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16화
16. 추방당한 최고의 전사(1)
"촌장님, 지금 당장 렌시아를 찾아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퍼져 있는 전염병의 원인은 그 아이가 분명합니다! 자연을 훼손해서 엘프 전체에게 벌이 내려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렌시아의 방에 있던 종이에 적혀 있던 것들은 인간들이 연금술이라 말하는 사술의 제조법이었습니다!"
"당장 그 아이를 찾아서 벌을 내려야지 자연이 화를 걷어 갈 겁니다!"
"죽여야 해요!"
쾅!
대표로서 모인 엘프들의 이야기를 듣던 워인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그들을 입을 다물게 했다.
테이블을 내리친 워인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 망설임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렌시아는 발견하는 즉시 마을에서, 숲에서 추방시킨다."
"추방 정도로 자연이 화를 걷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녀석은 마치 자연에 대하여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반대의 의견을 꺼내 들었던 엘프를 바라보는 워인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렌시아가 아무리 인간의 사술에 손을 대었다고 해도, 그것이 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하여도 그녀는 우리 엘프들의 최강의 전사다. 그것을 봐서라도 추방 정도로 끝내지. 만약 그녀가 추방당한 뒤에도 상태가 이어진다면 그때 처형해도 늦지 않아."
"늦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망자가 나오기 전에 해결을 해야 합니다!"
"내가 늦지 않는다고 했다."
워인은 엘프들의 의견을 묵살시켰다.
만약 진짜로 이 전염병의 원인이 렌시아에게 있다면 그녀를 죽이지 않고 추방시켜 주는 것이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다.
......만약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녀를 죽여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는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뒤로 수십 일의 시간이 지나자 렌시아가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렌시아 그린우드! ......너를 마을에서 추방한다!"
워인의 말을 들은 렌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결정된 사항이다."
"그러니까! 뭐 때문에 갑자기 그런......!"
픽-.
화살 하나가 날아와 렌시아의 뺨을 스치고 땅에 박혔다.
붉은 색의 얇은 선이 그려진 그녀의 뺨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렌시아의 동공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
"너의 방에서 종이와 그에 쓰여 있는 연금술의 제조법이 발견되었다."
아아, 결국 발견되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마을의 주민이었던 이에게 갑자기 화살을 날리는 것은 너무하잖아......!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지금 마을에 퍼진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전염병......?"
"자연에게 해를 입혀 자연의 벌을 엘프들에게 돌아오게 한 것의 결과가 이것이다."
워인이 소매를 걷어서 보인 그의 팔 전체는 새파랗고 검은색으로 얼룩덜룩 물들어 있었다.
아니야...... 그건 자연의 벌 같은 것이 아니라고!
"그건......!"
"자연이 화를 걷어 가기 하기 위하여 내려진 결정이 렌시아 그린우드의 마을, 숲에서의 추방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닌......!"
"맞아! 빨리 마을을 나가!"
"이 숲에서 사라져!"
그들은 렌시아의 말을 전혀 들어 주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감과 자신의 친구와 가족이 병들어 간다는 분노가 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
퍽-!
어디선가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렌시아의 머리에 명중했다.
피비비비비빗-!
렌시아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렌시아를 향해서 엘프들의 화살이 쏘아졌다.
"무슨! 쏘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만둬!"
워인은 자신의 명령도 없이 화살을 발사하는 엘프들에게 당황했다.
'그냥 위협용으로만 들고 있으라 분명히 말을 했는데!'
엘프들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렌시아의 몸은 화살 비의 중앙에 놓인 상태에서도 굳어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렌시아를 대신해서 렌시아를 구하기 위해 실피드가 거센 바람이 불게 하여 화살들을 튕겨 냈다.
실피드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렌시아의 몸을 바람에 실어서 재빨리 마을을 빠져나와 렌시아가 사용하던 나무 구멍 속으로 그녀를 숨겼다.
"렌시아, 괜찮아?"
"......."
렌시아는 실피드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자신에게 그러한 짓을 했는지는 워인의 말로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들어 보지 않고 단정 지은 채 추방해 버리다니.
자신이 그동안 마을에게 그 정도의 신뢰밖에 주지 못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어머니인 엘리시아가 걱정되었다.
혹시 자신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박해받고 있지는 않을까?
마을에 멀쩡한 엘프가 보이지 않았는데.......
엘리시아 또한 그런 상태이면 어떻게 하지?
원래부터 몸이 약한 어머니인데.......
"흑...... 흐흑......."
"렌시아......."
가장 안 좋은 상황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실피드가 렌시아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녀를 위로했지만 그녀의 눈물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멈출 수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물을 쏟아 내 눈물샘이 텅텅 비어 버린 렌시아는 눈물 자국을 닦아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은 마을에서 추방당한 몸이다.
아마 다시 받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가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이미 추방당한 몸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허리에 찬 가방과 벽에 붙어 있는 '엘프의 눈물'의 제조법을 바라보았다.
* * *
렌시아가 마을에서 추방당한 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엘리시아는 밥에 제대로 손도 대지 않고서 시간을 보냈다.
마을의 엘프들이 엘리시아를 렌시아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박해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챙기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옆집의 엘프가 렌시아의 상태를 알고서 매일같이 밥을 전해 주러 오는 것이 다였다.
엘리시아는 마을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렌시아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잠에 들지 못하는 밤.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는 옆집의 엘프가 가져다준 음식이 싸늘하게 식은 채 원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면서 렌시아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등에는 커다란 가방이 매어져 있었다.
하하, 이제는 환각이 보이는 모양이다.
"어머니......."
환각뿐만이 아닌 환청까지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자신의 상태가 말이 아닌가 보다.
환각이 엘리이사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환각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감촉이 느껴져 왔다.
"렌......시아?"
"예, 어머니."
"흐흑, 렌시아......!"
엘리시아는 렌시아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껴안았다.
"어머니, 숨이 막힙니다."
"흐흑......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콜록! 콜록!"
"어머니는 사과하실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엘리시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렌시아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겨우 진정하여 렌시아에게서 떨어진 엘리시아의 얼굴은 대부분이 새파랗고 까맣게 얼룩져 있었다.
그걸 본 렌시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옅게 미소 지었다.
"이것들을 마셔 주셨으면 합니다."
렌시아가 엘리시아에게 건넨 것은 엘프의 눈물과 자신과 숲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었던 약이었다.
"이건......?"
"어머니를 치료하고 마을을 치료할 약입니다."
엘리시아는 렌시아가 건네준 약을 마셨다.
씁쓸한 맛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달게 느껴졌다.
두 개의 약을 모두 마시자 엘리시아는 몸이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했던 기력이 회복되었고 시도 때도 없이 나오던 기침과 각혈이 멈추었다.
몸에 생겨났던 얼룩들이 사라지고 추위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맙소사......!"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건강해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마지막이라니......."
오해가 원인이라고는 하나 렌시아는 마을에서 추방된 몸.
지금도 밤의 어둠을 틈타 몰래 들어온 것이었다.
엘리시아가 건강해졌으니 렌시아는 얼른 마을을 떠나야 했다.
"이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그럼 모두 괜찮아질 거예요."
"네가 하면 되잖니! 굳이 내가 안 해도 네가 나누어 준다면......."
"제가 주면 받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화를 불러왔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엘프니까....... 그러니까...... 실피드와 함께 정령의 기적이라는 것으로 모두에게 나누어 주세요. 모든 병이 나은 어머니와 정령왕인 실피드의 보증이라면...... 그들도 믿어 줄 겁니다."
일방적으로 그렇게 통보한 렌시아는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렌시아가 엘프들에게 약을 나누어 준다면 엘리시아의 말대로 엘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그녀에게 사과하며 다시 원래의 상태대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지금의 렌시아가 그들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시아에게 억지 주장을 늘어놓으며 마을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늘 밤에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병으로 인하여 이미 죽은 뒤였다면 그녀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숲을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렌시아의 어머니가 살아 있었기에 엘프들은 구원받았다.
그리고 그 일은 엘프들에게 평생 떨칠 수 없는 큰 죄책감으로 남고 만다.
* * *
"처음에는 모든 엘프들이 그 약을 정령의 기적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정령들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모두가 생각했죠.......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렌시아가 만든 약을 정령들의 기적이라 믿고 받아들여 치료된 엘프들의 생활은 원래대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렌시아의 약을, 정령의 기적을 렌시아가 숲을 나갔기에 그것에 화를 푼 자연이 자신들을 용서하며 내려 준 것이라 받아들였다.
렌시아에게 구원받은 이들이 렌시아를 헐뜯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렌시아를 빨리 내보내야 했어. 우리 아이가 이제 다시 뛰어다니고 있다고!"
"렌시아가 나가니까 정령들이 바로 도움을 주잖아."
"정말 다행인 일이야."
그리고 그것을 실피드가 들어 버렸다.
아무리 렌시아의 뜻에 따라서 비밀로 했다고는 하나 그녀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그녀를 헐뜯는 것을 실피드는 참지 못했다.
정령왕의 분노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너희들 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뭘 안다고 렌시아를 욕하는 거야? 정령의 기적? 자연이 화를 거둔 거라고? 하! 렌시아는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너희가 말하는 정령의 기적은 렌시아가 만든 약이야! 너희가 헐뜯고 있는 렌시아가 너희를 구한 거라고! 그런데 아무리 모르고 있었다 해도...... 마을에서 쫓겨나면서도 자신들을 구해 준 이를 욕해?"
엘프들의 마을에 거센 폭풍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엘프들이 쏜 화살은 바람에 휩쓸려 제 갈 길을 가지 못했으며 집의 문은 뜯겨 나갔고 울타리는 파괴됐다.
바람의 정령들이 모두 정령왕 실피드의 의지를 따랐기에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이들은 정령들의 힘을 빌릴 수 없었다.
다른 속성의 정령들도 엘프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에 정령왕의 눈치를 보았다.
마을 주변이 모두 휩쓸리면서 엘프들의 주식이었던 땅에 떨어진 나무 열매들은 형태조차 찾을 수 없이 부서졌고 치즈와 우유를 구하기 위하여 키우던 소들은 모두 바람에 찢겨 죽었다.
마을 주변에서는 식량을 구할 수 없었기에 엘프들이 활동하는 숲의 범위는 점점 넓히며 식량을 구해 갔다.
이윽고 그들은 렌시아가 사용하던 나무 구멍의 근처까지 도달해 렌시아의 흔적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