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21화
21.블랙헤븐(4)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트리머 로랑입니다!"
한 남자가 허공을 향해 인사했다.
하지만 그러한 짓을 하는 그를 이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딱 보아도 스트리밍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오늘도 칼 같은 방송 인정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뭐 보러 가나요?
-아조씨 잡담은 줄이고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지금 이 형님이 골드를 쥐고 있다, 순순히 공개하지 못할까!
"하하하, 이거 바로 본제로 안 넘어가면 다들 한 대라도 치실 기세인데요? 그럼 오늘 만나러 갈 몬스터의 정체를 공개하겠습니다!"
이니티움의 스트리머 로랑, 그는 '은신 탐험가'라는 히든 직업을 지닌 플레이어다.
직업의 패시브 스킬로 인하여 공격 판정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리 선공 몬스터라고 해도 먼저 공격받지 않는 특성이 있다.
로랑은 그것을 이용하여 몬스터를 누구보다도 자세히 보여 주거나 직업 특성을 이용해 허를 찌르는 사냥을 보여 주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공격 판정만 들어가지 않으면 됐기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대는 정도의 가벼운 행위도 가능했다.
그런 식으로 가까이에서 셀카처럼 찍어 놓은 스크린 샷들은 그의 자랑감이자 자부심이자 트로피였다.
그중에는 거대한 필드 보스 몬스터의 어깨에 올라타 찍은 사진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늘 부러워하고 신기해했다.
몬스터의 모공까지 느긋하게 보여 주는 것이 그의 방송이었기에 그는 5만 명 이상의 고정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현재 시청자는 52,174명.
로랑은 밝게 미소 지었다.
"짜잔! 이곳이 과연 어딜까요!"
로랑이 화면에서 멀리 떨어지자 그의 뒤 배경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축축한 기운이 가득해서 나무들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짝 움직이자 바닥에서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기가 어디냐?
-저기 레바 옆에 있는 늪지대 아니냐?
"네! 여러분이 보신 대로 이곳은 레바의 옆에 있는 블랙 리자드맨이 출몰하는 늪지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것은 블랙 리자드맨! 블랙 리자드맨이 선공 몬스터지만 공격만 넣지 않으면 저는 무적! 오늘은 블랙 리자드맨의 동공까지 자세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멘트를 끝낸 로랑은 곧장 늪지대 안으로 들어갔다.
늪지대의 습기가 그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로랑은 탐색 스킬을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는 시청자들의 코멘트를 읽고 답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스킬에 신호가 잡히면 블랙 리자드맨을 찾아내 가까이에서 근접 촬영을 하며 방송을 이어 나갔다.
방송을 한참 진행하고 있자 블랙 리자드맨이 귀라고 추정되는 구멍을 몇 번 움찔거리더니 갑자기 늪지대 안쪽으로 달려들어 갔다.
"아아, 누가 어그로를 끌었나 본데요? 구경이라도 하러 갈까요?"
-블랙 리자드맨 잡는 영상은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지만 블랙 리자드맨의 똥꼬까지 보여 주는 방송은 여기밖에 없음.
-윗분 말이 맞다. ㅇㅈ? ㅇㅇㅈ
-그러니 스트리머는 지금 당장 다른 블랙 리자드맨을 찾아서 움직이거라.
-금화를 원하는 스트리머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이거라.
"예에, 마님들."
아직 탐색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모두 지나가지 않았기에 그는 블랙 리자드맨을 찾아서 발로 뛰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느껴지는 기척에 그것으로 이동해 멀리서 시선을 보내자 그것에는 검은 무리들이 있었다.
그 검은 무리가 블랙 리자드맨이 아닌 플레이어들이었다.
블랙 리자드맨이 아니라는 것에 로랑은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실망감에 발길을 돌리려던 로랑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검은 무리들의 왼쪽 가슴에서 하얀 원 안에 그려진 검은색 구름을 봤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상황도 묘했다.
아...... 이거 어떻게 하지?
-야, 저거 아무래도 PK 걸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쟤네 길드 마크 보니까 블랙헤븐이네.
-선택지 1, 도와준답시고 다가갔다가 같이 PK를 당한다. 선택지 2, 차갑게 외면하고 돌아선다. 원하는 걸로 고르시죠.
저 코멘트 단 녀석이 누군지 안 좋은 쪽으로 궁금해졌다.
선택지 2를 골랐다가는 쓰레기가 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이미지가 정착되어 버리면 다음 스트리밍부터가 힘들어질 것이 눈에 선했다.
하필이면 길을 잘못 골라서 스트리밍을 망치기 직전이었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택할까?
진짜 2번을 골라, 확?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상황이 급변했다.
-헐, 뭐야.
-와, 대박.
-미쳤다, 진짜.
"와......."
블랙헤븐에게 PK를 당하고 있던 인물이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자 블랙헤븐이 맥없이 빛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블랙헤븐에게 PK를 당할 뻔한 자에게 돌아갔지만 로랑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로랑도 그에게 신경을 빼앗겨 있었으니까.
"와...... 저게 가능한 건가?"
-로랑 님, 이만 정신 차리셔야죠?
-로랑 님? 로오라앙 니임?
그가 이동한 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랑이 송출됐던 영상을 되돌려 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늪지대의 그림자에 가려서 전혀 찍혀 있지 않았다.
대신에 특이한 색을 보이는 붉은 칼날의 검이 찍혀 있었다.
아름답고 특이한 붉은 빛을 내는 검날, 그러한 검날과 새하얀 검등을 나누듯이 하여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밤하늘같이 검푸른 선을 가진 특이한 검.
그것이 그와 5만 명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 * *
카앙-! 카앙-! 카앙-!
오랜만에 찾아간 단탈스의 집에서는 여전히 망치질 소리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호야가 얌전히 그의 망치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탈스가 호야에게 다가와 호야는 그에게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건넸다.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 50개를 모으기까지 총 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성훈이라는 플레이어가 주었던 11개의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 덕분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기본 작업은 이미 다 해 놨지만 비늘을 농축해서 넣을 때까지 반나절 정도는 걸려. 구경이라도 할래? 조용히만 있으면 괜찮은데."
"그럼 조금만."
단탈스는 호야에게 받은 비늘들을 자루에 넣어서 짊어지고는 화로에 다가갔다.
능숙한 풀무질로 화로의 불을 조절하더니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고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앞서 던져 넣은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이 모두 녹으면 그 위에다가 다시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넣었고 그것이 녹으면 또 넣고를 반복하고 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이 들어가 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아서 남은 액체는 처음 넣었던 한 개의 크기를 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검은빛이 더욱더 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표면이 빛나는 슬라임 같았다면 화로에 들어간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이 30개를 넘어간 지금은 명암조차 느껴지지 않는 암흑 물질처럼 보였다.
'어라? 벌써 30개?'
단탈스가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녹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구경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 있었다.
드디어 단탈스가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 50개를 모두 녹였다.
그 후 단탈스는 호야가 전에 미리 건네 두었던 자이언트 골렘의 핵을 가져와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이 녹아서 생긴 액체 위에 던졌다.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비늘이 녹은 액체 위에 정확히 안착하자 비늘을 녹인 액체가 마치 살아 있는 촉수처럼 움직였다.
검은 촉수가 자이언트 골렘의 핵을 촘촘히 감싸 안자 핵에 흡수되어 갔다.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녹인 액체와 완전히 합쳐진 자이언트 골렘의 핵은 탁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오래되어 색이 바래 버린 핏자국과도 같은 색이었다.
시간이 자나서 화로의 열기로 인해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녹아내렸다.
단탈스는 얼른 그것을 꺼내어 섬세한 손길로 미리 형태를 잡아 두었던 미스릴 팔찌의 홈을 따라서 그것을 천천히 부어 넣으며 물에 담갔다 빼기를 반복했다.
붓고 담그고 붓고 담그고를 반복하던 단탈스가 마침내 작업을 끝내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호야에게 완성된 팔찌를 건넸다.
[탁한 마법의 팔찌]
등급: 유니크
내구도: 110/110
*마법 스킬의 발동 시 30%의 확률로 스킬이 3~10번 중 랜덤으로 추가 시전됩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단탈스가 자이언트 골렘의 핵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팔찌입니다.
블랙 리자드맨의 비늘을 50배로 농축한 것을 섞어 넣었기에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품고 있던 힘이 강해진 상태입니다.
착용 제한: 마력 250 이상
은색의 링 팔찌에 별자리가 이어지듯이 그려져 있는 검붉은 선들이 인상적이었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아이템의 효과였지만.
효과의 발동 확률이 무려 두 배나 올라가 있었다.
추가 발동되는 스킬의 시전 횟수 또한 늘어나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네!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흐흐흐, 그럼! 누가 만든 건데!"
호야와 대화를 나누던 단탈스는 기분 좋게 호야의 등을 두드리고서는 호야가 재료를 건네기 전에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 나갔다.
호야는 그의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빠져나왔다.
* * *
"이 병신 같은 것들! 내가 가서 족치라고 했지 역으로 당해서 오라고 했어?!"
"......."
"벙어리야? 사람 새끼면 말을 해 봐라, 말을!"
퍽!
디노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러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가격당한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 명한테 전원이 당한 것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데, 그걸 또 영상으로 찍혀 가지고 길드한테 쪽이라는 쪽은 다 주고 다녀? 너희 뭐 하는 자식들이야? 나 엿 먹이려고 다른 길드에서 집어넣은 스파이 새끼들이냐?"
"......."
"너희 몇 명 때문에 지금 우리 길드가 무슨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 겉만 그럴싸한 허접이란다. 내가 진짜......."
디노의 폭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폭언을 듣던 그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시선만을 살짝 굴렸다.
그의 시선은 디노의 뒤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멀뚱히 앉아 있는 클로에에게 향했다.
이게 다 저년이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녀석이란 것을 알아서 제대로 준비해서 갔다면 그런 꼴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 저년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친 결과물이었다.
머리에 너무 열이 뻗쳐서 미칠 것 같았다.
길드를 나갈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카오 유저인 그를 받아 줄 길드는 그리 많지 않고 카오 유저로 이루어진 길드들에게는 저마다 선이 이어져 있었다.
그 선의 정점에 있는 것이 블랙헤븐이었기에 이곳을 나가면 다른 길드에 들어갈 수 없을 확률이 컸다.
그렇다고 카오 상태를 풀자니 교회에 내야 할 헌금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돈이 없으면 참회 퀘스트로도 카오를 풀 수 있지만 참회 퀘스트의 난이도는 뒷목 잡고 쓰러질 정도였다.
그는 디노의 폭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