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24화
24. 안개 설원(2)
[펫의 이름을 '바둑이'로 설정하시겠습니까?]
[펫이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습니다.]
[펫의 충성도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검은 강아지를 슬쩍 내려다보니 방금 전의 밝았던 표정과는 달리 불만이 있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크앙!"
[펫이 자신의 이름을 변형하였습니다.]
[펫의 이름을 '바두'로 설정하시겠습니까?]
호야가 살짝 고민하자 검은 강아지는 그의 바지 자락을 입으로 물고 세게 잡아당겼다.
그냥 귀여운 작은 강아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성질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호야가 할 수 없이 펫의 이름을 '바두'로 정하자 그의 눈앞에 바두의 스테이터스가 떠올랐다.
바둑이가 뭐 어떻다고.......
이름: 바두
종족: ???
레벨: 1
HP: 1,500/1,500 MP: 2,000/2,000
힘: 50 민첩: 100
체력: 50 마력: 100
속성: 불
스킬
[화염구] [본능]
충성도: 50%
상태: 자신의 주인을 격하게 반기고 있으나 처음 지어 주었던 이름으로 인해 살짝 화가 난 상태입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본연의 힘을 거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분명히 펫은 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레벨 1이라는 녀석이 스탯만으로는 레벨 60에 버금갔다.
펫마다 레벨에 따른 성장 폭이 다르니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잡는 것도 꽤나 모순된 거지만 평범한 펫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너...... 대단한 녀석이구나?"
"왕!"
콧대를 높이 세우는 것이 마치 자신을 뽐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 *
눈에 들어오는 모든 바다가 꽝꽝 얼어 있었다.
얼어 버린 바다에는 하늘에서 내린 눈이 살포시 내려와 금세 바다와 합쳐지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바다에 살짝 불투명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끄응."
바람이 세게 불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던 바두가 호야의 두꺼운 로브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주변에 어울리는 옷을 입기 위함과 바두를 위해서 호야는 하얀색의 두꺼운 털로 된 후드 달린 로브를 결국 구입하여 입고 있었다.
바두에게도 펫 전용 장비인 털옷을 입혀 주었지만 많이 추운 듯했다.
불 속성이라는 녀석이 아직 레벨이 낮아서인지 살을 벨 듯한 추위에 영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몬스터를 여럿 사냥하였지만 바두의 레벨이 1도 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플레이어들과는 성장 폭이 다른 듯하다.
"바두야, 들어가 있을래?"
"와옹!"
[상태: 이 정도 추위에 몸서리치는 자신의 나약함에 실망한 상태입니다. 오기로라도 추위 속에서 꿋꿋이 버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아직 성장이 낮아 본연의 힘을 거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두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니 들여보내면 나중에 괜히 화라도 낼 것 같았다.
호야는 바두를 위해서 로브를 더욱 힘껏 동여맸다.
오랜 시간 걷자 빛나는 얼음 바다의 사이에 있는 눈 덮인 새하얀 섬에 도착했다.
달리면 좀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로브 사이로 들어가는 바람이 많아져서 바두를 위해서 그만뒀다.
섬에 있는 안개 설원의 입구 근처에는 호야처럼 몸을 꽁꽁 싸맨 플레이어들 여럿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던전의 안으로 들어가자 눈보라가 그쳤다.
눈앞에는 새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드문드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채 눈이 쌓여 있는 나무들과 눈 덮인 바위들이 존재했다.
바위들이 이상하리만치 많았다.
차가운 바람이 멎은 것을 느꼈는지 로브의 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바두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휙휙 둘러보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해하는 것은 좋지만 로브의 안에서 꼬리를 흔드는 것은 간지러우니 그만해 줬으면 한다.
호야가 한 발을 내딛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던전 '안개 설원'의 제1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제1구역 안의 모든 몬스터를 물리쳐야 다음 제2구역으로의 진입이 가능합니다.]
호야는 몬스터를 찾아 움직이다가 투명한 벽에 의하여 발걸음이 막혔다.
이 투명한 벽은 구역을 나누는 벽이었다.
눈앞에는 아직도 끝없이 넓은 설원이 펼쳐져 있지만 1구역의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전진이 불가능하다.
호야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이곳에 벽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지금까지 걸어온 장소에 몬스터들이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한데 호야는 던전에 들어선 후 지금까지 전혀 공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홈페이지의 글에는 1구역의 몬스터는 비선공 몬스터라고 쓰여 있었으니 아무래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직접 찾아야 할 듯하다.
호야는 걸어서 다시 자신의 발자국의 끝에 도착했지만 몬스터의 그림자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몬스터가 숨어 있는 형태라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크왕!"
그때 아까부터 품속에서 부스럭대던 바두가 고개를 내밀고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입을 벌려서 작은 불덩이를 만들어 내어 눈 덮인 바위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러자 불덩이에 맞은 바위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굵고 짧은 다리 네 개가 튀어나왔다.
이윽고 바위는 고개를 내밀어 호야를 향해 천천히 바라봤다.
[아이스 터틀]
레벨: 173
눈이 다 털려 떨어져 내린 곳에는 바위가 아닌 얼음 결정 무늬의 등껍질을 가진 커다란 거북이가 있었다.
"너......."
"왕!"
바두는 호야의 품속에서 처음과 같이 그를 향해 콧대를 높게 세우고 있었다.
그에 피식 웃은 호야는 바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서 검을 잡고 아이스 터틀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철과 철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매우 단단한 등껍질에는 그저 살짝 긁힌 자국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이것이 안개 설원의 1인 클리어의 성공이 지금까지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제1구역에서 등장하는 아이스 터틀은 물리 공격에 대해 100%에 가까운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대신에 마법 방어력은 거의 0에 근접한다.
제1구역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마법사가 요구된다.
하지만 마법사가 1인 클리어를 노리고서 홀로 들어왔다가는 제2구역의 몬스터인 아이스톤 버드에 의해서 패퇴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사 플레이어가 1인 클리어를 노리고 들어온다면 제1구역에서부터 진행이 막히는 것이 안개 설원이라는 던전이었다.
이 던전은 클리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양쪽 클래스를 모두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블랫."
호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푸른빛의 탄환이 아이스 터틀의 등껍질을 꿰뚫자 바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죽은 나무의 시선으로 인한 디버프, 레벨 170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공격력 1,020을 달성한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
전설의 계승자의 칭호들로 인한 40%의 공격력 상승과 스킬 자체에 부여되어 있는 30%의 추가 피해까지 있다.
호야의 마법은 마법사 랭커들이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못해 더 나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호야는 블렛을 5분마다 사용이 가능했다.
호야는 블렛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는 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스피어는 최대한 몬스터를 한곳에 끌어모은 뒤에 날려서 폭발로 인한 광범위적인 피해를 입혔다.
MP 회복 물약을 생각보다 많이 소모하였지만 50여 마리의 아이스 터틀을 3시간도 안 되어 모두 쓰러트릴 수 있었다.
아이스 터틀을 모두 사냥하고 투명한 벽이 세워져 있던 곳을 넘어가자 하늘에서 날카로운 얼음의 비가 호야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몸을 굴려 얼음의 비를 피한 호야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새하얗게 서리가 낀 깃털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아이스톤 버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끼에에엑!"
아이스톤 버드가 소리치자 날개 앞에 날카롭게 벼린 수많은 얼음의 칼날들이 생겨나더니 아이스톤 버드가 세게 날갯짓하자 호야를 향해 쏘아졌다.
호야는 얼음의 칼날들을 피할 것은 피하고 쳐 낼 것은 쳐 내면서 아이스톤 버드들이 땅으로 안착하기를 기다렸다.
얼음의 칼날을 일정 수 발사한 아이스톤 버드들은 휴식과 충전을 위해 잠시 동안 땅에 착지한다는 정보를 본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몇 마리의 아이스톤 버드가 땅에 동시에 안착했다.
빠르게 다가간 호야는 신속을 사용해 움직이며 아이스톤 버드들의 날개를 하나씩 잘라 내었다.
이제 날개가 잘린 아이스톤 버드들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 후, 호야는 우선적으로 날지 못하게 된 아이스톤 버드들을 정리했다.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지는 얼음 칼날의 비들을 검으로 쳐 내며 때로는 죽기 직전의 아이스톤 버드의 뒤에 몸을 숨기며 피했다.
자신의 동료가 방패가 되는 것에 화가 나 직접 공격하기 위해 하늘이라는 우위를 던져 놓고 땅에 내려온 아이스톤 버드들은 모두 예외 없이 날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서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후우."
이제 남은 아이스톤 버드들의 수는 총 세 마리. 모두 하늘에 떠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고 있자 하얀 안개가 설원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아......."
안개가 끼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은 아이스톤 버드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자신보다는 이런 환경에 익숙한 생물들이었다.
어쭙잖게 발견되면 자신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한 호야는 후드를 뒤집어쓰며 새하얀 풍경에 자신의 모습이 동화되도록 몸을 숙였다.
그러면서 호야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바두에게 물었다.
"어디 있어?"
바두가 고개를 내밀고 코를 킁킁거리더니 앞발로 하늘의 한쪽을 가리켰다.
호야는 망설임 없이 스피어를 하나 만들어 내어 바두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스피어 세 개를 전부 만들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 빛으로 인해 창을 만드는 동안 위치가 들킬 위험이 컸다.
다행히 탁한 마법의 팔찌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총 네 개의 스피어가 날아갔고 이윽고 폭발음이 들리더니 창에 맞은 아이스톤 버드가 바닥으로 큰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호야가 폭발이 일어난 거리를 가늠해 아이스톤 버드가 떨어진 장소로 재빠르게 이동하자 호야가 숙이고 있던 자리에 곧바로 얼음의 칼날이 박혔다.
호야를 노리고서 사용한 것이겠지만 호야는 이미 자리를 떠나 낙하한 아이스톤 버드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마법 방어력이 높은 몬스터지만 스피어 네 개면 하늘에서 떨어트리는 것은 쉬웠다.
호야가 낙하한 아이스톤 버드를 쓰러트리자 곧바로 바두가 하늘의 한편을 두 번 가리켰다.
"활대 베기."
그곳으로 스킬을 날리자 역시나, 남아 있던 아이스톤 버드 두 마리가 땅으로 낙하했다.
땅에 몸을 붙여 준 아이스톤 버드들 덕분에 호야는 쉽게 안개 속에서 아이스톤 버드들을 잡을 수 있었다.
바두의 스킬 덕분이었다.
[본능]
본능적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제1구역에서 아이스 터틀을 사냥하는 도중에 생겨난 안개 속에서도 바두의 덕으로 몬스터들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고마워."
"왕!"
호야는 바두를 쓰다듬으면서 간식을 물려 주고서 제3구역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