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14화
14. 유적의 거대 골렘(1)
리포른을 나서서 30분 걸어간 암벽 사이의 벽에 위치한 낡고 거대한 문.
그곳이 던전 '유적의 거대 골렘'의 입구였다.
그 앞에는 경험치 혹은 아이템을 노리는 파티들이 가득했다.
던전의 안으로 진입하자 벽과 기둥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 있는 낡고 넓은 복도에 서 있었다.
"이제 한 층씩 내려갈 거예요. 지금은 지상 3층이고 지하 2층까지 있어요. 그 층의 모든 몬스터를 잡아야지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 접속 제한 시간 걸리기 전에 빡시게 달리죠!"
던전에 진입하기 전에 정한 호야의 포지션은 딜러였다.
마을사람이기에 강한 딜을 기대하고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조나 탱커로 넣기에는 애매했기에 딜러로 들어간 것이었다.
킹이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면 그의 뒤에서 튀어 나가 어그로가 튀지 않도록 조심하며 적을 공격하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뭐, 마을사람이니 어그로가 튈 정도의 공격은 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형식상 설명을 해 두었다.
킹이 앞서서 몇 걸음 내딛자 한쪽 벽에 서 있던 3m 크기의 석상들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몸에 비해서 빠르게 한순간에 획 돌아간 고개는 일행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석상들은 곧바로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전사의 포효! 철벽!"
자신의 몸 앞에 들고 있던 방패를 단단히 고정시킨 킹이 어그로 스킬인 전사의 포효와 방어력을 올려 주는 스킬인 철벽을 사용했다.
쿵, 쿵, 쿵, 쿵, 콰앙-!
천천히 움직이던 석상들이 조금씩 가속도를 붙이면서 다가오더니 킹의 방패에 그대로 몸을 들이박았다.
석상들의 몸통 박치기로 킹의 머리 위에 표시되어 있는 HP 게이지가 단숨에 4분의 1이나 줄어들었지만 피온이 곧바로 힐을 넣어서 체력을 회복시켰다.
파티를 유지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공격을 받은 것이었기에 뒤에 있던 셋에게도 전투 판정이 인정되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지의 낡은 골렘]
레벨: 122
[유적지의 낡은 골렘]
레벨: 125
⋮
이름과 레벨밖에 뜨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은 가능했다.
'마리당 최소 7분은 잡아야겠는데?'
뮤란이 그렇게 예상하고 있자 킹이 신호를 보내왔다.
"지금!"
킹의 신호를 받은 뮤란은 검을 꽈악 움켜쥐고서 물 흐르듯이 킹의 뒤에서 몸을 돌리며 튀어나와 우선 그에게 내리쳐지는 골렘의 팔 하나를 쳐 내었다.
덕분에 킹에게 들어갔을 대미지 하나가 들어가지 않았다.
"2단 찌르기."
카강, 캉!
뮤란이 스킬을 사용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골렘에게는 커다란 흠집만이 새겨질 뿐이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HP 게이지도 별로 줄어들지 않았었다.
역시 방어력이 높고 체력 깡패인 골렘다웠다.
그런데 자신의 뒤를 이어 나타났어야 할 호야의 공격이 전혀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그것에 살짝 짜증 섞인 눈으로 뮤란이 공격을 이어 가며 킹의 등 뒤쪽으로 시선을 아주 잠깐 돌렸다.
역시나, 호야는 아직도 킹의 뒤에 있었다.
하지만 호야가 보여 주고 있던 모습은 그녀가 짜증을 부릴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피잉- 피잉- 피잉-.
호야의 주변에는 1m는 되어 보이는 푸른빛의 창 세 개가 둥실 떠 있었다.
"스피어."
호야가 그리 말하자 푸른빛의 창들은 킹의 방패를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골렘 세 마리에게 각각 박히더니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쾅! 쾅! 쾅! 콰가가강!
폭발로 인해 생겨난 먼지구름이 걷힌 자리에서는 이미 세 마리의 골렘이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진 골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앞으로 나오고 있는 골렘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
셋은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킹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탱커면서도 뒤로 튕겨 나갈 뻔했다.
호야의 얼굴에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지만 가면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은 그들에게는 그저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입술만이 보일 뿐이었다.
푸른빛의 창.
그것은 모안에게 배운 마법 술식들 중 하나였다.
[제2술식-스피어]
1m 크기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을 만들어 내어 적을 향해 발사합니다.
보유 속성에 따라서 마법의 속성이 변화합니다.
생성하는 창의 개수에 따라서 MP의 소모량이 달라지며 최대 3개까지 생성할 수 있습니다.
창 하나당 공격력 150%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폭발하면서 공격력 70%의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
하나의 창을 만들어 내는 데에 2초의 시간을 소비합니다.
마법 방어력의 30%를 무시합니다.
사용 MP: 400(최대 MP 사용량 1,200)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 * *
[죽은 나무의 시선이 적을 인식합니다.]
[시선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적의 모든 스테이터스와 공격력, 이동 속도가 15% 감소합니다.]
가만히 서 있던 석상, 골렘들이 움직이자 호야에게 나타났던 메시지였다.
이는 호야가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을 사냥하고서 나온 나무껍질,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의 힘이었다.
[죽은 나무의 시선]
등급: 유니크
내구도: 100/100
*적으로 인식한 자가 시야에 들어올 시 모든 스테이터스와 공격력, 이동 속도 15% 감소의 디버프를 걸며 상대방이 시야에서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해제됩니다.
마기에 오염된 숲의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이 죽으면서 남긴 물건.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의 힘이 약하게나마 남아 있다.
착용 제한: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을 쓰러트린 자
크라우스의 마지막 기초 훈련의 시험으로 쓰러트렸던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이 남긴 물건이었다.
조건부로 반영구적인 디버프를 거는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
얼마 안 있어서 벽 앞에 서 있던 석상들이 움직였다.
미리 포지션을 정해 둔 상황이었기에 호야는 킹이 신호를 보내기를 기다리다가 그가 신호를 주자 모안에게 배운 '스피어'를 전개했다.
마을에서는 허수아비 상대로만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동 레벨대의 몬스터에게 얼마만큼 위력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호야의 레벨은 129지만 크라우스와 모안과의 수업으로 인해 상승한 스탯과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효과로 인해서 추가로 받은 스탯을 합하면 순수 전체 스탯의 합만으로는 레벨 200대의 무력에 달했었다.
랭킹 선두 그룹과 같은 무력을 보유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호야가 가진 무기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의 공격력은 호야의 레벨이 129인 지금에서는 774에 달해 있었다.
더 나아가서 모안의 수업을 완수하면서 스킬과 함께 획득한 칭호 '전설의 마법의 계승자'의 효과로 20%가 추가로 상승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호야가 들고 있는 무기는 '검'이기에 칭호 '전설의 검의 계승자'의 효과까지 추가로 붙었다.
그런 힘으로 모안의 마법을 사용하였으니 레벨 120의 몬스터가 한 번에 죽지 않으면 이상했다.
"뮤란! 앞에 봐!"
"핫!"
그런 호야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뮤란은 킹의 말에 정신을 다시 차렸다.
그제야 바라본 전방에는 골렘의 주먹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카각!
아슬아슬하게 검을 놀려서 주먹을 비튼 뮤란은 그 힘의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뒤로 물러나 호야의 옆에 안착했다.
"호야 님! 방금 뭐예요?! 마을사람 아니었어요?"
"......."
"아, 이런 것을 물어보는 건 매너 위반이죠.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괜찮습니다."
드디어 던전에 들어와서 호야가 처음으로 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그의 자세는 오랜 훈련에서 우러나온 모습이라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뮤란은 현실에서의 재능을 살려서 게임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도 그런 경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나도 이럴 때가 아니지!'
뮤란도 앞으로 튀어 나간 호야의 뒤를 이어서 골렘들에게 재차 공격을 가했다.
남은 일곱 마리의 골렘을 잡는 데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중 여섯 마리를 호야가 혼자 잡았고 한 마리는 뮤란이 싸우던 것을 거의 마지막에 호야가 도왔다.
이 세 명의 파티는 한 층을 클리어 하는 시간을 최소 1시간으로 계산하고 던전에 들어왔었다.
보스까지 잡는 데에 6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보스 층까지 내려가는 데에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들은 처음 의도와는 정반대로 자신들이 버스를 타고 있었다.
* * *
처음 던전에 진입할 때와 비슷한 크기의 낡고 큰 문이 눈앞에 있었다.
던전 '유적지의 골렘' 지하 2층의 입구, 보스 층의 입구였다.
이곳까지 내려오는 데에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스킬에는 각각 재사용 대기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던전에서 계속 같은 화력은 낼 수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빨랐다.
"......저기, 우리 너무 염치없는 것 같지 않아? 원래 상황이 반대여야 하는 것 아냐?"
"이거 버스비라도 드려야 하는 걸까......?"
보스 층에 진입 전, 이들은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의 회복과 점검을 위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셋은 이렇게 빠르게 던전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오로지 호야 덕분이란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최소 인원을 채우는 대신에 버스를 태워 준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었다.
한데 마을사람이 오히려 자신들을 버스에 태워 주고 있었다.
승차감이 너무 좋아서 버스비가 아닌 택시비를 쥐여 줘야 할 판이었다.
그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셋을 바라보는 가면 너머의 얼굴은 살짝 굳어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뭐지......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건가......?'
셋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호야와 살짝 떨어진 위치로 이동해서 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만을 놔두고 그들끼리만 작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서 호야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눈 밖에 놔서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호야는 그들과 만나고서 던전의 보스 층 바로 앞에 올 때까지의 일들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일을 한 적은 그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셋도 딱히 호야를 따돌리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셋이서 다니는 경우가 많기에 아무 의도 없이 평소처럼 모인 것뿐이었다.
본인의 앞에서 할 이야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저절로 생긴 현상이었다.
"이제 출발해도 될까요?"
끄덕.
호야가 고민에 휩싸인 사이에 킹의 탱킹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모두 지났기에 그들은 보스의 방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끼이익-.
문을 가볍게 밀자 척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문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밀리며 소리를 내었다.
파티원이 모두 안으로 진입하자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에는 빨간 그래픽의 벽이 세워져 그들의 탈출을 막았다.
이제는 던전 보스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