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25화
25. 안개 설원(3)
"팀장님! 안개 설원의 크로커게일 레벨 200 떴습니다!"
"에리먼이 결국 해낸 건가? 못할 줄 알았는데."
던전 '안개 설원'의 보스 몬스터 '크로커게일'.
3m에 가까운 키와 2m에 달하는 길이의 꼬리를 자랑하는 이족 보행의 악어 몬스터다.
던전에는 제각각 다른 숨겨진 히든 피스들이 존재한다.
그 히든 피스를 달성할 시 던전의 일부가 변화하며 보상이 추가된다.
그중 안개 설원은 1인 입장의 상태로 8시간 안에 보스 구역에 도착하는 것이 히든 피스였다.
그 히든 피스를 달성하게 되면 보스의 레벨이 180에서 200으로 상승되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대신에 사냥에 성공할 시 최초에 한해서 모든 스탯을 50씩, 혹은 지정 스탯을 100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그 후에 히든 피스를 달성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스탯을 25씩, 혹은 지정 스탯을 50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 지급된다.
물론 중복 달성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안개 설원의 히든 피스의 달성에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으니 에리먼이 레벨 200의 크로커게일의 사냥에 성공한다면 레벨이 정체되어 있는 그는 다른 이들보다 몇 발자국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냥에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말이다.
유대후는 자신의 책상 위에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고서 곧장 에리먼의 스트리밍에 접속했다.
오늘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혹시나 했는데 진짜 성공할 줄은 몰랐다.
에리먼이 스트리밍을 시작한 지 8시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슬아슬하네. ......응?'
사원이 말했던 대로면 지금쯤 크로커게일을 눈앞에 두고 있어야 할 에리먼이 지금 막 4구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유대후는 자신에게 레벨 200의 크로커게일의 등장을 알렸던 사원에게 되물었다.
"뭐야, 아직 4구역이잖아?"
"그게...... 에리먼이 아닙니다."
"응?"
"......호야예요. 그 마을사람."
"뭐?"
아니, 걔가 여기서 왜 나와?
유대후는 바로 자신의 컴퓨터를 조작해서 호야의 안개 설원 공략에 대한 로그를 불러왔다.
플레이어 개인의 정보를 보는 것은 이브의 허락이 필요했지만 던전의 로그 정도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구역의 클리어에 걸린 시간이 2시간 48분, 제2구역 클리어에 걸린 시간이 54분, 제3구역이 52분, 제 4구역이 1시간 23분으로 보스 구역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총 5시간 57분이었다.
2시간이나 여유롭게 히든 피스를 달성했다.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약 두 달 전에 갑자기 등장해 두통에 시달리게 했던 마을사람.
좀 괜찮아지려는 찰나에 다시 랭킹에 이름을 올리더니 무섭게 랭킹을 치고 올라가고 있는 마을사람.
그 덕에 유저들과 방송국 등에서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게 해 준 마을사람.
던전을 혼자 클리어 하고 레벨 200의 크로커게일까지 사냥한다면 들어오는 경험치가 어마 무시할 텐데.......
랭킹도 한 번에 쑤욱 올라갈 텐데.......
요즘은 잠잠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하아, 벌써부터 전화기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퇴근길에 유저 관리 팀의 석훈이랑 술이라도 마셔야겠다.
* * *
모든 것이 새하얀 세계에 유일하게 색을 가진 것이 있었다.
털 달린 후드의 갈색 로브를 입고서 후드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한 손에는 창을 세우고 있는 3m에 이르는 거대한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은 아니었다.
후드 아래로 삐져나온 입은 너무나도 길었고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송곳니와 피부를 덮고 있는 잿빛의 비늘들은 이미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로브의 뒤로 삐져나온 기다란 잿빛의 꼬리는 가볍게 내리쳐도 바위를 부술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흡사 이족 보행을 하도록 진화한 악어 같았다.
[던전 '안개 설원'의 히든 피스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스 몬스터 '크로커게일'의 레벨이 180에서 200으로,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보스 몬스터 '크로커게일'을 처치할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을 때였다.
쐐애액-!
크로커게일이 덩치와는 걸맞지 않은 빠른 속도로 창을 앞으로 날카롭게 뻗은 채 호야를 향해 땅을 박찼다.
고개를 옆으로 꺾어 창을 피해 낸 호야지만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와 머리카락이 조금 찢겨 나갔다.
잘려 나간 부분에는 조금 서리가 맺혀 있었다.
호야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스탯이 호야의 시선을 따라가지 못해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는 것은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의 이후로 처음이었다.
크로커게일은 민첩 특화의 몬스터였다.
카각!
호야가 그 즉시 발도한 검을 크로커게일은 창대를 비틀어 막아 내었다.
자신의 창과 함께 호야의 검을 튕긴 크로커게일이 반탄력을 이용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크르으으으......."
"......."
낮게 흘리는 울음소리에 후드 아래로 보이는 세로로 찢어진 동공의 노란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용해 주마.
호야는 크로커게일에게 가까이 달려가면서 일부러 순간적으로 왼발을 반박자 늦게 내디뎠다.
그것을 호야의 몸에 무언가 이상이 있음으로 받아들인 크로커게일은 호야가 빈틈을 보인 왼발을 노리고 창을 휘둘렀다.
여전히 빠른 속도지만, 공격해 올 장소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호야는 그 공격을 쉽게 피해 낼 수 있었다.
왼발이 있던 자리에 박힌 창날을 밟아서 크로커게일의 공격 수단을 없앴다.
그 즉시 호야는 바로 앞에 있는 크로커게일의 몸통을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분명히 들어가야 했을 공격인데 손에는 전혀 느낌이 없었다.
크로커게일이 호야의 공격을 도무지 중심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뒤로 숙여서 피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제3의 팔과 다리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다란 꼬리로 중심을 잡고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꼬리에 힘을 주며 몸을 한순간에 일으킨 크로커게일이 호야에게 호쾌한 박치기를 먹였다.
"크읏."
꼬리를 이용할 줄이야. 무의식적으로 꼬리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 실수였다.
어째서인지 크로커게일이 살짝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인 것일까.
어, 콧방귀까지 뀌는 것을 보니 착각이 아닌 듯하다.
그래, 제대로 해 줄게.
"버프, 민첩."
[30분간 민첩이 30%, 힘, 체력, 마력, 신성력이 5% 상승합니다.]
"신속."
버프를 사용하고 크로커게일에게 가까이 다가간 호야는 그 즉시 신속을 사용했다.
그는 크로커게일의 옆을 짧게 지나치듯이 움직이며 10번이 넘는 공격을 가했다.
"크으에에에엑!"
전혀 예상치 못한 호야의 속도에 대응하지 못한 크로커게일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여럿 생겨났다.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의 효과로 상대에게 상태 이상 '출혈'이 발생합니다.]
[상대방의 상태 이상 '출혈'의 지속 시간 동안 HP를 지속적으로 극소량 회복합니다.]
무기의 특수 효과가 터진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호야를 바라보는 크로커게일의 눈동자에는 경악이 드러나 있었다.
* * *
-에리먼 님 멋져요!
-오빠! 너무 멋있어요!
-와! 방금 공격 들어간 거 봤어? 저기서 꺾는 게 가능한 거기는 하구나.
-캬~ 역시 한국 1위! 세계 9위! 진짜 최초로 솔로 클리어 가는 건가?
-안개 설원 최초 솔클 가즈아!
-가즈아아아!
'시발, 알았으니까 좀 닥쳐 줬으면 좋겠다, 너희들 다!'
에리먼은 지금 자신이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다는 것에 살짝 짜증이 났다.
네오워즈의 직원에게 뒷돈을 먹여 가며 안개 설원의 히든 피스의 조건과 보상을 알아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대량의 소비형 마법 아이템을 들고 들어왔고 그 비싸다는 직업 제한이 없는 마법 스킬 북을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구역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해서 히든 피스는 달성도 하지 못했다.
히든 피스를 달성하지 못해서 기본 그대로인 크로커게일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최초 솔로 클리어의 보상이라도 챙겨야 했다.
히든 직업인 버서커인 그는 자신만 한 대검을 무기로 사용한다.
한 방 한 방이 묵직한 공격을 자랑하지만 그것도 상대방에게 공격이 적중해야지 대미지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크로커게일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인해서 공격을 정확히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꼴사납게 크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에리먼이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장전이 오래 걸리는 대포라면 크로커게일은 연사력이 강한 기관총이었다.
후웅-!
크로커게일이 잠시 몸을 띄웠다가 착지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에리먼이 대검을 휘둘렀지만 재빠르고 가볍게 피해 버린 크로커게일이 그의 대검 위에 착지했다.
"크아아아......!"
이미 끝까지 몰려 있는 크로커게일이지만 몬스터 주제에 눈빛이 죽지도 않고 오히려 상대를 비웃으며 도발에 응해 빈틈을 보이기를 노리고 있었다.
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새......상에 내 대검이 누르지 못할 적은 없다아!"
-딸피 가즈아아아!
-에리먼 님, 힘내요!
-최초 솔클! 최초 솔클!
이 새끼가.
라고 스트리밍 중에 튀어나오려는 말을 속으로 집어넣고 이상하게 말을 끊지 않기 위해서 중 2 병스러운 대사를 내뱉어 버렸다.
살짝 치욕이지만 이 개돼지들은 그걸 또 좋아라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광폭화!"
에리먼이 스킬을 사용하자 그에게서 붉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5분간 모든 스탯을 40% 상승시켜 주고 치명타 확률이 80%가 된다.
그 대신에 스킬의 사용 시간이 끝나면 10분간 모든 방어력이 0이 되고 모든 스탯이 20% 감소하는 스킬이기는 했지만 사냥의 마지막에 사용하면 그런 패널티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에리먼은 스킬을 사용한 뒤에 진짜로 광기에 휘둘리는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스트리밍을 지켜보고 있을 100만에 달하는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에 대한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져 있어서 광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크에에에엑!"
도망치면서 틈을 노리고 공격해 오던 크로커게일이 결국 에리먼의 대검에 맞아서 멀리 튕겨 나갔다.
눈밭에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크로커게일의 숨을 에리먼이 결국 끊어 내자 댓글들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개 설원 최초 솔클!
-안개 설원 최초 솔클!
-캬~ 국뽕에 취한다! 한국이 최초 아니냐?
-에리먼 님, 축하해요~!
모든 댓글창이 축하의 말로 도배되었지만 에리먼은 그 분위기에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리먼의 그런 상태를 눈치챈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하다가 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 왜 시스템 메시지가 저거밖에 안 떠?
-뭐임? 시스템 메시지가 한 번에 많이 떠서 밀린 건가?
-그건 아니에요.
-저게 시스템 메시지가 밀려서 올라간 걸로 보이냐?
에리먼은 이 순간을 자랑하고 남기기 위해서 스트리밍의 송출 설정 중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도 보이게끔 설정해 두었다.
혼자서 클리어를 기뻐하는 자신을 보는 것보다는 시스템 메시지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그들의 이목을 쉽게 끌고 반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문제였다.
['안개 설원'의 보스 몬스터 '크로커게일'을 쓰러트렸습니다.]
['안개 설원'을 모두 클리어 하여 경험치와 아이템의 정산이 진행됩니다.]
떠 있어야 할 1인 최초 클리어의 메시지와 그것에 대한 보상에 관한 메시지가 없었다.
없는 것이 당연했다.
1인 최초 클리어의 보상은 이미 호야가 가져간 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