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24화
24. 이즈바론트의 수호(1)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디노는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렸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어두운 동굴에는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 누구야! 어디 있어! 당장 안 튀어나와?!"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디노의 반응이 우스운 것인지 실체 없이 온 동굴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가 누군지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
계속해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씨이바알...... 도대체 뭐냐고......!"
-입 더러운 것은 마음에 드는군.
디노가 주먹을 강하게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로 인한 떨림인 것일까, 아니면 공포로 인한 떨림인 것일까.
둘 중 무엇이 이 떨림의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화악-.
디노의 주먹의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던 그때에 그의 등 뒤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빛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본 그곳에는 검은색 구슬 하나가 허공에 떠 있었다.
흉흉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작은 구슬.
-너는 운이 참 좋아. 내 눈에 들어서 이렇게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가 마치 귓가에 직접 속삭이듯이 변하였다.
-내가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힘을, 그 경비들의 눈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주지. 너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너무 자신에게만 좋은 달콤한 말이었기에 의심부터 갔다.
디노의 질문에 그의 귓가에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네가 저 구슬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내게 보여라!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목소리에 홀린 디노의 손이 천천히 검은 구슬을 향해 뻗어졌다.
검은색 구슬을 잡음과 동시에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디노는 짙게 웃음 지었다.
"이것만 있으면......."
경비들의 눈을 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피해도 입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땅을 뼈 빠지게 돌아다녀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말이다.
* * *
"크크크, 좋아, 아주 좋아. 열심히 움직여 주는군."
가곤은 눈앞에 놓여 있는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디노의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헤이든 님의 명령을 받고서 저 구슬을 누구에게 흘릴까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에 악의가 한가득 풍기고 있는 동굴이 있었기에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디노가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과 자신의 목적은 완벽히 일치했다.
그는 경비의 눈을 돌릴 힘을 원했고 자신은 저 검은 구슬의 실험을 위한 꼭두각시가 필요했다.
가곤은 의도치 않게 딱 좋은 인재를 발견한 것을 기뻐했다.
지금도 열심히 움직여 주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가곤, 뭘 하고 있는 거야?"
"루시엘?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미세한 잡음도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흡족해하며 웃음 짓고 있던 가곤에게 한 여성이 다가와 무심하게 말을 걸었다.
"그냥...... 헤이든 님께서 당신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셨다고 들어서 궁금해서 왔어."
루시엘의 말에 가곤은 입이 찢어지도록 크게 웃었다.
"그래! 드디어 헤이든 님께서 내 진언을 받아들여 주신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 좁은 곳을 나갈 거다!"
"......여기도 딱히 좁지는 않잖아?"
"무르군! 너무 물러!"
가곤은 루시엘의 말에 역정을 내뱉었다.
그녀의 패배자 같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녀석들은 모두가 선대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평화에 너무 찌들어 버렸다.
가곤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발코니의 문을 열어젖히며 바깥 풍경을 등진 채 과장된 동작을 보이며 말했다.
"이곳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면! 아무리 넓어도 좁은 것이 당연하지 않나! 나는 이곳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들의 선대처럼! 힘으로 그들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가곤의 엄청난 열기에도 루시엘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그래, 헤이든 님의 명령이니."
"그래! 헤이든 님의 명령이라고! 그분이 드디어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다!"
루시엘은 가곤의 말을 끝까지 다 듣지 않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가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여전히 무심했지만 한 줌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가곤은 눈치채지 못했다.
곧 일어날 가곤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가곤에게는 선대들의 성향과 영향이 너무 짙게 남아 버렸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민폐라는 것을 가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옳고 우리가 틀린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가곤은 자신의 사상이, 선대들의 말과 행동들이 모두 옳고 우리가 행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아닌데도 말이다.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잡초는 뿌리째 다 뽑아 줘야겠지.'
그래야지 잔디가 깨끗해지고 평화로워질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트리머 로랑입니다!"
-네, 안녕해요~.
-오늘은 어디에 가 있는 겁니까.
-우리 로랑 님, 툭하면 숲속이네.
-이니티움에 숲이 좀 많잖아.
은신 탐험가라는 히든 직업을 지닌 스트리머 로랑.
블랙헤븐과 호수, 가 아니라 블랙헤븐과 호야와의 영상을 찍어서 게시한 뒤부터 그의 시청자는 꽤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현재 평균 시청자 수는 약 16만 명.
시청자가 늘어난 만큼 시청자들이 주는 골드의 양도 늘어났기에 로랑의 얼굴에서는 연신 미소가 떠나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죠~ 이니티움에는 숲이 차암 많아요. 그렇게 많고 많은 숲들 중에서 이곳이 어디냐면......."
쿵, 쿵, 쿠웅.
로랑이 장소를 공개하려는 타이밍에 멀리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그 진동으로 인해서 화면이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여기에는 이런 진동을 발생시킬 몬스터가 없는데......?'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모두 비행형 몬스터다.
로랑은 그중에서도 붉은색 벌처럼 생긴 레드 비의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뭐야, 뭐야. 뭔데 화면이 흔들려?
-가랏! 로랑몬!
-이 진동이 오늘 보려고 하는 몬스터인가요?
-오늘 보려던 게 아니라고 해도 무지하게 궁금한데 그냥 가시죠!
하지만 방향을 레드 비의 집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었고 로랑 자신도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뭔가 대박의 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로랑은 진동이 전해지고 있는 방향으로 다가갈수록 수많은 기척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숲의 나무들 위로 거대한 몬스터의 상체가 보였다.
"어......?"
-헐, 뭐야. 저게 왜 숲에 있어?
-오늘이 리젠 날이기는 한데...... 왜 여기 있어?
-근데 몬스터 생긴 거로만 보면 솔직히 사막보다는 숲이 어울리지 않냐?
-후딱 커뮤니티 갔다 왔는데 리젠 되고 나서 몇 분 지나니까 뭔가에 홀린 듯이 플레이어들을 뚫고서 사라졌다는데?
나무 위로 보이는 거대한 붉은색 곰의 상체.
사막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필드 보스 몬스터 '기간트 레드 베어'였다.
레드 비가 서식하는 이 숲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동떨어진 장소에 있어야 할 녀석이었다.
그런데 왜 저게 이곳에 있는 거지?
솔직히 외견상으로는 사막보다 숲이 더 잘 어울리기는 했다.
"......뭔가 대박의 냄새가 나니 조금 더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기간트 레드 베어는 선공 몬스터. 하지만 자신은 선공을 받지 않는다.
로랑은 그것을 믿고서 기간트 레드 베어에게 조금 더 가까이, 빠르게 다가갔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등을 쫓는 형태로 조금씩 가까워지자 기간트 레드 베어가 숲에 있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종류와 서식지, 서로 간의 적대 관계에 상관없이 모여 있는 몬스터들의 무리.
그것이 기간트 레드 베어의 발치에 있었다.
기간트 레드 베어가 발을 옮길 때마다 수 마리의 몬스터가 밟혀 죽는다.
그로 인해서 기간트 레드 베어의 앞에 나서는 몬스터는 없었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뒤를 한번 가볍게 둘러보아도 족히 수백이 넘는 몬스터의 무리였다.
게다가 몬스터의 상태도 평소하고는 조금 달라 보였다.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 같았다.
로랑과 그의 스트리밍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놀라워하고 있을 때 그에게 퀘스트 하나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이즈바론트의 위기'가 발생되었습니다.]
[이즈바론트의 위기]
당신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무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몬스터들이 향하는 곳은 루제로스의 수도, 중앙 도시 이즈바론트.
지금 당장 달려가 몬스터 웨이브의 발생에 대한 소식을 전달해야만 합니다.
완료 조건: 이즈바론트의 병사에게 몬스터 웨이브의 소식 전달
성공 보상: 이즈바론트 주민들과 루제로스 왕실의 호감도 소폭 상승, 경험치
실패 패널티: 없음
발생된 퀘스트를 본 로랑의 행동은 재빨랐다.
"시청자 여러분,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인하여 오늘 스트리밍의 주제는 몬스터 관찰이 아닌 이즈바론트의 위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박 방송 콘텐츠를 우연히 구하는 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왕실의 기여도를 올릴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로랑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이즈바론트의 워프 스크롤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즈바론트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 * *
[도반: 아헤샤의 동쪽 외곽에는 사실 숨은 맛집이 있다. 나도 가끔 들르고는 해.]
[도반: 사실 나는 술을 잘 못 마셔. 그것으로 유아가 많이 놀리지.]
[도반: 나는 지금 아헤샤에 있는데 너는 어디 있어?]
[도반: 전에 말이야.......]
⋮
호야와 친구 추가를 하고 하루가 지난 시점부터 도반은 호야에게 꽤 자주 귓속말을 보내왔다.
호야도 그의 귓속말에 꼬박고박 답을 보내 주었다.
한데 대화가 이어지지를 않는다.
마이 웨이 같다고 할까, 왜 자신에게 저러한 것들을 말해 주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뭐 하고 있나?"
"흐억!"
갑작스럽게 뒤에서 나타난 기척과 목소리에 호야는 깜짝 놀랐다.
"도, 도반 씨, 오실 때에는 미리 귓속말로 알려 달라고 했잖아요."
"......깜빡했어."
예전에 도반이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옆에 나타났을 때 호야는 기겁을 했었다.
방금 전까지 아헤샤에 있다고 했던 사람이 치빈이 알려 준 자신밖에 모르는 사냥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놀라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자신의 스킬이라고 한다.
원래는 성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 그녀에게 바로 달려가기 위한 스킬이지만 부수적인 효과로 24시간에 한 번은 친구 목록에 있는 플레이어를 상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상이 던전 같은 장소에 진입해 있을 때는 사용 불가.
도반은 그것을 이용해 거의 2~3일에 한 번꼴로 호야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여기는...... 이즈바론트인가?"
"네, 인벤토리에 있던 워프 스크롤이 여기 거밖에 안 남아 있더라고요."
"그렇군."
호야는 아직 치빈이 점찍어 준 사냥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덕에 물약을 채울 때에는 워프 스크롤을 사용했고 다시 사냥터에 돌아갈 때에는 모안의 도움을 빌리고 있었다.
호야는 물약의 구매를 위해 잡화점으로 걸음을 옮겼고 도반은 그런 그의 뒤를 쫓았다.
마치 어미를 쫓아다니는 새끼처럼.
도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야의 뒤를 쫓았다.
오히려 귓속말이 더 수다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호야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꽤나 익숙해졌다.
"저는 이제 다시 가 볼게요."
"으음."
잡화점에서 물약을 모두 채운 후 도반과 헤어지려던 호야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호야와 도반을 포함한 이즈바론트에 있는 플레이어 전원에게 동일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탔다.
[퀘스트 '이즈바론트의 수호 1'이 발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