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9화 (9/171)

# 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9화

9. 크라우스의 가르침(2)

한번 열린 수로의 문은 막기 힘들고 물은 쉼 없이 빠져나온다.

그러한 것처럼 퀘스트 발생 후의 호야와 크라우스도 그러했다.

그와 계속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익숙해져서 호야가 크라우스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친형을 대하듯이 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물론 훈련 중의 크라우스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스승님이었다.

하지만 훈련이 아닌 시간에는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형님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차가우면서도 날카롭고 살벌한 얼굴이 바로 풀어지며 다정다감하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되는 것이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느껴졌다.

"허억, 허억!"

"벌써 자빠지면 어쩌자는 거냐! 일어서!"

"크윽, 네......!"

지난 열흘 동안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호야는 지난 열흘간 크라우스가 구르라면 구르고 기라면 기었다.

진짜로 구르거나 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훈련 강도는 호야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훈련 시간 동안은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즉시 크라우스의 불호령과 함께 공격이 들어왔다.

처음 허수아비에게 죽을 때 느꼈던 고통보다도 더 강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스가 호야가 사망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시킨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난 열흘간의 훈련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니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래도 그만큼 크라우스의 훈련은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이름: 호야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

레벨: 116

HP: 172/3,100 MP: 2,760/2,760

힘: 186 민첩: 179

체력: 194 마력: 160

신성력: 160

잔여 포인트: 0

칭호

[계란으로 바위 치기] [땅끝 마을의 주민] [불굴의 의지]

스킬

[마을 귀환] [마을사람의 일격]

스탯의 총 상승량 79.

호야는 레벨을 8개 올리면 얻을 수 있는 수치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16개의 레벨을 올려야지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열흘 동안 호야는 레벨 16개를 올린 것과 같은 성장을 한 것이다.

레벨이 100에 접어들면 성장이 느려지기에 레벨 16개 만큼의 스탯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스탯에 따른 차이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허수아비를 치는 것보다 크라우스와의 대련과 가르침의 탈을 쓴 샌드백 역할이 몇 배는 더 효율이 높았다.

허수아비를 상대했다면 저 상승량의 반의 반의 반도 간당간당했을 것이다.

"들어간다."

"네!"

크라우스가 땅을 가볍게 박차며 호야에게 달려들었다.

가벼운 동작과 소리와는 다르게 크라우스는 바로 호야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크라우스가 호야의 손목을 치고서 오른쪽 종아리를 벤 다음 복부를 찌르고 들어올 것이었다.

한참 전부터 크라우스가 미리 예고하여 알고 있는 공격 순서들이었다.

머리로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눈과 몸이 크라우스의 동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반복만이 오늘 하루 동안 수십 번은 더 반복된 것 같았다.

크라우스에게 검 동작을 배워 조금이나마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퍽!

"크윽!"

크라우스의 목검이 호야의 복부를 찌르자 호야의 몸이 공중으로 띄워져 멀리 날아갔다.

호야가 요란하게 땅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크라우스가 오늘 훈련의 종료를 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침보다는 좀 빨라진 것 같네."

[민첩이 2 상승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크라우스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매일같이 변함없이 크라우스에게 두들겨 맞기에 강해졌다는 실감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탯으로는 나타나고 있었기에 호야는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이러다가 호야 씨 죽겠어요, 크라우스."

"모험가는 안 죽어."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화악-!

호야는 밝은 빛 무리와 함께 따듯한 빛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치유의 빛이 당신을 감쌉니다.]

[HP가 회복됩니다.]

호야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자신에게 힐을 걸어 준 사람에게 시선만을 돌렸다.

그곳에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가녀린 여성이 쭈그려 앉은 채 살짝 안타깝다는 얼굴로 호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뭘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그녀는 호야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든 예외 없이 한순간 넋을 잃게 만들 법한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지만 호야는 그 미소를 보고서 어색하게 웃어 주며 답할 뿐이었다.

벌떡 일어난 호야는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 크라우스를 두듯이 하며 크라우스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열흘 동안 마을에 꽤나 적응을 하기는 했다.

그래도 아직은 크라우스를 사이에 두지 않으면 모안과 단탈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그런 호야의 모습을 보고서 그녀는 볼을 부풀렸다.

"왜 자꾸 도망가시는 건가요?"

"제, 제가 언제 도망을 갔다고......."

"지금이 그렇잖아요!"

"아, 아닌데......."

둘의 사이에 끼어 있는 크라우스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자신도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혹했던 적이 있는데 호야는 전혀 그러한 것이 느껴지지 않으니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이나 너보다 내가 더 좋다는 거겠지! 그치?"

"하, 하하하......."

호야의 어깨를 감싸는 크라우스와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호야를 보면서 레이나는 이름 모를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딱히 자신이 인기가 많다고 해서 그것을 신경 쓰지는 않았었다.

그렇지만 호야처럼 대놓고 자신과 거리를 두는 사람은 확실히 없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아 왔던 그녀다.

그런데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이 나타나니 신경이 쓰였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목표가 그녀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하지만 그는 가까워지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자신에게 즐겁다는 듯이 책의 내용을 떠들어 대던 친구 아닌 친구가 떠올랐다.

거의 방에만 있는 그녀는 레이나가 올 때마다 닥치는 대로 종류 상관없이 읽어 댔던 책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분명 그녀의 이야기 속에 남녀 관계에 관한 것도 있었던 것 같았다.

딱히 흥미 있던 이야기가 아니라서 흘려들었더니 기억이 확실히 나지를 않는다.

당장에라도 찾아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다시 듣고 싶었지만 너무 자주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으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지 그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깊게 빠져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서 크라우스와 호야가 서 있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나만 두고 가 버린 거야?"

* * *

"형, 그냥 두고 와도 괜찮은 건가요?"

"아마도?"

"아마도라니......."

크라우스는 혼자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 버린 레이나를 두고서 호야를 데리고 훈련장을 나왔다.

지난 열흘간 호야와 크라우스는 형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되어 있었다.

거의 크라우스에 의한 반강제적인 호칭 변경이었지만 호야는 처음과는 달리 이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뭐, 훈련 시간에는 형과 동생이 아닌 완벽하게 엄한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되지만 말이다.

"괜찮아. 그런 걸로 삐질 녀석이 아니니까."

"삐졌거든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들리자 레이나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서 있었다.

"어떻게 그냥 가실 수가 있어요!"

"아하하, 생각이 오래 걸릴 줄 알았지."

크라우스가 레이나를 달래고 레이나는 계속 삐져 있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옛날 만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움찔.

만담을 이어 가던 두 사람이 갑자기 우뚝 멈추었고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려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마을의 입구, 호야가 처음 크라우스를 만났던 숲이 있는 방향이었다.

"......드디어 나왔네."

"이번은 누구 차례였죠? 저번에는 치빈이 했으니까...... 마침 딱 좋게 크라우스 씨 차례네요. 후딱 다녀오시죠."

"뭐? 벌써 내 차례가 됐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호야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크라우스가 장난기 어린 표정과 엄한 스승의 표정이 섞인 얼굴로 호야와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후후후, 레이나, 필드 지금 사용할 수 있냐?"

"필드요? 갑자기 그거는 왜요?"

"이유는 나중에 알려 줄 테니까, 대답이나 해 줘."

"그거야 몇 년 동안 아예 쓰지를 않았으니까 가능하죠."

"그렇단 말이지."

크라우스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호야, 마지막 기초 훈련이다."

[퀘스트 '오염된 숲의 아종'이 발생되었습니다.]

[오염된 숲의 아종]

오르도의 서문에서 조금 떨어진 숲은 마계의 마기에 오염되어 흉포해져 버린 엔트들의 집이다.

엔트만이 가득한 그 숲에는 가끔씩 마기가 필요 이상으로 고여서 진화해 버리는 엔트의 아종이 생겨난다.

그 아종이 지금 탄생하였다!

크라우스는 그 상대를 호야의 기초 훈련의 마지막으로 삼고자 한다.

완료 조건: 필드 보스 몬스터 '오염된 숲의 엔트 아종'을 처리 (0/1)

성공 보상: 퀘스트 [전설의 검의 가르침] 클리어, 경험치

실패 패널티: 없음. 퀘스트 완료까지 퀘스트는 계속 유지됩니다.

싸아아.

호야는 자신의 몸이 갑작스레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저기...... 형? 아니, 스승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종을 네가 처리해야 한다고."

크라우스의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퀘스트가 바뀌는 일도 없었다.

지금 이 사람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호야는 진심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저기, 그 오염된 숲이 제가 아는 그 숲이 맞나요......?"

"어, 너랑 내가 처음 만난 그 숲이야."

"그럼...... 제 레벨이 몇이죠?"

"116이라고 그랬었지, 아마?"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저보고 저 숲에 가서 몬스터를 잡으라고 하시나요?"

첫날, 호야가 보았던 오염된 숲의 엔트들의 레벨은 700대였다.

그것도 아주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었다.

그런 숲에 가서 몬스터를 잡으라고 하다니.......

이 사람 제정신인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 여기 이분께서 해결해 주실 거니까."

크라우스가 그리 말하며 레이나의 어깨를 부여잡고 자신의 앞으로 끌어와 세웠다.

"아, 아아. 그래서 저보고 필드 사용이 가능하냐고 물어봤던 거군요."

"그렇지. 경험 쌓기에 딱 좋을 것 같지 않아?"

"음...... 확실히."

호야는 둘의 대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필드는 또 뭐고 경험을 쌓기 좋다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엔트한테 죽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는 건가?

"하하하하, 내가 설명이 부족했지?"

진심으로 심각하게 그리 생각하고 있자 크라우스가 굳어 버린 호야의 얼굴을 보고서 웃으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레이나의 스킬 '형평(衡平)의 필드'.

그 스킬의 효과는 일정 공간을 돔의 형태로 감싸는 결계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적 한 명과 본인 혹은 아군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다.

둘 중 한 명이 쓰러지기 전까지 밖에서는 절대로 간섭이 불가능 하고 결계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

적의 능력치는 결계 안에 있는 이의 능력치에 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필드 안에서는 아마 네 레벨대의 필드 보스 정도가 될 거야. 그만큼 보상도 작아지겠지만 말이야."

강제적으로 능력치를 감소시킬 수 있는 스킬.

전투 시간 내내 지속 시간 없이 디버프를 발생시키는 것보다도 엄청난 효과이기에 스킬의 재사용 시간은 5개월 정도 된다고 한다.

"그, 그렇다고 해도 필드 보스인데요......?"

필드 보스 몬스터.

동 레벨대의 플레이어가 수십이 동시에 달려들어야지 겨우 사냥 할 수 있는 것이 필드 보스 몬스터다.

그것도 랭커들의 경우에 한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호야 혼자서 잡으라고 하고 있었다.

레벨 700대의 필드 보스 몬스터보다야 레벨 100대의 필드 보스 몬스터가 더 낫기는 하지만 어려운 것은 다름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 호야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 말이야. 뭐, 나를 따라오려면 하안차암이나 멀었지만."

진심으로 그리 말하는 크라우스에게 떠밀리며 호야는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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