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8화
8. 벌키 클레이 웜(1)
물약과 바두의 간식의 보충을 마친 호야는 다시 사냥터로 향했다.
무엇인지 모를 고기의 말린 육포를 씹는 바두의 얼굴이 조금 불만스러운 듯이 보인다.
[상태: 계속 반복되는 같은 간식들에 질려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본연의 힘을 거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식에 질린 거였나.
하긴, 요즘은 바두의 간식을 구할 만한 곳이 한정적이다 보니 같은 종류의 간식을 번갈아 가면서 주고 있었다.
호야는 바두에게 코미아에서 나가면 맛있는 것을 먹여 줄 약속을 하며 바두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중에도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인벤토리에 바두의 간식을 여러 종류를 넣고 다니기에는 공간이 적다.
'......사리반에게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요리를 배운다면 몇 가지의 조미료만 간단하게 들고서 주재료는 현장에서 구해도 될 듯했다.
요리 스킬 없이도 요리는 가능하지만 맛이 요리 스킬을 가진 사람만큼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꺼내 보자고 호야는 생각했다.
킁킁.
그때, 호야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바두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호야의 머리에서 폴짝 뛰어내려 어딘가로 달려갔다.
바두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당황하며 재빠르게 바두의 뒤를 쫓아가자 바두는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사이에 놓여 있는 모닥불에 구워지고 있는 고기 꼬치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먹을래?"
"왕!"
둘 중에 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있는 플레이어가 바두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자 바두는 좋아라 하며 바로 대답했다.
호야가 말릴 틈도 없이 바두는 그에게 고기 하나를 받아서 앞발로 고정시킨 후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야, 누가 보면 굶긴 줄 알겠다.
"그,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펫이 참 귀여운데요? 그치?"
"어, 완전 귀여워.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아, 네."
고기를 굽고 있던 플레이어 두 명, 종기와 페드라는 귓속말로 쾌재를 불렀다.
[종기: 작전 1단계 클리어!]
[페드라: 오케이. 조심스럽게 2단계로 넘어간다!]
[종기: 예썰! 야, 근데 이 펫 진짜 귀엽지 않냐? 보들보들한데?]
[페드라: 아, 씨...... 나도 만져 보고 싶다.]
살짝 중점이 다른 것으로 넘어갈 뻔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작전이 먹혀든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살코기'를 사용한 보람이 있었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살코기]
등급: 유니크
기간트 레드 베어의 가장 맛있는 부위의 고기의 기름기와 힘줄, 뼈를 모두 발라낸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이 고기는 요리사의 스킬에 따라서 최대 4시간 동안 스탯 30%의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살코기를 굽는 냄새는 몬스터를 유혹할 확률이 있습니다.
펫도 몬스터로 분류가 되는 것인지 확신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예상이 맞은 것 같다.
아니면 눈앞에 이 검은 녀석의 먹성이 좋은 것이거나.
뭐든 간에 주인보다 펫을 먼저 꼬신다는 것은 이미 성공했으니 상관없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둘은 그렇게 생각했다.
"괜찮으시다면 님도 하나 드실래요?"
"아, 아뇨."
"사양하지 마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호야는 호의를 거절할 줄 몰랐다.
호야가 종기에게서 고기 꼬치를 받아 들자 '단순한 기간트 레드 베어의 꼬치'라는 아이템 정보가 떠올랐다.
요리사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에 버프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맛은 그럭저럭 좋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호야가 한 입 베어 먹어 보니 확실히 맛은 좋지만 사리반이 했던 것과 비교하면 조금 그저 그랬다.
전설의 요리사와 요리 스킬이 없는 이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혼자 사냥하시는 건가요?"
"네, 뭐......."
"이것도 인연인데 친구 추가 안 하실래요?"
퍽!
종기가 페드라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다.
[종기: 야, 갑자기 순서를 훌쩍 뛰어넘지 말라고! 고기 한번 같이 먹었다고 바로 친구 추가냐!]
[페드라: 그, 그래?]
종기와 페드라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눈치를 사알짝 살폈다.
"으음......."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아, 역시나.
한 발 전진했더니 세 발 물러난 느낌이었다.
어떻게는 한 발이라도 다시 전진하고자 종기는 노력했다.
"아하하, 죄송해요. 이 녀석이 원래 좀 이래요."
"내가 뭐?"
종기가 조용히 있으라는 뜻으로 페드라의 옆구리를 다시 때렸다.
페드라는 뭔가 억울하다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종기는 방금 전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다시 말을 이으려고 했다.
구구구구구-.
그 순간, 땅에서 무언가 심한 지진이 느껴졌다.
울림이 점점 커지는 것이 뭔가 지진의 원인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지진의 원인이 바로 아래까지 왔다고 느낀 그 순간, 땅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앗-! 내 고기가!"
셋은 모두 직전에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겨진 모닥불과 고기 꼬치들은 장렬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직 많이 남아 있던 고기 꼬치가 전부 땅에서 튀어나온 것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흙으로 빚어진 커다란 지렁이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그것은 좋아라 하면서 거대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에 그것이 튀어나올 때의 일이 전투 판정을 받은 것인지 눈앞의 몬스터의 정보가 떠올랐다.
[벌키 클레이 웜]
레벨: 227
"아니, 얘가 갑자기 왜 나와?!"
코미아의 숲의 필드 보스 몬스터 '벌키 클레이 웜'.
리스폰에 필요한 시간이 한 달인 이 몬스터는 2주 전에 아레나 길드에게 사냥되었다.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되는 녀석인 것이다.
'버그? 아, 설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버그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뒤이어서 다른 무언가가 생각이 났다.
[기간트 레드 베어의 살코기를 굽는 냄새는 몬스터를 유혹할 확률이 있습니다.]
그 유혹이 이런 것도 가능한 거였냐!
아이템의 예상치 못한 숨겨진 능력을 알아낸 것은 좋았지만 상황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2주 전과 그 한 달 전에 사냥된 것이 유일한 벌키 클레이 웜의 공략법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두 번 모두 아레나 길드에서 레이드를 성공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평소 같았다면 레이드 영상을 공개해 수익을 벌어들였을 녀석들이 레이드의 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리스폰에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라는 것도 겨우 알아낸 정보였다.
마치 다른 이들이 사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아레나 길드는 정보를 통제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략법을 숙지하고 있다고 해도 셋이서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닌 것은 그대로지만 말이다.
중기는 일단 길드 채팅에 상황을 알리고 스크롤을 사용하여 바로 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았다.
[길드 채팅 중기: 코미아의 숲 남쪽 정확히 9시 방향, 마을에서 전력 질주로 30분 거리! 벌키 클레이 웜 떴습니다! 지원 바로 가능한 사람?!]
[길드 채팅 라이스터: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나올 때가 아닐 텐데?]
[길드 채팅 아르코: 뻥 아냐?]
[길드 채팅 페드라: 진짜예요! 설명하려면 길어지지만 진짜라고요! 올 수 있는 사람 당장 다 끌고 와요! 뻥이면 내가 아르코 만세 삼창을 외친다!]
[길드 채팅 백설: 진짜인가 본데? 으음, 일단 나는 갈 수 있어. 라이스터, 나 먼저 이동할 테니까 레벨 200...... 아니, 210 이상인 애들 중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애들을 추려서 눈에 안 띄게 나눠서 데리고 와. 페드라, 40분만 버텨.]
[길드 채팅 라이스터: 네.]
[길드 채팅 아르코: 아, 공주님! 나랑 같이 가!]
설백호의 정예들이 코미아로 모이기 시작했다.
* * *
"거기...... 니임! 님! 40분만 버티면 저희 길드의 증원이 올 거예요! 도망치셔도 괜찮지만 이건 기회라고요!"
페드라는 열심히 벌키 클레이 웜의 공격을 피하면서 호야에게 소리쳤다.
중기는 진즉에 뒤로 빠져서 어그로가 튀지 않을 정도로만 엄호를 하고 있었다.
벌키 클레이 웜이 등장한 이유가 페드라에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호야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니 그에게도 벌키 클레이 웜의 레이드에 참가할 자격이 있었다.
필드 보스 몬스터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레이드에 참가하게 된다면 그에게도 떨어질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페드라는 생각했기에 그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레이드를 해서 자연스럽게 길드와 친분을 쌓게 하자는 빠른 계산에서 나온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우드디어를 한 방에 보내 버리는 그의 실력을 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어차피 길드에 가입시키기만 한다면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파바바바바밧-!
벌키 클레이 웜이 입으로 크게 숨을 삼키자 몸에 수많은 구멍이 생기며 오므려졌다.
구멍이 벌어지자 거기서 수십 개의 진흙 탄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진흙 탄이 명중한 곳의 나무와 땅이 살짝 녹아내린다.
평범한 진흙 탄이 아닌 모양이다.
"아으, 젠장!"
페드라는 벌키 클레이 웜의 몸에 박혀 버린 자신의 검을 빼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벌키 클레이 웜의 공격을 피해 내며 검을 뽑을 수 있었다.
무턱대고 검을 깊게 휘둘렀더니 벌키 클레이 웜의 몸이 마치 진흙처럼 변하며 검을 옭아매었다.
한 방 한 방의 강한 공격이 아닌 얕고 빠른 공격으로 대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정한 페드라는 호야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다행히도 그는 페드라의 염원대로 도망가지 않고 벌키 클레이 웜의 공격을 피하며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때 타이밍을 잡은 호야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을 들고서 벌키 클레이 웜에게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전력으로 내리칠 기세였다.
"아! 너무 깊게 배면 안 돼요! 칼 잡혀요!"
저러면 무기가 벌키 클레이 웜의 몸에 잡혀 버릴 텐데!
페드라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기에 전력으로 호야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호야는 그의 말을 못 들은 것 같다.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건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페드라는 보았다.
'어, 저거......!'
새하얀 검등과 신비로운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검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밤하늘 같은 검푸른 선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호, 호수......!"
얼마 전에 블랙헤븐을 완벽하게 꺾으면서 유명해진 호수의 검이었다.
설마 저 사람이 호수인 건가?
'대박......!'
호야의 검이 푸른빛에 감싸이더니 벌키 클레이 웜의 몸통을 두부 자르듯이 깊게 베었다.
서걱-!
"우어어어어어-!"
호야의 검이 벌키 클레이 웜의 몸을 꽤나 깊게 가르자 벌키 클레이 웜이 큰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몸이 꾸물거리며 상처를 메꾸었지만 회복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키 클레이 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HP 게이지에는 호야가 깎은 체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호야도 페드라의 검이 벌키 클레이 웜의 몸에 박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호야는 자신의 검이 잡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