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23화
23.안개 설원(1)
1대 마탑장인 아론 엔스라이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 모안 엔스라이.
아론에게 교육을 받으며 함께 마법을 익히고 후에는 그의 실력을 뛰어넘어 마탑장의 자리에 올랐다.
모안 엔스라이의 마탑장 임기 기간은 32세부터 56세까지.
56세에 마족들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갑작스럽게 마탑장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후임에게 마탑의 자리를 넘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 수백 년 전의 이야기.
모안 엔스라이는 너무나도 먼 과거의 인물이었다.
아무리 책을 탐독해도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궁금증만 더욱 커진 것 같았다.
[백설: 호야 씨, 갑자기 죄송합니다. 혹시 블랙헤븐이라는 길드와 무언가 일이라도 있었나요?]
알아볼 것들을 다 알아보고 마탑을 나오자 타이밍 좋게 백설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블랙헤븐?
호야는 기억 한편에서 그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히 성훈이 자신들을 PK 하려고 했던 길드를 블랙헤븐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호야: 네.]
[백설: ......보통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나요?]
[호야: 그런가요?]
호야는 백설에게 레바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백설: 그렇군요....... 그럼 역시 이 영상에 찍힌 것도 호야 씨겠네요.]
백설이 귓속말로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게시 글에는 짧은 동영상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영상의 플레이를 시작하자 낯익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축축한 땅과 이끼가 잔뜩 피어 있는 나무들, 그 중심에는 자신과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장소 자체가 어두워 인물의 얼굴이 제대로 찍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야는 영상에 찍힌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상에는 호야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호야가 아이템을 줍고 자리를 뜨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게시 글에는 수없이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블랙헤븐 녀석들 꼴좋다. 전에 당했던 스트레스가 확 내려가네!
-아, 로랑 님,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으시지! 우리 소드 마스터분의 얼굴이 안 나왔잖아요!
-이거 일부러 연출한 거 아니냐? 아무리 개새끼들이라지만 블랙헤븐이 이리 쉽게 당할 녀석들이 아닌데?
└이거 방송 실시간으로 봤었는데 연출 아님. 완전 우연히 찍힌 거.
└그때 로랑 님도 놀라서 우리의 멘트 요정님이 잠깐 동안 멘트도 안하고 멍 때리셨었죠. ㅋㅋㅋㅋㅋ
-이 글을 보고 계실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운영자님! 머리 염색약 업데이트 해 주세요!
-와아, 진짜 빠르다. 설백호의 라이스터보다 빠르지 않냐 저거?
-아악! 누구야, 도대체! 저게 가능한 거 보면 랭커 중에서도 최최상위 랭커일 텐데 누군지 모르겠어! 얼굴이 안 보여!
-안녕하세요,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제작진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본인 혹은 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호야: 어...... 저네요.]
[백설: 역시...... 지금 블랙헤븐에서 누군가의 척살령을 내렸어요. 상황을 보아하니 호야 씨에게 걸린 것 같네요. 그들 성격상 공개 척살령을 내려서 현상금을 걸지는 않을 것 같지만 조심하는 게 좋아요.]
조심해야 하는 건가?
호야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 많이 위협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백설도 그에게 호의를 갖고서 정보를 알려 준 것이니 호야도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래도 일단 그녀의 말대로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백설: 그리고 하나 더, 영상에서는 호야 씨의 얼굴이 찍히지 않았으니 괜찮겠지만 지금 입고 계신 장비들은 얼굴에 끼고 계시는 가면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노출이 됐어요. 특히 무기는 평범한 것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마을같이 무기를 착용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차고 다니시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호야 씨가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원하신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요.]
백설은 다른 이들이 호야를 알아봐 그를 채 갈 것을 염려해서 말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동생이 좋아하는 이가 곤란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솔직히 호야를 다른 길드가 알아봐서 거기에 빼앗기기 싫다는 마음이 아주 약간 더 크기는 했다.
[백설: 그리고 만약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바로 말해 주세요. 그냥 도와 드리려는 것은 아니에요. 나중에 제대로 받아 낼 테니까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호야도 그런 백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어구들은 마을을 처음 나올 때부터 쓰고 있던 장비였기에 사실 지금 레벨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기에 구태여 바꾸지 않았었다.
그래도 슬슬 바꿀 때가 오기는 한 것 같다.
호야는 장비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일단 경매장은 안 된다.
현재 호야의 레벨은 170, 랭킹의 중위권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랭커들이 입을 만한 좋은 장비들은 경매장에 유통이 잘되지 않는다.
좋은 장비는 다른 이들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하여 자신들이 사용하곤 했기에 경매장에 잘 올라오지 않는다.
레벨에 맞지 않거나 더 좋은 장비를 구해 어쩔 수 없이 바꿀 때에도 길드 내에서 거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경매장에 올라오는 랭커들의 장비는 극히 드물었다.
가끔 모습을 보이는 장비들도 가격에 거품이 끼다 못해 거품이 본체같이 느껴지는 수준의 가격이었다.
아니면 그리 쓸 만한 물건이 되지 않는 착용 제한만 랭커급인 장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니 일단 경매장에서 방어구를 구하는 선택지는 제외했다.
대장장이 NPC들의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좋은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레어급부터가 죽마고우 정도의 호감도를 요구했고 혹은 수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니 이것도 제외.
재료를 구해서 대장장이 NPC나 플레이어에게 제작을 의뢰한다.
호야의 경우에는 단탈스에게 부탁하는 것이 되겠지만 호야는 이것도 지금 당장의 선택지에서는 제외했다.
단탈스에게는 웬만하면 좋은 재료를 들고 가서 부탁하고 싶었다.
단탈스의 기준에서의 '좋은 재료'를 구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었다.
'결국은 파밍인가.'
남은 선택지는 몬스터를 잡아서 장비의 드랍을 노리는 것밖에 없었다.
필드 보스를 제외한 필드 몬스터에게서 장비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러니 던전에 들어가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장비를 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호야가 필드 몬스터를 잡으면서 드랍 된 장비라고는 블랙 리자드맨이 들고 있던 낡은 시미터 한 자루가 전부였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장비를 100%의 확률로 드랍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드의 일반 몬스터가 드랍 하는 낡은 시미터 같은 것들 보다는 훨씬 좋고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호야는 필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공식 홈페이지를 둘러보았다.
일단 호야가 원하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적정 레벨이 160 이상이어야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소 입장 인원이 한 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야가 던전에 같이 갈 정도로 친분이 있는 파티는 킹의 파티뿐이었지만 그들과는 레벨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파티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소란만 키울 뿐이었다.
사람들에 익숙해지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오르내리는 것은 그때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안개 설원이라.......'
호야는 공식 홈페이지의 글들을 통해서 조사하던 중 '안개 설원'이라는 던전을 발견했다.
설원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꽁꽁 언 바다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에 던전의 입구가 존재했다.
뭐, 이러니까 게임인 거겠지.
암벽에 달린 커다란 문 너머에 지상 3층, 지하 2층의 건축물이 존재하기도 하니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원개 설원은 피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찬 바람과 그로 인한 동상 등의 상태 이상이 끝없이 발생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상태 이상으로 인해 리타이어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던전이었다.
더 나아가서 2시간 간격으로 10분간 발생되는 진한 안개로 인해서 피로감과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그 던전의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은 175, 입장 최소 인원은 한 명이었다.
최소 인원이 한 명이라고 해서 홀로 도전하는 바보는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최초 1인 클리어의 보상과 히든 피스를 노리고서 도전하는 자들은 몇몇 존재했지만 아직 클리어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호야는 그 바보 중 하나가 될 생각이었다.
'일단 챙겨야 할 것이...... 상태 이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바람을 막아 줄 두꺼운 겉옷. ......나는 상관없는 내용이니까 패스. 다른 것은 물약하고.......'
처음으로 시도하는 솔로 던전이었다.
혹시 모르니 필요한 것들은 챙길 수 있으면 챙겨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위해 호야는 잡화점으로 향했다.
잡화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잡화점에서 구하고 없는 것들은 경매장에 갈 생각이었다.
잡화점으로 향하는 길, 한 플레이어의 노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노점의 구석에 놓여 있는 스크롤의 앞의 나무판에 쓰여 있는 설명문이었다.
[여행을 함께할 친구를 만들어 보세요!]
친구.
호야는 호기심에 노점의 플레이어에게 다가가 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네? 이게 뭐냐고요? 펫 소환 스크롤입니다. 아직 펫이 없으시다면 한번 어떠세요?"
펫 소환 스크롤.
이니티움의 오픈 초창기에는 큰 붐을 일으켜서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소환된 거의 대부분의 펫들이 전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조금씩 가격이 내려갔다.
지금에 와서는 많이 저렴해졌기에 귀여운 펫을 원하는 여성 플레이어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나마도 이니티움에서는 플레이어 한 명당 하나의 펫만을 가질 수 있다는 제한 때문에 벌레나 언데드 계열의 펫이 소환된 여성 플레이어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말이다.
호야는 살짝 고민하다가 펫 소환 스크롤을 구입했다.
자리를 옮겨서 스크롤을 사용하자 스크롤을 묶고 있던 붉은색 줄이 스르륵 풀리더니 펼쳐진 스크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스크롤의 빛을 뚫고서 검은색 물체가 튀어나와 바닥에 착지하자 스크롤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왕!"
윤기 있는 검은색 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란, 품에 쏙 안길 정도의 작은 강아지가 헥헥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피처럼 새빨간 눈은 마치 루비처럼 빛났으며 새하얀 밧줄이 목줄처럼 목에 리본 형태로 묶여 있었다.
[펫의 소환이 완료되었습니다.]
[펫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이름이라.......
"음...... 바둑이?"
고민 끝에 내뱉은 이름은 그가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