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42화 (42/171)

# 42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17화

17. 추방당한 최고의 전사(2)

그곳에는 렌시아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시아를 구하기 위해서, 숲을 구하기 위하여 실험을 해 나갔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구멍에서 생활하면서 렌시아가 실험의 기록을 겸하며 써 내려갔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새파랗고 검게 얼룩져 있던 거대한 슬라임. 실피드는 그것이 마족들의 마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족이 땅에서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 그들의 흔적은 땅에 남아 있었고 그것은 엘프의 숲까지 흘러들어 왔다. 일단 처리에는 성공하였으나 숲과 나 자신의 몸에는 아직 그 녀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단은 그 녀석의 힘에 의해 검고 파랗게 변해 버린 풀과 나무 조각을 상대로 약을 만들어 가 보자.]

[......오늘 실험도 실패하기는 했지만 아주 미약하게나마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개량한다면 완전히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 혹시 이것을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데에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 만에 약을 완성할 수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어머니를 위한 약도 완성이 되었다. 숲을 치료시킨 후에 마을로 가 어머니에게 약을 전하자.]

렌시아가 이름 지은 '엘프의 눈물'의 제조법과 함께 마지막 일기가 쓰여 있는 날짜는 렌시아가 마을에 돌아왔던 날이었다.

......엘프들이 그녀를 마을에서 내쫓은 날이기도 했다.

그다음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다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을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자신들이 괜한 엘프에게 화를 쏟아 내고 원수를 은혜로 되돌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던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렌시아의 약으로 인해서 구원받은 엘프들, 마을의 모든 엘프들의 사이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마을의 모든 엘프들이 렌시아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했기에 렌시아에게 용서를 구하기위해서 그녀를 찾아 온 땅을 다 뒤졌다.

하지만 그녀를 발견할 수는 없었고 소문 또한 들려오지 않았다.

실피드도 그녀가 보고 싶었기에 바람의 흐름을 이용해 렌시아를 찾아다녔지만 정령왕인 실피드조차 렌시아를 발견할 수 없었다.

렌시아의 존재는 땅 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저희는 그녀에게 사라지지 않을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워인의 집으로 안내받아서 차를 마시던 호야는 그의 이야기가 끝나도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에 보아 왔던 렌시아의 모습에서는 그러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녀는 항상 밝고 당당했으니까.

"......호야, 염치없는 이야기지만...... 렌시아에게 저희들의 사죄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요? 마을에서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퀘스트 '엘프들의 후회'가 생성되었습니다.]

[엘프들의 후회]

위그드라실의 엘프들은 엘프족 최고의 전사를 믿지 못하고 흉보고 쫓아내기까지 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 씻을 수 없는 과오지만 엘프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사죄만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렌시아에게 엘프들의 사죄를 전해 주세요.

완료 조건: 렌시아에게 엘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성공 보상: 위그드라실의 마을 소속 엘프들의 호감도 상승, 경험치

실패 패널티: 없음

"......말은 전해드릴 수 있지만 그걸로 인한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요."

"전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자신들의 사죄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렌시아에게 전해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워인의 표정이 왠지 한결 후련해 보였다.

백설과 약속한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기에 호야는 워인에게 인사를 하고 그의 집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한 엘프를 보고서 걸음이 멈추어졌다.

"렌시아......?"

렌시아가 서 있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워인의 말을 들어 보면 마을에는 오지 못하는 것 아니었나?

"당신! 당신이죠! 렌시아랑 친구라는 인간이!"

"......누구?"

목소리를 들어 보니 렌시아가 아니었다.

하지만 렌시아와 똑 닮아 있는 엘프.

아, 설마.......

"엘리시아, 진정해."

"워인은 조용히 하세요!"

"......네."

호야는 이어진 대화로 눈앞에 있는 그녀가 렌시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엘프의 노화 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이건 뭐,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엘리시아가 호야에게 렌시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 왔다.

호야는 어제 실피드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한 번 더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에요....... 흐흑."

"그...... 일단 진정하세요."

그 크라우스랑 매일같이 마을을 부수는...... 아니, 싸우는 렌시아의 얼굴을 하고서 실피드처럼 울고 있으니 영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실피드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등을 토닥여 준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엘리시아는 금방 눈물을 멈추었다.

"훌쩍...... 죄송해요,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렸네요. 렌시아의 어머니 되는 엘리시아입니다."

"아, 호야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끝낸 호야를 엘리시아가 부탁할 것이 있다며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엘리시아가 창고 방에서 꺼내 온 것은 오래된 활이었다.

"제 남편, 그러니까 렌시아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활이에요. 원래는 성인식이 끝난 후에 주려고 했었지만...... 그 아이는 성인식을 치르지 않고 가 버렸으니까요. 저를 대신해서 전해 주시겠어요?"

"반드시 전해 줄게요."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시아에게서 활을 받아 든 호야는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호야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호야 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곳에 모인 이들은 엘프의 마을에서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엘프들의 마을은 자연 친화적이라는 점 빼고는 인간들의 마을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몇 가지 뛰어난 것이 있었다.

명중률과 공격력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대신에 착용 제한도 까다로운 활과 일반 활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공격력이 높은 화살들이 있었다.

렌시아가 남긴 제조법들의 영향인 것인지 뛰어난 물약들도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엘프들도 지금에 와서는 자연이 그저 지키고 받들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자신들과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것들을 기본 물약 가격에 팔고 있었어요!"

[위그드라실의 회복 물약]

위그드라실의 마을에서 사는 엘프가 만든 물약입니다.

연금술에 뛰어난 솜씨를 지녔던 엘프가 남긴 제조법을 이어받았기에 그 효과가 뛰어납니다.

복용 시 순식간에 HP와 MP를 30% 회복합니다.

'와.......'

중기가 손에 쥐여 준 물약을 보고서 호야도 조금 놀랐다.

회복량이 20%를 넘겨도 아주 귀한 물약으로 취급받는데 이 물약의 회복량은 30%, 게다가 HP와 MP를 동시에 회복시켜 주었다.

이게 바깥에서 유통되게 된다면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었다.

"뭐, 아쉬운 점이라면 물약 전 종류를 합쳐서 하루에 10개씩의 구매 제한이 있다는 거지만요."

"무한정으로 구입할 수 있으면 사기지."

"정령들이 이곳으로 워프시켜 줄 수 있다고 했으니까 호감도도 쌓을 겸 해서 매일 들리면 되지 않을까, 공주님? 엘프들도 우리에게 꽤나 호의적이었으니까."

이틀에 걸쳐서 클리어 한 던전의 보상으로 정령과 계약했다.

엘프들의 마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얼굴도장도 찍었다.

고성능의 물약까지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수확할 것이 남아 있었다.

"그럼, 이거 영상 올려도 되죠?"

"네, 편집만 해 준다면야 상관없습니다."

"후후후, 그래도 수익이 나면 처음 조건대로 호야 씨가 5, 저희가 5로 나눌 거니까 말이에요! 나중에 계좌나 불러 주세요. 아, 아니면 골드로 드릴까요?"

던전 '엘프들의 성인식 시험장'에 입장하기 위하여 나무에 생겨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엘프들의 마을에 입성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두가 영상으로 남긴 상태였다.

편집하여 영상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에 조율을 마친 상태다.

호야가 원한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의 캐릭터가 영상에 나오지 않는 것.

그것만을 지켜 준다면 영상을 판매하더라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호야는 백설에게 나중에 계좌를 알려 줄 것을 약속했다.

딱히 돈에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예숙이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게 하기 위하여 그녀를 안심시킬 물건이 필요했다.

* * *

"이것은......."

"렌시아의 어머님이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테이블 위에 올려진 활을 내려다보는 렌시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천천히 활에 손을 뻗은 렌시아는 아기를 어루만지듯이 상냥한 손으로 활을 쓰다듬었다.

호야는 그녀에게 엘프들의 마을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그들이 전해 달라고 했던 말, 실피드가 그녀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그 마을에 갈수 있었던 이유들을 모두 설명했다.

그러자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렌시아가 짓고 있는 미소에는 그리움과 씁쓸함이 마구 섞여 있었다.

"그렇군...... 어머니가 무사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건 실피드가 건네준 거예요."

호야가 테이블 위에 올린 물건은 호야가 던전 '엘프들의 성인식 시험'에 들어갈 때 사용했던 열쇠와 같은 것이었다.

열쇠를 집어 든 렌시아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한 번은 가야겠지."

설마 실피드가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만나려고만 한다면 실피드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렌시아는 실피드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엘프들에게 원수 같은 존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피드가 자신과 친분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다른 엘프들이 알게 된다면 그녀를 정령왕으로서 대우해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실피드를 위해서 그녀를 피했다.

공간이 왜곡된 이 마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만나지 않는 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나 보다.

실피드를 위한 행동이었는데 실피드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실피드가 호야를 통하여 이 열쇠를 자신에게 건네준 이유는 마지막 시험장에서 자신과 계약해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시험을 클리어 하고 나면 바로 위그드라실의 마을, 엘프들의 마을이지만.......

실피드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고 렌시아는 생각했다.

......건강해진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엘프들이 그렇게까지 뉘우치고 자신이 남긴 것을 좋은 쪽으로 활용해 주고 있다면 한 번쯤은 마을에 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그들과 마주하고서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미지수지만.

"이 일은 정말 고맙다."

[렌시아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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