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21화
21. 마을 사람!(1)
설백호의 최종 기록 57분 46초.
그것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커뮤니티는 온통 설백호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으며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했다.
2위부터는 많아도 10분, 적으면 몇 초의 차이만으로 순위가 정해졌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위와 30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설백호의 기록으로 인해서 커뮤니티에서 불이 크게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불들은 설백호의 기록에 놀라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기록 차이가 말이 되냐?]
그래, 설백호 유명하고 인지도 높고 랭커들도 많은 거는 인정해.
하지만 2위랑 30분이 넘는 차이는 말도 안 되지 않냐?
길드들이 올린 공략 영상들 보니까 2위는 로열 나이츠인 것 같더라.
규모로만 따지자면 로열 나이츠보다 설백호가 큰 거는 맞지만 엑기스로만 따지자면 로열 나이츠가 더 뛰어나지 않아?
나만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저만큼의 차이가 말이 돼?
게다가 이번에는 도반이랑 유아까지 용병으로 데려왔는데 말이야.
2위부터 10위까지처럼 몇 분, 몇 초의 차이였으면 깔끔하게 인정했을 거야.
하지만 저만큼이나 차이가 나면 뭔가 뒤가 구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좀 옛날에 게임사가 뒷돈 받고 몬스터 종류랑 수에다가 공격 패턴이랑 던전 구조까지 깡그리 다 유출시키고 핵도 만들어 준 적이 있잖아.
네오워즈랑 설백호도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님,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할 듯;;
-누나, 고소장 뽑았다. 널 잡으러 가~.
-조금 너무 간 거 아니냐? 백성 그룹 손녀가 뭐가 아쉽다고 그런 짓을 해.
└원래 있는 놈들이 더하잖아. 그리고 윗물이 맑다고 아랫물까지 맑겠냐?
└누나, 고소장 뽑았다. 널 잡으러 가~. 222
-근데 조금 의심이 갈 만하기는 하지, ㅇㅇ.
처음에는 자그맣게 타오르기 시작했던 의문이었다.
- 설백호가 영상 공개를 안 했잖아. 뭐 구린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이건 인정. 솔직히 구린 게 없으면 영상 공개를 했겠지. 홍보도 되고 돈도 버는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잖아.
-와;; 설백호 그렇게 안 봤는데;;
하지만 거대 길드들의 영상이 하나둘씩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불씨가 점점 커져서는 이니티움 전체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대리석 판의 순위 안에 들어왔었다고 짐작되는 길드들의 영상에서 그들은 정말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움직이며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들의 1층부터 4층까지의 기록은 평균 1시간이었고 보스를 잡는 데에 평균 4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설백호가 저들을 훨씬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까?
비슷하게는 가능해도 뛰어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홈페이지에서나 게임 속에서나 모두가 설백호에게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진심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평소에 소문 하나 없이 깔끔하기만 했던 설백호에 오물이 묻자 재미 삼아서 까는 이들도 많았다.
네오워즈의 상황 또한 설백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팀장님, 이거 상황이 너무 커졌는데요."
"......백설이랑 의견 조율해서 로그와 영상을 공개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봐."
"영상은 몰라도 로그의 공개를 받아들일까요?"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건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로그를 공개하며 '우리는 절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들의 마음대로 공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까지 자신들이 게임과 회사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데!
99가지의 착한 일을 해도 한 가지의 나쁜 일을 하면 악인 취급을 받는 것처럼, 정확한 확신에 찬 증거가 아닌 그저 의혹 한번 제기되었을 뿐인데 네오워즈는 뒷돈을 받고서 플레이이어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악덕 기업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가만히 있으면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을 거야."
백설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간 사람 심리라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있으면 칭찬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여 주면서도 자신들의 손이 닿지 않을 몇 배나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인정하지 못하고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면서 배척하고 소곤거린다.
지금 설백호가 딱 그러한 꼴이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상의 공개가 필수 불가결했다.
하지만 백설이 영상의 공개를 하고자 해도 그녀의 뜻대로 바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영상에 자신의 길드원들만이 찍혀 있으면 상관이 없겠지만 호야가 찍혀 있었기에 그의 승낙을 구해야 했다.
지금은 자신의 길드원 신분이기는 해도 그는 용병, 외부인이었다.
그가 자신의 노출을 거부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똑같은 이유로 자신들처럼 용병을 고용했던 로열 나이츠는 도반과 유아가 찍힌 장면을 모두 편집하고서 영상을 공개했다.
자신들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1층과 5층이 통 편집이었기에 논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영상을 공개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호야: 어쩔 수 없죠. 저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는 것도 조금 그러네요.]
호야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영상의 공개를 승낙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싫지만 자신이 원인으로 애꿎은 이가 피해를 보는 것이 조금 더 싫었다.
영상의 공개로 인해서 자신에게 올 여파는 피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야의 승낙이 있고서 몇 시간 뒤에 설백호의 영웅의 전당의 공략 영상이 로그와 함께 공개되었다.
공개된 자료들로 인해서 불씨가 잠재워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길을 더욱더 크게 키웠다.
불길을 키우는 주요 장작이 된 것은 호야의 존재였다.
-어? 저 검 호수 님 검 아니야? 그걸 왜 저 사람이 들고 있어?
└조금 더 넓게 봐 봐라. 4층에서 미노타우로스 잡을 때 호야 님이 사용한 스킬이 호수님이랑 똑같잖아. 동일 인물 아냐?
-무슨 마을 사람이 마법도 쓰고 신성 마법도 쓰고 검도 쓰고 다 해;; 뭐야 저거, 무서워;;
-와, 실환가. 무슨 소설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 무쌍을 찍고 있어.
-ㅋㅋㅋㅋ 전에 카피길이 호수는 성기사일 거라고 단언하지 않았었냐?
└카피길 의문의 1패. ㅋㅋㅋㅋㅋㅋ
-내가 포토샵 이용해서 호수 님이랑 호야 님 비율 맞춰 가며 겹쳐서 확인해 봄. 동일인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쓴 글 링크 줄 테니까 봐 봐라. https: //.......
호야와 호수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 무력이 마을 사람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마을 사람이 마법도 배우고 신성 마법도 배우고 검술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럴 수 있는 마을이 존재하기는 하나?
있기는 있겠지만 셋 모두를 저렇게 엄청난 힘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배울 수 있는 마을은 없을 것이다.
-아헤샤 아닐까? 거기는 마탑도 있고 기사들이 경비를 서니까 검도 배울 수 있잖아.
└사제들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높은데 다른 기술을 배운 사람한테 신성 마법을 가르쳐 주겠냐?
└프라이버시 > 프라이드.
└내가 오픈 초창기에 아헤샤에서 마을 사람 만든 적 있는데 아헤샤 사제들은 마을 사람한테 신성 마법 절대로 안 가르쳐 줌.
-이즈바론트에 한 표, 거기는 뭐든지 다 있잖아.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정답지는 없었다.
정답은 나오지 않은 대신에 사람들은 마을 사람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마을 사람이 엄청난 직업이었던 거 아닐까]
마을 사람이라는 직업의 제대로 된 완성 형태가 호야 님인 거지.
생각해 보면 잘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마을 사람이잖아?
마을 선택 잘하고, 호감도 관리 잘해서 기술 배우면 짱 세지는 거 아냐?
거기에 마을 사람의 일격이라는 스킬 생각해 보면 개쩔지 않냐?
그 스킬 하나만 보고서 길드 자체에서 마을 사람 육성시키면 필드 보스 레이드 할 때에는 한 대 치고 빠지는 역할로 엄청 유용할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이 저렙밖에 없어서 효과가 잘 티가 안 났던 거 아닐까?
-마을 사람 수십 명이 몰려와 일격 한 번씩 쓰니까 필드 몬스터가 한 번에 훅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개꿈일까요?
-그런데 키우는 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듯.
-어느 정도 육성할 때까지는 배운 기술의 직업의 하위 호환이라 생각하며 있어야 할 듯해요.
-저 레벨 86 마을 사람인데, 길드 이름은 계약 때문에 말할 수 없지만 꽤 유명한 길드에서 가입 제의 왔습니다;;
└와 ㄹㅇ?
└마을 사람 떡상 가나요옷!
└가즈아아아!
실제로 마을 사람의 영입을 위해 움직이는 길드들도 있었다.
마을 사람이 배운 기술이 무엇이든 간에 레벨이 높으면 무조건 영입 대상이 되었다.
요리 기술을 배워도 괜찮고 재봉 기술을 배워도 괜찮았다.
마을 사람의 일격 스킬을 보고서 하는 영입이었기에 레벨이 높아서 스탯 총량이 높기만 하면 됐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 중에서 길드들이 영입을 하기 위하여 가장 애를 쓰고 있는 마을 사람은 당연히 호야였다.
지금은 설백호에 있기는 했지만 용병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힘이 입증되어 굳이 육성시킬 필요가 없는 마을 사람이었으니까.
호야의 이니티움 홈페이지의 쪽지 함은 길드들의 가입 권유와 인터뷰 요청과 팬레터로 인해서 불이 난 상태였다.
호수라는 이름으로 블랙헤븐의 영상을 올렸을 때에도 쪽지 함에 쪽지가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호야는 이때 쪽지 함에 보관될 수 있는 쪽지의 최대수가 10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만큼 쏟아지는 관심 덕분에 사냥터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디에 가든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길드의 스카우터가 따라붙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상황이지만 생각보다 그들은 너무 집요했다.
상황이 호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커져 있었다.
따돌릴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계속 이어지니 슬슬 심적으로 지쳐 갔다.
호야는 열기가 식을 때까지 그들에게서 도망칠 필요를 느꼈다.
호야에게는 선택지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스탯이 레벨에 비해 높은 것을 이용해 그들이 오지 못할 만한 사냥터로 가는 것.
이 경우에는 대륙에서 아직 플레이어들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을 돌며 사냥터를 직접 찾아야 했다.
다른 하나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
하지만 호야의 레벨에 맞는 1인 입장이 가능한 던전이 없었다.
아직 발견이 되지 않은 던전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신규 던전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호야는 이러한 고민들을 잠시 그들을 피하는 것을 겸해서 오르도에 돌아와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사냥터의 위치나 던전을 알고 있을 법한 인물에게 털어놓았다.
"그렇게 된 거예요."
"으음, 그럼 내가 지도를 그려 줄 테니까 그쪽으로 가 봐."
치빈은 자신의 가방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위치를 표시해 주기 시작했다.
전설의 탐험가 '치빈'.
세계에서 안 가 본 곳이 단 한 곳도 없으며 그에게 뚫리지 않은 요새나 경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설로 전해져 내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치빈이 암살자였다면 세계의 모든 왕족의 씨가 말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많은 탐험가들이 그를 우상으로 해서 탐험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도굴꾼이나 암살자 등도 그를 우상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빨간 점들이 혼자서 들어갈 수 있는 던전, 파란 선으로 나눈 장소는 사냥터야. 나오는 몬스터에 대해서도 대충 적어 놨으니까 참고하고."
치빈의 지도는 꽤나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기본이었고 정확한 숫자도 표기되어 있었다.
누구도 이렇게까지 많은 것을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봐. 나는 다시 가 볼 테니까."
치빈은 자신의 짐을 챙겨서 새로운 탐험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미 이 세계에 치빈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아직 자신이 발이 모두 닿지 않은 장소.
아론의 결계의 너머, 마계였다.
"나중에 봐!"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