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16화
16. 유적의 거대 골렘(3)
그리고 돌입한 제3페이즈.
바닥과 벽, 천장이 조금씩 갈라지면서 떨어져 나온 돌 조각들이 골렘에게 날아와 엉겨 붙기 시작했다.
돌 조각들이 다 달라붙자 옛날 만화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 로봇의 형상이 되었다.
그 크기는 대략 10m.
미리 들은 상황이었지만 호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쩐지 공동이 이상하리만치 넓다 싶었었다.
하지만 크기가 거대해진 것은 이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크기가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는 것이었으니까.
후웅-!
거대해진 골렘은 바로 자신의 팔을 휘둘렀다.
덩치에 비해 속도는 매우 빨랐고 덩치가 커진 만큼 위력도 상승해 있었다.
팔을 휘두르는 풍압만으로도 미약하게나마 대미지를 입고 있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킹과 호야를 제외하고서 뮤란과 피온이 풍압에 살짝 뒤로 날아갔다.
피온은 아예 등이 벽에 밀착될 만큼 날아가 있는 상태였다.
사제의 보조 스킬들은 거리 제한이 있기에 그녀는 빨리 벽에서 떨어져 나와야만 했다.
"대지의 축복!"
[5분간 힘, 체력이 5% 상승합니다.]
재빠르게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와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버프를 걸어 준 그녀의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직업 특성상 체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사제의 비애였다.
"허억, 허억. ......꺄악!"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리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그녀를 골렘이 일으킨 풍압이 다시 날려 보내려 하고 있었다.
덥석.
그녀의 발이 풍압에 밀려 땅에서 떨어진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 날아가는 것을 막아 주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따라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호야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서 있었다.
스킬의 준비를 위하여 잠시 킹에게 어그로를 넘겨 놓고 뒤로 빠졌던 그가 타이밍 좋게 그녀의 팔을 붙잡아 준 것이었다.
풍압이 그치자 호야는 바로 그녀의 팔을 놓아 버렸다.
"가, 감사합니다."
호야는 답을 하는 것 대신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후 바로 골렘에게 시선을 돌린 호야가 입을 열었다.
"스피어."
피잉- 피잉- 피잉-.
푸른빛의 창 세 개가 호야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쾅! 쾅! 쾅! 콰가가강!
푸른빛의 창이 골렘의 핵 주변에 날아가 박혔다.
골렘의 덩치가 커진 덕분에 폭발로 인해서 발생하는 추가 대미지가 고스란히 골렘에게 전부 들어갔다.
한순간에 들어온 어마어마한 대미지에 거대한 골렘이 상체를 살짝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느라 골렘의 공격이 아주 잠시 동안 멈추었다.
그것을 놓칠 실력들이 아니었기에 킹은 골렘의 다리로 돌진해 골렘의 휘청거림을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아부었다.
뮤란은 특유의 날랜 움직임으로 골렘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핵에 직접적인 대미지를 가했다.
골렘은 그 뒤에 이어진 호야의 공격까지 고스란히 다시 받은 후에야 다시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다시 자세를 잡은 골렘이었지만 그리 오랫동안 자세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조금의 낭비도 없이 이어진 스킬들의 폭격 속에서 잠시 후 골렘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유적의 거대 골렘'의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골렘'을 처치하였습니다.]
['유적의 거대 골렘'의 모두 클리어 하여 경험치와 아이템의 정산이 진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이템 획득 방식이 '기여도에 의한 우선 선택'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던전에서 발생한 아이템의 리스트를 생성합니다.]
'있다......!'
피온은 눈앞에 나타난 아이템의 리스트를 확인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이템 리스트의 안에는 피온이 원하던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와 준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제라는 직업의 특성상 기여도는 맨 뒤겠지만 킹과 뮤란은 그녀가 얼마나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욕심을 부릴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흔쾌히 양보를 해 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호야였다.
[던전 기여도에 따른 순위를 발표합니다.]
[1위 호야, 2위 뮤란, 3위 킹, 4위 피온]
[플레이어 '호야'에게 첫 번째 우선 선택권이 부여됩니다.]
그들의 눈앞에 각각 떠 있는 리스트들 중 호야의 눈앞에 있는 리스트만이 빛을 깜빡거리며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핵을 선택하면 어쩌지?
피온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핵을 선택하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택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발 그가 핵을 선택하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비는 것이었다.
"......."
그리고 호야는 그녀의 마음이 담긴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호야는 그 시선의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호야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신경에서 제외시키고 리스트를 확인했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은 없었다.
그나마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면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자이언트 골렘의 핵]
등급: 에픽
'유적의 거대 골렘'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자이언트 골렘'의 핵입니다.
핵을 소재로 하여 장비 제작 후 착용하면 마법 스킬의 발동 시 15%의 확률로 스킬이 1~5번 중 랜덤으로 추가 시전됩니다.
재련이 까다로운 아이템이기에 고급 이상의 대장장이의 숙련도를 요구합니다.
단탈스에게 부탁해 볼까?
다음 장비부터는 재료를 가져오라고 하였으니 장비의 제작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이 끝난 호야는 '자이언트 골렘의 핵'을 선택했다.
"아...... 아아......."
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의 리스트에서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사라지자 피온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소리가 얼마나 애처롭던지, 마치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목소리였다.
"하하하. 어쩔 수 없어, 피온. 다 형님께서 하신 거나 마찬가지였잖아?"
"흐흑......."
주저앉아 있던 피온은 결심했다는 듯한 눈으로 일어나 호야에게 다가갔다.
"저, 저, 저...... 저기!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호야가 대답 없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피온은 얼굴을 붉힌 채 다시 말을 이었다.
"그, 그, 그러니까...... 그으...... 자이언트 골렘의 핵! 저한테 팔아 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 자이언트 골렘의 핵이 나온 것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였다.
7%의 확률을 뚫고서 등장한 것이었다.
드랍률이 7%밖에 되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서 '유적의 거대 골렘' 던전은 하루 입장 제한이 1회였기에 경매장에 풀린 것도 가뭄에 콩 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호야가 들고 있는 것을 사지 않으면 언제 구할지 기약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호야는 고민 끝에 피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피온의 얼굴이 좌절로 물들어서 살짝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괜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형님."
킹이 재빨리 다가와 피온의 머리를 잡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가 거의 원맨쇼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던전의 클리어였는데 나온 아이템까지 팔아 달라고 계속 달라붙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형님?"
호야가 킹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그의 생각이 맞았었다.
"네! 형님! 존경해요, 형님!"
킹의 눈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 *
푸식-.
캡슐이 열리고 안에 있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연예인의 뺨을 후려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피부는 어느 여자들보다도 하얗고 고왔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기다리십니다."
"금방 간다고 전해 줘."
그가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그와 닮은 여인이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먹만 한 얼굴, 날카로운 턱선과 조각 같은 코.
그녀도 연예인 뺨을 후려칠 것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쩜 나보다 네가 더 바쁜 것 같다, 호민아? 식사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미리미리 알려 두라고 했지."
"미안해, 누나.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그래서 오늘은 뭘 하고 왔는데?"
백호민의 누나인 백설영이 그에게 오늘 이니티움에서 했던 일들을 물었다.
따로 일이 없다면 저녁 식사 시간을 맞춰서 같이 밥을 먹으며 이니티움 속에서의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거의 백호민이 백설영에게 성장 과정을 보고하는 것이 주였지만 말이다.
백호민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백설영에게 이야기했다.
아이템과 레벨링을 위해 리포른에 가서 호야를 만나 그와 던전을 돌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그가 버스를 태워 준 상황이 됐다는 것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백설영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 제정신이니? 환술이라도 걸렸던 거야, 뭐야?"
"아니 누나, 진짜라니까!"
"퍽이나 마을사람이 그러겠다. 진짜 그러면 마을사람 비율이 지금보다는 몇십, 아니, 몇백 배는 더 높았겠지."
"내 말을 그렇게 못 믿어?"
"응, 못 믿어.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야지."
백호민은 백설영의 반응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녀가 보인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마을사람이라는 직업의 인식이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자신도 만약 실제로 겪지 않고 같은 말을 들었더라면 백설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었기에 백호민은 그녀의 태도에 고구마를 물도 없이 먹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당연히 오늘도 영상을 찍어 놨겠지? 그걸 보여 줘 봐."
"아, 그게 있었네!"
호민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항상 던전이나 필드에 나갈 때에는 3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해 두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서 잘못된 점이나 부족한 점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영상의 포커스는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겠지만 중간중간에 호야도 반드시 찍혀 있을 터였다.
백호민은 바로 기록된 영상을 노트북으로 옮겨 와 빠르게 영상을 넘기며 호야가 찍혔을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이왕 보여 주는 거, 형님의 제일 멋진 모습을 보여 주자.
그렇게 생각하고 백호민이 백설영에게 보인 영상의 장면은 보스 몬스터인 자이언트 골렘의 2페이즈였다.
"......!"
영상의 중앙에는 백호민의 모습이 떡하니 박혀 있었지만 그 너머로는 보스 몬스터인 자이언트 골렘과 호야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골렘은 호야를 집요하리만치 누르고 있었고 호야의 발아래, 아니, 주변에는 붉은 마법진들이 모여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몇 개야......?'
백설영의 머릿속이 상상도 못 한 상황에 어지럽혀지고 있자 마법진이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내뿜고 이윽고 폭발했다.
마법진이 폭발하기 직전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자리를 이탈하였던 호야가 즉시 바로 골렘에게 다시 파고드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 속도가 가히 라이스터를 능가하는 것만 같았다.
백설영은 이니티움의 랭킹 목록에서 호야의 닉네임을 검색하고 나서 백호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봤지? 형님 대단하지?"
"......호민아, 이 사람 길드는 있었어?"
"응? 길드 마크는 안 달고 있던데?"
"친구 추가는 해 놨고?"
"사정사정해서 해 놨지! 우리 형님이 과묵하신 것 같은데 정은 또 많은 편이신 것 같거든. 그런 점이 멋지신 거지만!"
"......잘했어."
씨익.
그녀가 욕심이 담긴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국 길드의 1, 2위를 다투고 더 나아가서 세상에 발을 들이고 있는 '설백호' 길드의 길드 마스터의 눈에 호야라는 유저가 들어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