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1화 (11/171)

# 1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11화

11.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곳에는 우뚝 서서 숨을 고르고 있는 호야와 막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지고 있는 아종의 모습이 보였다.

[필드 보스 몬스터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대로 돼서 다행이었다.

호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크라우스와 레이나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수고했어, 호야."

"아, 형...... 아니, 스승님.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 호야 씨."

"아......."

레이나의 말에 호야는 지친 얼굴로 힘없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고마워요, 레이나 씨....... 레이나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못했을 일이었어요."

치명타!

레이나는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뭐야, 왜 이러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보호 본능이 끓어올랐다.

"저, 저기. 혹시 누나라고 불러 주지 않을래요......?"

"네?"

레이나가 순간의 욕망으로 필터링 없이 말을 내뱉자 호야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아, 아하하......."

"하하하...... 역시 그건 안 되겠죠?"

호야는 용기를 냈다.

"......누나."

호야가 작게, 아주 작게 말했다.

자신을 도와준 레이나를 위한 일종의 감사 표시였지만 크게 말할 만큼 자신감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또 어떻게 들은 것인지 레이나가 눈을 빛내며 호야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레이나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호야가 뒤로 피하자 레이나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미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결국 호야는 바로 크라우스의 뒤로 몸을 숨겼다.

둘의 사이에 끼게 된 크라우스는 볼을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일단 엔트가 몰리기 전에 마을로 돌아갈까?"

"아, 맞다! 빨리 움직이죠."

"호야는 아이템 주워 오고."

크라우스의 말에 호야는 아종이 죽은 자리에 떨어져 있는 나무껍질 같은 것을 주워 들어서 둘의 뒤를 따랐다.

호야가 크라우스와 레이나를 따라서 마을로 돌아가고 있던 그 시각, 현실의 한 방송사 사무실에서는 자그마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SBC 방송국의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는 이제 두 달을 막 넘겼다.

하지만 고정 시청자를 다수 보유한 주말 예능들과 동 시간대에 방영되는데도 불구하고 첫 방송 시청률 12.7%로 시작하여 20%대에 안착한 SBC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 SBC의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팀의 막내 작가 이수아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이니티움의 랭킹 리스트의 새로 고침 버튼을 계속 눌러 대고 있었다.

딸칵, 딸칵.

오늘 있을 인터뷰의 준비는 모두 끝내 놓았다.

그렇기에 이따 지정된 시간에 상대를 만나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서 오늘 그녀의 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출발! 이니티움 속으로' 팀의 사무실에는 접속을 위한 캡슐도 두 대 구비되어 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1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거나 자리가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캡슐 방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바로 사무실의 캡슐로 접속하여 인터뷰를 마치고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후 자신의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제일 나았다.

그렇기에 중간의 시간이 붕 떠 버린 그녀는 약 2주 전에 순간적으로 보았던 환상을 쫓고 있었다.

'하아...... 진짜 대박 소재였는데.......'

약 2주 전, 그녀는 업무 중간의 짧은 쉬는 시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니티움의 공식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랭킹 목록으로 향했다.

랭커들의 이야기는 프로그램에 가장 좋은 소재였다.

사람들은 랭커들의 사냥 장면을 잠시라도 보여 주거나 인터뷰를 따내면 죽을 듯이 좋아하며 열광했다.

그렇기에 랭킹 목록에서 그럴듯한 사람을 찾아 인지도를 파악하고 메인 PD한테 보고한 후 랭커의 위치를 수소문하거나 연락처를 알아내어 인터뷰를 잡거나 하는 것이 막내인 그녀의 주된 업무였다.

하지만 그날은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느낌이 오는 인물이 없었다.

이미 유명한 랭커들은 섭외 과정에 있거나 거절당한 상태였다.

몇몇은 SBC의 상승세를 견제하며 만들어진 다른 방송국의 이니티움 관련 프로그램에게 빼앗겼다.

그렇게 멍하니 랭킹 목록을 내려 보다가 결국 맨 끝까지 도달해 버렸다.

'건질 게 없네.......'

그리 생각하던 그녀의 눈에 랭킹 목록 끄트머리에 있는 한 유저의 닉네임이 들어왔다.

[4,996위 레벨 116 호야]

바로 틈을 보이면 바로 나가떨어지는 랭킹 최하단에서 그녀가 멈칫한 이유.

그것은 유저의 닉네임 옆에 직업 마크의 표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니티움의 랭킹 목록에서 보여 주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랭킹에 이름을 올린 이의 닉네임과 레벨, 그리고 직업 마크였다.

전사라면 커다란 대검이, 기사라면 방패와 한 손 검, 대장장이라면 커다란 망치, 사제라면 십자가, 연금술사라면 동그란 모양의 약병, 도적이라면 단검 등등.

랭커의 정확한 직업을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직업이 어느 계열인지 정도는 알 수 있는 간단한 그림의 마크가 이름 옆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호야라는 유저의 닉네임 옆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뭐야, 왜 없어. ......설마!'

혹시 아직 전직을 안 한 건가?!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진짜 그렇다면 이건 대박 소재였다.

랭킹 최하단 5,000명의 끄트머리지만 지금까지 판매된 캡슐의 수만 해도 무려 1천만 대를 넘어섰다.

지금도 빠르게 전 세계의 캡슐 생산 라인이 돌아가고 있지만 보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1천만의 이니티움 플레이어들 중의 상위 5,000명, 퍼센트로 따지자면 0.05%만이 랭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캡슐의 보급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랭킹에 이름을 올리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전직도 안 한 사람이 그 0.05%에 발을 들였다.

이게 대박 소재가 아니면 뭐겠는가!

무전직으로 랭킹에 이름을 올린 사나이! 과연 그의 정체와 비결은?

아니, 그녀일 수도 있나?

자신이 생각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소제목이었다.

이런 것은 바로 보고를 올려야 돼!

그리 생각하며 엉덩이를 뗀 그녀는 바로 메인 PD인 박봉석의 자리로 향했다.

"PD님!"

"아! 깜짝이야! 내가 기척 좀 내고 다니라고 했지?"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던 박봉석은 자신의 모니터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온 이수아에게 깜짝 놀라 덜컹거리며 의자 바퀴를 굴려서 뒤로 물러났다.

이수아의 큰 목소리에 사무실에 있던 이들이 한순간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녀가 저리 행동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다시 바로 고개를 돌려서 자신들이 하던 일에 집중했다.

"다음부터는 노력해 볼게요."

"노력이 아니라 실천을 해라, 실천을! 그래서 무슨 볼일이야?"

"제가 대박 방송 소재를 구해 왔습니다!"

"대박 소재......?"

박봉석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흐음. 내 시간은 비싸다? 별거 아니기만 해 봐."

이수아는 박봉석에게 방금 발견한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직하지 않고 랭킹에 이름을 올린 이에 대해서.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도 박봉석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딸칵, 딸칵.

"흐음...... 없는데?"

"네?"

이수아의 말을 들은 박봉석이 자신의 컴퓨터로 이니티움의 랭킹 표를 확인해 보았지만 랭킹 목록에 호야라는 닉네임은 없었다.

박봉석의 말에 당황한 이수아는 박봉석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고개를 들이밀고 랭킹 표를 확인했다.

[4,996위 레벨 117 불주먹]

진짜로 없었다.

아래 랭킹도 확인했고 위로도 확인했지만 진짜 없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진짜 있었어요!"

"하아, 막내야. 네 말대로 진짜 있었다고 쳐.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네?"

"그 유저를 어떻게 찾을 거냔 말이야."

"그, 그게......."

닉네임만 아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귓속말은 눈앞에 캐릭터가 있거나 친구 목록에 추가되어 있어야지 가능했다.

친구 추가도 상대방의 캐릭터가 눈앞에 있어야지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로서는 그를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명 랭커라면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찾을 수 있는데 네가 말한 사람은 완전 신인 아니냐? 네가 말한 것이 진짜라면 대박이기는 한데 현재로서는 그거 가상의 인물에 불과해."

"끄응......."

그런 일이 있고 나서 2주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수아는 다시 한 번 랭킹 목록에서 호야라는 닉네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4307위 레벨 129 호야]

깜짝 놀란 그녀는 덜컹거리는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들썩였지만 주변 이들의 시선에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왔어, 왔어! 드디어 왔어!'

대박이 다시 왔다!

그렇게 기뻐하고 있는 그녀의 시야 속에 무언가가 걸렸다.

'집......?'

호야의 닉네임 옆에 집 모양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사이에 전직한 건가?'

집 모양의 마크면 무슨 직업이었지?

기억 속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끄집어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이수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다시 꽃이 활짝 피었다.

'세, 세상에...... 집이면 마을사람이잖아! 이 사람 미친 건가. ......잠깐, 이건 이것대로 괜찮겠는데?'

마을사람.

그것은 약체 직업 중에서도 최약체인 직업이었다.

그러한 직업으로 랭킹에 입성했다!

잠깐 반짝 뜨고 질 확률이 높았지만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이수아는 바로 박봉석에게 가 이 일을 알렸다.

"진짜 있네. 충분히 소재로 쓸 만해. 그래서...... 어떻게 찾을 거야?"

박봉석의 말에 이수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쪽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럴 시간에 대현 씨 인터뷰 준비나 철저히 해. 그 사람 인터뷰 잡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내 캐릭터만 가까이에 있었어도 내가 가는 건데 네가 제일 가까이에 있으니 원......."

이수아는 군말 없이 바로 인터뷰 준비를 했다.

아아, 진짜 못해도 대박은 칠 소재인데.......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이니티움에 접속한 그녀는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어디 보자......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어, 저긴가?"

돌로 쌓아 만든 벽으로 된 작은 카페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는 여러 방이 줄지어 모여 있었다.

직원에게 예약자 이름을 말하고 안내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태양 같은 금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미남이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한 훈남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가 먼저 와 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이대현 씨."

"아직 약속 시간 전인데요, 뭐. 저도 방금 막 왔습니다. 그리고 게임 속이니까 닉네임인 에리먼으로 불러 주시죠."

"네, 에리먼 씨. 그럼 바로 인터뷰를 시작할게요."

훈훈하게 웃고 있는 그를 향해서 촬영 화면을 맞춘 이수아는 곧바로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토대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에리먼 씨, 얼마 전에 클리어에 성공한 던전, 인간 개미 동굴의 클리어 과정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에리먼 씨가 없었다면 클리어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하, 길드원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았더라면 클리어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없었어도 우리 길드원들은 분명 클리어에 성공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지금 저에게 내려지는 평가는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리먼이 싱긋 웃었다.

마치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한 줄기의 햇빛 같달까.

그의 미소로 이수아는 치유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의 인터뷰는 아무런 잡음 없이 이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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