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3권 2화
2. 이즈바론트의 수호(4)
"이건......."
땅끝 마을 오르도.
자신의 집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던 모안이 왜곡된 공간 너머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것을 감지하기는 했지만 모안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몬스터 웨이브는 1~2년의 오차는 있지만 수십 년을 주기로 항상 발생해 오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버린 자신들은 세계의 일에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녀가 만든 규칙이다.
특히 자신들의 개입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라면 더더욱.
현재의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 * *
"피이이이익-!"
호야의 검에 꿰뚫린 히포그리프가 비명을 흘리며 깃털 하나를 남기고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호야는 현재까지 수십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사냥했다.
하지만 아이템이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깃털을 집어 든 호야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오염된 히포그리프의 깃털]
마기에 오염된 히포그리프의 깃털입니다.
히포그리프의 깃털은 연금술사들이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지만 마기에 오염되어 가치를 잃은 상태입니다.
"......."
처음에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했을 때에는 혹시나 했다.
몬스터의 이름 앞에 붙은 '오염된'이라는 수식어를 확인했을 때에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곳과는 다르게 '그것'에 오염이 될 이유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런 호야의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지금 이즈바론트에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의 몬스터들은 오염된 숲의 엔트들처럼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다.
마족들이 내뿜는 기운이 바로 '마기'.
오염된 숲의 엔트들은 가까운 장소에 마족들이 사는 마계와의 경계가 있다.
엔트들은 그것이 원인으로 마계에서 조금씩 새어 나온 마기에 의해 오염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몬스터들은?
마족 혹은 그것과 비슷한 원인이 될 만한 것이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것일까.
'......일단은 이 일을 모안에게 알리자.'
무언가 이상하다.
호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에게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불온한 움직임'이 발생되었습니다.]
[불온한 움직임]
이곳에서는 절대 발견되어서는 안 될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이상 상황을 오르도의 주민으로서 오르도의 촌장, 모안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안에게 오염된 몬스터들의 발생 사실을 전해 주세요.
완료 조건: 모안에게 이즈바론트에 나타난 오염된 몬스터들에 대하여 알린다.
성공 보상: 오르도의 주민 전원의 호감도 소폭 상승, 경험치
실패 패널티: 오르도의 주민 전원의 호감도 하락
이 사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호야의 생각은 맞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던 참이었다.
호야는 모안에게 지금의 일을 알리기 위하여 마을 귀환을 사용하려고 했다.
[현재 일부 워프 스킬의 사용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마을 귀환도 제한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모안에게 이 일을 알려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오염된 몬스터들을 모두 사냥하여 퀘스트 '이즈바론트의 수호 2'를 클리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가호."
호야는 지금까지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며 몬스터를 사냥해 갔다.
오염된 몬스터들이 어둠 속성으로 분류가 된다는 것은 이미 도반에게서 전해 들은 사실이었다.
하나, 둘, 셋, 넷.......
한참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자 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이즈바론트와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어스윙.
생긴 것이 평범한 어스윙과는 미묘하게 생긴 것이 달랐다.
그 날아가던 어스윙을 따라서 돌아가던 호야의 고개가 멈추었다.
재빠르게 날아가던 어스윙을 거대한 붉은색 곰이 낚아채어 자신의 입으로 넣어 버리는 것이 지평선에 걸쳐서 보였다.
어스윙을 삼킨 기간트 레드 베어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멀리 떨어진 호야에게 집중되었다.
호야를 바라보는 기간트 레드 베어의 눈은 어째서인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쿠어어어어!"
기간트 레드 베어의 불꽃처럼 붉은 털이 진짜 불꽃이 되었다.
기간트 레드 베어가 그에게로 달려와 불타는 주먹을 호야에게 내질렀다.
덩치와는 맞지 않게 꽤나 재빠른 발과 주먹이었다.
콰앙!
호야는 기간트 레드 베어의 주먹을 검으로 우선 막아 내었다.
예상보다도 강한 압박감이 느껴져 온다.
"신속."
신속을 사용한 호야는 10초 동안 기간트 레드 베어를 난도질했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타오르는 몸을 스치면서 불길로 인해 대미지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
레벨: 305
떠오른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의 정보에 호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드 보스 몬스터인 기간트 레드 베어의 원래 레벨은 210.
오염된 몬스터가 보통의 몬스터보다 수십 레벨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간트 레드 베어는 다른 오염된 몬스터들보다 더 나아가서 원래의 상태보다 레벨이 100 가까이 높았다.
심지어 도반과 레벨이 같았다.
현재 최상위 랭커들이 레이드를 해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수준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의 놀라운 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
레벨: 306
⋮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
레벨: 307
⋮
"무슨......."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의 레벨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대략 5초에 레벨 한 개가 올라가고 있다.
레벨이 상승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빨리 끝내지 않으면 꽤나 일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를 잡자고 해서 여기서 스킬을 다 뺄 수는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오염된 몬스터들을 생각해야 했다.
최소한의 스킬로 최대의 효율로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를 잡아야 했다.
그러니까,
"버프, 신성력."
큰 걸로 한 방 먹여야겠다고 호야는 생각했다.
"마을 사람의 일격."
* * *
"섬광."
새하얀 선이 허공에 그려지더니 선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대미지를 받고서 몸에 성흔을 새겼다.
도반은 차분히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불길을 새기며 뛰어다니고 있는 하얀 밧줄을 목에 감은 검은 늑대와 까맣고 하얀 소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지평선에서 붉은색의 거대한 무언가가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지평선을 완전히 빠져나온 붉은 것의 정체를 도반은 바로 알아봤다.
기간트 레드 베어, 그것이 향해 간 방향의 앞에는 호야가 있었다.
콰앙!
이내 큰 굉음과 함께 호야가 받은 전투 판정으로 인하여 파티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도반에게도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의 정보가 떠올랐다.
"......!"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는 자신과 레벨이 같았다.
아니, 어째서인지 레벨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도반은 자신이 호야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서 바로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마을 사람의 일격."
호야가 마을 사람의 일격을 사용해 생긴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 자리에는 이미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가 빛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봐, 인간. 안 움직이고 여기서 뭐 해? 얼른 움직여!"
"......그래."
그 장면에 우뚝 멈추어 섰던 도반을 히에로스가 나무랐다.
히에로스의 나무람에 도반은 다시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계속 몬스터를 사냥했지만 도반의 시선은 간헐적으로 호야를 향하고 있었다.
* * *
호야는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가 사라진 장소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들을 모두 수거했다.
모두라고 해 봤자 표면이 살짝 녹아내린 검은 구슬 하나와 마기에 오염되어 가치를 잃었다거나 혹은 위험한 상태라는 설명이 불어 있는 소재와 아이템 몇 개가 전부였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살코기도 있었지만 오염되어 먹을 것이 못 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호야가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가 드랍 한 아이템들 중에서 주목한 것은 살짝 녹아내린 검은 구슬이었다.
[불완전한 마기의 정수]
마족의 마기가 오랜 기간 뭉쳐서 형성된 구슬입니다.
몬스터에게 직접 흡수되고 있던 것이기에 뭉쳐 있는 마기가 많이 옅어진 상태입니다.
몬스터를 향해 구슬 안에 있는 마기를 흘려 보낼 시 몬스터를 마기에 오염시킵니다.
오염된 몬스터는 힘이 강화되며 더욱 강한 힘을 가지기 위해 마기의 정수를 추적합니다.
'마족의 마기'라고 확실하게 쓰여 있었다.
내용을 보아하니 이 구슬이 이 몬스터 웨이브의 원인인 듯했다.
그 증거로 남문에 있는 몬스터들의 시선이 호야에게 쏠려 있었다.
마기의 정수가 탐이 날 만도 했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는 호야에게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몬스터들도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가 그의 일격으로 죽는 것을 봤기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는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만이 기회를 노리며 호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호야에게 달려든 몬스터들은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
호야는 남문에 있는 오염된 몬스터를 빠르게 사냥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기의 정수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태의 원인은 알아냈다.
일부뿐이지만 마기의 정수로 인해서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자신에게로 끌리고 있었다.
아마 호야가 오염된 기간트 레드 베어를 잡는 모습을 보지 못한 다른 문으로 이동한다면 더 많은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끌릴 것이다.
호야는 이것을 이용해서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모안에게로 향할 셈이었다.
* * *
SBC의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다른 방송국들에서도 이니티움 관련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예능 프로그램들까지 생겨나면서 시청률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14%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슬슬 위험하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즈바론트의 몬스터 웨이브에 관한 소식이 들어왔다.
"모두 하던 일 멈춰!"
"PD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게다가 모두라고 해 봤자 지금 사무실에 있는 건 저랑 PD님이랑 서브 작가님밖에 없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PD님?"
"이즈바론트에 빅뉴스 떴다!"
박봉석은 둘에게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이니티움 관련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것들이 모니터링을 잘 하지 않는 것인지 소식이 느리다.
박봉석의 말을 들은 이수아와 최경아가 눈을 빛냈다.
"내가 직접 갈 거니까, 빨리 움직여!"
"빠, 빨리 가죠!"
"아, 잠깐만요! 저랑 서브 작가님 중에 누가 가요? 저희 캡슐 두 개밖에 없잖아요!"
"너희 둘 다 갈 거야! 막내 너는 캡슐 방에 가서 들어와라! 서둘러!"
"아, 네!"
박종석의 말에 이수아가 휴대폰이랑 지갑만을 챙긴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마을 사람의 섭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시청률이 슬슬 내려가면서 박봉석은 위에서 내려오는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상태였다.
'캡슐 방에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갔습니다!'같은 일이라도 생기면 그 스트레스가 그대로 자신에게 내려올 것이 뻔했다.
이수아는 SBC 방송사 건물을 나가면서 주변 캡슐 방에 모조리 전화를 돌렸다.
"사장님! 캡슐 자리 있나요?!"
-아, 잠시만요. 딱 하나 비어 있.......
"그 자리! 제가 갈게요! 예약 좀 해 주세요!"
-어어...... 우리는 예약 안 받는데?
"요금 따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