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22화
22. 마을 사람!(2)
이니티움 전체에 마을 사람 붐이 일어났었다.
그래, 최근까지의 일이기는 하지만 모두 과거형인 말이었다.
호수와 호야가 동일인임이 밝혀지고 난 후 유입된 신규 플레이어들의 상당수가 그를 동경하며 마을 사람으로 전직했다.
호감도 관리를 잘하며 스킬을 배우면 자신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마을 사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호감도 관리를 열심히 하고 높아도 A에게 스킬을 배웠다가 B에게도 스킬을 배우면 A의 호감도가 바로 뚝 떨어졌다.
결국 마을 사람으로 전직했던 많은 신규 플레이어들이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키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을 쫓아서 마을 사람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
호야는 지금 자신의 눈이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두의 레벨이 20이 되면서 바두의 성장을 위한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그 퀘스트에 필요한 것은 바로 30마리의 몬스터 사냥과 '성수'였다.
몬스터의 수는 이미 다 채웠기에 성수를 구하기 위하여 아헤샤로 왔더니 눈앞에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갈색 피부에 녹색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길가에 꽤 자주 보였다.
게다가 희한한 것은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와옹?"
[상태: 주인과 비슷한 사람이 잔뜩 있어서 당황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본연의 힘을 거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지니......?
이니티움에 일었던 마을 사람 붐은 '직업' 마을 사람뿐만이 아닌 '호야'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부터 랭커의 모습이나 장비를 비슷하게 따라 하는 신규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이번에는 그 따라 하는 대상이 호야에게 몰린 것이었다.
"......."
호야는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서 성수를 구입하기 위해 중앙 신전으로 향했다.
성수는 꽤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몸이다.
하지만 돈이 있어도 못 구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지는 않기에 돈만 있으면 바로 구할 수 있다.
신전에 도착해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전에 본의 아니게 온 적이 있었기에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기는 했지만 신전의 외관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만 과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 것이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호야는 바로 사제를 찾아다녔다.
사제를 발견해 성수의 구매 의사를 밝히자 그는 호야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브님의 축복이 있기를."
이 성수를 바두에게 먹이면 퀘스트가 클리어 된다.
아무리그래도 신전 안에서 바두를 불러내어 먹일 수는 없었기에 호야는 신전을 나오기 위해 사제에게 감사를 전하고서 발을 돌렸다.
그때 사제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아리아 님."
"안녕하신가요, 형제, 자매님들. 모두에게 이브님의 축복이 있기를."
"이브님의 축복이 있기를."
아리아가 자신에게 다가온 사제들에게 축복의 말을 건넸다.
사제들의 웅성거림을 빠져나온 아리아는 호야의 옆을 지나쳐 아무도 없는 모퉁이를 돌았다.
"모험가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아리아가 돌아간 모퉁이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네? 저요?"
"당신인 게 당연하죠.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약속을 지키러 오시지를 않는 거예요?"
약속?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지?
호야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내밀어 호야를 살폈다.
호야를 살핀 아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보아하니 기억 못 하시는 것 같네요.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었잖아요?"
그거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어?
호야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서 그냥 둔 것이었는데 아리아는 아무래도 그냥 했던 말이 아닌 모양이다.
"아, 미안해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
"성녀가 말을 함부로 내뱉을 리가 없잖아요!"
아리아는 호야에게 뱃지 하나를 건네며 자신의 방에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했다.
이 뱃지를 달고 있으면 아무런 간섭 없이 중앙 신전의 깊숙이까지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호야는 괜히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기에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바두의 퀘스트는 조금 이따가 완료해야 할 듯싶다.
호야는 뱃지를 달고서 처음 이곳에 왔었을 때의 기억을 토대로 성녀의 방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몇몇 사제와 마주치기는 했지만 호야가 달고 있는 뱃지를 발견하더니 푸근한 미소와 함께 길을 터 주었다.
"자, 약속을 지키시죠! 성녀의 축복은 비싸요!"
호야는 1시간이나 이야기를 한 후에야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리아에게 인사를 하고서 방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자 한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허공에서 어정쩡하게 멈추어 선 손을 보아하니 노크를 하기 직전에 호야가 문을 연 모양이었다.
남자가 길을 비켜 주지를 않아 호야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살짝 무뚝뚝하면서도 놀란 얼굴로 호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야......?"
"네?"
"어라? 도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호야가 나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리아가 곁으로 다가와 문 앞의 남자를 발견했다.
도반? 도반이라면 설마.
"아리아 님, 저를 부르신 것은 아리아 님입니다."
"아, 아아. 오늘이 그날이었나요?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한두 번 일도 아니니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아리아와 대화를 나누던 도반의 시선이 다시 호야에게로 향했다.
"호야...... 맞나?"
"아, 네."
"......친구 추가 가능할까?"
* * *
"도반, 이거 너야?"
뉴욕 센트럴 파크의 바로 옆에 위치한 아파트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샤워를 하고서 수건 하나만을 두른 채 욕실을 나온 도반에게 유아가 태블릿을 건네주며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이건."
"너 아니지?"
"내가 아니야."
도반은 방금 재생되었던 부분을 뒤로 감아서 되돌려 보았다.
수많은 언데드들에게 둘러싸인 망토의 인물의 전신과 무기에 성스러운 하얀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온다.
머리 뒤에서는 마치 후광이라도 보이는 듯하다.
카각, 서걱.
망토가 한번 검을 휘두르자 데스 나이트의 몸에 커다란 빛의 상처가 새겨진다.
바로 이어서 검을 또 휘두르자 데스 나이트가 빛이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이거, 신의 가호잖아?"
"그런 것 같군."
스킬 '신의 가호'.
10분간 모든 공격에 추가 대미지가 부여되며 상대가 언데드 혹은 어둠 속성의 몬스터라면 추가 대미지가 증가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성흔을 남기는 스킬.
도반의 직업인 '빛의 수호 기사'의 직업 스킬이었다.
그것을 왜 영상 속의 이자가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 말고도 수호 기사가 존재했나.'
도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성녀가 중앙 신전을 벗어날 경우 혹은 성녀의 몸에 위협이 닥쳤을 때에 성녀를 보호하는 것이 빛의 수호 기사다.
역대 수호 기사들이 한 명씩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빛의 수호 기사는 확실히 히든 직업이었기에 자신 한 명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수호 기사가 한 시대에 두 명이었던 기록도 존재하니 빛의 수호 기사가 한 명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영상이 공개되었다.
설백호의 영웅의 전당 공략 영상, 그것에 신의 가호를 사용했던 자가 정확히 찍혀 있었다.
한데 그 자의 직업은 빛의 수호 기사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 그게 그의 직업이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이지?
역대 수호 기사들은 이미 이브의 곁으로 돌아갔다.
현대의 수호 기사는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저 스킬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자가 없을 터인데.......
마을 사람에게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 * *
설마 이러한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도반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신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는 마을 사람 호야.
그가 성녀 아리아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자에게 신성 마법을 가르쳐 준 자가 설마 아리아님인가.'
배운 대상이 성녀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친구 추가 가능할까?"
도반의 말에 호야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둘이 아는 사이예요?"
아리아의 질문에 둘은 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아는 사이이기는 한데 또 어떻게 보면 모르는 사이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알기는 하지만 지금이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아, 그러면 그냥 남인가?'
호야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아리아에게 모르는 사이라 답했다.
도반의 대답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리아의 배웅을 받은 호야는 도시 밖으로 나가서 바두를 소환했다.
"와옹!"
소환됨과 동시에 바두는 자연스럽게 호야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호야가 항상 머리 위에 얹어서 이동을 했기에 생긴 버릇이었다.
호야는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온 바두를 땅에 내리고서는 성수를 꺼내어 넓은 그릇에 담아 바두의 앞에 내려놓았다.
성수를 향해 코를 킁킁거린 바두가 성수를 거리낌 없이 마시자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바두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퀘스트 '바두의 첫걸음'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펫 '바두'가 스킬 '거대화'를 획득합니다.]
[펫 '바두'가 스킬 '블레이즈 스텝'을 획득합니다.]
이름: 바두
종족: ???
레벨: 20
HP: 5,350/5,350 MP: 5,950/5,950
힘: 335 민첩: 395
체력: 335 마력: 395
속성: 불
스킬
[화염구] [본능] [거대화] [블레이즈 스텝]
충성도: 93%
상태: 자신의 성장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본연의 힘을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종족 표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호야는 바두를 바라보았다.
"으음, 이건 예상 못 한 건데."
"크엉?"
바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귀여움이 잔뜩 뿜어져 나올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귀여움 대신에 잘생김이라고 할까, 멋짐이 느껴지고 있었다.
머리 위에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작던 바두가 대형견만큼의 크기로 변해 있었다.
동그랗던 얼굴은 살짝 날카롭게 변했고 눈에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바두 자신이 만족했다고 하니 괜찮겠지.
[거대화]
몸을 거대하게 만듭니다.
성장할수록 더욱 크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블레이즈 스텝]
자신의 발에 불길을 둘러 땅에 불의 발자국을 새깁니다.
불의 발자국은 블레이즈 스텝을 해제하면 자동적으로 불길이 소멸됩니다.
거대화는 어느 정도로 커지는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바두야, 거대화해 볼래?"
"컹!"
바두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말보다 살짝 작은 크기에서 성장을 멈추었다.
몸이 커진 만큼 외형도 더욱 날카롭게 변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제발 그 상태에서 머리에 오르려고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끼잉......."
거대화를 풀어도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다.
커진지 아직 시간이 별로 흐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덩치를 자각해 주었으면 했다.
호야는 그날 수차례 땅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