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4화 (4/171)

# 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4화

4. 땅끝 마을 오르도(1)

"도착!"

남자의 목소리에 호야의 정신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탁!

남자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을 인식한 호야는 남자의 손을 다시 뿌리쳐 버렸다.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나 본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 보일 행동은 아니었다.

신도 모르게 손을 뿌리친 것에 호야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남자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좀 전에 있던 일도 있었으니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오르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음, 그러니까...... 이름이?"

"호, 호야예요."

"그래, 호야. 어서 와, 우리 마을에. 내 소개가 아직이었지? 내 이름은 크라우스. 잘 부탁해!"

자신을 크라우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악수를 청하는 의미로 호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호야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악수를 받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크라우스의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 준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 사람이 아닌 게임 속의 NPC라고 인식하니 크라우스를 대하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편해진 것도 있었다.

호야는 의사의 권유대로 가상 현실 게임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하지만 아직은 딱 거기까지였다.

살짝 더듬는 말과 작은 목소리, 상대방의 시선을 피하는 눈의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아직은 말이다.

마을 오르도는 꽤나 규모가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이라고 하기보다는 잘 발달된 아파트 단지라고 하는 것이 더욱 걸맞은 표현일 것 같은 규모였다.

실제로 오르도에서 사는 사람의 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집단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걸맞은 표현일 것 같은 인구수였다.

적은 인구수 탓인지 마을의 풍경도 매우 단출했다.

나무를 엮어서 모양새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은,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을 울타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줄기를 휘감으며 자라나 있었고 마을 안의 건물들은 3층을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건물들도 필요 최소한의 모양만 유지하고 있었다.

길 또한 전혀 포장되지 않는 흙바닥이었다.

조금.......

"마을이 조금 초라하게 생겼지?"

크라우스가 호야가 생각하던 것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확실히 조금 초라...... 아니, 소박하다고 생각하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호야는 어색한 미소밖에 지을 수 없었다.

"아하하......."

"우리도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화려하게 마을을 만들고 싶기는 한데 건물이 자주 부서지거든. 촌장님이 맨날 부숴 먹을 거 뭐 하러 힘써서 꾸미냐고 하는 바람에 이 꼴이야, 하하하하. 뭐, 일단 들어와, 들어와."

크라우스의 손짓을 따라서 울타리를 넘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콰과광!

울타리 안쪽으로 한 발 내딛기 직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무언가에 의해서 크라우스가 주변 건물과 함께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호야의 몸이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버렸다.

"켁, 켁. 아, 입에 흙 들어갔어."

"크라우스! 또 네 녀석이 가져간 건가!"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렌시아......."

"내가 내 약초들에 손대지 말라고 수천 번은 얘기한 것 같다! 적당히 좀 해라! 약초들이 상하면 네 녀석이 책임질 건가!"

호야는 고개만을 뻣뻣하게 돌려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비단 같은 백금발과 기다랗고 뾰족한 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손에 활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크라우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래 먼지가 걷힌 그 자리에 크라우스는 의외로 멀쩡히 서 있었다.

주변 건물이 날아가고 깊은 크레이터가 생겨났지만 크라우스는 먼지를 뒤집어쓴 것을 제외하고는 사지 모두 멀쩡했다.

크라우스의 발치에 화살 하나가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전 폭발의 원인은 그 화살 같아 보였다.

화살 하나로 저 정도의 위력이 가능하기는 한가?

가만히 상황을 응시하고 있자 렌시아라고 불렸던 여인이 재빠르게 크라우스에게 다가가서 그가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나뭇잎들을 걷어 내었다.

"아...... 그게...... 마침 딱 좋아 보이길래......."

"아아...... 생채기가 난 것으로도 모자라서 별의별 이물질까지 뒤집어썼잖아.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건가!"

"아니, 먼지 뒤집어쓴 거는 네가 한 짓이잖아? 그것까지 책임 전가하지 말아 줄래?"

"시끄럽다! 닥쳐라!"

"너희 둘 다 닥쳐, 좀!"

나뭇잎이 아니라 약초였나 보다.

약초들을 빼앗아 품에 안은 렌시아가 크라우스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자 어디선가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린 여자의 목소리라고 하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호야가 시선을 주자 그곳에는 많이 쳐주어도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소녀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둘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전에 건물 박살 나고 나서 고친 지 일주일도 안 됐어! 그런데 바로 또 이 지경이야?"

"아니, 이건 얘가 먼저......."

"원인은 이놈에게 있다. 나는 피해자다, 촌장."

"원인이고 뭐고 결과가 이렇잖아!"

소녀는 팔을 팍 하고 펼치며 손가락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할 말이 없었는지 크라우스와 렌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소녀의 말에 렌시아의 눈이 호야를 향했다.

그것에 따라서 크라우스와 소녀의 시선도 호야에게 향했다.

호야는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호야는 입을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을 겨우 속으로 삼키고 작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호야라고 합니다."

"이곳에 손님이라니....... 모험가? 흐흠, 오르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모험가여."

렌시아는 호야를 발견하고서 옷매무새를 점검하더니 꽃밭과도 같은 미소와 온화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놀랍도록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옆에서 그런 렌시아의 모습을 크라우스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도 환영해. 내 이름은 모안이야."

자신을 모안이라 소개한 소녀가 호야의 곁으로 총총 걸어왔다.

호야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은 소녀는 그의 손을 잡고서 그를 마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모안의 손길에 호야는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거부 반응은 없었다.

저 작은 몸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생겨나서 그런지도 모른다.

"속지 마, 호야. 겉모습은 저래도 속은 완전 할망구니까."

"네?"

"사실은....... 크헉!"

호야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온 크라우스가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것에 대해 물음을 표한 호야의 말에 크라우스가 다시 답하려 했지만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단단한 돌덩이에 복부가 가격당해서는 배를 부여잡고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호호호, 크라우스, 방금 뭐라고 했니?"

"아, 아무것도......."

모안의 말에 크라우스는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후에 환영 분위기에 휩쓸려서 호야는 음식까지 얻어먹었다.

사리반이라는 남자가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호야는 그 음식들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떠오르던 시스템 메시지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전설의 기간트 레드 베어 꼬치를 먹었습니다.]

[240분 동안 힘, 체력이 30% 상승합니다.]

[전설의 레인보우 슬라임 농축 젤리를 먹었습니다.]

[60분 동안 이동 속도가 30%, 공격력이 25% 상승합니다.]

[전설의 천계의 밀 식빵을 먹었습니다.]

[영구적으로 신성력이 100 상승하며 120분 동안.......]

모든 음식이 버프 요리였다.

그것도 현재 사제 랭커들보다도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요리사들의 버프 요리는 사제들의 버프보다 효과가 작다고 알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던 걸까.

게다가 기간트 레드 베어는 호야도 알고 있는 몬스터였다.

정확히는 대규모 레이드가 필요한 필드 보스 몬스터.

호야가 봤던 이니티움 플레이 영상 중에서 설백호라는 길드의 정예들이 모두 모여서 큰 피해와 시간을 들여서 겨우 잡아낸 보스 몬스터였던 것 같은데.......

아마 이것도 착각일 것이다.

호야는 그렇게 생각하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크라우스와 모안의 사이에 반강제로 앉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난이도가 아직 너무 높았다.

크라우스와 모안이 여러 이야기들로 호야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호야의 대답은 거의 네, 아뇨 같은 단답이었기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화는 어느 순간 뚝 끊겨 버렸다.

크라우스와 모안은 묵묵히 음식을 먹는 호야를 아빠 미소, 엄마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리반도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참, 복스럽게 먹네.'

'호호호, 요 귀여운 것. 볼수록 마음에 드네.'

'움하하핫! 역시 아직 내 요리는 죽지 않았어!'

호야 자신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호야의 먹는 모습은 참으로 예뻤다.

그런 호야의 모습과 오르도에 처음 방문한 모험가라는 관심과 흥미가 섞여서 그들에게 콩깍지를 씌워 주고 있었다.

호야의 단답형의 대답들도 그저 과묵한 성격으로 보였다.

'으으.......'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고 있는 호야는 거의 죽을 맛이었지만.

지금 음식이 코로 들어가고 있는지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호야에게 날아오던 질문과 대화들이 끊긴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끊겼던 대화가 강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되어서 그에게 돌아와 버렸다.

그것이 호야는 더 괴로웠다.

그들의 시선이 견디기 어려웠던 호야는 그래도 그들끼리 대화가 이어지게 하면 그들의 시선이 약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의문스러웠던 것에 대해 질문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크라우스 씨.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편하게 그냥 크라우스라 불러. 것보다 궁금하다는 게 뭐야?"

"그...... 저를 처음 봤을 때 왜 검을 들이댄 건가 해서......."

"아아."

호야의 질문에 크라우스는 자신의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호야 너를 보고서 엔트의 아종이라고 착각했었어. 그 일은 정말 미안해!"

"하긴...... 호야 너의 모습은 충분히 오해할 만해. 뭐, 머리를 무지개로 물들인 모험가들보다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러고 보니 슬슬 아종이 나올 때네."

호야는 연한 갈색 빛 피부에 녹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숲의 마기가 뭉쳐서 엔트가 진화한 아종의 모습이 호야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 말에 호야는 처음에 왜 크라우스가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지. 조심했어야지, 크라우스."

"아니 하지만 엔트들도 호야를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고.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 않아?"

엔트들은 종류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렇기에 엔트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존재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엔트들이 있는 숲에는 다른 몬스터들이 전혀 없다.

아마 엔트들도 호야의 모습에 껌뻑 속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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