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4화
4. 저물어 가는 검은 하늘(3)
현재 네크로맨서가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언데드.
데스 나이트가 허무하게 빛이 되어 사라졌다.
"뭐, 뭐, 뭐어...... 뭐야!"
디노는 자신의 데스 나이트가 이리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니, 데스 나이트는 스켈레톤이 아니라고!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질 녀석이 아닌데.......
그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호야는 그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버프까지 신성력에 사용하며 지금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을 내었다.
언데드들은 그의 검을 두 번 이상 버티지 못했다.
두 번 이상 버티는 것도 데스 나이트들뿐이었지만.
굳이 이렇게 언데드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소환주를 처리하면 언데드들은 자동적으로 소멸한다.
지금 소환되어 있는 언데드들도, 당황하며 뒤늦게 블랙헤븐의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하고 있는 언데드들도 그들을 먼저 치면 모두 한 번에 사라질 일이었다.
하지만 호야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호야가 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그들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인물이라 인식해 주는 것이었다.
언데드들을 사냥하지 않고 소환주를 곧바로 노려 처리했다가는 빈틈을 보였을 뿐, 그녀석이 운이 좋아서 자신을 이긴 것뿐이라는 행복 회로를 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일이 길게 이어질 것이었다.
호야는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들의 공격 수단을 전부 없애서 차이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너희는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환되어 있던 언데드들도, 소환되던 언데드들도 0이 되었다.
지금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호야가 사용한 스킬은 신의 가호, 버프, 신속뿐이었다.
"뭐, 뭐 해! 공격하지 않고!"
이곳에 있는 블랙헤븐의 길드원들은 네크로맨서들만이 아니었다.
암흑 기사와 흑마법사도 존재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들에게도 데스 애로우 같은 소소한 공격 스킬이 존재했다.
디노는 그들에게 공격을 명했다.
디노의 일갈에 그들은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호야를 공격했다.
하지만 모든 스킬이 호야에게 닿지 않았다.
호야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암흑 기사 한 명이 방패를 내세우며 돌진했다.
하지만 호야는 가볍게 한 발 움직이며 그의 돌진을 피해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그 암흑 기사에게 대미지는 별로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대신에 디노에게 큰 정신적 대미지가 들어갔다.
"야 이 병신들아! 그걸 하나 못 잡고 구르고 있어?!"
데스 나이트를 손쉽게 죽이는 녀석을 상대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의 말에 길드원들이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그의 말에 겉으로 반발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의 말에 길드원들이 속으로 분을 삼키느라 아주 잠깐 몇 초 동안 그들의 공격이 멈추었다.
그 잠깐의 몇 초라는 시간도 호야에게는 큰 시간이었다.
호야는 그 몇 초 사이에 스피어를 사용했다.
호야의 주변으로 1m의 한기를 내뿜는 얼음의 창들이 세 개 생겨났다.
안개 설원의 최초 1인 클리어 보상으로 인해 생겨난 얼음 속성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호야에게 운 좋게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탁한 마법의 팔찌가 '스피어'에 반응하였습니다.]
['스피어'가 6번 추가로 시전됩니다.]
호야의 주변으로 여섯 개의 얼음의 창이 순식간에 더 생성되어 그 즉시 블랙헤븐을 향해 날아가 폭발했다.
스피어의 직격한 블랙헤븐들 중에서 그 일격을 버틴 자는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디노와 클로에, 흑마법사로 보이는 사람 한 명뿐이었다.
디노는 이미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들을 모두 소환했다.
다시 소환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를 얕보고 과시를 위해서 한 번에 전력을 모두 내보낸 것이 그의 실수였다.
클로에도 네크로맨서,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가 아직 남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어도 별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흑마법사가 한 명.......
이미 전의를 모두 잃은 것인지 등을 돌리고 뛰어 도망치고 있었기에 블렛을 쏘았다.
스피어의 폭발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버프를 등에 업은 호야의 블렛이 흑마법사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흑마법사는 바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클로에와 디노도 곧바로 흑마법사의 뒤를 따라 빛이 되었다.
* * *
이니티움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호수'라는 닉네임으로 올라온 두 개의 영상 중 하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조용하게 올라왔던 영상의 파장은 매우 거셌다.
-님들, 제가 뭘 잘못알고 있는 건가요? 데스 나이트가 왜 검 두 방에 훅 가는 거죠? 중간에 영상 잘라서 편집한 건데 제가 눈치를 못 챈 것뿐인가요?
-이거 절대 잘라서 편집한 영상 아님. 백 퍼 노 편집이야.
-와, 데스 나이트를 무슨 나뭇가지 치듯이 가볍게 잡냐;;
-저거 신성 마법 때문에 그럼. 영상 주인 몸에서 빛 나오는 거 안 보임?
└신성 마법 때문이면 개나 소나 다 데스 나이트는 두 번 쓱싹 하면 죽이겠네. 저 사람이 어마 무시한 거다.
-그래서 저분은 누구시죠? 호수라는 닉네임 랭킹에 없던데.
└저 정도면 빼박 랭커인데 인 겜이랑 홈페이지랑 닉네임 다르게 쓰는 듯. 그런 사람들 많잖아.
-이 댓글을 보고 계실 사랑하는 운영자님! 머리 염색약 업데이트 해 주세요! 제발!
사람들은 그의 무력에 감탄했고 영상에 나오는 그가 로랑이 올렸던 영상에 나오는 동일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영상에 확실하게 그 특이한 붉은 칼날의 검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로랑의 영상을 본 많은 대장장이들이 그를 따라 하며 같은 디자인의 검을 제작하려 했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인지 영상에 나오는 검과 같은 붉은 빛을 낼 수 없었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밤하늘 같은 검푸른 선은 발끝에도 닿지 못했다.
호수의 영상에 찍힌 검은 확실하게 로랑의 영상에 나오는 검과 같은 검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무력, 그것들만으로도 동일인이라는 증거는 충분했다.
그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보였다.
영상에서는 그의 얼굴이 후드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이러한 일을 한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지만 왜 그러한 일을 한 것인지는 같이 올라온 다른 영상과 블랙헤븐이 올렸던 영상들로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이 올라온 다른 하나의 영상에는 블랙헤븐에게 연속 PK를 당했던 파티가 블랙헤븐에게 PK를 당하려는 것을 붉은 검의 플레이어가 구해 주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이유를 꽤 정확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다 정리해 준다.]
일단 이 영상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어.
호수 님이 올린 영상 중에 성훈이라는 파티가 블랙 리자드맨에게 둘러싸인 곳부터 시작해서 호수 님이 구하는 영상이 1번이야.
그리고 로랑 님이 올린 영상이 2번.
블랙헤븐이 올린 영상들이 다 싸잡아 묶어서 3번.
데스 나이트를 쓱싹 하는 영상이 4번이야.
이렇게 말했으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시나리오가 얼추 나오지?
이렇게까지 말해 줘도 모르는 애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다시 정리해서 말해 줄게.
자신들이 PK 하는 것을 방해한 블랙헤븐이 호수 님을 족치려고 길드원들을 보냈어.
그런데 역으로 당해 버렸고 그게 영상으로 퍼진 거야.
가뜩이나 없는 이미지가 깎이고 창피를 당해서 화가 난 디노가 그 사람을 자기가 직접 치겠다며 찾았는데 도저히 못 찾겠는 거야.
그러다가 성훈의 파티가 생각나서 미끼로 쓰자! 해서 걔들을 괴롭혔지.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 호수 님이 직접 가서 쓱싹 한 거야.
-이 글에 추가해 주자면 디노가 영상에서 '나는 내 여자를 건드리는 것과 내 길드에 창피를 주는 거는 절대 용서 안 하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 녀석이 있지!'라고 하잖아. 그게 호수 님을 말하는 걸 거야. 1번 영상에 나오는 여자가 4번 영상에서 보면 디노의 팔을 아주 꼬옥 잡고 있거든. 디노의 표정도 좋아 죽고 말이야. 그 여자가 자기 여친인데 여친이 PK 하는 것을 방해했고 거기에 더해서 2번 영상이 생겨 버려서 3번 영상들이 생겨난 거지.
└님 점집 차려도 될 듯.
└결국 이 일이 벌어진 이유가 디노가 여자한테 눈이 멀어서라는 거 ㅇㅈ? ㅇㅇㅈ
-덤으로 호수 님이 굳이 영상을 찍어서 올린 이유가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음. 내 사람 건들면 용서 안 한다! 이런 거.
└크으, 진짜 그런 거면 개멋지다. 남자인데도 반하겠어.
-은혜로운 운영자님! 제발 머리 염색약 업데이트 해 주세요!
디노는 이틀간 사망 패널티로 인해서 접속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퍼질 대로 퍼져 버린 영상을 보고서 분노했다.
"씨발!"
지금 모든 사람들이 블랙헤븐을,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이건 클로에를 위한 일이기 이전에 자신의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사망 패널티로 인한 접속 제한이 끝나자 디노는 곧장 다시 접속하여 길드 하우스로 향했다.
길드 하우스에 길드원 전원을 소집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자식을 끝장내 주마.
그러한 생각으로 도착한 길드 하우스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를 않았다.
"카오 상태라서 갈 곳도 없는 새끼들이 어딜 간 거야?"
디노가 그리 화를 내며 혀를 차고 있자 그를 향해 바람의 칼날이 소리 없이 날아왔다.
[즉사에 이르는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디노가 빛이 되어 사라지는 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흥, 그러게 호야를 왜 건드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블랙헤븐의 길드 마크를 달고 있으면 갑작스러운 사망을 맞이한다는 소문이.
매우 허황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허황된 일을 당하지 않은 블랙헤븐의 길드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인이 길드에 있다고 생각한 길드원들이 조금씩 길드를 이탈하면서 블랙헤븐은 자연스럽게 해체의 길을 걸었다.
* * *
성훈은 영상을 보면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처음에 호야가 미끼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 살짝 불안감마저 느껴졌었다.
그런 그의 불안감을 호야가 구해 주겠다는 말로 진정시켰다.
호야가 성훈에게 부탁한 것은 딱히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도시를 나가서 블랙헤븐, 디노만 끌어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후 우리가 말려들지 않게 도망칠 수 있도록 호야는 자신들에게 워프 스크롤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도망칠 수단도 생겼으니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선공을 받아 전투 판정이 되면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디노는 지금까지 그들을 정신적으로 구석으로, 낭떠러지로 몰아넣기 전에는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워프 스크롤을 이용하여 도망칠 타이밍은 충분히 있었다.
도시 밖으로 나와 사냥터에 들어서니 어김없이 블랙헤븐은 자신들을 포위해 왔다.
디노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우리에게 신호를 주어 워프 스크롤을 사용토록 했다.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도망치고자 하여 그의 말에 따라 워프 스크롤을 찢었다.
그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야가 도시로 돌아왔다.
호야는 그들에게 상황을 정리했다는 말을 하고서 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뒤늦게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영상을 확인한 그는 호야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다시 한 번 남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을 구해 주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한순간이나마 속으로 그를 원망했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비단 그것은 성훈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그의 파티원 모두가 동시에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