중에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세하고 정확한 컨트롤을 필요로 합니다.
사용 MP: 1초 지속에 50MP 사용, 최대 지속 시간 1분
재사용 대기 시간: 3시간
하늘을 난다는 감각이 생각보다 위화감이 있었기에 호야는 아직 이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직선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다였다.
부드러운 움직임은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큰 도움이 되었다.
호야가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그가 있던 자리를 아도라의 검이 횡으로 그었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공중에 높이 올라온 호야는 지금의 거리상의 이점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피어를 사용했다.
아도라와의 싸움 도중에는 도저히 스피어를 사용할 틈이 나지를 않았었다.
핑- 핑- 핑-.
운 나쁘게도 탁한 마법의 팔찌의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세 개의 얼음의 창이 하늘에서 아도라를 향해 내리꽂혔고 호야는 그 뒤에 몸을 숨겨 아도라를 향해 떨어졌다.
챙- 채쟁, 챙.
스피어가 아도라의 시야를 가려 주고 정신을 돌려 주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공격은 제대로 들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호야의 희망 사항이었나 보다.
호야의 검이 아도라에게 닿아서 그에게 대미지를 안겨 주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호야의 품속을 찌르고 들어온 아도라의 검이 호야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크윽......!"
품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아도라의 검을 옆구리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대미지를 줄이기는 했지만 많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물약을 마실 틈이 없기에 호야는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에게 힐을 걸었다.
홀리 실드는 이미 깨진 지 오래였다.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었다.
이대로 길게 이어진다면 마지막에는 '불굴의 의지'의 효과가 터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흐억, 허억."
이렇게까지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가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상대와 싸우는 것은 크라우스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제대로 통하는 스킬이 하나도 없었다.
"......너는 스킬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도라가 호야의 그런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찔러 왔다.
"......지금의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뼈가 저리도록 아픈 말이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호야는 지금 자신의 한계를 확실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지금 존재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녀석...... 아니, 사제라고 불러야 하나. 너도 알고 있는 인물이다."
아도라가 꺼내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스승님...... 크라우스 님을 불러와라."
[퀘스트 '영원한 안식'이 발생되었습니다.]
[영원한 안식]
당대 두 번째 검이라 불리던 아도라 루제로스.
그는 데스 나이트로서 부활한 지금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영원한 안식으로 돌아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를 안식으로 이끌 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는 그런 당신이 자신과 같은 스승을 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임과 동시에 지금은 당신의 스승인 크라우스를 불러와 자신을 멈춰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에게 안식을 선물해 주세요.
완료 조건: 데스 나이트 - 아도라 루제로스의 사망 (0/1)
성공 보상: 스킬 '중급 크라우스식 검술'의 숙련도 10% 증가, 경험치
실패 패널티: 없음
호야는 퀘스트를 보고서 왜 그가 그러한 말을 꺼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멈추어 줄 이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자신이 사용하는 스킬을 보고서 크라우스가 자신에게 검술을 알려 주었음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멈추어 줄 이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다시 바라본 투구 사이로 보이는 아도라의 눈을 보고 호야는 그가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챙- 채쟁- 스걱.
하지만 그런 그의 진심과는 다르게 그의 몸은 디노의 의지하에 행동하고 있었다.
퀘스트를 받고 나니 그가 지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괴로움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스승님을...... 스승님을 불러와."
아도라에게서 진심을 느낀 호야는 말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의 호야는 아도라를 이길 수 없었다.
그를 막기 위해서는 스승님, 크라우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