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7화
7. 땅끝 마을 오르도(4)
저녁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이예숙은 호영에게 게임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호영은 이예숙의 말에 모두 성의껏 답해 주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얼마 만인 걸까, 이예숙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항상 거의 무표정하다시피 하던 아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린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아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얼른 캡슐을 엄마 것도 사야 할 것 같은데? 이 나이에 괜히 다 두근거린다."
호영도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에 한가득 걸린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말할 수 없었다.
훈련용 허수아비한테 한 대 맞아 사망해서 로그아웃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하필이면 그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여기 사용한 지 하도 오래돼서 깜빡하고 있었어......."
호야가 사망해서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진 뒤, 모안과 크라우스는 자신들의 실수를 자책했다.
오르도의 훈련장에 설치되어 있는 허수아비들은 다른 마을의 허수아비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다른 마을 훈련장의 허수아비들은 그저 묵묵히 공격을 맞아 준다.
하지만 오르도 마을 훈련장의 허수아비들은 반격을 했다.
그것도 지금의 랭커들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정확하게 말이다.
오르도의 NPC들에게는 어린아이가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공격하는 수준이나 다름없었지만 호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윽-.
모안이 호야가 박혀서 부서진 벽 쪽으로 가볍게 손짓하자 파였던 벽과 떨어져 내렸던 조각들이 제자리로 찾아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허수아비 설정을 손 좀 봐야겠어....... 아예 다른 마을 것을 몇 개 얻어 올까?"
"반강제로?"
"호호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크라우스의 말에 모안이 그의 등을 철썩 때렸다.
"내가 돌아왔다! 신입은 어디 있냐!"
그때 훈련장의 문을 벌컥 열며 키가 작은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
그는 짜리몽땅한 키에 비해서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단탈스? 네가 훈련장에는 웬일이야?"
"하하하. 훈련장에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래서 새로운 마을 주민이 됐다는 모험가는 어디 있어?"
그의 이름은 단탈스.
호야가 처음 보고 놀란 훈련장의 장식용으로 자리 잡고 있던 검의 제작자였다.
크라우스는 단탈스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단탈스는 혀를 차며 말했다.
"에잉. 멍청한 놈들. 호야라는 녀석이 온 뒤로 사리반 말고는 다들 실수투성이구먼."
단탈스의 깜빡이 없이 들어온 팩트 폭력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단탈스는 그런 둘을 보고서 한참을 크게 웃어 댔다.
"그럼 이곳에 신입은 없다는 것 같으니까 나는 간다. 이렇게 된 김에 신입이 쓸 무기라도 만들어 놓을게. 급하게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고마운 말이었다.
지금 이 마을에 호야가 쓸 수 있는 무기라고는 모안이 건네주었던 평범한 롱 소드밖에 없었다.
다른 마을로 워프해서 구해 올 수는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단탈스는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의 무기와 장비를 들려 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 모두 단탈스의 장비를 쓰는 것에 자격이 있다 못해 차고 넘치는 이들이었으니까.
물론 재료의 준비는 방비를 받는 본인의 몫이었지만 호야는 환영의 의미로서도 단탈스가 서비스로 그냥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레벨이 100 초반이라고 했으니까...... 오랜만에 그걸 써 볼까?'
아무래도 단탈스 자신이 가진 재료들은 꽤나 고급 소재였기에 그렇게 낮은 레벨의 장비를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 수야 있었지만 재료를 훼손해 가며 굳이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잠시 사리반 좀 들볶아서 남은 거라도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곧장 사리반의 집으로 향했다.
* * *
호영은 저녁 식사를 끝낸 뒤에 인터넷을 켜서 이니티움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허수아비에게 죽었다고 해도 사망은 사망이었으니 앞으로 하루 동안은 이니티움에 접속하지 못한다.
그사이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수집하자고 생각했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몇 시간 동안 호영에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없는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그냥 넘긴 일이었지만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면 매우 이상한 일들투성이였다.
레벨 700대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숲에서 시작한 것부터 해서 자신을 죽인 허수아비까지.
아무리 이니티움에 대해서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호영이라고 해도 정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황당한 일이었다.
우선 호영은 마을 오르도에 관한 것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나타나는 게시 글들은 주로 마을에 관한 욕이나 험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르도를 시작의 마을로 삼으면 접속하자마자 죽는다는 이야기 외에는 다른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알아낸 것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있다고 한다면 자신은 어째서인지 죽지 않고 마을로 들어갔다는 것뿐이었다.
공식 세계관 설정 같은 것도 살펴보았지만 간단히 짧게 요약해서 '검과 마법이 있는 세계에서 삶을 위협하는 몬스터들과 맞서 싸운다'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 오르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오르도에 관해 알아보는 것은 포기하고서 칭호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칭호를 다른 이가 얻었다는 글이나 정보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칭호 하나하나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자신의 힘인 기밀 사항 중 하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수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른 정보들을 찾아보다가 그만하고 자려고 할 때, 베스트 게시 글 중 하나가 문득 시야에 들어와 그것을 클릭했다.
그 게시 글의 내용물은 던전 공략의 영상을 앞부분만 따로 편집한 것이었다.
영상의 안에서는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각자의 무력을 뽐내며 개미와 인간을 섞어 놓은 듯한 몬스터들을 처리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태양과도 같은 금발을 한 남자였다.
그의 등에 자신만한 대검을 차고 있었으며 그가 검을 휘두를 때 마다 몬스터들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의 뒷모습만을 잡던 화면이 점차 움직이면서 그의 얼굴을 잡아 주었다.
그의 얼굴이 영상 화면의 중앙에 박히자 영상이 멈추며 뒷부분을 보기 위해서는 결제를 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상의 플레이가 멈춤과 동시에 호영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플레이가 멈춘 영상에 박혀 있었다.
영상의 한가운데에 걸려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호영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
호영은 인터넷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어쩐지 평소보다도 더 잠이 안 오는 밤이었다.
* * *
호야가 게임에 접속하자 그가 서 있던 장소는 어제의 훈련장이 아닌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대 앞이었다.
어제 그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 어디로 먼저 가야 할지 선택하기 막막했다.
훈련장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모안이나 크라우스를 찾아봐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도 잠시, 호야는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분배하기 위해 분수대의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이름: 호야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
레벨: 116
HP: 2,760/2,760 MP: 2,760/2,760
힘: 160 민첩: 160
체력: 160 마력: 160
신성력: 160
잔여 포인트: 0
칭호
[계란으로 바위 치기] [땅끝 마을의 주민]
스킬
[마을 귀환] [마을사람의 일격]
어제 호야가 알아본 바로는 마을사람이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잡캐나 다름없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직업이 마을사람이었다.
그래서 호야는 그 본질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완벽한 잡캐가 되자.
칭호 효과로 레벨이 상승할 때 받는 포인트도 두 배로 받으니 어느 정도는 커버가 가능할 것이다.
마침 스탯 종류도 다섯 개이니 2씩 분배하면 딱 좋았다.
호야는 포인트를 모두 투자한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보고서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훈련장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훈련장에는 크라우스와 처음 보는 작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 신입!"
그 작은 남자는 자신을 단탈스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단탈스라는 남자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키가 어린아이만 한 것에 비해 몸은 굵고 단단해 보였으며 얼굴에는 연륜이 묻어나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드워프......?"
"어, 드워프야."
호야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단탈스가 아무렇지 않게 답하며 호야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호야는 그와 악수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어제 보았던 렌시아라는 엘프와 달리 현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일까.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이라는 느낌보다는 신기한 생명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대하는 호야의 태도는 자신의 어머니를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안녕하세요, 호야라고 합니다."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단탈스야. 그리고 이거 받아."
호야와 악수를 나눈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검 한 자루를 그에게 건네었다.
"저기...... 이거는?"
"환영 선물이야. 다음부터는 재료를 가지고 와야 한다?"
단탈스의 말을 들은 호야는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단탈스가 자신에게 건네준 검의 정보를 확인했다.
[기간트 레드 베어 본 소드]
등급: 성장형
공격력: 696
내구도: 150/150
*착용자의 레벨에 맞추어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최대 한계 레벨250)
*상대방을 타격할 시 작은 확률로 상태 이상 [출혈]을 발생시킵니다.
*상태 이상 [출혈]을 발생시킬 시 지속 시간 동안 자신의 HP를 극소량 회복합니다.
*상대방의 방어력을 10% 무시합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단탈스가 새로운 마을의 일원을 환영하며 선물로 만든 검입니다.
아직 나약하여 그만큼 성장도 빠를 그를 위해서 오랜만에 전설의 마법사와 합심해서 만들었던 모안탈티움을 사용하여 착용자의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서 공격력도 같이 상승하는 장비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메인 소재의 상태 자체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모안탈티움을 소량만 사용하여 성장에는 한계가 걸려 있습니다.
착용 제한: 오르도의 마을사람
전체적으로 거의 모든 것이 새하얀 색을 띠고 있는 검이었다.
정성스럽게 갈아진 날 부분은 피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고 새빨간 검날과 새하얀 검등을 나누듯이 하여 밤하늘 같은 검푸른색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검의 정보를 확인한 호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기, 등급이 성장형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뭐에요?"
이니티움의 장비 등급은 일반,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드리 이 다섯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성장형이라는 등급 같은 거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하하!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거 아는 사람은 우리 마을사람들밖에 없어. 나밖에 못 만들거든. 마을사람들 말고 다른 녀석들이 알면 귀찮으니까 이거는 비밀이다?"
그렇게 말하는 단탈스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