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27화 (27/171)

# 2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2권 2화

2. 저물어 가는 검은 하늘(1)

사람들이 쓴 게시 글을 보고 찾아간 블랙헤븐 TV에서의 영상들을 본 호야의 미간이 일그러지며 눈동자는 싸늘하게 식었다.

-나는 내 여자를 건드리는 것과 내 길드에 창피를 주는 거는 절대 용서 안 하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 녀석이 있지! 그런데 도통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지를 않아서 말이야. 꼭꼭 숨어 있으니 뭐, 나오게 해 줘야겠지?

이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호야는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영상의 제목이 '녹색 머리의 이상한 가면'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고 부딪치지만 않으면 별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자신뿐이었나 보다.

그들은 집요하리만치 성훈의 파티를 뒤쫓으며 사냥하고 있었다.

랭킹에 그의 닉네임을 검색해 보니 레벨이 4개, 랭킹은 몇백 등이나 떨어져 있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야?

PK 영상의 말미에 블랙헤븐의 길드 마스터인 디노가 꼭 하는 말이었다.

호야를 끄집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때 호야의 머릿속에 전에 백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바로 말해 주세요.

호야는 백설에게 귓속말로 과정과 상황을 설명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찾아가서 싸우면 되는 걸까?

[백설: 그냥 방관은 못 하시는 거죠?]

[호야: 네.]

방관?

방관은 호야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백설: 그럼...... 저희 길드로 들어오실래요? 제가 다 해결해 드릴게요.]

성훈의 파티를 협상 혹은 협박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 같아서 살짝 화가 났다.

[백설: 농담이에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이런 것을 빌미로 가입을 권유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죠.]

진짜로 농담인 것일까.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백설: 으음, 역시 다시는 설치지 못하도록 힘으로 확실히 찍어 누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그건 무리가 있겠죠. 호야 씨는 단체가 아닌 개인이니까요. 아니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확실한 증거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거나? 아, 블랙헤븐은 이미 이미지가 바닥이니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호야: 조언 감사합니다.]

[백설: 네? 설마 하시려는 것은 아니죠? 호야 씨는 혼자라고요. 디노는 데스 나이트를 세 개나 소환할 수 있어요. 게다가 길드원들도 주변에 있을 거라고요.]

[호야: 가능해요. 괜찮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한 호야는 마을 귀환을 사용했다.

* * *

"젠장, 그 자식들 도대체 뭐냐고!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냥 며칠 게임 접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랬다가는 선두에서 훨씬 더 뒤처지게 될 거야!"

"지금도 충분히 뒤처졌어! 나 레벨이 6개나 내려갔다고!"

그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 대문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혹시 블랙헤븐이 우리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호야 님 때문이 아닐까요?"

"갑자기?"

"동영상 제목도 녹색 머리의 이상한 가면이니까...... 우리를 이용해 호야님을 부르려는 거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들도 알고 있잖아요, 그 로랑 님이 찍은 영상에서 블랙헤븐을 상대한 것이 호야님이라는 걸 말이에요. 그거에 앙심을 품고서......."

"......일리가 있는 말이야."

만약 지금 우리들이 처한 상황의 원인이 호야에게 있다고 해도 지금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와 우리들은 그저 한번 구해 주고 구해졌을 뿐인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는 사이니까.

"이게 다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이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렙따 당할 일은 없었잖아."

"야! 그게 지금 구해 줬던 사람에게 할 말이냐! 그리고 호야님은 전혀 잘못한 거 없잖아! 엄한데다가 화풀이하지 마!"

"......미안, 내가 어떻게 됐었나 보다."

그들은 우울했다.

가상 현실 게임의 발전과 일상생활에 끼칠 영향력의 확대를 계산하고서 최대한 자본을 모아서 오픈 첫날부터 계속해서 달려왔던 그들이다.

지금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들처럼 뒷받침하고 지지해 줄 단체가 없었기에 그들과의 차이는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랭커였다.

이니티움에 모든 것을 쏟아 넣기 전에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할 때보다 돈도 많이 벌고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한데 그것이 지금 다 무너지게 생겼다.

블랙헤븐이 끈질기게 PK를 걸어오는 탓에 그들은 2주가 넘도록 제대로 사냥조차 해 보지 못했다.

사망 패널티의 시간이 끝나서 접속해 사냥을 위해 나서면 곧바로 그들이 PK를 하러 달려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비병에 의지해 마을에만 있으면 수입도 없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였다.

"다행히 아직 레바에 계셨네요."

그때, 그들에게 익숙한 동아줄 하나가 찾아왔다.

* * *

[길드 채팅 디노: 오늘도 즐거운 PK 시간이다. 그 녀석들 지금 어디 있어?]

[길드 채팅 아모스: 레바입니다. 지금 막 서문을 나서고 있네요. 그런데 인원이 한 명 더 늘었습니다.]

[길드 채팅 디노: 파티원이 늘었어? 어떤 바보야, 그 녀석은? 걔들도 이렇게까지 당하는데 질긴 것은 인정해 줘야 해, 그치? 크크큭.]

디노는 클로에와 길드원 몇몇을 데리고서 서문을 향해 움직여 성훈의 파티를 쫓았다.

처음에는 클로에를 위해서 클로에의 눈물을 멈춰 주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요즘은 하나를 집중적으로 쫓아 PK 한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몰이사냥을 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마주했을 때 벌벌 떠는 그들의 눈빛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부러 약하게 공격하여 오랫동안 가지고 노는 것이다.

전투 중에는 로그아웃도 불가능하니 아주 좋은 장난감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해 줄까?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으로 조금씩 가지고 놀까?

아니면 딱 두 명만 죽이겠다고 하면서 분열을 유도해 볼까?

저번처럼 데스 나이트를 이용해 한 번에 죽이는 것은 재미없으니 그거는 하지 말자.

그러한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움직이다가 마침내 성훈의 파티를 시야에 들인 디노는 곧장 같이 온 길드원들에게 그들의 앞을 막으라고 명했다.

"안녕? 우리 자주 본다, 그치?"

성훈의 파티를 둘러싸고 있던 블랙헤븐의 길드원들의 사이에서 디노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비열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자,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을 할 거야. 그나저나 거기 그 친구도 참 바보네? 척살이나 다름없는 짓을 당하고 있는 파티에 가입하다니 말이야. 요즘 소식이 너무 뜸한 거 아니야? 아니면 그냥 바보인가? 크크크."

그래, 이 쾌감이 좋은 것이다.

자신이 이딴 말을 내뱉어도 입도 놀리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듣고 있기만 하는 상대를 내려다볼 때의 기분이란 정말 최고였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기분이다.

'아, 물론 우리 클로에랑 같이 있을 때가 더 기분이 좋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디노가 지긋한 시선으로 성훈의 파티를 훑었다.

'으음?'

오늘은 뭔가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차 떨고 있어야 할 그들의 눈에 한 줌의 기대감이 보였다.

쟤네 왜 저래? 약이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을 디노가 하고 있자 성훈의 파티의 중심에 서 있던 망토의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있던 인물만을 자리에 두고서 그들은 품속에서 워프 스크롤을 꺼내 사용해 모습을 감추었다.

"아~ 귀찮게, 진짜."

귀찮게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인가.

쟤는 버리고 간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디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홀로 남아 있던 망토가 후드를 살짝 들춰서 얼굴을, 정확히는 가면을 보였고 그것을 본 디노의 미간이 펴졌다.

"어? 너!"

그곳에는 디노와 클로에, 블랙헤븐이 그토록 찾던 사람이 있었다.

녹색 머리에 나무껍질 같은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디노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녀석들이 사라진 것은 이제 상관없었다.

그 장난감들보다 더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이 제 발로 걸어와 주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때 목표를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는 것에 기뻐하지 말고 그대로 도망쳤어야 했다.

"뭐야, 드디어 와 준 거야? 너무 늦게 왔잖아. 사람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호야는 디노의 말에 답하지 않고 들췄던 망토의 후드를 다시 깊게 뒤집어썼다.

호야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이 났다.

디노가 그를 계속 도발하였지만 호야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 너 벙어리냐? 아니면 객기에 찾아오기는 했지만 막상 오니까 무서워서 입이 안 떨어지는 거냐? 뭐든지 딱히 상관없지만."

디노의 웃음이 더욱더 짙어졌다.

"여기서 네 선택지는 두 가지야. 하나는 이쪽의 우리 클로에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면서 사과한 다음에 죽는 거고."

디노는 손가락을 하나씩 피면서 말했다.

"다른 하나는 우리한테 장난감처럼 놀리다가 죽는 거야. 아, 둘 다 죽는 게 한 번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넌 이제부터 무한 척살이니까. 크크큭."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끝낸 디노는 언데드를 소환해 호야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전부 합쳐서 수십에 가까운 좀비와 스켈레톤, 구울들이 등장했다.

그 사이에 검은 갑주로 몸을 감싸고 갑주의 틈새로 검은 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데스 나이트 세 마리가 보였다.

디노가 한 번에 소환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이었다.

디노는 클로에를 울리고 자신을 이토록 기다리게 만든 호야를 그냥 밟아 줄 생각이 없었다.

아주 잘근잘근하게 철저히 밟아 줄 생각이었다.

"역시 우리 오빠는 대단하네!"

"후후, 내가 대단한 거는 당연한 거잖아."

클로에게 디노의 팔을 품에 꼬옥 안으며 그를 치켜세워 줬다.

디노는 자신의 팔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디노의 명령을 받은 언데드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 갔지만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언데드가 자신에게 충분히 다가오자 호야가 망토 밑으로 늘어트리고 있던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신의 가호."

호야가 읊조리자 성스러운 하얀 빛이 그의 전신과 무기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머리 뒤에서는 마치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디노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아까 호야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 때.

그때가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카각, 서걱.

호야가 검을 휘두르자 제일 앞서 있던 데스 나이트 하나가 빛이 되어 사라졌다.

"뭐...... 무슨......."

디노는 발금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블랙헤븐의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날의 검이 하얀 빛을 머금고 휘둘러지자 언데드들의 제일 앞에 높게 솟아 있던 검은색의 산이 하나 사라졌다.

네크로맨서들이 현재 부릴 수 있는 언데드들 중 강인한 힘과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데스 나이트.

그것이 최강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허무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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