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5화
5. 땅끝 마을 오르도(2)
그들은 호야의 의도대로 호야가 툭 던진 말로 인해서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덕에 그들의 시선이 가시자 호야는 한결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귀찮은 일을 하지 말고 당장에라도 로그아웃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마을사람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이유가 없었다.
호야의 생각으로는 이 근처에는 이 오르도라는 마을 이외에 다른 마을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맞다, 그러고 보니까 호야는 왜 그 숲에 있었어?"
호야가 맘 편히 앉아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호야에게 다시 시선이 쏠렸다.
호야는 자신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한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기에 자신에게 대화 방향이 다시 쏠린 걸까 하고 생각했다.
"어...... 그게...... 눈을 뜨니 그곳이었기에......."
"그럼 스스로 온 게 아니야?"
"네에."
이 게임의 NPC들에게 있어서 플레이어, 즉 모험가란 주신 이브의 축복을 받아 늙지도 않고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을 말한다.
그렇기에 호야의 대답에 그들은 이브가 그를 그 숲에 보냈다고 이해했다.
"하긴, 느껴지는 힘으로 봐서 호야 혼자서는 이곳에 오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호야는 지금 이 마을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거네?"
"응? 호호호, 정말 그러네?"
"그, 그렇게 되겠죠......?"
호야의 대답에 셋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모안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호야, 촌장의 권한으로 마을을 대표해서 말할게. 우리 마을의 주민이 되지 않을래? 잘해 줄게."
모안의 말에 호야의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으로 전직하실 수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호야는 그들의 시선에 못 이겨 전직을 받아들였다.
* * *
이니티움에는 수많은 종류들의 직업이 존재한다.
기본적인 전사나 마법사 같은 직업부터 시작해서 탐험가, 대장장이, 무희, 도굴꾼 등등 그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직업들에서 파생되는 희귀 직업들은 그 몇 배에 달한다.
그러한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유저들의 선호도가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낮은 것이 바로 마을사람이었다.
전체 유저들 중 마을사람 직업군의 점유율은 0.74%.
1%가 채 되지 않는 아주 극악적인 비율이었다.
전직도 어려운 주제에 성능도 그리 좋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마을사람으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직업 명칭처럼 마을의 사람이 되는, 즉 주민이 된다는 것, 그 마을의 시민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마을의 시민 결정권을 가진 인물에게 허락을 구하거나 그 마을의 부랑자든 뭐든 간에 마을 NPC들에게서 시민권을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렵게 시민권을 구해 전직했다고 해도 마을사람은 전직 난이도에 비해서 성능이 너무 후졌다.
물론 장점도 있다.
자신이 속한 마을의 NPC들에 한해서 무조건 일정 비율 이상의 호감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 마을에 한해서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마을 NPC들에 한해서 상대방의 허락만 있다면 어떤 기술이든지 간에 배울 수도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의 직업 착용 제한도 무시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 유저들의 사망 후 부활 대기 시간이 현실 시간으로 2일인 것에 비하여 마을사람들은 부활 대기 시간이 1일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마을로 단숨에 워프 할 수 있는 그 귀하다는 장거리 워프 스킬까지 기본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들보다 단점이 더 컸다.
마을사람들은 소속한 마을과 그 마을의 NPC들에 따라서 배울 수 있는 스킬이 반제한적이었다.
시골 마을에 기사가 없어서 기사의 기술을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마을에 기사가 있다고 해도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호감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 인물의 호감도를 높여서 스킬을 배웠다고 해도 그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스킬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스킬을 배우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스킬을 알려 주었던 사람이 나타나 스킬을 회수하거나 약화시키기 일쑤였다.
동시에 자신을 안 믿고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였다며 호감도도 대폭 내려갔다.
그렇다고 해서 한 명에게만 스킬을 배운다고 한다 해도 마을사람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의 기술을 완벽하게 전수받지 못했다.
그리고 사망 후 일부 지역이나 던전을 제외하고서 사망했던 지역에서 바로 부활하거나 혹은 마지막으로 방문한 마을에서 부활하는 것 중 선택할 수 있는 일반 유저들과 다르게, 마을사람들은 강제적으로 자신이 속한 마을로 부활 포인트가 고정되어 있었다.
동쪽 끝의 마을사람이 서쪽 끝에서 사망을 맞이한다면 동쪽 끝의 마을에서 다시 부활한 후에 서쪽 끝으로 가야만 했다.
혹은 어마 무시한 가격의 귀환 스크롤을 구입하거나.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 마을사람이라는 직업이었다.
마을사람은 최약 직업들 중에서도 최약 중의 최약이었다.
하지만 '오르도의 마을사람'의 경우에는 조금...... 아니, 매우 달랐다.
"팀장니이이이임!"
벌컥!
네오워즈의 유저 관리 팀 팀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원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목에는 '네오워즈 유저 관리 팀'이라고 적인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뭐, 뭐야......."
사원의 새파래지다 못해 새하얗게 돼서 금방이라도 얼음처럼 갈라져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에 이석훈 팀장에게 불안감이 들이닥쳤다.
뭐야, 또 뭐가 터진 거야?
그런 그의 안 좋은 생각이 나쁜 의미로 딱 들어맞았다.
"그, 그그......."
"뭔데! 불안하니까 빨리 말해!"
"에, 에에...... S급 직업을 획득한 유저가 나왔습니다!"
"무슨......!"
휙!
사원의 말에 이석훈 팀장이 그제야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에는 유저의 S급 직업 획득을 알리는 메시지 창이 떠 있었다.
물론 유저의 정보는 회사 사원이라 해도 간단히 알 수 없는 기밀사항이었기에 메시지 창에 떠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직업 분류 등급: S+
직업 명칭: 오르도의 마을사람
직업 획득 유저명: 호야
직업 획득 위치: 땅끝 마을 오르도
단 4줄의 정보가 다였다.
사실 이것도 감지덕지한 정보다.
이석훈은 자신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느꼈다.
진심으로 사표를 내던지고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직후, 바로 자신의 팀장을 찾아 헤매던 운영 팀 사원도 이석훈 팀장의 방에 도착했다.
이석훈과 유대후가 입사 동기임과 동시에 오래된 우정을 나눈 사이다.
그러한 사실을 운영 팀과 유저 관리 팀 사원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팀장이 보이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상대 팀장의 팀장실로 찾아갔었다.
그리고 오늘도 유대후 팀장은 이석훈 팀장의 팀장실에 있었다.
"팀장님! 방금 전에......!"
"S급 직업이 나왔다고 말하려고?"
"헉! 그걸 어떻게 벌써 알고 계세요?"
"여기가 어딘지 잊은 거냐?"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유저 관리 팀'의 팀장실이었다.
유저들에 관한 정보 정도는 '운영 팀'의 사원보다 빨리 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 그럼 S급 직업을 획득한 유저가 아까 전에 소동을 일으킨 유저와 동일인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사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주제넘은 말이지만 이거 뭔가 위험한 상황 아닌가요?"
S급으로 분류된 직업들은 이니티움의 오픈 후 2~3년 뒤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직업들이다.
2~3년 후에 시작하는 후발 주자들이 오픈 때부터 달려온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게 준비해 놓은 안배였다.
그중에서도 S+로 분류되는 직업들은 거의 획득이 불가능한 직업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픈 두 달 만에 튀어나왔다.
그냥 S급도 아니고 S+의 직업이 말이다.
그것도 오늘 막 시작한 유저로 인해서.
제일 답답한 것은 그 유저에게 제재나 중재를 가할 방법도, 대화를 나눌 방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귓속말 시스템은 캐릭터가 시야 안에 들어오거나 친구 목록에 추가된 유저에 한하여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친구 추가도 캐릭터를 눈으로 보고 있어야지 신청이 가능했다.
현재로서는 호야라는 유저와 연결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것도 하나 있었다.
직업명에 포함되어 있는 '오르도'라는 단어.
이니티움의 오픈 초기에 유저들의 항의가 들끓게 만들었던 시작의 마을.
이브가 시작의 마을 목록에 넣어 놓았던 마을의 이름이었다.
운영진들은 그 오르도라는 마을에 대하여 전혀 알고 있지 않다.
그나마 하나 짐작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땅끝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어렴풋이 게임 스토리에 깊게 관여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오르도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관리 AI인 이브와 그녀의 창조자이자 아버지이며 네오워즈의 회장인 이태성밖에 없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브는 호야라는 유저의 레벨 업이 버그가 아니라고 단언했고 이 직업 획득도 버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버그가 아닌 이상 이브와 회장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거다."
유대후는 상황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버그가 아닌 이상 유저 관련 정보를 자신들에게 알려 줄 리가 없었고 직업의 획득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버그가 있다고 해도 이태성이 이니티움에 수정이나 롤백을 가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는 이니티움을 플레이어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머리를 싸매는 것밖에 없었다.
* * *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으로 전직하였습니다.]
[사망 후 부활 대기 시간이 24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모든 장비들의 착용 제한 중 '직업 제한'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직업 스킬 '마을 귀환'을 획득합니다.]
[직업 스킬 '마을사람의 일격'을 획득합니다.]
[칭호 '땅끝 마을의 주민'을 획득합니다.]
호야가 전직하면서 생겨난 시스템 메시지는 여섯 개가 전부였다.
호야는 바로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보았다.
이름: 호야
직업: 오르도의 마을사람
레벨: 116
레벨: 116
HP: 1,260/1,260 MP: 1,260/1,260
힘: 10 민첩: 10
체력: 10 마력: 10
신성력: 100
잔여 포인트: 660
칭호
[계란으로 바위 치기] [땅끝 마을의 주민]
스킬
[마을 귀환] [마을사람의 일격]
신성력은 사리반이 만든 요리를 먹고 얻은 스탯이었다.
땅끝 마을의 주민이라는 칭호와 마을 귀환이라는 스킬은 전직을 하면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신성력 100.
랭커들에 비하면 결코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기사나 사제가 아닌 직업이 신성력 스탯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