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36화 (36/171)

# 3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11화

11. 엘프들의 시험(2)

"너, 진짜 렌시아를 만난 적이 있어?"

푸른빛의 소녀는 호야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에 부담스러워 호야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뒤로 물러나자 소녀는 잽싸게 호야의 얼굴을 붙잡으며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내 눈 보고서 똑바로 말해. 렌시아를 만난 적이 있어? 그녀는 아직 살아 있어?"

"아, 네."

소녀의 꿰뚫어 보는 듯한 강한 눈빛에 호야가 대답했다.

한참이나 호야를 빤히 쳐다보던 소녀는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떼더니 안심했다는 듯한 얼굴로 울먹였다.

"그렇구나....... 다행이야......."

눈에 힘을 주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던 소녀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더니 호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간, 이 시험에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은 다 도와줄게. 대신에 나를 렌시아와 만나게 해 줘!"

[퀘스트 '그리운 친구'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리운 친구]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는 자신의 오랜 옛 친구인 렌시아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200년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렌시아가 없는 20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당신을 통해서 렌시아와 재회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완료 조건: 실피드를 렌시아와 재회시킨다.

성공 보상: 실피드의 호감도 상승, 칭호 '실피드의 은인' 획득, 경험치

실패 패널티: 실피드의 호감도 하락

호야는 퀘스트를 수락했다.

보상에도 눈길이 가기는 했지만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친구와 만나게 해 달라는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호야가 퀘스트를 수락하자 실피드는 밝게 웃었고 주변의 작은 정령들도 그녀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파티 채팅 백설: 호야 씨? 아직이세요?]

호야는 백설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서 순간적으로 깜빡하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 자신은 첫 번째 시험장의 넓이를 가늠한 후에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상기하고 호야가 벌떡 일어나자 호야의 어깨 위와 머리 위, 바두의 위에 앉아 있던 요정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

"에고고, 아래까지 떨어질 뻔했어. 떨어질 뻔했다고!"

"아, 미안. 하던 일이 생각나서......."

"시험을 말하는 거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나도 약속을 지킬게."

실피드가 손끝으로 지휘봉을 움직이듯이 부드럽게 허공을 휘젓자 옅은 산들바람이 숲 전체에 퍼졌다.

"응? 일행이 있었구나. 일행한테 먼저 돌아갈래? 아니면 리프 마우스부터 잡을래?"

"일행한테 먼저 갈게요."

"알았어."

그들도 지금의 상황을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일단 합류하는 것이 먼저다.

호야는 그들에게 곧 간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서 나무를 내려와 땅을 달렸다.

호야가 가 버리자 자리에 남아 있던 정령들은 재미 삼아서 그의 뒤를 멀리서 따라갔다.

살짝 아쉬움도 있었다.

"호야 씨, 그 소녀는 누구예요?"

"설마 저것이 리프 마우스...... 아악!"

"바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씨잉......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왜 때려!"

그들에게 일단 대략적으로 가늠한 거리를 알려 주었고 실피드에 대해서도 렌시아에 관한 것과 퀘스트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서 설명했다.

굳이 렌시아에 대해 알려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시험장의 넓이는 호야가 예상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그나저나 정령이 도와준다니 다행이네요.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이런 꼼수가 있었네요."

"꼼수가 아니야. 원래 첫 번째 시험장에서의 시험은 정령들과의 친화력을 보는 거니까. 우리의 힘을 빌려서 리프 마우스를 찾는 것이 빠르고 올바른 답이야."

백설의 말에 실피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험의 내용도 '친화력'이라고 했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네요. 이 넓은 곳에서 이렇게 빨리 정령을 찾아내다니 말이에요."

"무슨 소리야? 애들은 저기에 있잖아."

실피드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이때다 싶은 정령들이 바로 나무 위에서 내려와 그들의 사이를 날아다녔다.

"안녕? 안녕?"

"우와- 이 인간 엄청 예쁘다! 예뻐!"

"그래도 실피드 님이 더 예뻐. 그치?"

"저기, 저기. 모자는 왜 쓰고 있어? 왜?"

"인간은 꾸미는 걸 좋아한댔어!"

"저기, 있잖아. 인간들은 평소에 뭘 하면서 놀아? 응?"

백이 넘는 정령들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은 엄청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것을 찍어 영상으로 올린다면 조회수 몇천만은 가뿐하게 넘기지 않을까? 할 정도로.

몇몇 짓궂은 장난을 하는 정령들도 있었다.

"아! 야!"

하나의 정령이 아르코가 깊숙이 쓰고 있던 빵모자를 벗겨 내었다.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벗겨 낸다고 해서 소유권이 이전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 거리 이상을 벗어나면 원래 주인의 인벤토리에 자동 회수된다.

정령에게 빵모자를 빼앗긴 것은 별로 큰일이 아니었지만 아르코에게는 모자가 벗겨진 것이 큰일이었다.

"와- 인간, 머리가 왜 그래? 왜?"

"무지개야, 무지개!"

"꺄르륵, 머리 이상해!"

아르코의 머리에서 빵모자가 벗겨지자 그의 칠색 빛의 머리가 드러났다.

아르코의 머리는 그라데이션으로 칠색의 빛이 물들어 있었다.

진짜 그야말로 무지개였다.

조금 짧은 무지개.

"으아아아아! 내놔라, 이 녀석들아!"

"푸하하하핫! 그렇게 열심히 가리고 다녔는데! 크큭."

"큭, 너무 웃지 마. 아르코 님이 불쌍하잖아."

"그러는 너는....... 크흐흑. 아, 눈물 날 것 같아."

"너 이 자식들......!"

빵모자를 되찾은 아르코가 모자를 다시 깊숙이 눌러쓰며 울분을 토하듯이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다.

"운영자님! 제에바알! 머리 염색약 업데이트 해 주세요오오오오!"

* * *

"이쪽이야."

물속을 헤엄치듯이 허공을 날아가는 실피드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실피드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나무들의 사이였다.

"저기에 리프 마우스가 있어."

"......?"

실피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그곳에는 나뭇잎밖에 없었다.

쥐의 그림자는 손톱의 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저게 안 보여? 후우, 할 수 없지."

아르코의 질문에 답한 실피드가 손끝을 움직이자 작은 회오리바람이 실피드가 처음에 손끝으로 가리켰던 곳에서 일어났다.

실피드가 회오리바람에 손을 집어넣더니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나뭇잎들 중 하나를 낚아채어 그들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리프 마우스야."

나뭇잎의 잎자루.

아니, 리프 마우스의 꼬리를 잡고 거꾸로 매달린 형태로 두자 나뭇잎 같은 몸통에서 톡 튀어나온 여드름같이 짧은 팔다리들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귀를 자세히 가져다 대니 찍찍거리는 소리도 작게 들린다.

"와...... 정령의 도움을 안 받으면 절대 못 찾겠네, 이거."

"그러게."

[첫 번째 시험장의 시험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험장으로의 진입이 가능합니다.]

처음에 주어졌던 6시간의 제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첫 번째 시험을 2시간도 되지 않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두 번의 던전 클리어 도전이 모두 첫 번째 시험장에서 막힌 아레나가 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지다 못해 거품까지 물 일이었다.

"바로 다음으로 진행해?"

"음...... 접속 제한 시간도 넉넉하니 진행하는 것이 낫겠지? 아, 실피드 님, 혹시 다음 시험이 뭔지 아세요?"

"응, 알아!"

실피드는 백설의 물음에 다음 두 번째 시험장의 시험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두 번째 시험장에서 시험받는 것은 '무력'.

일종의 디펜스 게임으로 지키는 대상의 HP 게이지가 모두 떨어지는 것을 막으며 일정 시간을 버티거나 모든 적을 사냥하면 클리어 된다고 한다.

버텨야 하는 시간은 3시간.

접속 제한 시간이 도중에 걸릴 시간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곧장 두 번째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프 마우스를 사냥한 자리에 나타난 나무로 된 문을 열고 지나가자 듬성듬성 작은 나무들이 세워져 있는 넓은 평원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등 바로 뒤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솟아나 있었다.

[두 번째 시험장의 시험은 '무력'입니다.]

[3시간 동안 '천년 나무'를 보호하거나 혹은 적을 전멸시키세요.]

[적은 입장한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2시간 59분 56초]

[남아 있는 적 (200/200)]

"뭐? 200? 이건 뭐 전멸은 넘보지도 말고 3시간을 꼬박 버티라는 소리잖아!"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아르코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육성으로 내뱉은 것은 아르코뿐이었지만 모두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필드 사냥 시 5인 파티 기준으로 시간당 사냥하는 몬스터의 수는 평균 20마리에서 많으면 30마리였다.

사냥 시간이 지날수록 스킬도 빠지게 되니 뒤로 갈수록 사냥 속도는 느려지게 될 것이다.

3시간 동안 200마리를 잡으라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두 명, 정확히는 사람 하나와 정령 하나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두두두두두- 쿵, 쿵, 쿵.

여러 가지의 발소리들이 지축을 흔들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이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마리가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닌 시간의 텀을 두고서 차례대로 몰려나온다는 것이었다.

"너무 튀어 나가지 마! 만일의 사태에 서로 도울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해!"

백설의 말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커다란 천년 나무를 둥글게 등지고 서서 각자 공격을 할 준비를 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지금의 파티에 사제 같은 무력에 포함되지 않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후방 딜러인 마법사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니었다.

촤악- 퍽! 콰광!

여기저기서 몬스터와 맞부딪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호야는 냉기를 머금은 일곱 개의 탄환을 만들어 내 발사했다.

"프로즌 브레이크."

백설이 말하자 주변에 한기가 몰아치면서 허공에 얼음 조각들이 생겨났다.

얼음 조각들은 잘게 부서지고 부서지면서 수십 개의 얼음 칼날을 형성하였다.

손가락보다도 작은 얼음의 칼날들이 각각 가진 위력은 그리 크지 않지만 얼음의 칼날로 이루어진 폭풍이 하나, 혹은 둘에게만 집중된다면 꽤나 큰 위력을 발휘했다.

몬스터의 피부를 찢어발긴 얼음의 칼날들은 루비처럼 붉은 보석이 됨과 동시에 부서지며 사라졌다.

얼음의 칼날들이 모두 그치자 백설은 피해를 입은 몬스터들에게 칼을 휘둘러 숨을 끊었다.

"후우."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지 약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천년 나무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자신을 뚫기 위해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홀로 상대한다는 것은 꽤나 중노동이었다.

다행히도 뒤로 몬스터를 흘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몫을 다 하는 것에도 벅차서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의 수가 줄어들어 여유가 생겼다.

비록 저 멀리 다시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들의 무리가 보였지만 이틈에 주변 상황을 파악해 두어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뒤로 몬스터를 흘린 사람은 아직 없는 모양이다.

중기와 페드라는 서로 힘을 합쳐서 몬스터를 적절히 방어하며 쓰러트리고 있었다.

라이스터는 빛처럼 빠르게 창을 휘두르면서 자신의 담당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속도를 이용해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아르코는 주먹에 빛을 두른 채 몬스터를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고 호야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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