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30화 (30/171)

# 3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5화

5. 세계의 끝

"모안, 모안은 몇 살이에요?"

"뭐?"

모안은 호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움찔거렸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한테 그런 질문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나이 관련 질문만 아니면 괜찮아요?"

"으응, 그렇지, 뭐."

"모안의 풀 네임이 혹시 모안 엔스라이인가요?"

호야의 말에 모안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라움이 섞인 어떻게 알았느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호야는 자신이 우연히 마탑에 가서 보았던 것을 설명했다.

"내가 그 사람의 자손일 수도 있잖아?"

"그녀에게 자손은 없었어요."

그녀의 가족은 1대 마탑장이었던 아론 엔스라이가 유일했다.

그도 결혼은 하지 않았었기에 그의 자손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구나."

모안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곧이어 그녀의 발밑에서 마법진 하나가 빛나더니 그녀의 모습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사라진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모안 엔스라이의 초상화에 그려져 있는 여자였다.

솜사탕 같은 하늘색 머리부터 어린아이 같은 몸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맞아. 내 풀 네임이 모안 엔스라이야. 전에는 마탑장을 맡은 적이 있지. 속이려고 모습을 바꾸고 있던 거는 아니야. 생활하는 데에는 어린 모습이 여러모로 편하거든. 이렇게 까발려진 거 앞으로는 누나라고 불러!"

"......그 모습도 원래 모습은 아니지 않아요?"

"응?"

"책에 쓰여 있던 대로라면 모안은 지금쯤 이백팔ㅅ...... 악!"

"그런 거 정확히 말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는 백 살이 넘어서도 이 모습이었거든! 지금도!"

모안이 호야의 말을 끊으며 그의 머리에 바위 같은 딱밤을 날렸다.

"그래서 궁금한 거는 다 풀렸어?"

"으으...... 그게...... 다른 마탑장들에 비해서 왜 그리 마탑장의 자리를 빠르게 내려놓은 건지......."

모안의 마탑장 임기 기간은 다른 마탑장들에 비해 매우 짧았다.

역대 마탑장들은 누구보다도 마법의 높은 경지에 도달했었다.

그 영향으로 몸의 노화가 느렸기에 최소 50년은 마탑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탑장의 자리를 후대에 넘길 때에도 정정한 모습을 유지했었다.

모안의 24년의 임기는 너무나도 짧았다.

"거, 궁금한 거 한번 참 많네. 뭐, 딱히 비밀은 아니니까......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알려 줄게. 그 전에, 숙녀에게 나이를 물어본 것도 모자라서 입 밖으로 꺼내려 한 벌은 받아야겠지?"

모안의 밝은 미소가 무섭게 느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 *

모안은 호야에게 딱밤 아닌 딱밤을 하나 더 먹이고서는 그와 함께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마법을 사용해 하늘을 날았다.

"호야, 이곳이 왜 땅끝 마을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뇨. 음, 비유적인 표현인가요?"

"아니, 이 마을은 말 그대로 땅끝에 만들어졌어."

호야를 데리고 한참을 날아가던 모안은 한 황무지 위에 그와 함께 착지했다.

"여기가 바로 땅끝이야."

"네?"

모안이 손으로 가리킨 장소에는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땅끝이라는 것이지?

호야의 그런 의문을 진즉에 눈치챈 모안이 말을 이었다.

"일단 나를 따라와. 그럼 알게 될 거야, 여기가 왜 땅끝인지를."

"네에."

"위험하니까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모안이 들고 왔던 지팡이로 바닥을 콩 내리찍었다.

그러자 지름 3m 정도의 마법진 하나가 생겨나 빛의 벽으로 둘을 감쌌다.

모안을 따라서 몇 발자국 앞으로 걷자 호야는 이상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막을 지나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벽을 지나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받은 직후 호야의 시야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걸음 앞의 깊고 깊은 절벽 아래에는 기분 나쁜 검은 기운들이 모여 있었다.

드문드문하게 검은 기운이 살짝 걷혀 있는 구멍을 통해서 잿빛으로 물든 땅이 보였다.

휙.

호야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모안과 함께 땅에 내려섰던 장소가 보였다.

하지만 그곳과 호야 사이에는 못 보던 벽이 존재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푸른 빛을 발하며 회전하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호야가 설명을 요구하듯이 모안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옛날이야기가 될 거야."

* * *

아직 이니티움이 오픈하기 전.

그러니까 플레이어들의 흔적이 전혀 없는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는 오랜 옛날.

지금은 전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마족들의 기록이 남아 있는 그 시기에 마족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모여 탑을 세웠다.

그것이 마탑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첫 리더, 1대 마탑장인 아론 엔스라이.

그는 그 시기 최고라 불리던 마법사였으며 훗날 전설로 성장할 모안의 오빠였다.

마탑장이 된 아론은 마족들을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마법의 훈련과 연구를 계속하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죽더라도 세계 자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마법사들을 교육했다.

모안도 그 교육을 받는 마법사들 중 하나에 속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심어져 있는 재능이라는 씨앗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크게 성장했다.

"오빠! 이거 봐 봐! 나도 이제 날 수 있다!"

"하하하, 내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마탑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무서운 아이다.

살짝 요령을 알려 줬을 뿐인데 3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부유 마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모안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이 오히려 공부가 될 정도였다.

저렇게까지 성장하였으니 자신의 뒤를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아론은 생각했다.

아론은 모안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다.

"모안, 어째서 이 잘생기고 짱짱 센 오빠가 왜 마법사들을 모아서 마탑을 만든 것인지는 알고 있지?"

"잘생기고 짱짱 센 오빠는 몰라도 이 천재 마법사 모안 님의 오빠가 마탑을 만든 이유는 알고 있지. 마족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잖아."

"......그, 그래.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꾼 아론은 모안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안,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마족들을 토벌하기를 반복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사람들의 발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곳으로 몰아넣을 거야. 준비는 모두 끝났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마족들을 한곳으로 몰아넣어 세계 자체를 나눠서 그곳에 결계를 치고 다른 이들은 그곳의 장소도, 존재조차도 알 수 없게 주변을 왜곡시켜 숨길 거야."

"오빠 제정신이야?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세계를 나눈다니......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얼마나 큰 대가와 마력이 필요할지....... 오빠 설마?!"

모안은 마법을 이용해 아론의 몸을 살피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가를 빨갛게 물들였다.

아론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하하하,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시 너한테는 들켰네. ......울지 마, 모안. 앞으로 10년. 그 안에 네가 내 뒤를 이어 탑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어."

"......."

모안은 터져 나오려는 화와 눈물을 참았다.

세계의 평화가 뭐길래 꼭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인간이 아니게 되면서도 이 세계를 지키고 싶은 거야?

자신이 지켜 낸 세계에 본인이 존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싶었다.

나에게는 세계보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몸은 이미 죽어 있었다.

마력 그 자체. 그는 스스로 인간의 몸을 버렸다.

정령에 가까운 기척이었지만 자연의 마력이 스스로 자아를 깨우쳐 살아 숨 쉬는 형태인 정령과는 달랐다.

그는 마력을 억지로 뭉쳐 놓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몸이라는 그릇이 없기에, 제한이 없기에 한계 없이 마력을 쌓을 수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모아 놓은 마력을 전부 사용했다가는 억지로 마력을 뭉쳐 놓은 힘이 흩어져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었다.

"부탁할게."

왜 자신에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답은 뻔했다.

미리 알았다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기에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모안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론이 자신을 바쳐 가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모안은 그 뒤로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마족들을 토벌하였으며 아론의 뒤를 이을 준비를, 마탑장의 자리를 이을 준비를 해 갔다.

마탑장은 제일 강한 마법사의 자리.

사람들은 모안을 아론의 다음으로 강한 마법사라 인정하고 있었다.

최근 수년간 보여 주었던 성장은 아론이 마탑을 만들었을 때와 같은 나이가 되면 그를 능가할 것이라는 판단을 받았기에 모안이 마탑장의 자리를 있는 것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아론의 뜻에 따라 모안이 마탑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직후, 그녀는 지금에 와서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하고 늘어난 마탑의 마법사들을 총동원하여 마족들을 토벌하며 그들을 한곳으로, 아론이 말했던 장소로 몰아넣었다.

마족들이 도착하자 아론은 최후의 마법을 시전했다.

아론은 우선 마족들이 몰려 있는 세계의 일부를 나누어 이 세계가 아니게 하였다.

그리고 이 세계와 이어져 있는 지점에 수백, 수천만 개의 작은 마법진들로 이루어진 결계를 세워 입구를 막아 그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켜서 사람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 장소를 유일하게 정확히 알고 있고 다가갈 수 있는 모안이 그의 의지를 이어서 결계를 관리하고 보수했다.

아론의 힘으로 땅에서 마족들이 사라졌지만, 그의 업적은 정확히 기록되지 않고 그저 마족들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마족들의 세계, 마족들의 땅인 마계의 존재를 악인들이 알게 되는 것을 막고자 한 그의 의지로 인해서였다.

지금에 와서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자는 모안밖에 남지 않았다.

마족들이 땅에서 사라진 후, 모안은 아론이 자신을 희생하여 이룬 것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마탑장의 자리를 유지하며 결계의 보수를 하러 다녔다.

하지만 곧 마탑장의 위치에서 계속 그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마탑장의 자리를 후대에게 넘겼다.

3대 마탑장은 아론과 모안의 숭고한 희생과 의지에 감동하여 마탑장들이 대대로 그녀를 도울 것을 약조했고 실현했다.

마계의 입구가 있는 땅, 아론이 세상과 단절시킨 장소에 터를 잡은 모안은 틈이 나는 대로 마족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결계를 관리했다.

그리고 아론의 이상이었던 세계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모안은 조금씩 자신의 적적함을 달래 주고 자신에게 힘을 보태 줄 사람들을 찾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백발백중의 강력한 화살을 쏘아 내는 궁수였다.

그다음에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무구를 만드는 대장장이.

그리고 세계에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다는 탐험가.

성녀의 수호 기사였던 성기사.

정의감이 넘치는 올곧은 무투가.

당대 최고의 검이었던 기사.

최고의 맛을 만들어 내던 요리사.

그들을 모아서 모안은 그 앞에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세계를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각자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서 그들은 모두 오르도의 주민이 되었다.

땅끝 마을 오르도.

그곳은 역사 속에 남겨진 전설들이 살아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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