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48화 (48/171)

# 4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23화

23. 디노의 분노

"나, 호야랑 만났다."

"뭐?"

뉴욕 센트럴 파크의 바로 옆에 위치한 도반과 유아가 함께 지내는 펜트하우스.

유아는 앞뒤 다 자르고 예고도 없이 나온 도반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음...... 그 마을 사람?"

"친구 추가까지 했어."

질문에 맞지 않는 대답이 나오고 있었다.

아니, 제발 자기 할 말만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유아는 인내심을 가지고 도반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은 뒤에야 그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해 보자면, 성녀가 불러서 갔는데 성녀의 방에서 그 호야라는 마을 사람이 나왔다는 거지?"

"그래."

"그리고 너는 밑도 끝도 없이 친구 추가를 하자고 말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친구 추가를 받아 냈다?"

"맞아."

유아는 도반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사람이 너를 뭐라고 생각하겠냐."

"도반."

"그런 말이 아니잖아!"

한 가지 목표가 정해지면 생각은 하지 않고 먼저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은 도반의 좋은 버릇이기도 했으면서 나쁜 버릇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가?"

"친구 추가를 한 다음에는 뭘 했냐고."

"......아무것도."

도반의 말을 들은 유아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대충 이럴 줄 예상은 했다.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귓속말 한 번 안 했다고 한다.

용케도 상대방이 친구 상태를 계속 유지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도반이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다니.......'

몇 년 전의 그 동양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유아는 장식장 한편에 올려져 있는 액자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가 찍혀 있었다.

세 명의 남자들 중 중심에는 도반이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오른쪽으로 잇몸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는 유아가 있었고 왼쪽에는 키 차이 때문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도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동양인이 한 명 있었다.

사진에 찍힌 도반과 유아의 얼굴이 지금보다 살짝 젊은 것이 찍은 지 조금 시간이 흐른 사진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유아는 그 사진을 보면서 살짝 생각에 잠겼다.

방학을 맞이해서 고향에 다녀온다고 한 뒤로 연락이 끊긴 작은 동양인 친구.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다.

"으음, 어쨌든 네가 먼저 다가갔다는 거는 그와 친해지고 싶다는 거지?"

"그렇게 되겠지."

"그래서 너는 친구 추가를 한 상태로 만족해?"

"......."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도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친구 추가에서 끝내지 말고 귓속말로 잡담이라도 나눠 봐. 그러면 조금이라도 친해지겠지."

"......그렇게 해 볼게."

"파이팅, 친구!"

몇 년 전의 그처럼 이번에도 좋은 친구로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돼서 그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으면 했다.

지금은 유아 혼자서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옛날부터 말주변이 없고 자기주장이 서툴렀기에 도반의 주변에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사람은 항상 많았지만 친구라 할 만한 이는 유아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아는 그 마을 사람이 도반의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깊이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서 자신과만 붙어서 다니는 것을 슬슬 졸업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나도 여자 친구랑 데이트 좀 하고 그러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그 마을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 * *

"으으......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이름 모를 숲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나무와 풀들로 인해서 절묘하게 존재가 가려진 어두운 동굴에서 한 남자가 몸을 숨긴 채 욕을 곱씹고 있었다.

"씨이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생각하기도 싫지만 잊지도 못하는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약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일들 모두가 전부 그에게는 안 좋은 일들이었다.

자신의 위치와 체면을 모두 갉아먹은 그 치욕스러운 일이 있던 후부터 접속만 하면 계속 같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아 왔다.

[즉사에 이르는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이제는 아주 노이로제까지 걸릴 것 같은 지경이었다.

이미 걸렸을 수도 있고.

계속 원인 모를 사망을 맞이하며 내려간 레벨은 무려 48개.

다른 플레이어들은 레벨을 올리며 한 발, 두 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에 그는 세 발, 네 발, 다섯 발은 후퇴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랭킹도 아주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그는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게임의 오류나 버그로 인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자신이 그런 모욕을 당했던 것도 전부 오류일 것이다!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고 상황을 외면하면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네오워즈에 문의를 넣었다.

하지만 네오워즈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귀하가 문의 주신 내용은 게임의 오류나 버그가 아니다.'라는 뜻을 길게 미사여구를 붙여 가며 작성된 몇 줄의 문장이 다였다.

그가 공들여 키운 길드는 이미 길드원들이 모두 빠져나가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에 불구했다.

이제는 겉이 번지르르하지도 않다.

알맹이도 없고 포장지도 없는 것이 그가 공들여 키운 길드의 말로였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길드 마스터의 자리를 지키기는 했다.

하지만 계속 캐릭터가 사망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그도 드디어 흔히들 '블랙헤븐의 저주'라고 말하는 소문에 혹하여 결국 길드 마스터의 자리를 내던졌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그 시점에서 그의 캐릭터는 사망하는 일이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계속 사망을 맞이했었고 그것이 며칠 전에야 겨우 끝을 맞이했다.

이제 그는 원인도 모른 채 사망하는 일을 겪지 않는다.

끝이 나기는 했지만 머릿속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두려움과 불안함에 그는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상상하면 그 지긋지긋한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하는 장면이 이어서 떠올랐다.

그렇게 몰릴 만큼 몰린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동안 쌓아 올렸던 인맥들에게 자존심 다 내리고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들여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던 인맥들은 대부분이 이미 친구 목록에서 이름을 지운 뒤였다.

친구 목록에 남아 있던 이들도 그의 귓속말이 날아가자 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도 그중에 딱 한 명,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있던 장소에 찾아온 이들은 그를 돕기 위해서 온 자들이 아닌 그를 척살하러 온 자들이었다.

한 병에 대학 등록금 한 학기의 돈이 든다는 그 비싼 성수를 지참해 가면서까지 말이다.

그가 인맥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모두가 그저 빈틈을 보이면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개새끼들......!'

자신의 앞에서 고개도 못 들던 것들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것은 클로에였다.

애교도 많고 사랑스러운 클로에.

약간 허당기가 있으면서도 날카롭고 똑똑했던 클로에.

그가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여자 친구.

하지만 믿었던 그녀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친구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그녀도 자신처럼 길드를 나간 후에도 계속 사망을 맞이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 때문에 정신적으로 몰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쯤 자신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도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멘트만 계속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로에가 나를 버렸어.......'

서로 그렇게 사랑을 속삭였었는데.......

그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픈 한편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공들여서 키우던 길드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체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고생해 가며 몰렸던 레벨이 수십 개가 내려갔다.

지금까지 잘 관리하면서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던 인맥들은 인맥이 아니라 원수였다.

그렇게 믿었던 여자 친구에게까지 버림받았다.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불쌍하고 불합리하다고 느껴졌다.

왜 내가 지금 이러한 꼴을 겪고 있는 것이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은 단 한 명의 플레이어였다.

"호야......!"

그도 커뮤니티 정도는 둘러보았기에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자신을 이러한 꼴로 만들어 놓은 이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같잖은 마을 사람 하나 때문에 지금 이 꼴이 되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고작 마을 사람 한 명에게 당해서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작 마을 사람인 주제에 암흑의 대리자인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그 녀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디노는 분노에 차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스킬을 하나 확인했다.

[복종의 낙인]

아무런 제한 없이 자신보다도 월등히 강한 상대를 언데드로 부활시켜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스킬의 대상으로 지정이 되지 않습니다.

몬스터의 경우 사망한 후 발생한 모든 빛의 입자가 사라지기 전에 스킬을 시전해야 하며 NPC의 경우 대상의 유해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복종의 낙인으로 인해 탄생한 언데드는 한 번이라도 사망할 시 다시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100레벨 달성 시마다 1회 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사용 가능 횟수 1/1)

사용 MP: 전체 MP의 100%

재사용 대기 시간: 없음

암흑의 대리자 전용 스킬인 '복종의 낙인'.

대상과의 강함의 차이에 의하여 언데드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달라지는 다른 네크로맨서들의 애니메이트 언데드와는 다르게 대상과의 강함의 차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언데드로 만들어 부릴 수 있는 스킬.

그 사기적이고 뛰어난 효과를 지닌 만큼 사용 가능한 횟수가 정해져 있기에 지금까지 이 스킬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원래라면 200이 넘는 레벨로 인해서 두 번의 사용이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계속된 사망으로 인해서 레벨이 100대로 떨어지면서 사용 횟수까지 1회 사라져 버렸다.

좋은 대상을 구할 때를 위해서 아끼고 아끼던 스킬이었는데.......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이가 갈린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디노는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하며 지금 이 스킬을 사용했을 때에 최고의 효율을 볼 수 있는 대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발견했다.

루제로스의 제4대 국왕 아도라 루제로스.

당대 두 번째 검이라 불리던 자였으며 그의 유해는 이즈바론트의 지하 왕묘에 안치되어 있다.

그 유해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뒤집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왕묘를 지키는 경비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경비를 어떻게는 하지 않으면 아도라의 시체고 뭐고 다 끝이었다.

디노는 경비들의 눈을 돌릴 방법을 고민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힘이 필요한가?

그때, 어디선가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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